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곧 발전의 동력이다

<박원순의 희망탐사 11>

동아시아 최대 쇠제비갈매기 번식지
한국 최대의 노랑발 도요, 세가락 도요 중간 도래지
한국 최대의 민물 가마우지 월동지
한국 최대의 고니류 월동지
한국 최대의 솔개, 참수리 등 맹금류 도래지
한국 최대의 갈매기류 도래지
한국 최대의 잠수성 오리류 도래지
한국 최대의 물닭 월동지
한국 최대의 알락 해오라기 월동지
한국 최대의 칡부엉이 월동지

낙동강 하구 을숙도의 이력은 화려하다. 을숙도를 설명하려면 ‘최대’라는 말이 연거푸 말하기도 힘들 만큼 많이 등장한다.

한두 개만 언급해도 금세 사람들은 알게 된다. 낙동강 하구와 을숙도가 많은 조류의 서식지, 월동지, 도래지로서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최대라는 것을 말이다. 교사로서 환경을 공부하다 낙동강 하구와 을숙도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이곳을 지켜내는 데 모든 힘을 바치고 있는 박중록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장을 만났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몽땅 이곳에 시간과 열정을 다 바치는 사람이다. 때로는 안타까움, 때로는 분노와 아쉬움이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에 일렁거렸다. 개발의 큰 흐름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가는 을숙도와 그 자연자원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_1L|1087039404.jpg|width=”342″ height=”257″ alt=”?”|▲”습지와 새들”을 꾸려가고 있는 회원들 사진. ⓒ희망제작소 _##]아래의 글은 박중록 운영위원장과 김경철 사무국장과의 인터뷰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간단한 설명만을 덧붙인다. 이미 그들의 말이 덧붙이거나 뺄 것이 없을 만큼 빛을 발하고 있으므로.

교사 박중록, ‘습지와 새들의 친구’를 만들다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 활동을 하면서 낙동강 하구와 습지를 알게 됐습니다.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의 습지투어를 했는데 대자연의 광활하고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그 모습에 반해 곧 강화도 한 작은 초등학교에서 펼쳐진 갯벌지도자양성학교에 참여했죠. 교사인 제가 완전히 ‘농땡이 학생’이 되어 학교 근처 돈대에 나가 하루 종일 강화도 남쪽 갯벌의 경관만을 쳐다봤어요. 별다른 교육프로그램이 필요 없더군요. 말이 필요 없었어요. 그냥 그 경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얼마나 평화로운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를 말해줬어요.

그러면서 내가 살고 있는 부산을 생각했죠. 낙동강 하구 갯벌과 거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은 잠시도 평화로울 때가 없잖아요. 고동을 울리며 큼지막한 배가 지나다니고 말뚝들이 곳곳에 박히고. 평화로운 강화도의 갯벌을 보고 있자니 낙동강 하구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마음이 먹먹해집디다.
[##_1R|1124506277.jpg|width=”259″ height=”345″ alt=”?”|▲’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중록 교사. ⓒ희망제작소_##]그래서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이 중심이 되어 ‘습지와 새들의 친구’를 만들었어요. ‘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창립선언문과 같이 습지를 매립해 논을 만들고 공장을 짓는 것이 발전이라는 우리의 그릇된 생각을 깨고 대자연의 보금자리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말입니다.

낙동강 하구의 핵심, 을숙도의 한가운데 다리를 놓는 야만

갯벌 일대에 제방공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에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과 함께 낙동강하구언을 알리는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낙동강생태기행을 했지요. 그러면서 제방공사만이 아니라 개발계획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대로 가면 낙동강 하구가 온전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그 개발계획의 중심이 명지 주거단지 고층화 사업과 명지대교 건설입니다.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진 건 바로 명지대교 건설의 문제였죠. 다리가 세워지는 을숙도는 낙동강 하구의 상징이고 심장부입니다.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감탄해 마지않는 자연의 보고죠. 그런데 그곳의 알맹이에 다리를 짓겠다는 겁니다. 콘크리트 다리가 가로지르는 을숙도를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명지대교 건설 때문에 고 안상영 부산시장이 구속되기도 했을 만큼 그 의도가 명백히 깨끗하다고만 볼 수 없고, 명지대교와 기존의 도로를 비교했을 때 딱히 우월하지 않다는 것도 재판과정에서 드러났어요.

1993년에 이미 명지대교 건설계획이 세워졌다. 2001년부터 그 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반대운동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2005년 6월 ‘환경의 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환경청이 건설계획을 승인했다.

투쟁 끝에 2005년 ‘습지와 새들의 친구’를 비롯한 여러 환경단체가 소송을 제기했고 지리한 법정싸움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2006년 10월 27일 대법원에서 패했다.

명지대교 재판을 통해 본 한국사회 절망의 모습

다리가 한국 최고의 습지를 관통하며 파괴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 효과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되지 않았어요. 재판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수차례 이야기됐고 재판부도 인정했는데 결국은 우리가 졌어요. 내막을 조금만 알고 보면 이 나라에 희망이 있는지, 법은 있는지, 양심이 살아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다리가 세워지면 생태가 무너진다는 상식이 통하지가 않아요.

