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

<편집자 주> “일본의 싱크탱크를 가다” 기획 연재는 매 주 월요일 게재됩니다. 희망제작소에서 기획한 세계의 싱크탱크 조사는 2006년부터 일본, 미국, 독일에서 동시에 시작ㆍ진행되었습니다. 현재 미래자원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인 이영근 박사는 당시 츠쿠바대학(University of Tsukuba)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1996년 일본에 발을 디딘 후 일본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본사회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아왔습니다. 본 연재는 일본 싱크탱크들을 소개하는 차원 뿐만 아니라 입체적인 정보와 분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필자 : 이영근
미래자원연구원 선임 연구원

”?”

구상일본은 20년 이상 대장성(大?省) 공무원으로서 재직하였던 카토(加藤秀樹)씨가 ‘民’의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 보려는 일념으로 1997년 4월에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상일본의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정책제언형 싱크탱크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함께 ‘민간비영리’ 단체로서 운영한다는 자체가 일본의 풍토에서 자생하기 어려웠다는 점에 있었다. 설립 이후 10년이 지난 구상일본의 현 모습은 어떻게 변해왔고, 또한 일본의 정치발전에 그들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앞으로 일본형 정책 싱크탱크의 생육조건을 고찰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설립 & 이념

구상일본이 설립되었던 1997년은 IMF사태로 불리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는가 하면, 1989년 일본의 소비세법 시행 이후 3%였던 소비세가 5%로 오르는 등 일본 국내외로 암울한 소식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편 정치계에 있어서도 오랜 기간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자민당은 1993년 중의원 단독 과반수 획득에 실패함으로써 연립정권을 구성, 힘겹게 정국을 운영하다가 야당의원 포섭공작으로 겨우 과반수 획득을 달성한 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국내정국의 불안에 더불어 해외의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일본의 장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지식인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났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대학 등과 같은 민간 연구자에게서만 보인 현상은 아니었다. 카스미가세키(霞ヶ?)로 불리는 일본의 거대한 관료 싱크탱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얼마만큼 능동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게 되었다. 구상일본을 설립한 카토는 누구보다도 그러한 사정에 민감하였을 것이고, 그가 오랜 기간 몸담아 온 대장성을 나왔다는 것은 일본 관료조직의 한계를 의미하는 하나의 시그널이었을 것이다.

구상일본의 특징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먼저, ‘독립적이며 비영리’ 조직이다. 구상일본은 필자가 파악하는 한 일본에서 유일하게 회원의 회비로 운영이 되는 기관이다. 그리고 재정상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탁연구는 행하지 않는다. 구상일본을 떠받치고 있는 회원은 모두 800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10% 정도가 법인회원이며, 법인회원 중 25%가 대기부자라고 한다. 그리고 구상일본의 운영비는 이들 대기부자에 의해 거의 충당되고 있다고 한다. 회원들은 운영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고, 단지 개인적 자격으로 제의 등의 발언을 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구상일본은 운영에 있어서 정당이나 정치가, 혹은 기업 등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징은 ‘변혁자의 네트워크’로서 다양한 분야의 인재 중에서 세상을 바꾸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지혜를 결집하여 정책을 만들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를 네트워크형 사업이라 일컫는데, 연구소나 대학, 기업, 그리고 관청에서 모인 전문 인재들이 구상일본이라는 한 지붕아래 모여서 논의를 가지고, 구상일본의 직원이 그들의 주장을 정리하는 식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스스로의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가로서 그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구상일본은 실행성을 담보로 그러한 불만을 터뜨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 사업에 참가하는 각 전문가에게(는) 돈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무원 등 신분의 노출을 꺼리는 경우 이러한 사업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즉, 네트워크 사업을 통한 정책제언은 어디까지나 구상일본이 행하게 되며 개인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무원은 구상일본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되고, 구상일본이 정책제언이라는 형식으로 발표를 하게 되면, 자신이 속한 관료조직에서 그것에 관해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각 전문가들에게 있어서 지적 욕구의 충족과 더불어 풍부한 경험과 고도의 지식을 기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제기될 수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정책이 정책으로서 가져야 할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언하겠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비판이나 추상적인 이상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점이나 구도를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철저한 논의를 통해서 실행 가능한 정책제언을 행하고자 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끝으로, 구상일본은 제언에 그치지 않고 일본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창출된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치가를 움직이고, 각종 언론매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움직임으로써 실현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것이다.

