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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숙의 낮은 목소리

4월 30일부터 서강대학교에서 “이소라 소극장 콘서트-두 번째 봄”을 열고 있는 가수 이소라 씨가 지난 8일 공연에 왔던 손님들에게 입장료를 돌려주기로 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씨는 공연 말미에 그날 자신이 부른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기까지 오신 분들께 이런 노래를 들려드린다는 건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 합니다. 4백여 명의 관객은 무슨 말이냐고, 공연이 좋았으니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강하게 만류했지만 이 씨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 씨의 미니홈피에 가보니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 씨를 칭찬하는 글을 올려놓았습니다. 청중이 듣기엔 노래를 열심히, 감동적으로 잘했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한 이 씨다운 결정이라는 겁니다. 오직 ‘한모씨’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 만이 “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런 결정을 한 거라고 비꼬았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스타라도… 당신이 뭐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그렇게 하면 언론 스포트라이트 좀 터지고 하겠죠.. 그 공연료 없어도 소라 씨 먹고 사는데 지장 없잖아요. 돈 몇 푼 버리고 당신은 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 지대로 먹힌 거 같은데..”

‘한모씨’의 글 아래엔 지금 이 씨가 하고 있는 콘서트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아느냐, 이미 다 매진되어 표를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이런 상황에서 이 씨가 뭐 하러 그런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하겠느냐고 ‘한모씨’를 비난하는 댓글이 길게 이어져있습니다.

이번 콘서트의 티켓은 한 장에 5만 원, 이 씨는 2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환불한다고 합니다. 가수의 건강 문제나 다른 이유로 공연이 취소되거나 제대로 되지 않아 입장료를 환불해준 적은 있어도 관객은 좋다고 하는데 가수 자신이 불만족스러워하며 입장료를 환불해준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씨를 만난 적도 없고 그의 노래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도 아닙니다. 전에 가끔 텔레비전에서 “이소라의 프러포즈”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지만 이 씨가 그걸 그만두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는 아예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여기저기 이 씨에 대해 쓰여 있는 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씨는 2년 만에 갖는 이번 소극장 공연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도 중단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 씨가 “언론 플레이”를 하기 위해 환불 결정을 내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행위를 판단할 때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 사람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에서 말하는 ‘benefit of the doubt’이지요.

”?”이 씨의 환불 소식을 접한 제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같습니다. 정작 토해내야 할 사람들은 토해내지 않는데 토해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토해낸다는 겁니다. 제일 먼저 표적이 되는 건 국회의원들입니다.

늘 계파 싸움이나 하고 끄떡하면 멱살잡이하여 나라 망신을 시키면서 세비니 활동지원비니 후원금이니 일 년에 수억 원을 꿀꺽하고 토해내는 일은 없다고 비난들을 합니다. 공직자들과 공기업 간부들도 마찬가지로 욕을 먹습니다. 나라를 유례 없는 위기에 빠뜨려놓고도 자기들 재산은 불리고 자기들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내놓을 줄 모른다는 겁니다.

대학들도 욕을 먹습니다. 학기당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받는 국내 사립대학들의 적립금은 작년에 5조원을 초과했지만 아직도 학교 운영자금의 80퍼센트 가까이를 등록금으로 충당한다고 합니다.

취업 안 되는 졸업생들에게 “그대들을 사회가 원하는 사람으로 교육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 크다, 등록금의 절반을 돌려줄 테니 취업될 때까지 이 돈으로 지내라”라고 하는 학교가 하나도 없으니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씨의 환불 결정 기사를 보는 순간 오래 전에 읽은 글이 떠오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는 제목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2세기의 수도자가 한 말을 옮긴 거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 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세상을 바꾸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된 후엔 나라를 바꾸려 노력했다. 나라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엔 마을을 바꾸려고 애썼다. 마을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땐 내 나이가 꽤 든 후였고 난 가족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노인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불현듯 깨닫는다. 오래 전에 내가 나 자신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면 내 가족을 바꿀 수 있었을 거라는 걸. 내 가족을 바꾸었다면 내 가족과 더불어 우리 마을을 바꿀 수 있었을 거라는 걸. 우리 마을이 바뀌었다면 우리나라도 바꿀 수 있었을 거라는 걸. 그랬다면 세상도 조금 바뀌었을 거라는 걸.”

1969년생이라는 이소라 씨는 이미 ‘세상을 바꾸는 법’을 알고 있나 봅니다.
2004년에 나온 이 씨의 6집 앨범 ‘눈썹달’에 수록된 노래 ‘바람이 분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 중엔 이 씨보다 나이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 세상을 바꾸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남에겐 가혹하면서 자신과 가족에겐 끝없이 관대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 모두 이 씨에게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두 번째 봄”이 아직 진행 중이니 그 봄 햇살 아래 슬며시 들어가 앉으면 배우기가 좀 쉬워질지 모릅니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코리아타임스와 연합통신 (현재의 YTN) 국제국 기자로 15년,
주한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으로 4년여를 보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글을 쓴다.
현재 코리아타임스, 자유칼럼,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중이다.
저서로 “그대를 부르고 나면 언제나 목이 마르고”와 “시선”이 있고,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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