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의 숨은 힘

소기업발전소는 기업사회공헌의 새로운 패러다임 ‘CSR 3.0’을 조명하는 글을 5~6 회에 걸쳐 싣습니다. 그동안 진행한 자료 조사와 관계자 인터뷰를 중심으로 국내 사례를 살펴보고, CSR 3.0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2)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의 숨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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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많은 기업들이 사회공헌사업(CSR)의 롤모델로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를 꼽는다. 나무를 베어 쓰는 대표적인 ‘펄프’기업이 ‘환경보호’를 핵심 CSR 주제로 삼은 전략적 판단과 더불어, 30여 년간 올곧게 한 길을 걸어 온 뚝심, 이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진정성과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일반적으로 꼽는 성공의 열쇳말이다.

하지만 숨은 열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적극적인 거버넌스(협치) 실행이다. 1섹터(정부), 2섹터(기업), 3섹터(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바탕으로 역할분담을 하고, ‘
생명의숲‘처럼 사업수행을 위한 별도의 독립조직들을 함께 만들어왔기에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해 낼 수 있었다.
 
여기에는 자타공인,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현 뉴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의 역할이 가장 컸다. 그는 부장으로 재직하던 1990년대 초, 기존 ‘나무심기’ 활동에서 ‘숲가꾸기’ 활동으로 패러다임 변경을 역설하면서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 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약 30여 년간 온 나라가 새마을녹화사업 등에 힘을 쏟아, 당시 외형적으로는 녹지가 대폭 늘어난 듯 보였지만, 외려 ‘숲 속은 병들대로 병든’ 심각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말았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길이생장 못지 않게 부피생장이 무척 중요한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빼곡하게 심는 데만 힘을 쏟다보니 숲 속 생태계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현장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들이 오가던 와중, 마침 안식년을 맞게 된 문국현 ‘부장’은 미국 곳곳을 발로 뛰며 앞선 숲가꾸기 사례들을 벤치마킹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회사를 설득하고 다양한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CSR 3.0의 원조
 
때마침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일자리 문제’ 역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김대중 정부가 ‘공공근로’ 사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했는데, 여기서 착안해 ‘숲가꾸기 운동에 공공근로 사업을 접목하자’는 아이디어가 발의돼 힘을 얻게 된다. 유한킴벌리 역시 본격적인 4조 2교대를 통한 평생학습과 좋은일자리 나눔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한 때여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우선 문 대표는 오랫동안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 활동을 통해 신뢰관계를 이어 온 故 이보식 전 산림청장을 만나 정부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후 현장에서 환경운동을 적극 고민하고 실천하던 민간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힘을 모아냈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유종성 사무총장, 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 녹색연합 장원 사무총장 등 명망있는 베테랑 활동가와 서왕진 박사(현 서울시 정책특보), 김재현 교수(건국대 환경과학과) 등이 구심점이 되었다.
 
이들 단체에서 실무진을 파견하고 서왕진 박사가 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사무국이 구성되었고, 유한킴벌리가 제반비용과 인프라를 제공하면서 1998년 드디어 비영리 사단법인 생명의숲이 출범하게 된다. 창립초기 간사로 합류해 생명의숲을 이끌어 온 이수현 사무처장은 설립 당시의 동력을 ‘절박함’이라고 설명했다.
 
“절박했어요. 그 당시 숲 속 생태계가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심각했거든요. 겉은 푸르렀지만 속은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환경운동 단체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각자 조금씩 다른 활동방향을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도 힘을 모으게 된 겁니다. 사실 살림살이가 빠듯한 시민단체 입장에서 상근인력을 한 명 파견한다는 것은 굉장히 파격적인 결정이거든요. IMF 구제금융위기 때 서민들의 일자리문제 또한 심각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뜻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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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숲이 시행한 숲가꾸기 공공근로 사업은 곧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임업 훈련원과 함께 약 3~6개월간의 사전 집중교육을 통해 배출된 인력들이라 업무역량이 뛰어났다. 또한 이 분야의 ‘시장 잠재력’이 워낙 높아 안정적인 일자리와 기업들이 생겨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공공근로 사업에 참여했던 많은 근로자들이 이후 (주)강원임업과 같은 회사를 꾸려 독립해 나간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때문에 당시 ‘황소개구리 잡기’ 등 한시적, 시범적 사업이 대다수였던 공공근로 사업 가운데 숲가꾸기 사업은 군계일학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5년 이상 꾸준히 연 2천억 원의 정부예산이 투입되어 하루 평균 2만~3만 명이 사업에 나섰고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생명의숲 역시 성장을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동안 정부와 단단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내온 터라, 유한킴벌리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들도 점차 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수현 사무처장의 말이다.
 
