우리강산푸르게푸르게총서 16
우리들의 구로동 연가

■ 소개

구로‘공단’에서 구로‘디지털산업단지’로

‘구로’는 지혜를 상징하는 아홉 노인이 오랫동안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로공단이 형성되기 전 구로는 도심에서 추방된 철거민들의 주거지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구로는 구로공단으로만 알려져 있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 법안이 제정되면서 1967년에 구로공단이 처음 만들어졌다. 도시 외곽의 철거민과 농촌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떠받친 곳이지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노동자들은 공돌이·공순이라는 오명과 소외·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구로공단에 있던 많은 공장들은 더 낮은 임금을 찾아 중국 등으로 떠났고, 구로는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과 IT업체 등 새로운 업종의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굴뚝형 공장은 사라지고 높은 아파트형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2000년 2호선 구로공단역은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삶은, 이야기 ―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단지 사이 월드를 지키는 여섯 명의 사람들

이 글에는 여섯 명의 ‘삶 이야기’가 있다. 구로라는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산업화 과정에서 공순이와 공돌이로, 노동운동에 참여하며 거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는 동안 이 사람들의 삶도 변했다. 필자가 발로 찾아다니면서 취재하고 구술을 받아 적은 여섯 명의 이야기가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는 그 사이를 생생히 들려준다.

이수진은 구로에서 태어나 자라 사무직에 취직했지만 사무직이라는 자부심은커녕 사람을 사이에서 스트레스만 받았다. 지금은 동네 무료 공부방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일다운 일을 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김의순은 농촌에서 풍족하게 자랐다. 가난한 농촌 총각과 결혼하면서 구로에 정착했고, 구로공단에서 기혼 여성 노동자로 일했고 노동조합도 했다. 지금은 착취 없이 일한 만큼 가져가는 생산공동체의 노동자다. 윤혜련은 구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구로공단의 노동자로 일했다.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해 구속되기도 했다. 지금은 구로삶터자활후견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문재훈은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하려고 구로에 왔다.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구로를 20년이 넘도록 지키며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교육하고 있다. 하태한은 구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용산전자상가에서도 일하고 컴퓨터 가게도 운영하고 횟집도 해봤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구로초등학교 학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하태한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보람을 느낀다. 구의원 선거에 시민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지금은 구로시민센터에서 상근 활동을 하고 있다. 박혜경은 우리네약국 약사이자 구로건강복지센터 이사장이다. 20대 중반에 구로에 와서 노동자와 아이들 장애우 등 의료 소외 계층의 건강을 지켜주려고 한다.

가난과 소외, 슬픔과 기쁜,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이 여섯 사람의 구로동 연가를 죽 따라가면, 우리의 지난 시절과 곧 다가올 미래가 언뜻언뜻 보인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은 이어져왔고 또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지갯빛 희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당신의 희망은 무엇일까?

■ 목차

1부| 내 안의 구로동
1. 기억 더듬기 ― 내 안의 구로동
2.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
3. 사이를 채우는 사람, 사람들

2부| 구로동 사람들
1. 행복의 조건 ― 이수진
그 여자의 구로동|불안정한 노동, 그리고 남편의 허황된 꿈|불치병에 걸린 남편과 살며 사랑하며|‘일다운 일’과 이수진의 행복
2. 일 잘하고, 일 좋아하는 노동자 ― 김의순
남자들은 집에 있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구로공단 노동자되기|친구 따라 강남가기, 노동조합 활동|공부는 못해도 일은 잘하는 노동자
|새로운 일터 ‘생산공동체 한백’|생산공동체 한백의 실패를 딛고 다시 생산공동체 여우솜씨로|이주 노동자도 같은 노동자
3. 사람의 변화를 경작하는 사람 ― 윤혜련
화두, 삶을 변화시키는 활동|원죄, 대한민국에서 빨갱이 가족으로 산다는 것|어린 여성 노동자에서 구로동맹파업의 주역으로
|대안을 찾아, 삶의 양식을 바꾸는 노동운동
4. 마법에 걸린 구로 말뚝이 ― 문재훈
문재훈을 사로잡은 마법들|여동생은 노동자, 오빠는 대학생|불쌍한 우리 아버지, 반무당 어머니|빈대떡 신사가 된 구로동
|공순이와 공돌이를 대신한 이름, 비정규직 노동자|화려한 꽃보다는 든든한 줄기로
5. 나를 키우는 건 지역사회 활동 ― 하태한
구로의 개구쟁이, 하태한|새로운 삶, 지역시민단체 활동가|난 참 내세울 게 없어요|사회 문제에 민감했던 구로고등학교
|아이 넷, 어른 셋, 두 가족 한 공동체|학부모 활동 속에서 성장한 중년 아저씨
6. 약은 약사에게, 구로는 구로 사람들에게 ― 박혜경
새로운 지역보건복지운동, 구로건강복지센터|남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좋은 약사되기|나에게 좋은 약사라는 직업
|가난해서 건강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실패의 경험과 동네 유리가게 아저씨

3부| 우리들의 구로동을 향해
1. 소통과 연대
2. 엘리트주의에 묻힌 대중

■ 저자 소개

구은정

구은정은 여태까지 살아온 세월의 반을 구로에서 살았다. 그 시간을 이런 지면을 통해 정리,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무엇보다 기쁘고 행복하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구술자들의 삶 이야기가, 적어도 앞으로 10년은 나의 삶과 얽히어 가겠다는 느낌이 든다. 잡초로 불리는 작은 풀들의 이름을 찾아주듯, 평범하거나 조금은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 삶 속에 묻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픈 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