재판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많은 것들이 약해지는 것들을 차례로 볼 수 있었죠. 을숙도는 다섯 개의 법으로 파괴나 개발을 금지하고 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져요. 문화재보호법, 습지보호법, 연안오염특별관리구역법, 자연생태보호법 등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법도 개발의 압력과 이해 앞에는 힘을 잃더군요. 개발로 기존의 법이 무력화되고 새로운 법을 만들어 면죄부를 제공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어요
[##_1C|1205972778.jpg|width=”560″ height=”302″ alt=”?”|▲명지대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을숙도. ⓒ희망제작소 _##]전문가들은 또 어떻고요. 전문가들이 결국 눈앞의 이익을 좇았어요. 조류와 관련한 가장 많은 연구가 이 낙동강 하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는데도 어느 전문가도 용기있게 자문을 해 주는 경우도 없더군요. 변호사 한 사람 구할 수 없어 우리가 직접 변론에 나서야 했습니다.

심지어 시민단체도 전문가 그룹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다른 모든 지역이 안전할 수 없음에도 어느 환경단체도 늘 주변부에 머무르면서 힘을 합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들의 한계도 확연히 느낄 수 있던 계기였죠. 부산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가 부산시와 우회하는 안을 합의한 것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는 박중록 운영위원장과 김경철 사무국장. 나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그들이 있으므로. 그게 그와 내가 이 땅을 살아나가는 이유 아니겠는가.

절박한 현실, 그래서 다시 시작한다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는데 결과는 다리 건설입니다. 이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하지만 비전을 생각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절박합니다.

과연 낙동강 하구언 보존이 가능할지, 지역주민들의 인식이 개선될지 의심이 들었고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자연자원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내년 10월에 경남에서 열리는 람사총회(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를 잘 활용할 계획입니다. 재작년에 우간다에서 열린 람사총회를 보니 자기 나라의 보존계획을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제시해야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어떤 목표도, 계획도 제대로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의 환경단체의 경우 한국 정부가 새만금 갯벌을 막고 있는 와중에 한국의 람사총회 개최를 지지해야 하는가를 물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서 정부의 자연 보호의지와 계획을 물으려 합니다.

제가 왜 여기에 미쳐 사는가? 그건 아마 먼저 알게 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일 겁니다. 그것을 먼저 알게 된 사람으로서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먼저 알았으니 그만큼 더 책임도 져야겠다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미 10년 전부터 매주 주말마다 빠짐없이 낙동강에 와서 새를 조사하고 관찰했습니다. 수백 번 이곳을 찾아왔죠.

부산발전의 동력은 낙동강 하구언 보존에 있다

부산시가 발전 동력이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여기 하구언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감탄해 마지않아요. 이것을 발전의 계기로 왜 삼을 생각을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독일의 갯벌국립공원, 호주의 대보초 등은 전 세계의 수백만 관광객들이 몰려옵니다. 독일갯벌 한 곳만 연간 1000만 명이 넘게 찾아와요. 그것을 이용하여 관광수입을 올리고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낙동강 하구만큼 대자연의 습지모습을 만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 없어요. 도시의 인프라를 다 갖추고 있기도 하고. 생태관광, 그 중에서도 탐조관광은 여력 있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존하면서 개발하면 지금 하고 있는 개발계획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도 가능성 있다는 거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견인하지 못하고 시민들에게 알려내지 못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한계이기도 하고요.

‘신들의 정원’ 을숙도를 철새공화국으로

을숙도 전체를 보존지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을숙도를 철새공화국으로 만드는 거죠. 을숙도에 일정정도 떨어진 강서구, 사하구 등 시내지역과 연계해 종합적인 개발계획이나 생태관광계획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습니다.
[##_1L|1187058379.jpg|width=”295″ height=”393″ alt=”?”|▲ ‘신이 내린 축복의 땅’ 을숙도. ⓒ희망제작소_##]예전부터 을숙도는 ‘신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고들 했대요. 지율 스님은 ‘신들의 정원’이라고 부르더군요. 낙동강 하구는 몰라도 을숙도는 사람들이 다 기억해요. 그런데 이곳을 항만으로 가는 연결통로로 만드는 발전계획이 시행되고 있고 그것을 사법부도, 시민단체도, 언론도 제동을 걸지 못하는 사회가 희망이 있는 사회인가 고민도 됩니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는 생태기행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자연학교를 5년째 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중요성과 이러한 발전양상의 문제들을 계속 퍼뜨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죠. 지금은 암울하지만 이 씨앗들이 싹트면 전체 문화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겠죠?!

가능할 거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하는 그 또한 가능하리라 믿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을숙도를 방문한 날, 부산시는 이곳에 백조· 오리공원을 만든다는 발표를 했다.

부산시는 낙동강 하구 을숙도 상단부에 위치한 일응도에 ‘오대양 육대구 생태공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생태공원은 일응도에 오대양 육대주 모양을 한 20만평 규모의 저습지를 조성, 그 안에 백조, 오리, 기러기 등 오리류의 새들이 살게 하는 것이다.

을숙도를 가로지르는 교량을 놓고 이제 그 일부에 공원을 조성한다니 앞으로 을숙도와 거기를 오가는 철새들의 운명이 어찌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의 질문에 가능하다고 대답하겠다. 지금은 암울하지만 그들이, 우리가 뿌리는 씨앗들이 싹트면 전체 문화는 바꿔지리라고 믿는다[##_1C|1274252079.jpg|width=”368″ height=”276″ alt=”?”|▲습지와 새들의 친구 사무실에서. 박중록 운영위원장과 김경철 사무국장(왼쪽에서 세번째, 네번째). ⓒ희망제작소 _##]면담일시 – 2007년 1월 9일 오후 2시

면담장소 – 습지와새들의친구 사무실과 낙동강 하구언

면담인사 – 박중록(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 교사), 김경철(습지와새들의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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