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여섯 명, 수다로 지새운 필리핀의 밤

2011년 1월, 공감만세의 필리핀 공정여행에 참가한 동화작가 이선희님의 여행 에세이 ‘편견을 넘어’를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공감만세는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는 청년 사회적기업으로 희망제작소의 청년 소셜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희망별동대 1기를 수료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조금 더 많은 분께 공정여행을 알리고, 또 다른 여행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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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넘어 (3)
여자 여섯 명, 수다로 지새운 필리핀의 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中

말을 한다는 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구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생각과 입장을, 나아가 나의 마음을 이해 받는 것. 그리고 타인의 생각과 입장을, 나아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 이것이 말을 하는 것, 즉 이야기를 나누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을까

혼자 하는 것이 무서워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여행을 택하기는 했지만, 열다섯 명의 참가자에 세 명의 코디네이터까지 합해 열여덟 명은 너무 많았다. 공감만세가 공정여행의 원칙으로 내걸고 있는 ‘친구가 되는 여행’은 뻔하고 상투적이면서 낯간지러운 캐치프라이즈처럼 보였다.

필리핀 공정여행 2일차. 필리핀국립대학과 인트라무로스*, 산티아고 요새* 등을 걸으며 필리핀의 기나긴 식민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필리핀은 1521년 마젤란이 발견하여 스페인 왕실에 ‘바쳐졌고’, 1898년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양도되었고’, 1942년 일본에 ‘점령당했다’.
* 용어 설명 (more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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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트라무로스(Intramuros):1571년 세워진 성벽도시로 스페인 통치 계급이 살던 배타적인 거주 구역이었다. 거대한 성벽 내부에는 위엄 있는 정부 건물, 으리으리한 저택, 교회, 수녀원, 수도원, 학교, 병원, 자갈길 광장 등이 있었고 토착 주민들은 피코, 비논도와 같은 주변 지역에 거주했다. 사람들은 도개교가 있는 출입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드나들 수 있었다. (론니플래닛, <필리핀> 편 참고)

●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파시그 강으로 통하는 주요 입구를 수비하는 곳으로 한때 스페인 군이 주둔했다. 1950년 자유의 성지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호세 리잘을 기리는 곳이다. 리잘은 스페인 식민 정부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1896년 처형되기 전까지 이곳에 감금되었다. (론니플래닛 <필리핀> 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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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짜부라진 이 나라의 역사가 안타깝기 그지없었으나, 36년 일제의 식민강점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보통의 한국 젊은이가 400년이 넘는 다른 나라의 긴 식민역사에 대해 하루아침에 박식해지기란, 혹은 지나간 역사를 현재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공정여행이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깊이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어린 친구들 중에는 놀려고 왔는데 점점 마음만 무거워진다는 친구도 있었다.

[##_1C|1404478805.jpg|width=”500″ height=”33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UP 호텔_##]서로 가슴에 답답함이 하나씩 생겨나서 일까? 아니면 본래 가지고 있던 답답함이 터져 나온 것일까? 그날 밤 UP(University of Philippines, 필리핀국립대학) 호텔의 한 방에 여자 여섯 명이 모여 긴 수다를 떨었다. 살짝 필리핀 사회를 맛본 때문인지 수다는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여행 2일차, 벌써 고추장이 그리워진 걸지도.

대학교 봉사 동아리 회장, 사범대 학생, 초등학교 교사, 대학 졸업예정자, 공정여행 코디네이터, 그리고 동화작가. 사는 곳도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여섯 명의 여자가 한국 사회에서 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을 자연스럽게 토로하게 되었다.

봉사 동아리 회장은 동아리 문화가 점점 취업을 위한 스펙의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과 진지한 토론 대신 술이 그 자리를 채워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사범대 학생은 사회를 보는 안목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자신의 기준을 세우는 것에 있어서의 답답함을, 초등학교 교사는 많은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고감과 동시에 한국 사회 전반의 모순에 대한 울분을, 대학 졸업예정자는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취업에 대한 걱정을, 공정여행 코디네이터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자신에 대한 일말의 불안함을, 그리고 동화작가인 나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면서 느낀 한계와 절망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많이 나온 추임새는 “맞아, 맞아.” 다. 내기 힘든 등록금, 얻기 힘든 전셋집, 들어가기 힘든 직장, 살기 힘든 사회. 이 모두에 우리는 “맞아, 맞아.”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그것은 으레, 예의상 동조해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봉사동아리 회장이 말했다.
“맞아, 맞아.”
우리 모두가 말했다. 어쩐지 뱃속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고추장에 쓱쓱 비빈 따끈한 밥 한 그릇을 먹은 기분이랄까. 마구잡이식으로 한국 사회를 뜯어 본 뒤에는 ‘시크릿가든’의 마지막 회에 대해(이 당시 젊은 여성들의 관심은 모두 그것이었으니까) 여느 20~30대 여성들이 나눌 만한 연애, 연예에 관해 밤이 깊은 줄도, 녹음기가 계속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_Gallery|1082172425.jpg||1344768363.jpg||width=400_##]필리핀의 아침은 무척 시끄럽다.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사방에서 왕! 왕! 왕! 꼬꼬대액- 꼬꼬대액- 전투적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리도 시끄러운 걸까? 그런데 거리를 활보하는 개, 닭, 고양이들이 하나같이 여유롭다. 사람도, 차도 피할 생각을 않는다. 그리고 모두 날씬하다.

