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박원순의 희망탐사 17>

“모든 사람이 예술의 생산자다.”

이는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해당한다. 먹고 살기의 버거움에 가끔 문화나 예술을 사치로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는 사치품이 아닌 삶의 전제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문화의집’은 그 생각의 발로에서 시작됐다. 문화가 문턱을 낮춰 사람들의 삶에 다가오기 시작했고, 생활 속에 가까이 다가오는 문화는 그만큼 모두를 예술의 생산자로 이끄는 지름길로 작용한다.

1996년 처음 발족한 문화의집은 현재 전국에 161개소가 설립되어 운영 중이다.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익히며,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값진 공간이 전국 161곳이나 된다는 말이다. 문화의집의 역사가 이제 10년을 넘기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그 값진 공간 가운데 한 곳인 ‘광주 북구 문화의집’에서 전고필 상임위원을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지역문화정책론 강의를 듣는 느낌이다. 그에게는 실무경험에 기초한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쉽게 풀어놓는 재능이 있었다. 전 위원의 이야기를 통해 전국적으로 설치된 ‘문화의집’에 관한 일반적 상황과 문제점과 그 대안을 통째로 들을 수 있었다.

대중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소규모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문화의집
”?” “과거 정부의 문화정책은 시설중심이었어요. 커다란 건물 하나 지으면 다인 줄 아는 그런 정책 말예요. 하지만 대형시설은 수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의 문화 향유 기회를 막아버려요. 그러던 중 1996년에 프랑스의 문화의집, 일본의 공민관 등을 모델로 해 한국에 맞는 소규모 문화복합공간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는데 그것이 기반이 되어 2011년까지 전국에 500개를 만들기로 한 거죠. 이게 문화의 집의 기원이랄 수 있죠. 문화공간이었지만 여기에는 유아사랑방, 문화창작실, CD부스, 컴퓨터실 등 주민의 생활에 밀접하게 필요한 공간들이 만들어져 방문객들이 많았어요.”

전고필 상임위원의 문화의 집을 주제로 한 강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문화의집의 대표적인 공간 가운데 하나인 문화사랑방은 전시공간으로, 또는 회의실과 창작공간 등의 복합공간으로 기능한다. 전통사랑방은 다도(茶道)를 배우고 실천하는 곳이다. 강좌 이외에는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광주 북구 문화의집은 97년에 생겼는데 지방정부가 유휴공간을 내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자본을 50%씩 내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기업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고필 상임위원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본 광주 북구 문화의집은 그 공간의 쓰임새도 그렇지만 나 같은 일반인의 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했다. 공간의 배치며, 인테리어 디자인, 로고와 캐츠프레이즈 그 무엇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잘되어 있는 것은 그 공간과 시간을 가득 메우고 채우는 질 높은 프로그램들이다. 이정도의 수준을 구현하는 데 내 세금이 쓰인다면 부담이 된다고 해도 세금을 달게 낼 수 있을 듯하다.

“처음엔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가는데 이유를 몰랐어요. 한해 한해 지나면서 어린이들 대상의 프로그램을 하려면 부모와 협의해야 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이 부모보다 더 바쁘니까 이곳이 학원보다 더 유용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우리가 먼저 찾아갔어요. 아파트로, 골목으로. 그리고 부녀회나 주민자치위원들 등 주민자치조직과 만나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빛이 보이더군요.”

광주 북구 문화의집 정민룡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무턱대고 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사진들을 모아 실사스크린에 담아 전시를 하려는 계획이었다. 주민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생산하는 예술,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술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제는 가능하다.

“강릉에서는 ‘디지털’이라는 주제 아래 직장 다니는 남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청주 흥덕 문화의집에서는 저소득층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연극 프로그램을 만들었고요. 이러한 작은 시도를 통해서 주민들의 마음을 엮어내는 거죠. 행복한 마을이 될 수 있도록 가교가 되는 건데, 이렇게 마음을 묶어 한 식구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야기 끝에 정 팀장의 입가에 미소가 고인다. 일이 행복한 사람들, 타인의 삶에 문화의 향기를 전하는 그들이 있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문화의 향이 묻어난다.

