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지난 11월 7일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제 3회 AURI 인문학 포럼(부제:공간의 인문학적 재해석)을 열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우리나라 건축도시공간의 질적 향상을 위해 설립된 국책연구소로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논의를 하기 위해 인문학 포럼을 진행해왔다. 이번 포럼은 세 명의 강연자가 발표하고, 강내희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가 좌장이 되어 강연자와 패널간의 토론을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연자로는 송도영 한양대하교 문학인류학과 교수, 권혁태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부연구위원이 나섰고, 패널로는 이진경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박영욱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강사가 참석했다.

”?”
포럼은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온영태 소장의 개회사로 시작되었다. 온영태 소장은 ‘인문학 포럼’이 공간정책 형성과정에서 인문학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라며, 매해 3,4회 지속적으로 개최해 30년 후 100회를 맞길 기대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에 대한 열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도시를 형성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동물행태학 Vs 성찰적 인간

<동물행태학 vs 성찰적 인간: 도시공간 전개 방식의 사례>라는 주제로 발제한 송도영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도시 형성의 주체를 ‘성찰적 인간’으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도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도시는 성찰적 인간의 도시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능에 충실한 개별자들에 의해 형성되며, 이렇게 형성된 도시는 무질서 속에서 일정한 질서를 드러낸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송 교수는 도시형성의 주체로 제시한 ‘본능에 충실한 개별자’들을 ‘개미’의 행태학 연구를 빗대 살펴본다. 이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로는 계획되지 않은 새로운 것이 현상질서를 출현하게 한다는 ‘카오스 이론’을 제시하고, 현실에서의 사례로 영국 산업혁명의 산실인 ‘맨체스터’를 제시한다. 발표에 의하면 산업혁명 당시 맨체스터는 어떤 조정자나 계획자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도시 내 개별자들이 생활 속에서 충돌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일종의 자기조직체계를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는 ‘혼란 속의 새로운 질서’ 혹은 ‘단순한 개체들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탄생되는 전체적 질서’의 사례이다.

반면, ‘개미’로 상징되는 개별자와 대립되는 주체는 성찰적 인간이다. 송 교수는 성찰적 인간을 모더니즘적 합리성에 입각해 도시계획을 주도했던 도시계획자로 본다. 그는 의도적 도시 계획이 결국 실패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서울의 북촌 개발이 오히려 무질서한 현상을 나타내는 상황을 보여준다. 또한, 도시계획자를 발터벤야민의 ‘산보자’와 등치시키며 도시계획자는 ‘나름 비판적이고 뛰어난 관찰과 사유를 할 수 있지만, 도시의 물리적 공간에 어떤 형태의 ‘변형’과 ‘창조’를 행할 수 는 없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는 도시공간 형성에 있어 도시계획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의도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형성된 도시공간이 드러내는 일차적인 무질서는 다시 새로운 질서를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도시공간을 형성하는 주체는 직접적이고 즉자적인 생존 욕구와 같은 ‘단순한 동기’로 움직이며,단순한 동기가 집합적인 형태로 모여 상호작용해서 만들어낸 결과는 오히려 ‘카오스 이론’에 따라 움직이는 여러 물감의 혼합물의 궤적에 가깝다는 것이다.

”?”
상징적 공간은 어떻게 집단적 기억을 응축할 것인가?

두 번째 발제는 권혁태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가 <기억공간의 재구축: 히로시마 평화공원, 개발과 평화이념 사이에서>라는 주제로 했다. 도시의 역사를 담은 건축ㆍ조형물이 시민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힘에 대해 ‘히로시마의 평화공원’ 건설의 사례를 통해 추적해 나갔다.

피폭도시 히로시마에 넘쳐나는 ‘평화’라는 개념은 실제 ‘개발’과 ‘폐허존치’사이의 갈림길에서 정부로부터’개발을 위한 자금’을 얻기 위해 이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전쟁사(死)’와 ‘피폭사(死)’에 대한 정부의 보상은 차별되는 모습을 보인다.

