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공존하는 개성의 두 얼굴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이명박 선생은 왜 친박연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까?”
‘선생’이란 호칭만 빼면 대구나 한나라당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음직한 언사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말은 북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5월 중순 개성구경을 하는 남한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북한 관광안내원들은 어느 샌지 모르게 이런 남한 정치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휴전선을 넘기 전에 현대아산 관광 가이드는 북한 땅에 들어서면 북한체제나 정치에 대한 언급은 문제가 생기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간곡한 당부를 합니다. 그런데 북한안내원들은 관광객들로부터 남한 정치사정을 요것조것 물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땅이니 그들은 ‘갑’의 위치이고 관광객은 꼼짝없는 ‘을’의 신세일 수밖에요.

“국무성 김성 과장이 평양에서 핵보고서를 가져갔다는데 청와대에는 들렀습니까.” “조미관계는 어찌 봅니까?” “김문수 경기지사가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야무진 사람같이 보였는데 김 지사는 북남관계에 뭘 하려는 게 있습니까.”

[##_1C|1099492510.jpg|width=”600″ height=”450″ alt=”?”|▲ 은행나무 녹음이 시원한 개성의 성균관. 남한 관광객들이 문화적 동질감을 느낄 만하다._##]북한 안내원들의 관심은 한나라당 내부 사정, 정부의 대북정책, 그리고 북미관계 전망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은 이명박 , 박근혜, 김문수, 김성, 오바마와 힐러리, 부시 등이었습니다. 역시 그들의 관심은 북한의 안보나 경제에 영향을 줄 사람들이었습니다. 노무현, 손학규, 정동영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남한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응모드로 전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성관광, 아침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 간에 합의된 이동로와 관광지만을 둘러보고 오후 4시면 군사분계선을 다시 넘어와야 하는 기이한 여행입니다. 안내원의 인솔에 중압감을 느껴야 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관광대상지만 촬영이 허용되고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는 그 룰이 지켜졌는지 검열을 받아야 합니다. 남한에서 같으면 “야, 미쳤냐”며 모두가 포기할 여행, 그러나 북한 관광의 매력은 북한 땅을 밟는다는 흥분과 더불어 통제된 사회를 들여다본다는 야릇한 긴장입니다.

임진강을 금방 넘어온 초행길의 관광객에게는 개성의 첫 인상이 불도저로 밀어놓은 수백 만평의 허허벌판입니다. 그러나 수 년 전 필자가 처음 개성공단을 구경할 때 한 두 개의 공장 빌딩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던 기억을 되살리면 지금은 상전벽해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북한 안내원이 개성공단의 남북협력사업을 입주현황에서 업종에 이르기까지 청산유수같이 설명했습니다. 개성공단에 공급되는 용수를 설명하면서는 “선생님들, 남측에서는 삼다수를 제일 좋은 물로 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곳 개성 물은 삼다수보다 품질이 훨씬 더 좋습니다”고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실상은 어떤지 몰라도 자랑할 게 있다는 것은 자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1C|1191249716.jpg|width=”300″ height=”225″ alt=”?”|▲ 박연폭포와 관음사가 있는 천마산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다._##]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송악산 아래 펼쳐졌던 고려조 500년의 치열한 권력투쟁과 조선조의 풍류를 탐방해 보았습니다. 왕건의 고려 개국과 ‘코리아’의 서양 전파, 칼을 휘두르던 무신들과 왕실을 주무르던 승려들, 원 제국의 궁궐에 바쳐진 아름다운 고려 여인들과 몽골에서 시집온 왕실 여인들, 공민왕 최후의 나날들, 선죽교를 사이에 두고 긴장관계를 유지하던 정몽주와 이성계 이방원 부자, 박연폭포를 배경으로 머리채를 날리며 가무를 뽐내던 황진이의 이미지 등등.

그러나 사실 개성에서 볼 수 있는 고려 500년 도읍지의 모습은 몇 곳에 불과합니다. 그보다는 60년 동안 사회주의가 건설해놓은 인구 22만의 휴전 도시의 이미지가 관광객의 시야를 점령합니다.

남한 도시를 보다가 개성거리를 보면 ‘단순, 경직, 정체, 가난’ 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궁핍한 제3세계의 무절제나 꾀죄죄함과는 달리 통제된 질서가 던지는 한적함이 느껴집니다.


버스 차창을 통해 개성 시가지를 보면 자전거를 탄 시민들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맨 어린 학생들을 간간이 보게 됩니다. 얼른 스쳐가는 그들의 표정에서 그저 일상을 사는 담담함을 잠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북한 땅 개성에는 지금 두 개의 도시, 사회주의가 건설한 기존 개성시와 자본주의가 만든 개성공단이 인접하여 나란히 서 있습니다. 곰곰이 바라보면 참 특이한 변화입니다.

