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은 과연 무료인가

한국 젊은이, 영국 시니어를 만나다 (6)

희망제작소와 연세대는 협력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학생 현장 탐방 프로젝트 uGET’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4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2010년 여름 한 달간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영국 시니어들의 사회공헌활동 현장을 조사해 그 방문기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영국에서 전해질 재기발랄한 젊은이들과 지혜로운 시니어들 간의 조우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오늘은 영국에서 저희가 네 번째로 만나게 될 리치(REACH)라는 기관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시간에 약속이 잡혀 있어 부지런히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려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날씨는 아주 ‘영국의 날씨’ 입니다. 그래도 이제까지는 구름만 잔뜩 껴서 여름이라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 우중중한 날씨였는데, 오늘은 정말로 비가 옵니다.  오늘 인터뷰가 잘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에 하늘을 바라보며 집을 나섭니다.

[##_2C|1034566157.jpg|width=”340″ height=”25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흐린 때가 많은 런던하늘|1353795222.jpg|width=”340″ height=”25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종종걸음으로 가는 우리들_##] 
오늘 우리가 가야할 리치라는 곳은 이전에 방문했던 사회적기업 프라임타이머스와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기본적으로 리치는 전문직 퇴직자 혹은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NPO를 연결시켜 주는 단체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고, 전문인력을 필요로 하는 비영리단체에게는 한 분야에서 적어도 3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전문 능력이 있는 봉사자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영국 사회에서 분명 뜻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단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치는 튜브(Tube)라고 불리는 런던의 꼬불꼬불한 지하철 중 빅토리아(Victoria) 라인을 타고 가서 복스홀(Vauxhall) 역에 내리면 금방 다다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침의 날씨가 안 좋은 징조였던지 런던에서 종종 발생한다는 지하철 문제로 인해 저희가 타고 가던 지하철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거북이처럼 기어갑니다. 저희 숙소가 런던 중심부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라 아침에 비교적 서둘러나왔음에도 약속 시간에 늦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희 넷은 좁은 지하철 의자에 앉아 발만 동동 구르며 ‘서울이었으면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외국을 나가보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국이 생각보다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리치가 위치한 건물의 바로 옆에는 경비가 아주 삼엄해 보이는 건물이 있었는데, 인터뷰 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007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제임스 본드가 속한 영국 비밀정보국인 MI6 건물이라고 합니다. 리치와 같은 단체가 MI6와 같이 무시무시한 곳 옆에 있다는 점이 참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_1C|1359878651.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영국 비밀정보국 MI6_##]저희가 그렇게 겨우 도착한 리치는 생각했던 것 보다 작은 사무실에서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방문 기관과의 연락을 담당했던 저는 이메일 또는 전화로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의 이름이나 말투, 문체를 통해 상대방이 어떤 모습일지 늘 상상하곤 했었습니다.

[##_1C|1199899147.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리치에서 저와 연락을 나누던 사람의 이름은 이안(Ian)이었는데, 이안하면 떠올랐던 이미지는 스코틀랜드 출생의 ‘이완 맥그리거’ 였기에 뭔가 우리를 맞이할 사람은 강한 스코틀랜드 발음의 멋진 중년 남성이 아닐까 하고 혼자 상상했었습니다. (사실 이완 맥그리거의 성명 철자는 Ian이 아니라 Ewan 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저희를 맞이한 이안은 저희와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 않는 30대 초반의 잉글랜드 태생 남성이어서 약간은 당황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저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 사람은 이안(Recruitment Administrator)과 봉사자로 활동하고 계신 토니(Tony) 할아버지입니다.

토니 할아버지는 봉사자로 활동하기 이전에는 세 군대의 대학에서 석사와 MBA 과정에서 강연하는 교수로 재직하셨다고 합니다. 오늘의 인터뷰는 사실상 대부분의 답변을 토니씨께서 다 해주셨는데 저희가 준비해온 질문에 아주 열정적으로 답해주셨습니다.

[##_1C|1236769451.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안(좌)과 토니_##]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리치가 하고 있는 일은 기본적으로 봉사를 하고 싶어하는 전문직 종사자 혹은 퇴직자와 이러한 인력을 필요로 하는 단체들을 서로 연결해 주는 것으로 매우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치는 무료로 전문 능력을 가진 봉사자들을 모집해서 단체들과 연결해 줍니다. 면접과 봉사자들이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검증하고, 그들이 원하는 활동과 적절한 단체를 연결해 주면서 단체와 봉사자 모두의 만족감을 높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게 고급 인력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또 구인광고 등을 통해서 지원하는 인력은 그 능력을 검증하기 어려워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리치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검증된 자원봉사 인력을 비영리단체와 연결해 줌으로써 이러한 인력 수급의 애로사항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 도중에도 이완과 토니의 답변에서 리치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왔습니다.

하지만 리치 역시 봉사자들을 단체와 연결 시켜주는 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봉사자들이 원하는 활동과 단체를 정확히 알고, 또한 비영리단체들이 원하는 봉사자들을 정확히 파악해서 적절한 단체와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과제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재정적인 문제였습니다. 재정적인 문제는 사실 다른 단체에서도 항상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는데, 영국에서도 최근 바뀐 정권과 경제적 상황으로 시민사회영역에 대한 지원이 많이 줄어든 것이 현실인 것 같았습니다. 토니는 이러한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봉사활동은 무료이지만 그 활동을 지원하고, 지속하게 하는 운영에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스템의 힘

흥미로운 점은 봉사자들과 단체들이 제출한 봉사자들의 이력, 단체와 봉사자들의 선호도 등의 자료들이 모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에 저장 되어서 어디에 있던 필요할 때면 열람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적은 수의 직원으로 움직이는 리치가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이안은 곧 휴가를 갈 예정이지만 급하게 들어오는 봉사자와 관련된 업무를 자신의 노트북으로 휴가지에서 처리해 줄 수도 있고, 또한 자신이 아니라 사무실의 어떤 사람이라도 온라인 시스템을 열람해서 대신 처리해 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과 같이 주기적으로 인력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단체와 봉사활동을 위해 단체를 찾는 전문 인력을 잘 연결시켜 서로의 만족감을 높여주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재정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아직도 넘어야 할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다고 하네요.

우리는 토니 할아버지에게 어떤 이유에서 봉사자로 참여할 생각을 했는지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다른 기관 봉사자들의 이야기와 비슷했습니다.

 “평생 동안 어떤 일을 하다가 은퇴를 하게 되면, 은퇴하는 다음 날부터 아무런 할 일도 없어지지요. 사람들마다 은퇴 후 삶에 대한 생각이 다를텐데, 어떤 사람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취미 생활을 하고 그러겠지요.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어요.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말이에요.”
   [##_1C|1065061714.jpg|width=”400″ height=”3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분명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영국 은퇴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러한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면 좀 더 나은 사회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국에도 능력 있는 은퇴자들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염원해보았습니다.

글 _ 하진규 (uGET 실버라이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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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젊은이, 영국 시니어를 만나다
2.  ‘늙지 않는 학생’들의 대학 
3. 영국 제 3섹터로 가는 다리, 프라임타이머스 
4. 시민사회로 뛰어든 PR전문가
5. 영국 싱크탱크 네스타에 반하다
6. 자원활동은 과연 무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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