권 교수는 ‘평화’개념의 오용과 비틀림의 과정이 ‘평화’와 ‘개발’의 공조로 이뤄졌음을 폭로하고, 이 근거로 원폭 돔과 원폭 위령비를 살펴본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히로시마 산업장려관으로 사용되었던 일본 돔은 원폭 돔으로 보존되면서 ‘평화’라는 개념을 이용한 파시즘 건축의 완성이다. 또한 원폭 위령비의 감춰진 ‘주어’ 때문에 발생했던 논쟁을 살펴보면, 정치적 우파에 의해 피폭 희생과 대동아전쟁긍정론은 묘하게 결합된다.

이는 ‘평화’를 매개로 해서 히로시마를 ‘부흥’시킬 수 밖에 없었던 히로시마의 ‘고뇌’,아니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의 도움을 받아 일본을 ‘부흥’시켰던 전후 일본 사회의 ‘비틀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일본이 ‘히로시마 평화공원’ 에 상징을 세우면서 개개인의 아픔을 돌보기보다 개발과 부흥의 관점에서 ‘평화’라는 개념을 이용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
재구성된 공간 인식과 실제 공간의 차이

끝으로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부연구위원인 오성훈은 <영상물의 외부공간, 그 인식과 실제>라는 주제로 대중이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영상매체를 통해 공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했다.

그는 (1)연속극에 나타난 외부공간의 유형별 비중은 현실의 비중과는 차이가 있다 (2)연속극에 나타난 외부공간의 유형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의 중요도에 차이가 있다는 두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시청률 상위 연속극 속에서 나타나는 단독주택, 다세대 주택, 연립 주택, 아파트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연속극에서 제시되는 공간이 수도권이나 서울의 실제 공간보다 미국의 시카고 주거 유형 분포와 유사함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공간 인식이 현실 인식과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성훈은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공간 자체의 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오히려 공간에 대한 문제제기와 사회적 합의와 논쟁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
세가지 상이한 주제의 발제 후 토론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발표였던 “기억공간의 재구축: 히로시마 평화공원, 개발과 평화이념 사이에서”를 제외하고 문제제시와 문제 해결의 방안이 적합한가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이 이뤄졌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가 좀 더 정교해지기도 했고, 그 해결방안에 있어 새로운 접근 방식이 제안되었다.

도시형성의 주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선보였던 송도영 교수의 발표에 대해 이진경은 카오스 이론을 통한 접근을 흥미롭게 여기면서도 북촌을 그 예로 든 부분과 개미와 성찰하는 인간형을 대립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오히려 개미를 새로운 유형의 “성찰하는 인간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또한 발터 벤야민의 “산보자”를 도시공간을 창조적으로 형성하는 능력을 상실한 주체로 보는 입장에 대해 이견을 분명히 했다. 오성훈의 발표에 대해서도 정량적인 분석을 위해 선택한 매체(드라마)가 다루는 주제에 따라 극명하게 공간에 대한 정량적인 수치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좀 더 주제에 따른 분류가 고려되어야 했음을 지적했다.

끝으로 이진경은 우리가 건축의 문제를 ‘공사’ 개념으로 바라보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보다는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건축이란 삶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삶의 공간이라는 관점으로 건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의 의의

개발에 초점을 맞춰 효율성을 강조하던 시기를 지나 공간을 좀 더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하자는 흐름이 나타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번 포럼에서의 내용만으로 해답을 얻었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미진하다. 하지만 인문학이란 기본적인 전제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오늘 제기된 도시공간을 형성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기억은 상징적인 공간 형성에서 어떻게 응축되어야 하는가? 등의 물음은 삶의 주체가 어떻게 공간을 형성하고 어떻게 영향받는 가에 대해 하나의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포럼에서 기억에 남는 대목은 토론 중 건축가이면서 토론 패널로 참석한 박소현 교수가 던진 반복적인 질문이다. “그렇다면 도시계획자로서 참여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질문은 인문학 포럼이 어떤 기대를 요구받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첫걸음을 뗀 것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나 건축도시공간연구소(AURI)의 인문학포럼이 보여주는 가능성은 우리 사회가 인간중심의 도시를 고민하는 것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하나씩 결실을 맺어나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