공정여행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필리핀이 어떤 사회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만난 지 이제 만 하루가 지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여행이 참 좋다.

‘친구가 되는 여행’
이 말은 뻔하고 상투적이고 낯간지러운 캐치프라이즈가 아니라 처음 이 말을 만들어낸 그 사람-공정여행을 통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던 그 사람의 진심이었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 그날 밤 수다가 궁금하시다면, more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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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에 참여한 패널은 다음과 같다.

Y (21세, 여, 원주거주, 대학교 봉사동아리 회장)
H (20세, 여, 제주거주, 사범대 2학년 재학 중)
S (25세, 여, 대전거주, 대학 졸업 예정자)
A (30세, 여, 서울거주, 초등학교 교사)
L  (30세, 여, 성남거주, 동화 작가)
J  (24세, 여, 대전거주, 공정여행 코디네이터)

아래는 수다의 가운데 토막이다.

이야기가 필요해

Y: 필리핀 간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행 가?” “어학연수 가?” 물어보기에 봉사 간다고 했어요. 헌데 여기 와서 보니 봉사라기보다 여행 자체가 우리의 의식을 바꿔주는 것 같아요.  동아리에 돌아가서 토론의 장을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에요. 본래 주회가 있기는 했지만 술 마시느라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제대로 이끌 수 없었거든요. 취업 준비에 밀려서 동아리 문화가 하락세를 보이는데 우리 동아리만이라도 다른 방향을 제시해 보고 싶어요. 사회문제든, 봉사에 관한 것이든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이렇게 토론을 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좋을 것 같아요.

A: (벌써 그런 것을 깨닫다니 하는 의미로) 마지막 날인 것 같아!

H: 오늘 이틀짼데!

J: 이런 소통의 시간이 계속 있을 거예요.

S: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들이 많지 않아요. 동아리 활동을 이력서에 넣을 경력 사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취업할 때 학생활동 보는 데가 많으니까. 동아리에 돌아가서 토론을 시작하면 의외로 하고 싶은 얘기 많을 거 같아요, 서로.

A: 사회의 모습, 현실을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거의 관심이 없잖아요. 내가 최근에 반강제적으로 시사 잡지를 구독하게 됐는데 돈 주고 보는 거니까 꼼꼼히 봐야지 하면서 보거든요. 근데 너무 좋은 거예요. 볼 때마다 슬프고 화가 나는데 너무 좋아. 왜 좋으냐면 내 뇌가 녹아내리는 게 아니라 반짝 하고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모른 척하고 살아갈 수도 있는데, 굉장히 다양한 부분의 얘기들-어렵고 소외받은 사람들 얘기가 단편적인 게 아니라 풀 스토리로 나와요. 물론 그것만 읽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위로가 된달까? 그래, 나 알고 있어. 양심을 지키겠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알아야 나의 기준을 세울 수 있잖아요.

L: 사회의 어려운 부분들을 계속 보다보면 힘들어질 때가 있어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할 때 느낀 건데요. 대부분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다 보니까, 부모가 모두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의 아이들보다 특별히 더 불행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많은 거예요.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지만 이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애정결핍이 심하고 벌써 자기 삶에 대해서 기대치가 없는 거죠. 돌봄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어디서도 자기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고. 가치 인정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을 그저 바라봐 주는 사람도 없는 거죠. 많은 아이들이 집안 문제로 고민을 하는데 내가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는지 정말 고민이었어요. 나한테도 내 삶이 있고, 내 것을 다 줄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그런데 지금 당장 이 애한테는 도움이 필요하고 나는 해 줄 수 없는 것. 내가 어느 정도까지 도움을 줘야 하는 건지. 이 지점에서 되게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A: 저는 학교에 있으니까 학교 끝나면 갈 데 없는 애들이 보이잖아요. 근데 내가 그 애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교실에 남겨서 뭐라도 시키고 싶은데 학교에서는 사고 생기면 안 되니까 못하게 하고. 어쩔 수 없이 애들을 보내는데 그러면 어떤 아이들은 엄마 올 때까지 밤 12시, 1시까지 갈 데가 없어요. 정말 주변에 지역아동센터들이 꼭 필요해요.

