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강산푸르게푸르게총서 29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 소개

지금 여기 문래동, 철공소와 예술의 마을

낡은 철공소 간판, 퇴락한 옛 공단 풍경 사이를 색색의 벽화가 물들인다. 잔업을 마감한 철공소의 철문이 내려지고 거리가 어둑해지면 어디선가 조명과 악기들이 등장한다. 이런 풍경이 낯설지도, 이례적이지도 않은 곳이 문래동이다. 언제부턴가 문래동은 ‘예술가들의 마을’로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뭔가 독특한 풍경’을 찾아 문래동에 걸음 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오래된 산업과 새로운 예술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동네, 문래동. 왜 예술가들은 철공 단지 한복판에 둥지를 틀게 됐을까? 문래동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공업 지역이라는 역사와 재개발과 도시계획이라는 현재 사이에 위태롭게 발 딛고 있는 문래동을, 왜 우리는 주목해야 할까?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사람들이 문래동의 구석구석을 담아낸 책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를 썼다. 이 책은 예술을 통해 변화하는 도시, 도시와 만나 새로운 생동감을 얻는 예술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흔쾌히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민들의 공공 미술에서 예술가가 된 철공 장인까지

문래동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공업 지역으로 발달한 곳이다. 1980~1990년대 개발 정책에 따라 그 모습이 많이 변화했지만, 공장이 빠져나가고 아파트 단지와 주상 복합 오피스텔이 들어선 ‘황금 상권’ 곁에도 아직 과거의 철재상가는 남아있다. 이곳에 예술가들이 이주해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정부의 산업 시설 이전 정책 때문에 생겨난 철재상가 단지의 빈 공간에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고 있던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 마을’로 거듭난 문래동, 이곳의 새로운 주민인 예술가들은 고철음 속에 서서히 녹아들어가며 새로운 풍경과 소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문래동을 ‘예술가들의 창작촌’으로 처음 소개한 행사는 ‘경계없는 예술축제’다. 문래동 한복판에서 거리극과 퍼포먼스를 하고, 세트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이웃의 철공소와 협력하며 지역의 힘으로 연 첫 번째 축제였다. 2008년 시작된 공공 미술 역시 지역과 예술이 만나는 과정이었다. 철공소 사장의 하루를 그린 김윤환의 새한철강 철문 벽화, 문래동의 상징인 로봇 조형물, 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 자전거 등이 모두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문래동 주민들이 서로 만나 친해질 수 있는 공간도 속속 생겨났다. 공정무역 커피하우스 골다방에서는 매일 커피 볶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오며, 예술가들과 지역 주민들은 자율부엌 ‘소식’에서 함께 요리하고 밥 먹으며 일상을 나눈다. 독립영화 정기상영회가 열리는 ‘주말의 독립명화’에서는 극장에서 만나보기 힘든 영화를 보며 맥주와 수다를 곁들인다.

‘친절한 덕진 씨’는 예술가들과 철공소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만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현정밀 사장님 덕진 씨는 자동화 기술이 발달한 뒤에도 수작업을 고수하는 수공업 장인이다. 세현정밀 근처 빈 철공소에 예술가들이 들어선 뒤 덕진 씨는 예술가들과 노는 것에 푹 빠졌고, 여러 설치 작품의 제작을 도왔다. ‘예술 간판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직접 세현정밀 간판을 제작하기도 했다. ‘예술가’ 덕진 씨의 첫 작품인 셈이다.

문래동 창작촌의 이런 에너지는 문래동 밖의 사람들하고도 활발하게 손잡는다. 미대생들이 문래동을 찾아 이곳의 풍경에 한 땀 보태기도 하고, 일본의 문화 활동가 아마미야 카린과 공공 미술의 창시자 수전 레이시 등 여러 나라 친구들이 문래동과 만나고 있다. 문래동 예술가들은 레지던시 프로그램 ‘LAB39R’도 운영하고 있다. LAB39 멤버들이 꾸민 포근한 레지던시 덕분에 문래동은 해외의 예술가 친구들과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됐다.

뉴타운? No! 컬처노믹스? No! ? 예술 도시로 가는 올바른 길을 찾아서

창작촌에서 벌어지는 소통은 단순히 예술가들의 교류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예술 활동의 참여자이자 생산자로 끌어들이고, 그 지역의 특성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문래동 역시 철공 단지의 장인들과 예술가들이 만나면서 새로운 실천이 벌어지고 있는 창작촌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현대적 도시계획과 재개발의 열풍에서 문래동도 자유롭지 않다. 재개발 소식과 치솟는 임대료는 문래동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 기관에서 발표한 ‘육성 계획’에는 별다른 구체성도, 실효성도 없다. 창작촌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이 뜨거운 화두이지만, 그것은 작품 몇 개를 설치하고 예술적인 건축물을 세운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 산업과 예술이 공존하며 생겨나는 역동성,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창조성을 발현하게 하는 것이 창작촌의 진짜 의미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와 공공 기관들이 문래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키려 한다면 무엇보다 지금의 문래동을 가능하게 한 역사와 맥락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고 이곳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 목차

프롤로그 문래동, 예술가와 만나다, 예술가, 문래동과 만나다

1장 철공소로 간 예술가들 ― 공업단지에서 문래창작촌까지
문래동,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
개발의 풍경들
예술가들, 스며들다

2장 문래동 이야기
문래동을 개방합니다, 한시적으로 ― 오픈스튜디오
예술가들의 조금 특별한 반상회 ― 문래예술공단
아트한 복덕방
지역 어린이와 만나다 ― 개나리 봇짐
거리극, 지역의 경계를 넘다 ― 경계없는 예술축제
문래창작촌의 공공 미술과 시각예술네트워크
문래동 물물 장터에서 만나요 ― 썬데이 문래
문래동 사용하기? ― 문래동_사용하기 워크숍
공정무역 커피하우스 골다방
부엌이야, 술집이야? ― 자율부엌, 동네부엌 이야기
이것은 옥상이 아니다. 이것은 미술관이 아니다 ― 옥상미술관 프로젝트
미대생들, 새로운 공부 공간을 만나다
동네 영화관, <주말의 독립명화>
여하간 이것저것 하는 공간 ― project space LAB39
문래동의 거리 아지트, 신흥상회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 공용 공간 이야기
문래동 쓰레기장, 화단이 되다
함께 쓰는 침대 ― 자율적 레지던시 프로그램 LAB39R
열린 공간에서 뿌리는 예술의 씨앗 ― 비영리 전시 공간 솜씨
지역에서 실천하자 ―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문래창작촌의 이복동생 문래예술공장
밥상 나르는 사람들 ― 문래동의 식당 아줌마들
문래동과 만난 여러 나라 친구들
친절한 덕진 씨
문래동과 만났어요 ― 문래동에 놀러오는 사람들
산으로 간 사람들 ― 문래골목산악회
문래동을 연구하는 사람들

3장 문래동, 새로운 예술 활동의 발신지

에필로그 지속 가능한 문래동을 위해

■ 저자 소개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2007년부터 문래동에서 활동하던 예술가, 도시사회학 연구자, 미학 연구자, 예술행정 연구자, 문화예술 기획자 등이 자신들의 거주지이자 활동 공간인 ‘문래동’을 연구하면서 발족했다. 현대 도시와 예술의 문제를 사회 실천적 지평에서 연구하는 집단인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는 주로 사회·문화·생태학적 관점에서 현장과 지역에 밀착해 연구한다. 《도시 재생의 대안적 미래 ? 문래예술공단연구》 등 문래창작촌에 관해 3편의 연구서를 발간했으며, 서울의 빈 공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