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비즈니스, 모두 모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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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7일 도쿄의 대표적 번화가인 록본기힐에서 일본 소셜 비즈니스 관계자들의 연합체인 ‘Social Business Network(이하 SBN)’의 창립 대회 행사가 열렸다. 정부, 주요 지역의 협의회, 경제단체, 사업자, 대학, 중간 지원조직, 전문가 등이 망라된 사회적 기업 전국 조직이 결성된 것이다.

이 날 창립식은 일본 사회적기업가들의 연례 행사인 소셜 안트러프러너 개더링(Social Entrepreneur Gathering) 대회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다. 대회 공식 자료집에는 경제산업성ㆍ환경성ㆍ후생노동성 3개 정부부처가 후원기관으로, 도요타 자동차ㆍ노무라 증권ㆍ미쓰비시 은행 등 일본의 간판기업들이 협찬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일본 경제의 3주체(1ㆍ2ㆍ3섹터)가 합작하여 넓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_1C|1197334747.jpg|width=”282″ height=”17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올해로 5년째를 맞는 소셜 안트러프러너 개더링은 소셜 비즈니스(Social Business)의 진흥 및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매 년 열리는 행사다. 뛰어난 성과를 이룬 국내외 사회적기업가의 강연, 관심이 높은 소셜 비즈니스 주제에 대한 토의 및 워크숍, 사회적기업과 일반 기업간 협업을 논의하기 위한 매칭 테이블, 네트워킹 촉진을 위한 교류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번 5회 대회에서도 환경ㆍ음식ㆍ농업ㆍ교육ㆍ 육아ㆍ고령자 및 장애인 등 총 20개 분야로 나누어 주제 발표 및 패널 토의, 워크숍이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발표자를 포함하여 패널로 초청된 사람 수 만도 100명이 훨씬 넘는다. 시민사회 활동가는 물론이고, 사회적기업가, 영리기업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사회적책임) 담당자, 중앙정부 관료에 이르기까지 출연진도 다양하다.             

SBN 발기인 겸 공동대표이자 유기농 야채 판매 사업으로 유명한 ‘(주)대지를 지키는 모임’ 회장인 후지타 카즈요시(藤田化芳)는SBN의 설립 취지를 일본 내의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연계, 협력하여 소셜 이노베이션을 사회적인 프로젝트로 승화시켜 나가기 위함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 소셜 비즈니스’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개념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사회적기업이라는 표현이 보다 일반화되어 쓰이고 있다) 일본의 소셜 비즈니스 연구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이 주체가 되어 사회적 과제를 비즈니스 원리와 사업성에 입각하여 풀어가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감동을 낳는 비즈니스가 사회를 바꾼다’는 이번 대회의 캐치프레이즈가 상징하듯, 일본의 많은 사회적기업가들은 당면한 사회적 과제의 해법을 봉사와 나눔보다는 비즈니스로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에서 이 영역이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 중반 이후 일본 전역에 널리 확산된 커뮤니티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 이하 CB)와는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 것일까?  

행사장에서 만난 일본의 경제신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셜 비즈니스는 CB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지역적) 과제를 비즈니스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둘은 뿌리가 같습니다. 현재 소셜 비즈니스라는 명칭이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정부의 지원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NPO법(특정 비영리 활동 촉진법)이 제정된 지 약 10년이 흘렀지만, 일본의 시민사회 영역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이번 네트워크 조직의 출범이 소셜 비즈니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NPO의 활성화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일본의 비영리단체ㆍ비정부기구 (NPOㆍNGO) 중 다수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업형 NPO의 출현, 협동조합 법인에서 주식회사형 법인으로 전환하는 단체 수의 증가 등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루어진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흐름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독립 생존의 길을 걷는 시민사회단체들도 많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축소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시장지향적인 사회적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일본도 거품경제 붕괴에 따른 장기 경기침체로 정부와 시장 기능이 쇠퇴하자 줄어든 공공서비스를 대체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CB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서 SB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면 되는 것일까?