”?”정책제언과정

그렇다면 구상일본의 정책제언은 어떠한 형태로, 또 어떠한 경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정책제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4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째, 문제제기의 단계이다. 첫 단계에서는 일상생활로부터 정치문제를 생각하는 점에 중점을 둔다. 즉, 우리들이 매일같이 먹고 마시는 음식물은 안전한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농업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또한, 언론매체를 통하여 보도되는 의료사고를 보면서 과연 의료제도나 의학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가나 관료들에 의해 전적으로 일임되고 있었던 정책문제에 대하여 국민이 의문을 가지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제제기와 함께 문제설정이 이루어지면 두 번째 단계로 프로젝트 팀을 편성하여 정책을 작성하는 단계에 들어간다. 물론 프로젝트 팀은 전문가로 구성되며, 현상을 정확히 분석하여 구체적인 제언을 정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정치자금문제에 관해 아무리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주장하더라도 섣불리 정치가가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개혁안을 작성한 후에 각 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상황을 조사하여 언론을 통하여 공표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의료문제의 경우는, NPO 등으로부터 의료사고의 실태나 환자의 불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후, 그 배후에 어떠한 제도상 문제가 있는지에 관해서 의사, 병원 경영자, 담당 공무원 등과 논의하면서 정책안을 구성하게 된다. 이처럼 정책을 구체적으로 작성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분석하고 제도화와 같은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을 가진 전문가의 참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구상일본의 연구원에 의해 각 전문가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을 결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일본의 특징을 카토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일반인들은 전문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단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반 국민들의 소박한 아이디어를 모아서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가 됩니다. 즉, 전문 지식인을 모아 일반인들의 아이디어를 주제로 수준 높은 토론을 진행시키고, 우리들은 거기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

다음 단계는 작성된 정책안을 폭넓게 인식시키는 단계이다. 하지만 정치가나 관료의 대부분은 ‘개혁’에는 소극적이며, 언론매체 역시 시청률이 확보되지 않는 한 좀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 과정은 상당히 많은 시간과 끈기를 필요로 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정책 및 개혁의 실현단계이다. 첫 단계에서 세 번째 단계에 이르면서 작성된 정책안은 국회에서 논의된 후 법률 혹은 정부 결정의 형태로 이어진다.
구상일본의 정책안이 언론에 인용되는 빈도는 매년 130회 정도에 이르고 있는데, 실제 이들의 정책제언이 실행에 옮겨진 것은 전부 4건이며, 내각결정이 5건, 그리고 국회결의문이 5건 이상에 이르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를 구상일본은 꾸준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정책제언과정을 통하여 달성한 주된 성과는 다음과 같다.

● 성청개편: 각 성청의 권한을 법률에서 삭제하는 제언(각 성청설치법의 개정) ⇒ 1999년1월 법률로서 성립
● 공익법인 기부세제의 개혁: 자유롭게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비영리법인제도의 변경과 기부세제의 대폭적인 완화를 제언 ⇒ 2006년 5월 ‘공익법인제도 개혁관련법’에 규정
● 연금제도의 개혁: 제도 전체를 재평가할 것을 제언 ⇒ 2004년 4월 연금개혁법‘부칙(附則)’으로 성립
● 삼위일체 개혁: 중앙 정부로부터 지방에의 분권(법률로부터 조례에의 수권)을 대폭적으로 확대할 것을 제언 ⇒ 2004년 6월에 각의결정
● 국가사업의 분류: 국가사업을 국민의 관점에서 공개적으로 체크할 수 있도록 제언(행정/재정 개혁) ⇒ 2006년 5월 ‘행정개혁추진법’에 규정

