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근] 나머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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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기획 연재가 이번 주부터 격주 화요일 게재됩니다. 현재 중국 상하이 동화(東華)대학교 외래교수(外敎)이자, <한일아시아기금> 대표 및 상하이 복단대학 한국학 연구센터 겸임 연구원인 우수근님은 그 동안 일본 및 중국은 물론, 빈번하게 왕래하던 아시아 각국에 대해 ‘One Asia’를 호소해 왔습니다. 앞으로 “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는 한중일 3국의 정치 경제 및 사회문화 일반 비교를 중심으로 격주에 한 번씩 연재될 예정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가 현재의 중국을 좀 더 적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우수근님이 그 동안 직간접적으로 바라보고 접하며 고민해 온 중국에 대해 다각도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첫회“우수근의 한중일 삼국지” 를 시작하게 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글로 작성되었습니다.

중국 상하이 동화(東華)대학 우수근 교수(국제법/국제관계)

세계의 경제지도가 요동치고 있다. 누적일로에 있던 고질병이 금융위기로 불거지며 심각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미국에게 유럽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및 인도 등과 같은 이른바 “나머지 국가”들이 그 주위를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패권지위의 이동이 총체적 권력의 이동으로 이어졌던 국제적 권력 이동의 역사를 돌아볼 때, 작금의 미국 발 경제위기는 또 다른 국제체제의 재편을 위한 전주곡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 2008년 11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개최된 선진?신흥 20개국(G20) 정상회의는 그 시사하는 바 결코 적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일 패권대국 미국의 단극 체제가 다극체제로 전환되는 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넓다고 하기도 천연자원이 풍요롭다고 하기도 힘든 우리 한반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최빈국이라는 멍에로부터 경제규모 세계 11위라는 기적과도 같은 대역사를 창조해 냈다. 척박한 이 땅을 오로지 정열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남다른 성실함만으로 우리의 터전으로 일궈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한 치 앞을 예단하기 힘든 약육강식의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의 터전 한반도가 후손들에게도 대대손손 계승될 수 있도록 하려면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자세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대한 여파가 직접적으로 밀어닥칠 국제체제의 변환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전략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만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공고히 해낼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는 한 나라의 안보와 국익은 자력으로 보전하고 증진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힘의 논리(power politics)’가 지배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국력이 열세에 있는 국가들은 과연 어떻게 안보를 보전하고 국익을 증진시켜 나가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세계적인 역사학자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한국의 외교에 대해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마리의 코끼리들’에 둘러싸인 개미에 비유할 수 있다. 4마리의 코끼리가 뛰면 개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외교역량 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2006년9월13일 동아일보). 그의 이러한 언급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실로 적지 않다. 지정학상 한반도의 명운은 싫건 좋건 주변 4강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을 다시 한 번 확고히 인식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주변 강대국들에 대해 면밀히 파악한 뒤, 이를 토대로 우리의 생존전략과 번영전략을 전개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특히 한반도와 이웃해 있으면서 긍?부정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지속해 온 중국과 일본에 대한 더욱 면밀한 접근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이 그 관계를 더욱 밀접히 함과 동시에 상생해 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적인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GNP 측면에서 볼 때, 한중일 3국의 경제규모는 이미 9조 달러를 넘어 세계 전체의 16%를 차지하고 있으며 무역 규모 또한 세계전체의 15%를 점하고 있고, 이 가운데 한중일 3개국 간 거래 비율은 이미 25% 를 넘어섰다. 이러한 한중일 3개국이 새로운 협력의 틀을 구축한다는 것은 동북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안정과 발전에도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중국과 일본 양국의 대략적인 현주소는 어떠한가?

먼저 중국이다. 중국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이미 글로벌화의 중심에 서 있으며 미국보다도 더 자본주의 국가이다”고 언급한 바 있고,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도 “중국의 발전은 운명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보다는 협력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유리하다”고 그 위상을 평가한 바 있다. 실제로 2008년 11월 말 일본 아사히 신문 주최로 동경에서 개최된 <새로운 시대의 한중일 협력>이라는 합동 심포지엄에서는 “중국은 21세기 국제사회의 발전의 명운을 쥐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이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미국의 오바마 신임 대통령 또한 경황이 없던 대선 유세 당시에도 손에서 놓지 못했던 책 <흔들리는 세계의 축(The Post American World)>에서도 화두는 단연 중국이었다. 이로써 알 수 있듯, 향후 국제사회의 앞 날은, 호불호를 떠나서 중국의 발전전략 여하와 발전의 지속 여부 등에 크게 좌우될 정도로 중국의 부상은 현실이 되었다.

한편 중국의 위상을 평가한다고 해서 한반도의 또 다른 한 편에 위치한 국제 사회의 대국 일본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1980년대의 플라자합의 이후 2배 가까이 급등한 엔고 사태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에도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 자리를 고수해 오고 있는 일본이다. 2008년 미국 발 국제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일본의 엔화는 오히려 달러당 80엔대 까지 급등하지 않았는가. 이와 같은 몇 가지 점만으로도 잘 알 수 있듯,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위상은 확고하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이와 같은 중일 양국에 대해 좀 더 열린 자세로 담담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더욱 다원화된 시각에서 좀 더 냉철하게 과학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인 노력, 즉 과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학(science)’이란 그 어원상 ‘아는 것(sci=to know)’을 의미한다. 본 칼럼의 연재는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중국과 일본을 좀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인지하며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및 미국유학, 그리고 중국유학과 중국에서의 교수생활을 이어오는 십 수년의 기간 동안 만나고 접하며, 또 느끼고 연구하며 고민하는 가운데 조금씩 보일까 말까 하게 된, 알까 말까 하게 된 중국과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의 이모저모에 대해 한 개인의 견해를 문제 제기한다는 차원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너무나도 부족한 상태에서 공연히 혼란만 초래할 것 같아 적잖이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쪼록 ‘다른(different)’것이 ‘틀린(wrong)’것은 아니다는 넓은 혜량으로 “중국과 일본에 대해 이와 같은 관점과 사고도 있구나….” 하면서 지켜봐 주신다면 그 보다 더한 보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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