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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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2012년 한 해 동안 월간 도시문제(행정공제회 발행)와 함께 도시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로 제시해보려고 합니다. 희망제작소 각 부서 연구원들이 매월 자신의 담당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를 풀어놓습니다. 


집은 사는(buy) 곳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요즘 세태를 꼬집는 말입니다. 직장을 가지고도 아파트 대출 이자로 허덕이는 사람들 일명 하우스 푸어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제 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은 소박한 꿈이 아닙니다.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여 안타깝습니다. 부족한 공급량을 기계적으로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한 집에 대한 인식을 삶을 사는 공간으로 바꾸기 어렵습니다.

올 초 서울시는 뉴타운 출구전략을 발표하며 앞으로 주택 문제로 시민을 길거리로 내모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지역공동체가 스스로 주거를 포함한 여러 가지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 효과와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물리적 공간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집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의 개념에서 살펴보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얻고 있습니다.

함께 사는(live) 집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는 17년째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미산마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장도 정부도 해결해주지 않는 지역의 문제를 지역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생협을 만들고, 대안학교를 짓고, 마을극장을 세우고, 마을기업을 만들더니 최근에는 주택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멈출 줄 모르고 치솟는 서울 집값 때문에 공동체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해결책으로 집을 ‘함께’ 소유해서 살기로 했습니다. 시작은 마을 내 빌라를 구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마을 사람들 입맛대로 공동주택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을 줄여 ‘소행주’라고 부르는 이곳은 성미산마을 사람들이 건설회사를 설립해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두 마을기업에서 진행했습니다. (1)코하우징(cohousing)이라는 개념을 빌려 만든 공동주택입니다.

소행주는 요즘 성미산마을 투어의 인기 방문지입니다. 집 안을 구경하는 것은 제한이 있지만, 2층에 마련된 공동공간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2층에는 세 가지 목적을 가진 공동공간이 있습니다. 아직 마을기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을 내 동아리 활동들이 사업적인 변화를 꿈꾸며 활동하는 수제 비누 공방이 있고, 방과 후 학교 공간이 있어 아이들은 집에 와서 방과 후 학교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2층 공동공간의 백미는 공동거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행주 주민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은 마치 옛날 시골에서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소비자에서 벗어나기

아파트를 구입할 때 정보를 찾아 모델하우스에 갑니다. 그곳에 가면 화려하게 꾸며진 아파트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아파트는 휘트니스 시설 등 커뮤니티 공간을 보유했다고 광고합니다. 몇 가지 제안된 내부 평면도와 모델하우스 방문을 통해 아파트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몇 년을 기다려 아파트가 완공되면 하자정도만 확인한 후 입주합니다. 

이와 달리 소행주의 입주자는 단순하게 집을 사는 소비자가 아닙니다. 소행주는 입주자가 원하는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과정부터 참여하는 코디자인(co-design)의 형식으로 집을 짓습니다. 입주자의 필요에 따라 설계가 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모여 있습니다. 다섯 식구가 사는 어떤 집은 아침마다 화장실 전쟁을 치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17평의 집이지만 두 개의 화장실을 설치했습니다. 어떤 집은 문이 없는 화장실을 두기도 하고, 다용도 방을 만든 집도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이 가능했던 것은 입주자와 건축가가 설계과정을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설계를 함께하기 위해서는 소통을 해야 합니다. 이때 소통이라는 것은 단순히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범위 안에서 가능한 안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논의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집에서 사는 입주자는 집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애정은 공동주택을 운영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됩니다.

코하우징은 집을 짓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동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 가지 점에 유념해야 합니다.

1)저렴한 돈으로 집을 소유해 살아가는 것 2)이웃이 함께하는  커뮤니티가 공간이 있어야 됨 3)공동공간을 통해 복잡한 대도시에서도 여유를 느낄 수 있어야 함

무엇보다도 공동주택을 지을 때 공동주택의 방향성을 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성미산마을의 경우 이미 공동체 내에서 이런 공간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오랫동안 있었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소통으로 행복한 주택’으로 방향성이 정해졌습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공동주택을 함께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소행주의 경우 입주 가정마다 가진 필요와 요구를 반영하여 공동주택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공동주택에서 사는 공동체가 가지는 만족감은 일반적인 집을 구매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많은 갈등이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조정과정이 안정적인 공동체 생활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코하우징이 주택난의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 집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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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하우징이란?

코하우징은 거주자들이 적극적으로 공간 설계와 운영에 참여하는 협업주택(collaborative housing)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코하우징의 거주자들은 기본적으로 공동체로 생활하기로 결심하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설계과정에서 물리적인 공간은 사회적 영역인 공동공간과 사적인 공간인 각 가정의 공간을 모두 배려합니다. 개인주택의 경우도 일반주택의 모든 공간과 설비를 갖추었지만, 외부 공간 마당, 운동장 등의 공동 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습니다.

코하우징이라는 개념은 덴마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에는 1960년대 초에 건축가 찰스 듀렛(Charles Durrette)와 캐스린 매카만(Kathryn McCamant)에 의해 보급되었습니다. ‘생활공동체’라는 덴마크의 개념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현재  세계적으로 수백 곳의 공동체가 덴마크에서부터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뉴질랜드,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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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한선경 (사회혁신센터 선임연구원 alreadyi@makehope.org)

● 연재목록
1. ‘마음껏 걸을 권리’ 되찾으려면
2. 우리가 몰랐던 ‘마을’의 모습
3. 세상을 바꾸는 ‘시민 아이디어’의 힘
4. 도시는 마을이 될 수 있을까
5. 우리는 왜 함께 사는가

*본 글을 월간 도시문제 2012년 5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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