사업 & 운영

구상일본이 수행하고 있는 정책 프로젝트는 실로 다양하다. 국가사업의 분류, 지방분권, 정치자금제도, 도로공단/도로특정재원, 교육행정, 공익법인제도, 의료제도, 커뮤니티 금융, 지방의회제도, 공직선거법, 성청설치법, 공약평가, 공회계제도, 국회/내각, 연금제도, 에너지 전략, 환경보전, 토양오염대책, 외교기능강화, 건강유지, 농업, 중소기업 및 기타 JI포럼 및 심포지엄, 워크숍 등을 운영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광범위한 분야를 논의하기 위한 구상일본의 구성은 대단히 소규모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즉, 구상일본의 상근직원은 불과 10명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의 연간 예산은 약 8천만 엔 정도이다. 10명의 인원으로 이와 같은 방대한 정책 프로젝트가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에 카토 대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10명이란 인원은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우리의 적은 인원으로는 단독 연구는 힘들고 외부 전문가와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스태프가 바쁘면 미팅 자체도 열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상 스태프가 늘어나면 불필요한 부분에 비용이 들어갈 수 있고, 현재의 예산상황을 고려해 볼 때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적은 수의 직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행되고 있는 사업 중의 하나가 JI포럼이다. JI포럼은 ‘일본의 미래상에 대한 철저한 사고’를 위해 다양한 테마를 주제로 매달 한 번씩 열리고 있으며, 2008년 2월 현재 127회가 개최되었다. JI포럼의 주제는 실로 광범위하며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게스트로서 발표를 담당하였다. 포럼에서 행한 주요 발언 및 제언은 “구상일본”이라는 단행본을 통하여 출판되고 있으며, 현재 4권까지 간행되었다.

”?”정책제언 싱크탱크의 장래

구상일본은 실로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정책제언형 독립비영리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상일본이 지금까지 수행한 사업은 일본 민주주의의 발전에 확실한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들의 움직임은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구상일본의 미래가 핑크빛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재정이다. 재정상의 어려움은 독립 비영리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일본의 싱크탱크 대부분이 겪고 있는 일이며, 구상일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들의 연간 예산 규모는 카토 대표가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東京재단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직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를 지불하고 나면 재정은 바닥이고, 따라서 그들이 네트워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전문가에게 경비를 지불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실정에 있다고 보인다.

또한 재정의 압박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폭넓은 정책 분야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희박하게 한다. 아울러 정책제안이 각 전문가의 실명으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은 공개를 꺼리는 공무원 등과 같은 한정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영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만약 그렇다면 구상일본의 정책제안은 전직 관료인 카토 대표의 발안으로 현직 관료들의 불만을 뭉쳐놓은 또 하나의 카스미가세키(霞ヶ?) 발상이라고 비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구상일본이 공개한 제안이 얼마만큼 심도 있는 정책인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구상일본이 지금까지 수행한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전직 관료로서 가지는 카토 대표의 한계를 지적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고, 특히 문제시 되는 경우가 연구의 질에 관한 사항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구상일본이 앞으로 어떠한 식으로 변화, 발전해 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독립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라는 간판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는 듯하며, 그런 경우 재정은 계속해서 구상일본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발산하는 분위기는 지극히 자유분방하였으며, 그것은 금융계 종합연구소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함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모습은 앞으로 그들에게 닥쳐올 곤란을 이겨낼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연재순서

0. [공지]기획연재 & 필자 소개(2/2)
1. 일본 싱크탱크 – 연재를 시작하며(2/2)
2. 미쯔비시종합연구소(2/16)
3. 일본종합연구소(3/2)
4. 東京재단(3/16)
5. 구상일본(3/30)
6. PHP종합연구소(4/13)
7. 공공정책플랫폼(4/27)
8. 싱크탱크2005일본(5/11)
9. 종합연구개발기구(5/25)
10. 지방자치연구기구(6/8)
11. 일본국제교류센터(6/22)
12. 가계경제연구소(7/13)
13. 유타카론(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