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싱크탱크를 가다 14] 마치는 글

희망제작소에서 기획한 세계 싱크탱크 조사는 2006년부터 일본, 미국, 독일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이영근 미래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96년 일본에 발을 디딘 후 일본 츠쿠바대학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을 둘러싼 국제사회와 일본사회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해습니다.  이영근 박사의 ‘일본 싱크탱크를 가다’ 연재는 단순한 소개를 넘어 일본 싱크탱크에 대한 입체적인 정보와 분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로부터 일본 싱크탱크 연재 의뢰를 받고 조금의 주저 없이 흔쾌히 수락하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일 중의 하나이다. 가능한 원고마감 날짜를 지키려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조금의 싫은 기색 없이 기다려 준 희망제작소의 정기연, 강현선 연구원 두 분에게는 새삼스레 고마운 마음뿐이다.  이번 방문기의 목적은 미국과 독일에 이어 일본의 싱크탱크의 전모를 올바르게 파악함에 있다.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이러한 작업을 완성함으로써 학문적 성과는 물론 한국 싱크탱크의 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시도는 일본 사회에서 있어서도 일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계와 과제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보다 심도 있는 싱크탱크의 연구를 위해서는 대중매체와의 관련 연구가 같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싱크탱크를 연구한 수많은 학자의 공통된 주장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싱크탱크와 미디어와의 관계를 분석한 선행연구가 존재하지 않는데 일본의 싱크탱크가 보다 기능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점은 본 연구가 법적/제도적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사회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부행위’가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되어 있지 못하며, 특히 미국과 같이 싱크탱크 기부금에 대한 면세제도(501⒞ 3)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일본의 싱크탱크는 기부금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발상이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환경에 놓여있다. 싱크탱크의 활성화를 위한 논의는 각계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는 있지만 하나의 현상으로 보기는 힘들며, 더욱이 싱크탱크에의 기부를 위한 법제도의 정비는 상당히 요원한 일인 듯이 보인다. 따라서 현재 싱크탱크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재조명하고 각 법률의 성격과 의의를 명확히 함으로써 일본 싱크탱크의 현 위치를 정확히 재정립하는데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주로 연구되어야 할 법제는 다음과 같다.

?       정책담당비서제도(1994)
?       행정기관이 보유하는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2001)
?       행정기관이 행하는 정책의 평가에 관한 법률(정책평가법, 2002)
?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NPO법, 2003)

발전 (Harmonization)

 일본 싱크탱크의 보이지 않는 특징 중의 하나는 철저한 고립주의(혹은 단독주의)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고립주의라 함은 싱크탱크가 수행하는 사업이 대부분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외부 연구자 간 혹은 기관 간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와 네트워크를 구축할 의사가 없는 경우, 타 기관의 연구업적 및 동향에 둔감한 경우 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수많은 싱크탱크를 방문하고 또한 각 기관의 핵심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낸 중요한 결과인데, 이는 일본의 각 싱크탱크가 향후 어떠한 방향성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점에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고립주의는 다음과 같은 일본 싱크탱크 특유의 성질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조직의 설립형태가 영리성인 경우 고립주의 성향은 강하게 나타나며 비독립적인 경우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여준다. 이를 NIRA의 분류에 따른다면 약 90%에 해당한다. 둘째,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강한 고립주의 성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이러한 성향은 미국식 독립/비영리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기관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셋째, 관료집단에 대한 인식의 정도에 따라 고립주의 성향에 차이가 나타난다. 즉 관료집단을 영향을 크게 받는 기관(예를 들어, 독립행정법인, 국책 법인, 정부 위탁사업이 많은 영리법인 등)일수록 고립도가 높이 나타난다. 이러한 고립성은 싱크탱크 상호 간의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며 싱크탱크가 자칫 일부 기관의 하부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어떤 기관을 방문하더라도 인터뷰에 응하는 연구원의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기관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자부심은 앞으로 수행 할 조사연구에 커다란 에너지로서 작용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지적 영역의 한계와 능력을 인정함으로써 올바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때로 네트워크 형태의 사업활동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책제안형 싱크탱크들이 그들이 가진 네트워크를 너무 좁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지게 된다. A기관 네트워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X연구원이 B기관, C기관에서도 유사한 주제를 가지고 네트워크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지만, 정작 A, B, C의 각 기관은 자신들만이 이 분야의 전문가인 X연구원과 공동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네트워크의 참뜻이 무색해지는 경우이다.
 