L: 근데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아이들과 교감이 가능한,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을 자격 조건에 맞춰서 뽑아야 하니까. 사회복지사 자격증 없어도 훌륭한 사람 많은데 뽑을 수가 없는 거예요.

대학생도 직장인도 살기 힘든 사회

A: 벨기에에서 ‘로제타 플랜’이란 프로그램을 했어요. 청년실업문제가 거의 전 세계적인 문제니까 이걸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성과가 많이 났어요.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청년들을 계속 고용 하게 아예 법제화를 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계속 비정규직으로 돌리거나 인턴 같은 저질 인력으로 많이 사용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잖아요. 그렇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에요. 공기업 같은 데를 시작으로 해서 사회적인 기업들에 청년들이 일자리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대책을 많이 내서 성공한 사례거든요. 근데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 하는 건 저질 일자리만 만드는 거지요. 청년실업문제 뿐만 아니라 이명박 공약 중에 반값 등록금이 있었어요. 근데 대통령 되자마자 쏙 들어갔잖아요.

S: 사립대학교 다니는 애들은 돈 없어서 학교 그만두는 애들이 진짜 많아요. 저도 사립대인데 지금 빚져서 학교 다니고 있거든요. 1700만 원 정도? 한 학기 등록금이 350만원이라고 했을 때, 첫 등록금은 부모님이 내주시고 한 학기 등록금 내가 벌어서 내고. 나머지 5학기는 학자금을 받은 건데. 저희 과가 학교에서 등록금이 제일 싸요. 미대나 음대 같은 데는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원 가까이 되니까 일 년이면 1,000만원 4년이면 4,000만원. 그러면 한도가 꽉 차는 거예요. 빚쟁이로 졸업 하는 거지요. 20년에 나눠서 갚으라고 하는데 평생 빚만 갚으라는 건지.

A: 직장인이 되면 인생이 필 거 같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되게 각박하고. 필리핀 왔을 때 깜짝 놀란 게 연구소에 있는 친구가 여덟 시에 출근했다가 다섯 시에 퇴근하는데 사람들 사는 모습이 다 여유가 있는 거예요. 점심에도 우리는 막 급하게 먹고 그러잖아요. 근데 여기 사람들은 분위기 좋고 경치 좋은데서 천천히 차 마시고. 다섯 시 이후에는 여자들이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복싱하고. 취미 생활이 많더라구요. 물론 이 사람들은 연구소에 다니니까 여기 사회에서 30%에 속하는 사람들이겠죠. 그렇다하더라도 이렇게도 사람이 살 수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쫓기며 각박하게 사는구나 싶더라구요.

공정여행은 즐거운 불편

S: 저는 원래 공정여행이나, 빈민 아이들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었고 아는 지식도 없었어요. 이 여행도 이런 건지 몰랐고. 제목이 ‘루손섬 여행학교’니까 여행 가서 공부하고 이런 건줄 알았어요. 필리핀의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약간 다른 것 같아요. 분명 매력 있는데 계속 계속 생각을 하면서 되게 혼란스러워요.

J: 고민의 시작이 되게 중요해요. 고민을 안 하고 흘러가는 대로 여행을 하면서 “아~ 좋다” 이렇게만 하면 공정여행이 아니죠. 공정여행은 즐거운 불편이란 말이 딱 맞는 게 고민을 계속 하게끔 해요. 저도 몰랐으면 편하게 살 텐데 아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거죠. 버스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계시는데 봤으면서도 양보 안 할 수 없는, 양심 같은 거요.

S: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쭉 그래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이렇게 하는 게 불편한 건 아닌 거 같아요. 물통 가지고 다니는 거 어렵지 않잖아요.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쓰레기 버리지 않는 것도. 다 불편한 건 아닌데 우리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서 불편해져 버린 것 같아요.

A: 알게 되면 엄청 불편해지는 거죠. 저도 공정여행 참가하기 전에 휴양지에 있었는데, 리조트 앞에서는 펌프로 물 길어서 생활하고 있는데 바로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있고.