그들의 특별한 시도는 전국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민간전문가들이 위탁하는 곳에서는 더욱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탄생한다. 울산 노송3동 문화의집에서는 한 부모, 조손아이들 40여 명을 대상으로 어린이 탐험대를 운영한다. 노송3동 문화의집은 기본적으로 자원활동가들에 의해 운영되는데 공간과 지원이 줄을 잇는다.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예술의 남다름-북구문화의집의 다양한 프로젝트
”?”북구 문화의집에서 무엇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들이 만든 책이다. 작은 소시민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이 함께한 문화예술교육의 경험들이 ‘삶의 문화’, ‘골목 이야기 프로젝트’ 등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새로운 발상과 기획, 주민들의 새로운 경험, 그들이 빚어낸 멋진 작품들, 그것들을 담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그럴싸한 디자인이 한데로 뭉친 그 책들은 북구 문화의집의 남다름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했다.

책뿐 아니다. 주민이 만들어내고 주민이 그 문화예술의 대상이 되니 모든 것이 그야말로 ‘살아 있는 작품’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문화예술은 무지개 퍼즐이다’ 프로젝트는 지난 2006년 한 해 동안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계해 진행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성과물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1인칭의 역사인물이 돼 자신의 일대기를 톡톡 튀는 감성으로 표현하는 ‘1인칭 5ㆍ18프로젝트’, 자신의 프로덕션을 만들어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구조를 경험해보는 ‘친구네 프로덕션’,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디자인하는 ‘학교디자인 프로젝트’ 등 신선한 이름과 내용들이 가득하다.

열 명의 어린이들이 골목탐험을 떠나 마을의 지도를 그리는 ‘어린이 골목지리 탐험’이나 동네 아줌마들이 자신들이 사는 마을을 이야기하는 ‘골목 이미지 탐험’ 등이 모여 북구 문화의집의 ‘골목이야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아홉골, 따뜻한 담벼락>이라는 예쁜 책이 나왔다. 마을의 스토리를 그림과 글, 사진으로 보여주는 ‘골목이야기 프로젝트’는 북구 내의 중흥 3동을 시작으로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마을의 이야기와 풍경을 담아내는 프로젝트다.

전고필 위원은 “골목을 탐험하는 활동에서 느낀 모든 것을 수집, 기록하고 마을이야기로 만들어 내놓은 책”이라며 “골목길의 따스함처럼 주민참여형 문화 활동의 사례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또 주민들의 문화예술교육 결과물 등을 담아낸 ‘삶의 문화’는 주민 개개인의 삶과 문화의 이야기가 멋들어진 디자인의 책 속에 담겨 있다.

“문화예술 교육은 물리적으로 문화와 예술, 교육을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예술교육은 체험의 과정 속에서 교육으로 힘을 얻고 살아 있는 느낌을 갖게 하는 어떤 문화와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사회를 통찰하는 어떤 예술을 공유하고 향유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놓은 이 멋진 경험과 그에 대한 기록은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무엇에 견줄 수 없는 값진 자산인 셈이죠.”

그러나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이처럼 북구 문화의집이 이룬 성과뿐 아니라 전국의 많은 문화의집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문화의집의 미래가 밝기만한 것은 아니다. 애초 500개를 목표로 한 문화의집 확장 계획도 불투명하다. 지방분권화시대에 발맞춰 문화의 집에 대한 지원주체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바뀌면서 주춤하게 된 것이다. 지방정부로 이양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재정이 큰 문제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법에 있다. 문화의집을 둘러싼 법규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문화의집을 시설로 인식하느냐, 조직으로 인식하느냐에 대한 규정조차 없다. 조례에 간단한 언급이 있을 뿐이다. 지어놓고 나서 지자체장에게 문화적 마인드가 깨어 있으면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개점 휴업’에 처하는 운명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전 위원은 문화의집의 성장에 발목을 잡는 것으로 ‘사람’을 꼽는다. 운영주체가 전문가들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문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들이 주민들에게 문화를 가르치고 전시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강좌, 전시, 프로그램, 공연 등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았지만, 대부분 시설 중심의 강좌 형태로 운영됐어요. 그 이유는 운영을 누가 하느냐에 대한 주체판단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위탁운영을 하자, 전문가들을 초빙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허사였고 공무원들이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실제로 문화의집 가운데 공무원이 하고 있는 곳이 70%, 민간위탁이 30% 가량입니다. 민간 위탁하는 30%는 주체별로 나눌 수 있는데 50%는 문화원에서, 30%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나머지 20%만이 전문가들에 의해 운영됩니다. 제대로 운영할 인재가 먼저이지 않겠어요?”