“기업들이 처음에는 생명의 숲을 ‘킴벌리 표’ 조직으로 보고 참여를 주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부와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맺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오면서 ‘숲살리기 운동을 하는 독립기관’ 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어요. 거버넌스 체계를 갖춰 온 것이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기업들과 실제 협력사업을 시행할 때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대부분 사업이 기업의 사업의뢰→ 관련 지자체 및 정부기관 컨택→ 3자간 MOU체결→ 사업시행의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기업들에게는 사업의 ‘정량적 성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네트워크(파트너십)또한 핵심적인 CSR 욕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희도 이런 다자간의 역할분담과 협력이 있어야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고요.”

생명의숲 활동에서 여러 주체 간의 협력은 사업의 정착과 확장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형태로 정착했다.

“지금은 매년 약 20여 개의 기업이 나무심기, 숲조성 사업을 함께 하거나 일시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정기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기업도 약 60여 개에 이르렀습니다. 정부 위탁사업부문을 포함하면, 크게 세 부문으로 사업영역이 정비되었습니다. 유한킴벌리도 지금은 ‘학교숲 가꾸기’ 사업 하나만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설립 초기 유한킴벌리가 출연한 인프라와 기부금, 제휴한 사업들이 마중물이 되고 주춧돌이 되었기에 지금의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장기, 사업확장기에 접어들다 보면 비영리단체들도 자연스레 동종 분야의 조직들과 경쟁 관계에 놓이기 마련이다. 이수현 사무처장에게 조심스레 운을 떼자, “그러한 조직들이 모두 한 건물에 모여있다”며 웃었다. 유한킴벌리가 30억 원을 출연하고, 한국숲재단이 추가로 10억 원을 출연해 ‘숲센터’를 지어 유관기관, 조직들이 사이좋게 한 곳에 모여 있다고 한다. ‘숲가꾸기, 나무심기’ 라는 분야가 그리 경쟁이 첨예한 영역은 아니여서 파트너십에 문제가 될 만한 사안 또한 드물다는 전언이다.
 
또 한 가지. 입주한 대부분의 조직 역시 유한킴벌리가 ‘거버넌스’ 를 통해 인큐베이팅한 곳들이라고 한다. 생명의 숲을 시작으로, 1999년 ‘평화의숲’, ‘동북아산림포럼’, 2000년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2003년 ‘서울 그린트러스트’ 등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푸릇푸릇한 조직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기업은 사회와 종업원의 것”

유한킴벌리가 직접 시행하거나 운영하는 사업은 환경지식공유 누리집 우리숲 운영 등 환경교육과 환경광고, 캠페인에 국한되어 있고, 실행사업들은 이처럼 민간의 독립된 비영리기관을 통해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아이디어야말로 이러한 공익활동의 성공을 위한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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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의 이러한 사회공헌 철학과 사회책임경영은 참여정부 시절 정부에 의해 적극 수용돼, 2005년 대통령 직속 ‘사람입국 신경쟁력 특별위원회’ 및 ‘뉴패러다임센터’가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일자리ㆍ좋은일자리 창출, 사회책임경영 등을 뼈대로 한 ‘뉴패러다임’은 2009년까지 전국 300개 기업으로 확산되었고, 해외에도 수출돼 특히 브라이트차이나그룹 등 중국기업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
한겨레21 보도 참조)
문 대표는 정부위원회가 해산된 이후에도 ‘뉴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라는 별도조직을 만들어 민간차원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열정적인 활동에는 청년시절 멘토였던 창업주 故유일한 박사의 영향이 컸고, 유일한 박사가 기초한 유한양행의 기업이념이 철학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1936년 6월 20일 신문로 2가 6번지에서 조촐한 창립총회를 개최한 청년기업가 유일한. 그가 전직원들에게 액면가 10%로 주식을 골고루 나눠주면서(우리나라 최초의 종업원 주주제 시행이었다) 읽어내려간 짧막한 문건에 그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있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며,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 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 배출하며 기업 이익은 첫째,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둘째는 정직하게 납세하며, 셋째는 그리고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한다.” (유일한 평전, 작은씨앗 출판사, 2005)

글_소기업발전소 이재흥 연구원 (weirdo@makehope.org) 
사진_ 생명의숲 제공

● 연재목록 
1. ‘CSR 3.0’의 시대
2.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의 숨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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