S: 공정여행에 대한 3부작 다큐멘터리에서 그런 걸 봤어요. 네팔의 높은 산 위에서 어린 아이들이 학용품 사려고 돌 나르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관광객들은 그 옆에 앉아서 경치 구경하고.

J: 우리가 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우리가 그 일을 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 애들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한국에서도 그런 일은 있죠. 그래서 좀 나누며 살아야 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으로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L: 저는 마음에 들었던 말이 ‘편견을 넘어’였어요. 1차적으로는 동남아시아, 필리핀, 필리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고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을 때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게 뿌듯한 마음에다가 우월감 같은 것이 더해지는 건데. 인간이라면 다 똑같은 거잖아요. 나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괜히 뿌듯해지는 그런 우월감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똑같은 사람이다. 그걸 잘 살고 못 살고로 너무 많이 나누는 것 같아요.

S: 이 여행 취지 자체가 좋잖아요. 근데 한편으로 이 여행을 온 우리는 사치 부리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J: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이런 거죠. 우리가 공정여행을 안 하고 그냥 여행을 왔으면 리조트에서 자고, 아무런 고민 없이 행동을 했을 텐데 공정여행을 통해서 삶의 압축적인 부분들을 조금씩 풀어가면서 다시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되는 거죠. 단순히 짧은 여행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을 우리 사회에 돌아가서도 지속할 수 있다면 이 여행은 사치가 아닌 거죠.

L: 공정여행 수칙은 개인이 정하면 되는 건가요?

J: 자기 스스로 정하고 지키면 돼요.

L: 저는 샤워시간을 줄여야겠어요. 원래 20분 정도 했는데 절반으로 줄이려고요.

J: 따뜻한 물 쓰면 계속 맞고 싶어져요. 찬물로 하면 3분 안에 끝낼 수 있어요.

L: 3분이요?! 저는 초반 일주일은 10분으로 길들이고, 나머지 일주일은 5분으로 줄여야겠어요. 단계적으로.

A: 그럼 옷을 다 벗고 사인을 보내세요. 그때부터 스톱워치를 누를게요. 옷 벗고 입는 시간은 빼야할 거 아녜요.

L: 정말 공정하네요!

S: 이렇게 여행하고 나중에 혼자 여행하게 되면 많이 못 지키게 될 거 같아요.

J: 아직 시작이잖아요. 끝날 때까지 고민하고 관심 있으면 책 읽어보고. 그러다보면 지금보다 깊어지지 않을까요?

S: 생소하고 어려워서 귀 기울이지 않던 친구들도 참여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J: 공정여행 하고 추천해서 오시는 분들이 꽤 많아요. 한 중학생 친구는 필리핀 공정여행 6박 7일 하고 와서 자기 돈 모아 북촌 공정여행에도 오고, 다음에는 또 어디 갈 거냐고 물어보고 그래요. 여행할 땐 조용한 친구였는데 속으로 생각이 많았던 거 같아요.

이상의 수다는 2011년 1월, 공감만세 필리핀 공정여행 참가자 중 6인이 나눈 것으로 2시간이 넘는 수다 중 극히 일부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느 20~30대 여자들이 카페에서 차 마시며 나누는 보통의 수다를 우리 또한 실컷 나누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나에게 전화를 달라. 수다를 나누어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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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_이선희
가늘고 오래 공부한 끝에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다방면에서 부족함을 절감, 불꽃 튀는 경험을 원하던 중 공정여행에 반해 청년 소셜벤처 공감만세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북촌을 여행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동화를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월간 토마토에서 어른들이 읽는 동화를 연재중이다. 
● E-mail: sunheemarch@gmail.co?m  ● Facebook: www.facebook.com/sunheemarch


공감만세는
‘자유롭게 고민하고 상상하며 길 위에서 배우는 청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라는 구호 아래, 대전충남 지역에서 ‘최초’로 법인을 설립을 한 청년 사회적기업이다. 현재 필리핀, 태국, 제주도, 북촌, 공주 등지에서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정한 여행이 필요한, 공정한 여행을 실현할 수 있는 지역을 넓혀갈 생각이다.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보자.  ● 홈페이지: fairtravelkorea.com  ● 카페: cafe.naver.com/riceterrace


● 연재 목록
1. 나는 왜 공정여행을 떠났는가    
2. 필리핀 ‘골목길 미소’에 반하다
3. 여자 여섯 명, 수다로 지새운 필리핀의 밤


 

Comments

“여자 여섯 명, 수다로 지새운 필리핀의 밤” 에 하나의 답글

  1. 라떼 아바타
    라떼

    부러운 여행, 부러운 시간입니다. 글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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