문화의집을 처음에 단순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시, 강좌,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 문화의 집이다.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공간을 채우는 내용이고, 그 내용을 좌우하는 것은 그것들을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역을 돌면서 그 단순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이야기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행정에도 문화전문가가 있으면 좋겠어요. 각 군이나 구마다 담당부서는 있는데 문화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예술가 그 자체보다 예술기획자 말이에요. 공무원들은 담당도 금방 바뀌기 마련인데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전문직 공무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바람이 큰 것일까? 이런 이야기 또한 한두 번 들은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한 문화시설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공무원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기 일쑤다. 그들은 1~2년 있다가 부서가 바뀌면서 담당자도 바뀌게 된다. 익숙해지고, 적응이 될 쯤, 담당 공무원이 바뀌고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책에 일관성을 갖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위기는 다른 곳에서도 닥쳤다. 문화의집과 비슷한 강좌나 전시, 공연 등을 펼치는 곳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화됐고, 이는 재정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의집이 설립됐을 때는 문화향수시설이자, 문화창작기관이 목표였어요. 하지만 이 목적이 도둑을 맞았죠. 행자부가 주민자치센터를 만들면서 그것을 채택했고 그들이 비슷한 강좌를 하면서 우리와 경쟁하게 됐어요. 공공기관뿐 아니라 백화점과 마트의 문화센터도 유사한 강좌로 위협요인이 되었고, 학원에서는 항의가 계속 들어왔어요. 그러면서 상호간에 출혈경쟁이 시작된 거죠. 우리는 청소년수련관과 합의해서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상황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전 위원은 여러 문제를 지적하면서 “지역의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려는 것인지, 장사 하려고 하는지 모를 정도”라고 언급한다. 지역 내 문화원, 주민자치센터, 문화의집 등 공공의 목적을 가진 기관들이 경쟁을 시작하면서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적 업체들이야 모르겠지만, 공공기관간의 경쟁이 상생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자체장의 생각이에요. 문화보다는 표를 의식하고 그 생각에서 책임자를 앉히다 보면 어떤 곳도 성공할 수 없어요.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마음대로 위탁기관을 바꿔 기존의 모든 프로그램이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린 사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예요.”

이러한 문제들이 모여 문화의집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한다.

공무원으로 설정된 운영주체는 자주 바뀌고, 유사 프로그램은 사적기관도 아닌 정부의 계획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재정상황도 열악하다.

“연간 예산이 1억2000만 원 가량인데 구에서 나옵니다. 인건비로 3명의 상근자에게 5000만 원, 관리비가 2000만 원, 나머지 5000만 원이 프로그램 운영비로 쓰여요. 여기에 문광부에서 하는 외부사업을 통해서 지원을 받고 그 비용으로 2명 정도의 인력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문광부 사업은 3년 사업인데 2년차여서 곧 끝날 테고, 그야말로 그때그때 미봉책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사업이 끝나면 그동안 일한 스탭들은 다른 프로젝트를 따거나 인턴으로 일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그는 최근 스스로 이곳을 그만둘 계획으로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이 정도 좋은 커뮤니티와 인적역량이 있는데 또 다른 문화기획단체를 하나 만들어 지속성을 가져보려고 해요. 여기 3년째 일하고 있는데 한 5년 정도 하면 그만둬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남아 있으면 이것도 권력이죠.”

그가 이곳을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왜 그가 이곳에 얼마나 큰 애정이 있는지가 느껴지는 걸까. 전고필 위원의 전공은 문화관광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여행사에 근무하던 그는 90년대 후반에 동광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일하면서 문화의집과 인연을 맺게 됐다. 대학원 논문이 <문화관광자원의 상품화 방안>에 관한 것이었고 <무등산의 누정과 원림을 찾아서>라는 책도 썼다. 자연히 지역문화에 대한 지식이 쌓였고 동시에 문화기획에도 자연스럽게 관여하게 됐다. 장흥 ‘오래된 숲’의 수몰지역의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축제기획도 진행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자와 애정이 충만한 이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바치는 광주 북구 문화의 집은 잘 될 수밖에 없다.

광주 북구 문화의집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지역민들의 문화, 예술 활동을 독려하고 매개함으로써 문화자치의 거점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역 구성원의 특성과 문화적 열망을 읽어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진짜 살아 있는 문화의집이 될 것이다.
”?”면담일시 : 2006년 6월 18일 오후 4시

면담장소 : 광주 북구 문화의집

면담인사 : 전고필(광주 북구 문화의집 상임위원), 정민룡(북구 문화의집 문화코디네이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