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정책, 지방정부로 과감히 넘겨야

<박원순의 희망탐사 21>

유기농이 우리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러나 이미 20년도 더 이전부터 유기농의 중요성을 알고 유기농을 일궈 온 선구자들이 있다. 바로 전북 부안지역의 유기농공동체 ‘산들바다’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과의 만남은 술자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큰 양푼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돌려 마시며 가진 인터뷰는 공동체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넉넉함과 농부로서의 건강한 얼굴과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이었다.

산들바다공동체의 시작

산들바다 공동체의 시작은 1970년대 초반 부안농민회의 산파 역할을 한 오근 씨와 정경식 씨가 의기투합하면서 이뤄졌다고 한다. 농민운동을 하다가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농민회 사람들을 유기농으로 전환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오근 씨가 타계한 뒤에 정경식 씨는 소비자생협과 연결되는 유기농으로 전환했다. 그 과정에서 부안농민회와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 시도하는 유기농이었고, 그것을 농민들에게 설득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유기농에 대한 철학도 갖춰지지 않았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시점이었다. 농민운동 1세대이자 산들바다공동체 회장인 이백연 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_1R|1354148274.jpg|width=”189″ height=”284″ alt=”?”|▲ 산들바다공동체 이백연 회장(51세). ⓒ희망제작소 _##] “우리 스스로도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나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직거래를 하면서 하나씩 만들어 왔죠. 현재 회원들 반수는 귀농인이고 나머지는 아니어서 약간씩 생각이 다릅니다. 직거래를 통해 소비자의식을 바꾸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보자는 관점도 있고 귀농해서 안주하고자 하는 관점도 있습니다. 현재 이런 의식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유기농 열심히 하고 어떻게 소비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가 하는 것을 고민하는 듯하지만 유기농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들은 약간씩 다릅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유기농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라고 판단해서 버거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의식화된 도시소비자들이 농민 대신 아스팔트 위에서 데모한다?

산들바다 회원들은 그들 스스로를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는 산들바다는 전체 회원 중 3분의 2가 귀농한 사람들이고, 전북 부안군 변산면의 몇 개 마을에 산재해 살고 있다. 그들 스스로는 상당히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평한다.

“원래 농민은 양심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농업에 대한 천시를 올바로 바꾸어야 합니다. 농민이 가진 자연적인 섭리, 상호 도움의 원리는 우리사회가 가진 부패와 왜곡현상을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원리 하에 만들어진 생산물을 먹는 도시 소비자들도 각성이 되리라 봅니다. 그런 연대가 이뤄지면 농민이 아스팔트 위에서 데모하는 대신에 유기농을 먹는 도시소비자들이 그 농민의 이익도 지켜주리라 생각합니다. 급식조례도 그 산물입니다. 우리는 소비자를 그냥 소비자로 말하지 않고 가족이나 동지로 부릅니다. 우리 농업에 대해, 유기농에 대해 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소비자라면 단순한 소비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유기농의 변화와 정체성의 고민

산들바다 공동체 회원들은 각자 생산해서 공동출하를 한다. 주로 전주의 한울생협이나 서울의 한살림에 공급한다. 이 두 곳이 산들바다 공동체의 이념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생산은 따로 하고, 공동출하를 하지만 경쟁은 아니다. 좀 더 엄격히 말하면 합의생산이다. 한울생협이나 한살림이 요청하면 회원끼리 서로 상의해서 생산을 결정한다.

회원 사이의 관계는 인간적인 신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른 공동체는 강력한 리더십이나 공동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지만 산들바다는 그런 점에서 좀 느슨한 편이다. 그 대신 같은 지향점이 오래 쌓여 신뢰가 형성됐다. 다른 공동체처럼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 운영되는 것도 좋은 점이 있지만 이들은 함께 고민하고 책임을 나누는 공동체 형태를 원한다. 그것이 더 오래 갈 것이고, 회원 각자가 역할 분담을 통해 자기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들 공동체는 중앙집권이 아니라 지방분권이다. 유기농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유기농을 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그 공동체를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인간적인 신의에서 기인한다.

