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한국 젊은이, 영국 시니어를 만나다 (10)

희망제작소와 연세대는 협력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학생 현장 탐방 프로젝트 uGET’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4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2010년 여름 한 달간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영국 시니어들의 사회공헌활동 현장을 조사해 그 방문기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영국에서 전해질 재기발랄한 젊은이들과 지혜로운 시니어들 간의 조우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영국 내 일정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방문과 인터뷰에도 요령이 붙습니다. 가령 인터뷰 시에 해당 기관의 웹사이트 내 정보를 언급하거나, 한국 실정을 곁들여 질문하면, 인터뷰이가 흥미를 보이며 더욱 성의 있는 대답을 주곤 하는 식입니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각 기관마다 풍기는 서로 다른 색깔과 인상을 체감하게 됩니다. 보통 한 기관 방문은 인터뷰를 포함해 세 시간을 넘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이지요. 한정된 시간 안에 기관을 파악하기 위해선,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 대화의 양상, 집기의 배치, 사무실의 분위기 등이 주는 인상 또한 큰 역할을 합니다. 소개팅에서 첫 인상이 중요하듯이 말이죠. 인상 이야기가 왜 나왔냐구요? 열 한 개의 방문 기관 중 제게 있어 으뜸 가는 ‘호감형 인상’이 바로 지금 소개할 타임뱅크(Timebank)이기 때문입니다.

템즈강을 마주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저희는 빽빽한 인터뷰 스케줄표를 받았습니다. 대표를 포함한 총 여섯 명의 매니저와 돌아가며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던 것이지요. 직군 별로 다양한 관점에서 타임뱅크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여섯 명 모두에게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곳이라면 뭘 해도 되겠다는 ‘호감형 인상’을 이때 받았습니다. 이후 단지 인상만이 좋은 게 아님을 느꼈지만요.

”사용자타임뱅크는 기본적으로 자원활동을 돕는 비영리기관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영국 내 모든 인구를 대상으로 자원활동 저변을 늘리는 것’입니다. 타임뱅크의 역할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개인과 단체의 자원활동을 지원하는 것이고, 하나는 직접 자원활동 프로그램을 디자인하는 일입니다. 여기까지는 수많은 다른 조직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그러나 타임뱅크의 차별점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서 나타납니다.

자원활동의 저변을 넓히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타임뱅크는 그 중 젊은 층부터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2000년 설립 이후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젊은 층의 자원활동 참여율을 늘리는 것이 자원활동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로 이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타임뱅크는 주 목표 대상인 20~40대 청ㆍ장년층을 움직이기 위해 참신성과 재미를 강조했습니다. 우선 BBC와 연계하여 TV에서 많은 유명인사들이 자원활동을 하고 사회에 기부를 하는 모습이 노출되도록 했습니다. 자원활동과 기금을 조성하는 일이 한층 가볍고 즐거운 일로 인식되도록 말이죠. 또한 통신회사와 연계하여 자원활동과 엔터테인먼트를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4시간 동안 지역사회에서 일을 하면 음악 콘서트 티켓 2장을 제공해 주는 식이었답니다. 이런 참신한 이벤트들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사용자그러나 타임뱅크는 젊은 층만을 위한 기관이 아닙니다. 타임뱅크에서는 자원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 행동에까지 이르는 사람은 많지 않음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약간의 시간과 의지만 있다면 자원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원활동을 용이하고 가볍게 만드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이는 타임뱅크의 친절한 웹사이트(http://www.timebank.org.uk) 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클릭 몇 번 만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자원활동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할 만한 기관은 어디인지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자원활동이 가져올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쉽고 명확하게 설명한 페이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예비 자원활동가를 위해서 온ㆍ오프라인 헬프데스크도 운영합니다.

”사용자타임뱅크는 자원활동가를 지원할 뿐 아니라,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은 크게 멘토링과 청소년 주도 자원활동 프로그램으로 나뉩니다. 프로그램 수립 및 운영에서도 치열한 고민 끝에 나왔을 참신성이 돋보입니다. 가령 ‘Back To Life’라는 프로그램은 참전 군인들이 흔히 겪는 정신적 문제를 자원활동가와의 1대1 멘토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자원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간과되기 쉬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수립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청소년 주도 자원활동은 대학이나 초ㆍ중등 학교와 연계해 학생들이 스스로 자원활동 프로그램을 짜고, 그 과정에서 소셜미디어의 활용 등 다양한 실험을 하도록 독려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다음 세대의 자원활동에 대한 동기부여를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자원활동 방식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일들에 있어서 타임뱅크는 소통을 중요시 합니다. 이례적으로 이 곳 직원 중에는 홍보와 커뮤니케이션 담당 직원들이  많습니다. 또한 타임뱅크를 거쳐간 이용자들이 피드백을 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으며, 이 결과를 매우 중시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Samantha에 의하면 자원활동의 저변 확대와 인식 변화는 소통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면 타임뱅크의 재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과거에는 정부에서 75% 정도 지원을 받았지만, 정부 의존이 가져오는 폐해를 인식한 후 현재는 매우 다양한 자금 출처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 지역사회, 방송국, 대기업 등에서 프로젝트 별로 후원을 받거나, 기업과의 공동 자원활동 프로젝트 대행을 통해 보수를 받기도 합니다. 대표 Helen에 의하면,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자금 경로는 보다 안전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창의적인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내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답니다.


타임뱅크에서 받은 가장 큰 인상은, 이들이 ‘작고 스마트한’ 기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타임뱅크는 큰 조직이 아니며,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조직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에서 자신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고민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이 그와 부합하는지 점검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대표 Helen은 10주년을 맞아 타임뱅크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데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영국에서도 적지 않은 기관들이 어떤 면에서는 관성과 타성에 의해 운영된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타임뱅크의 이런 면모는 특히 빛났습니다. 명확한 비전이 곧 일하는 사람들의 동기부여로 이어지고, 활력과 열정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의 일도 좋은 실행 방법과 만났을 때에만 진정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타임뱅크에서 추구하는 재미와 참신성, 그리고 혁신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NPO들도 참조해야할, 이 시대의 방법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 타임뱅크 방문기였습니다!

글_박상욱 (uGET 실버라이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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