개성시민의 가족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개성공단에 출퇴근하면서 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 도시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리적 교류가 오고갈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관계에서만 아니라 개성 사람 사이에서도 경제적 대화의 물꼬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성의 명승지 박연폭포를 한 자락씩 안고 있는 천마산과 성거산은 험준한 산세가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을 연상시킵니다. 남한의 여느 산에서처럼 신록의 향연은 이곳에서도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박연폭포 입구에서 폭포를 지나 관음사까지 이르는 거의 십리 길을 걸으면, 설악산이나 지리산에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천마산 기슭에 조림한 검푸른 송림 위로 하얗게 돋아나는 소나무 새순이 녹용과 같이 탐스럽고, 계곡마다 연두색 참나무 숲이 싱그러웠습니다.
[##_1L|1137448252.jpg|width=”300″ height=”225″ alt=”?”|▲ 이름을 남기고 죽었지만, 누가 그들을 기억할까. 박연폭포 일대의 암벽은 이름을 남기고 싶어 했던 옛 지식인들의 욕구를 가득 담고 있다. _##]그러나 개성지역 어디든 남한처럼 이렇게 숲이 무성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군사분계선을 넘어설 때 한 눈에 들어오는 인상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의 모습입니다. 개성에서 평양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변에서 이방원의 ‘하여가’로 유명한 만수산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그 산에도 숲이 없습니다. 산비탈을 따라 여기 저기 이삭이 팬 밀밭을 보면 차에서 내려 한번 걸어보고 싶을 정도로 정겹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비료기운을 못 받은 듯 밀대가 자라지를 못했습니다.

작년 봄에 나무를 심으러 금강산에 간 적이 있는데, 동해안 쪽 군사분계선을 넘었을 때 그곳 산야의 모습도 이번 개성관광길에서 느꼈던 것과 똑 같습니다. 금강산 경내에는 박연폭포 일대와 같이 숲이 잘 보전되어 있었지만 주변의 야산은 황량한 민둥산들이었습니다.

중국 단동의 압록강 하구 호산장성에서 바라보았을 때나, 연변의 두만강 중류에서 바라보았을 때나 북한의 산은 나무가 없었고 다락 밭이 산꼭대기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평양이나 다른 북한지역을 깊숙이 구경한 사람들이 나무가 없는 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북한의 산림이 극도로 황폐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0년의 격차입니다. 남북한의 산업과 빈부의 격차 뿐 아니라 숲의 격차도 그렇게 됩니다. 지금 50대 이상의 사람들이 오늘날 북한을 보면 그 헐벗은 산 모습이 40년 전의 경부선과 호남선을 탔을 때 보았던 남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_1L|1006475868.jpg|width=”300″ height=”225″ alt=”?”|▲ 미남형의 관음사 주지는 남한 관광객들에게 좋은 사진모델이다._##]숲은 어떤 면에서 지구촌의 빈부 격차를 가르는 경계선입니다. 숲이 많은 나라가 반드시 잘산다고 말할 수 없지만, 같은 기후와 풍토라면 숲이 무성한 나라가 잘 삽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그게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완전히 주마간산처럼 한나절 동안 개성과 그 주위를 돌아보면서도 두 가지 대조적인 이미지가 뇌리에 박혔습니다. 첫째는 북한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개성과 남한기업이 들어가 세운 개성공단의 두 얼굴이고, 둘째는 숲이 잘 보전된 박연폭포 일대의 산림과 황폐화한 개성일대의 민둥산이 대조를 이루는 자연의 두 얼굴입니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힘을 빌렸지만 박연폭포의 숲은 북한 스스로 가꾸고 보전해 놓았습니다. 그 두 얼굴에서 가능성의 싹을 발견하게 됩니다.

40년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한이 세계 최대 조선국이 되고 5대 자동차 생산국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메모리칩 생산의 선두주자가 된다는 것은 국가발전 개념에도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분재소재로나 알맞을 것 같던 소나무가 꼬깃꼬깃 서 있던 불모의 산지가 이렇게 무성한 숲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본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산림녹화에 리더십을 발휘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아마 지금의 숲을 상상하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런 경험을 생각한다면 북한 땅을 울창한 숲으로 바꿔놓는 일은 30년이면 가능할 것입니다. 북한의 숲을 가꾸는 일은 바로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고 관광안내원이 자랑하는 개성 물을 삼다수보다 더 깨끗하게 만들어 내는 길이기도 합니다. 농업을 위해서도 수자원 확보를 위해서도 그리고 재난방지를 위해서도 북한 숲 가꾸기가 절실해 보입니다.

북한은 식량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북한이 필요한 것은 올해 당장 먹고 살 식량이고, 식량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료일 겁니다. 그러나 조금만 앞을 내다보면 북한이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한이 경험했던 것처럼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 못지않게 숲을 조성하여 땅을 가꾸는 일이 중요합니다. 개성공단만 아니라 북한 숲 조성도 좋은 남북협력 사업이 될 것 같습니다.

개성에서 돌아오는 군사분계선에서 북한병사가 내 디지털 카메라를 점검했습니다. 오래전 제주도 해변경치를 찍은 사진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뒀는데, 북한 병사가 하나하나 클릭하며 검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진 어디서 찍은 것입니까?”
“아~ 그건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거기가 살기 좋다지요?”

북한 사람이 말하는 ‘살기 좋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글은 전직 언론인들의 칼럼 사이트 <자유칼럼그룹>에도 함께 게재했습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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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김수종]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공존하는 개성의 두 얼굴”에 대한 5개의 응답

  1. 명화 아바타
    명화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_^

  2. 김지선 아바타
    김지선

    오타가 있네용… 광관객.. ㅎ 북한의 모습 생소하고도 재밌네요 잘읽었습니다^^

  3. Joseph Lee 아바타
    Joseph Lee

    아싸 대략 순위권~!

  4. 김연희 아바타
    김연희

    앗…아까비…

  5. 문승희 아바타
    문승희

    까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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