이상의 점으로 일본 싱크탱크가 발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업과 더불어 각각의 비교우위를 살려가면서 싱크탱크로서 올바로 기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고민의 끝자락

 싱크탱크의 역할이 정책을 제언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할 경우, 그 정책이 미래의 국민전체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며, 다른 정책을 선택했을 경우와 비교하였을 때 어느 정도 효율적인 정책이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게 된다. 물론 정책결정자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국익을 우선한 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하여 필자가 보고 느낀 것 중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다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미쯔비시 종합연구소 자체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적인 정책제언을 한다든지, 몸을 던져 정책실현을 위해 움직이는 않지만, 본문에서도 소개한 자주연구, 즉 “유타카論”에서 그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으며, 무엇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모든 국민이 바라는 것은 “행복함”이며, 국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과학기술정책에 어떠한 혼(魂)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통찰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東京재단의 경우 “문화”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들 수 있다. 문화 그 자체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는 정치, 경제, 교육 모든 분야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인 것이다. 결국 미쯔비시 종합연구소나 東京재단이 의도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보여지며, 단지 한쪽은 “행복”을 다른 한쪽은 “문화”를 가지고 그들 행동(연구, 조사, 정책제언과 실시 등 모든 사항)의 바로미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두 싱크탱크는 차별화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방문기를 위하여 일본의 많은 싱크탱크들과 접촉하였고,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적지 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는데, 예를 들어 10군데 싱크탱크에 방문 허가 요청을 하여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는 곳은 불과 반수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영리성 목적을 가진 싱크탱크의 경우는 방문을 하더라도 실제 많은 부분은 “고객과의 계약”이란 성역에 걸려 그 이상의 조사가 불가능한 부분이 많았고, 비영리의 경우라도 기관의 실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영세하여 방문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뜻을 전하는 곳도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정책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곳에서 필자의 방문 요청에 대해 “방문하는 것은 좋지만 (故)노무현씨와 가까운(?) 사람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발언을 하여 적잖게 놀라움을 느낀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일본의 싱크탱크 중에는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기관이 많았는데, 이는 그들의 조직체계와 활동과 크게 관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조사불가’ 지역에 대한 영역이 일본 전체 싱크탱크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인다.
 
일본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들을 방문하면서, 각각의 싱크탱크를 대표하는 혹은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연구원 혹은 역원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일본의 싱크탱크들은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로 일본 싱크탱크의 대명사라 불리는 미쯔비시 종합연구소를 예로 들어보면, 일본의 모든 싱크탱크들은 미쯔비시 종합연구소를 알고 있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나름대로 견해를 피력하며 그들의 활동을 평가한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미쯔비시 종합연구소의 본질을 논하는 사람은 없고, 단지 피상적으로 보이는 조직체계, 그 조직이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위탁업무의 양, 모회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독립적 조직성 등을 설명하는데 그친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제로 미쯔비시 종합연구소는 모회사가 존재하지도 않고, 그들의 자주연구의 내용을 보면 그들의 싱크탱크로서의 이념과 자긍심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상호 간의 이해부족과 편견에서 오는 단독주의(고립주의)는 자칫 비뚤어진 우월주의로 흘러갈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필자가 바라본 일본사회는 이러한 모습이 현저하다.
 
일본의 싱크탱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일본에는 진정한 싱크탱크가 없다” 혹은 그러한 환경이 성숙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식 사고에서 본다면 이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본의 싱크탱크는 미래를 만드는 주식회사”라고 단언하는 미쯔비시 종합연구소 노구찌(野口) 연구이사의 자신에 찬 얼굴에서, “진정한 싱크탱크”란 도대체 무엇이며, 일본의 싱크탱크는 어디로 가야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필자가 파악한 일본의 싱크탱크들의 특징을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립적이지만 독립적이지 못하다.
영리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영리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정책제언은 행하지만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민간비영리를 표방하면서도 기부를 기대하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겨우 파악한 단계에 불과하며, 지금까지의 일본 싱크탱크에 관한 조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도 불분명한 기관들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그 조사는 책상 앞에 앉아서 행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분명한 것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현대사회에서 일본의 싱크탱크들은 그들은 나름대로의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변함없이 힘차게 고동치고 있다는 것이다.

● 연재순서

0. [공지]기획연재 & 필자 소개(2/2)
1. 일본싱크탱크- 연재를 시작하며(2/2)
2. 미쯔비시종합연구소(2/16)
3. 일본종합연구소(3/2)
4. 東京재단(3/16)
5. 구상일본(3/30)
6. PHP종합연구소(4/13)
7. 공공정책플랫폼(4/27)
8. 싱크탱크2005일본(5/11)
9. 종합연구개발기구(6/2)
10. 일본국제교류센터(6/22)
11. 가계경제연구소(7/6)
12. 유타카론(7/20)
13. 지방자치연구기구(8/13)
14. 마치는 글(8/24)

담당연구원 /  희망제작소 강현선 연구원 (hyunseon@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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