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회혁신 장면 3가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세계 곳곳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데요, 다양한 사회혁신의 시도 가운데 영국 프레스턴과 프랑스, 이탈리아 볼로냐 등 세 곳의 최근 흐름을 살펴봅니다.

👀 영국 프레스턴, 공동체 자산 구축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다

영국 프레스턴시는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 섬유산업 등으로 부흥했던 영국 북서부의 주요 거점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산업구조의 변화를 이뤄내지 못해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죠. 시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도시개발 전략을 수립하게 되는데, 스페인의 몬드라곤 노동자협동조합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의 클리블랜드시의 개발사례를 벤치마킹해 지역경제의 쇠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도시 내 병원, 대학, 관공서 등 앵커 기관(커뮤니티에 뿌리내려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은 ‘닻’ 기관)의 공공조달을 기존의 다국적기업이나 런던에 본사를 둔 대기업이 아닌 지역기반 기업, 지역의 노동자들이 소유한 노동자 협동조합을 통해 이뤄지게 해 지역에서 만들어진 부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순환하며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만드는 ‘공동체 자산 구축(Community Wealth Building)’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죠.

https://www.visitpreston.com/

노동자협동조합 육성과 생태계 조성

프레스턴시는 ‘공동체 자산 구축’ 전략의 핵심 주체인 노동자협동조합을 육성하기 위해서 시의회, 센트럴 랭커셔 대학 (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열린사회(Open Society) 재단, 영국협동조합연합회 (Co-operative UK)와 손잡고 1백만 파운드 규모의 현금 혹은 현물 지원 시드 펀드를 조성해 10개의 노동자협동조합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기존의 지역 협동조합, 시의회, 지역거점대학 등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프레스톤 협동조합 개발 네트워크(PCDN, Community Benefit Society)’를 만들어 노동자협동조합으로의 전환, 지역 자산의 소유, 공공조달 등의 참여를 돕는 컨설팅, 역량강화, 투자연결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프렌스턴시는 그간 민영화되거나 민간에 매각했던 지역 시설물을 재매입하여 지역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로 개보수하고 직접 사회취약계층 지역주민을 고용하여 생활임금을 지급합니다. 영화관, 식당, 볼링장 등과 같은 일부 편의시설 또한 시가 관리하여 그 이윤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환원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자산 구축 전략은 프레스턴을 2012년 영국 내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 경제적으로 낙후한 하위 20% 도시에서 2016년에는 영국 북서부 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고 2018년에는 영국에서 가장 향상된 도시로 선정되는 결실을 보게 했습니다.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자본이 지역 발전에 사용되지 못하고 외부로 유출되는 흐름을 바꾸기 위해, 시 정부와 주요 앵커 기관의 소비와 공공조달을 최대한 지역 내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해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이 증가한 지역 기업과 노동자의 소비가 다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위해 연기금을 지역에 직접투자하고 공동체은행 설립을 추진하는 등 금융을 다양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 역시 프레스턴의 변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 프랑스, ‘제3의 장소’로 도농 격차를 해소하다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부문에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잠재된 가치가 높지만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멀다는 이유로 그 가치가 발현되지 못하는 지역들이 많이 있습니다. 프랑스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요, 프랑스는 전 국토에 초고속 인터넷 망을 보급하면서 농촌에서 넓고 사용하기 좋은 공간을 활용하여 공유공간인 ‘제3의 장소(Tiers-Lieux)’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3의 장소 개발을 위해 프랑스 정부는 ‘제3의 장소 국가위원회’를 발족했고, 위원회에는 경제, 문화, 디지털, 교육, 고등교육, 민간협회 등 다양한 분야의 대표들과 정부 대표가 참여했습니다.
제3의 장소는 미국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제안한 용어로 제1의 장소인 집, 제2의 장소인 일터나 학교 이외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제3의 장소 국가위원회’ 주도로 만들어진 프랑스의 제3의 장소는 코워킹, 온라인 대학, 각종 워크숍, 제작실, 사회적 친목 도모, 문화교류, 공공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이용자들이 정의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한 창의적 공간입니다. 이런 제3의 장소는 시민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까요? 프랑스 언론에 게재된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24살에 그래픽 디자인 회사를 설립한 소피는 직원 없이 혼자 일하기 때문에 그녀의 고객들을 제외하고는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 그렇게 찾아온 고독한 일상이 그녀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이는 소피가 제3의 장소를 발견하면서 해결된다. 그녀는 매달 구독료를 지불함으로써 언제든지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와이파이, 커피머신, 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고, 필요할 때면 회의실을 이용하여 고객을 만나거나 업무를 볼 수도 있다. 이 공간에서 소피는 다른 사람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렇게 타인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도시 사람들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일하기 위해 제3의 장소를 이용하고, 이곳에서 사회적, 연대적 그리고 책임감 있는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프랑스 언론은 전합니다.