사실 유기농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력은 배 이상이 들고, 수익은 낮다. 더구나 유기농이 확산되면서 쌀값이 내렸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유기 농산물 값이 상승했는데 2년 전부터 정체되거나 값이 떨어졌다. 수요는 늘었지만 공급이 훨씬 더 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기농이 확산된 증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다 보니 유기농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것 같아 고민이 되기도 한다. 2000년 귀농한 산들바다공동체 정대성 총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_1L|1381709415.jpg|width=”239″ height=”360″ alt=”?”|▲ 2000년 귀농한 산들바다공동체 정대성 총무. ⓒ희망제작소 _##] “귀농할 때만 해도 유기농이라고 하면 정신적인 것을 더 많이 생각했습니다. 유기농업을 선택하는 기준이 그런 정신적인 것이었는데 2년여 전부터는 경제적인 것을 더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과거 유기농업 한다면 고난의 길을 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일반 농가가 많이 하기 때문에 유기농에 대한 성격도 많이 변했습니다. 산들바다에서는 정체성의 변화를 걱정하는 점에서 내부적인 장치를 해 두었습니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측면을 생각하는 회원을 규제하기 위해 전 경작지를 유기농으로 해야 회원자격이 생긴다든지, 회의참석 등의 규정을 두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기농이 일반화되는 것은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생활이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지금 농산물 수입되는 상황과 그로 인해 농업이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으로 달려들고 보편적인 상황이 되는 것은 좋은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유기농정책이 문제다-못자리 갈아엎는 것이나 보조금 주는 것이나 같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농업정책 전체를 말하지 않고는 유기농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백연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농업정책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지금 정부가 하는 유기농정책은 한국농업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처음 유기농 할 때 면직원이 못자리를 엎어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다수확 품종을 심으라는 것이었죠. 유기농 한다고 해서 간첩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변해서 인센티브까지 주면서 유기농을 하라고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때 못자리 엎는 방법이나 인센티브 주는 논리나 같습니다.

정부에서는 농업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농업의 소득을 현실화시켜주어야 합니다. 유기농을 하든 일반농을 하든 농민에게 권한을 맡겨야 합니다. 유기농 단체라서 보조금을 주면 받기는 하지만 좀 씁쓸합니다. 현재 정부는 농민이 유기농을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정부는 규모화된 농업을 지향하면서도 마치 유기농을 지원하는 것처럼 합니다. 하지만 농민 모두가 유기농으로 몰리면 모두 망합니다. 유기농을 하려면 가족농이 될 수밖에 없고, 유기농을 하려면 동네 아줌마들을 불러 모아 김매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서는 품값 올린다고 야단이죠. 그래서 유기농이 갑자기 많아지면 임금이 많이 올라가고 수익성이 낮아지게 마련입니다. 유기농은 농촌으로 인구가 유입할 수 있는 정책과 연동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농업의 중앙정부 정책결정권한이 지방정부에 과감히 이전되길 희망한다. 지역에 맞는 특성화된 농산물이 생산되고, 그를 통해 다른 지역과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이 되든 죽이 되든 지역에 맞는 특성화를 시켜내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울로 데모하러 가지 않고 전주나 군청으로 몰려갈 것입니다. 대통령은 바꿔내기는 힘들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은 바꾸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의 문제는 똑같은 쌀을 놓고 전북과 전남이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농업정책을 틀어쥐고 있는 한 조정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지자체로 옮겨지면 전주의 이마트에 전북에서 생산되는 쌀을 팔라고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들은 농업을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상시적인 연대활동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이들은 그런 연대가 강해지고, 그로 인해 한국농업 현실에 대한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올 때 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농민회나 유기농생산단체, 농협, 시ㆍ군 단위의 시민단체와 지식인들 간에 상시적인 연대활동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현재는 적극적인 사람이나 단체가 없어서 그게 안 되고 있습니다. 사실 농업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이나 노동조합도 입을 다뭅니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간에 연대를 하고, 그 연대를 통해 국민들의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한국농업의 현실은 좀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농산물 수입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한 나라까지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있어야 농업과 유기농산물 등에 대해 국민의 인식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폐교를 개조한 부안 생태문화활력소

[##_1R|1025837269.jpg|width=”392″ height=”261″ alt=”?”|▲ 마초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부안생태문화활력소. ⓒ희망제작소 _##]산들바다공동체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곳은 부안생태문화활력소 사무실이었다. 2006년 개관한 부안생태문화활력소는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에 위치한 마포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지역의 생태문화공동체다. 산들바다공동체 사람들은 이곳을 ‘우리들의 아지트’라 부른다.

부안생태문화활력소는 부안 지역의 생태, 문화, 대안학교, 풍물 공동체 등 지역의 다양한 문화활동의 근거지로 사용되어 오다가 2006년 2월 교육청으로부터 정식으로 학교를 임대하고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정식으로 개관해 농촌지역의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부안생태문화활력소에는 어린이집, 주민도서관, 풍물실, 행태농생활사관, 부안문화관, ‘부안의 밥상’관, 마을영화관, 숙소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천연염색 및 우리옷 만들기, 함께하는 부안문화답사, 생태문화체험, 대보름행사 등을 기획하고 있고,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영상편집 등 미디어교육도 이뤄질 예정이다. 또 생태학교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_1C|1297104999.jpg|width=”434″ height=”289″ alt=”?”|▲이백연 회장(맨 왼쪽)과 이현민 부안 시민발전소장(가운데). ⓒ희망제작소 _##]면담일시 – 2006년 6월 14일

면담장소 – 부안군 변산면 마포리 구 마포초등학교 폐교자리 부안문화생태활력소 사무실

면담인사 – 이백련(산들바다공동체 회장/농민운동1세대)
정대성(산들바다공동체 총무/2000년귀농)
김소원(산들바다공동체 회원)
이현민(부안 시민발전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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