[##_2C|1344683932.jpg|width=”340″ height=”242″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1304721441.jpg|width=”340″ height=”25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일본 정부는 어떤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례적(?)으로 중앙정부 관료가 발제자로 나선 ‘다양한 사회적기업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제목의 분과 세션에서, 일본 내각부의 산업ㆍ고용 담당 참사관은 2011년 전국 12개 지역에 총 40억 엔을 투자하여 800명의 지역 CBㆍSB 리더를 육성하고 향후 2년간 1만 2천 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장기불황으로 인한 청년 실업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요 지역마다 ‘SB 대학’을 만들어 활동가와 사회적기업 창업자를 인큐베이션할 것이라는 내용, 인턴십에 참가할 예비 사업가를 모집한다는 패널들의 말이 이어졌다.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에 중간 지원조직을 결합해 말 그대로 ‘인재 육성’을 하겠다는 뜻이다.

행사장 한 켠에 마련된 참여 기관 홍보물 전시코너에는 각 지역의 소셜 비즈니스 대학(아카데미) 안내와 내년 학기 주요 교육 프로그램, 인턴십 참가자에게 대한 혜택 등이 빼곡하게 적힌 교육생 모집 전단이 즐비하다. 홋카이도(北海道)는 체험형 관광을, 도쿄도의 미타카시(三應市)는 첨단 디지털 단지 구성을 내세우는 등 각기 다른 포장지와 컨텐츠로 구성되어 있지만, ‘우리 지방의 전통과 자원을 살려 풍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 핵심인 점은 같다.

그렇다면 일반 기업들은 소셜 비즈니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환경분과 세션 발표자로 나선 IBM 재팬 사회공헌센터장은 지역 NGO와 더불어 기업 차원에서 지역 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례(직원들의 직접적인 활동 참여, 환경단체에 대한 재정지원 등)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향후에도 CSR 차원에서 지역 단체 및 주민들과 지속적인 연계활동을 펼쳐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풀뿌리 단체가 많기로 유명한 도쿄도 다마시(多摩市)에서는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이 힘을 합쳐 ‘스완 베이커리’처럼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빵집을 열었는데, 창업 과정에서 히도쯔바시대(동경의 국립대학)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고 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홋카이도(北海道)에서는 미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지역 체험학습을 의무화하고 있고, 경제산업성의 지원을 받아 과자(홋카이도의 과자는 유명하다)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지역 명품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자치단체와 기업, 학교와 비영리 단체, 그리고 지역 주민간 협력 사업이 단지 구호 차원에서가 아니라 ‘서로 얼굴을 아는’ 신뢰 속에서 매우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별 지역을 중심으로, 경제 각 섹터(Sector)들간의 협업과 네트워킹이 물리적 수준을 뛰어넘어 화학적인 융합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할까?       

[##_1C|1265529711.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한국 단체로는 유일하게 희망제작소가 이번 행사에 참가했다_##]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기업 붐과 함께 지역사회 개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모토로 한 CB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CB가 ‘건강한 지역사회 만들기’ 사업이라면 SB는 ‘더불어 함께 사는 행복한 사회 만들기’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CB와 SB(혹은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정립되어 있지 않고, 둘 사이의 경계선도 애매하며,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배경 및 발전 정도도 상이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두 가지 모두 더 좋은 사회(지역)를 만들기 위한 경제주체들의 협력과 구체적 노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과거 공공부문(1섹터), 민간부문(2섹터), 사회적 경제와 비영리부문(3섹터)으로 구분되었던 경제블록은 지금 각각의 국민경제 안에서 통섭(consilience)과 융합(convergence)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형태로 진화ㆍ 발전하고 있다. 블록과 경계(boundary), 그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로 인한 고용 불안과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듯이 국가, 기업, 시민사회 모두가 신뢰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이다. 이틀간의 행사를 지켜보며, 참여자들의 눈빛 속에서 차이를 뛰어넘어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진지한 관심과 열정이 느껴졌다.

우리는 어떠한가?
 
글_소기업발전소 문진수 소장 (mountain@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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