지역의 생태적 전환을 도모하는 공간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이미 지가가 상승한 도시보다는 도시기반시설을 활용하면서 넓은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는 도시 인근의 농촌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3의 장소는 근무지를 벗어나 일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3의 공간을 지역 주민들의 협업과 창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절반 이상의 제3의 장소가 지역의 활동가와 사회단체, 사회적기업 등을 주축으로 생태적 전환을 도모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데요, 이런 흐름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영국의 프레스턴 사례처럼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합니다.

😃 이탈리아 볼로냐, 별별 협동조합이 모여 지역을 혁신하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제조업 강국이라 불리는 이탈리아는 전문화된 작은 규모의 동일기업들이 특정 지역에 모여 있는 산업지구(클러스터)가 발달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중부 예밀리아-로마냐주에는 섬유, 기계금속, 가죽 가공, 악기 제조, 화장품 등 분야별로 약 200개의 클러스터가 있으며, 각 클러스터는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자랑합니다.
클러스터를 구성하는 소규모 기업 중 상당수가 협동조합인 것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이는 이탈리아가 정부 차원에서 협동조합의 설립과 활동을 적극 지원하기 때문인데요, 1945년 개정된 이탈리아 헌법 제45조에는 ‘협동조합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하며 법률로써 그 성격과 목적을 보장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https://www.bolognawelcome.com/it

연극 돌봄 주거···협동조합의 천국 볼로냐

스페인의 몬드라곤, 캐나다 퀘백과 더불어 세계 3대 협동조합 지역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협동조합은 일반 소비자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농업 분야의 생산자 협동조합과 택시, 와인 등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다양한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생활용품 유통 협동조합인 ‘이페르 쿱(Iper Coop)’과 농산물 생산·판매 협동조합인 ‘코메타 (Cometa)’, 어린이 연극 협동조합인 ‘라 바라카 (La Baracca)’, 노인·어린이·장애인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카디아이 (Cadiai)’ 등 그 종류와 범주가 매우 다양합니다.

볼로냐 시민의 40%만 집을 가지고 있던 1980년대와 달리, 주택 협동조합이 설립된 현재는 85%가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쿱안살로니(Coop Ansaloni)’, ‘무리 (Murri)’를 비롯한 주택 협동조합이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집을 짓고, 저소득층도 집을 구입할 수 있도록 좋은 품질의 주택을 거품 없는 저렴한 가격에 공급했습니다. 덕분에 볼로냐 지역에서는 부동산 투기가 사라졌다고 하죠.

협동조합과 지방정부의 상생 비결은 ‘상호신뢰’

이탈리아 국민의 다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인데, 이는 협동조합에 가입함으로써 할인혜택 등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규모가 큰 조합이라고 해도 지역의 작은 생산업체와 상점이 협동해 매장을 세우기 때문에 생산자 사이의 협동,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협동으로 모두가 함께 잘살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볼로냐의 협동조합이 성공한 데는 수평적인 민관 협력관계가 주효했습니다. 정부가 단순히 입찰 등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나 NGO, 협동조합의 서비스나 물품을 구매하는 수준을 넘어, 협동조합과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파트너십을 이룬 것이죠. 복잡하고 다양한 시민들의 요구를 공공기관이 다 처리할 수 없기에, 협동조합이 공적 서비스를 대체하고 공공기관과 함께 진행하는 것인데요, 앞서 이야기한 주택 협동조합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손현아/ 희망제작소 인턴연구원

○참고자료
프랑스 제3의 장소 국가위원회 홈페이지
<다온타임즈> “이탈리아 볼로냐-협동조합의 천국”
“프레스턴시의 회생과 선순환 금융”
<오마이뉴스> “영국 프레스턴 ‘지역사회 부 만들기’는 어떻게 했나
<프레스턴, 더 나은 경제를 상상하다> 매튜 브라운·리안 존스 지음, 원더박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