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도시락 가게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27-1)
일본 NPO 워커즈 콜렉티브 협의회의 새로운 도전
–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도시락 가게

요코하마 역에서 로컬선인 소테츠선을 타고 30분쯤 지나 미츠쿄 역에서 내려 생활클럽생협 ‘세야 생활관’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생활관 1층 한 쪽에 ‘커뮤니티 키친 포란’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어느 동네나 한두 곳쯤 있음직한 도시락과 반찬을 파는 가게다. 방문한 시간이 점심시간을 지난 4시쯤이라 가게도 한산했고 일하는 사람도 5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게 안을 들어가니 NPO 워커즈 콜렉티브 협회 부이사장 잇시키 세츠코(一色節子) 씨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가나가와 워커즈 콜렉티브 연합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의 표정과 말에서 지역 활동의 오랜 관록이 엿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1982년 ‘생활클럽생협’을 모태로 워커즈 콜렉티브 1호가 조직된 곳이 바로 이곳 요코하마 시다. 생협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지역의 주부들이 자발적으로 워커즈 콜렉티브를 결성하여 생협 위탁사업과 지역 복지 서비스를 담당해 왔다. 그동안 조직적 발전을 거듭해온 결과 현재 158개 조합 5천여 명의 조합원이 가나가와 워커즈 콜렉티브 연합회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가나가와 연합회와 같은 8개의 지역 연합회가 전국 워커즈 콜렉티브 연합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생협 조합원들의 지역활동에서 출발한 워커즈 콜렉티브 운동은, 1970년대 중반 노동조합 운동에서 출발한 워커즈 코프 운동과 함께 일본 노동자 협동조합 운동을 이끌어온 양대 지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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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뮤니티 키친 포란

그런데 ‘커뮤니티키친 포란’은 다른 워커즈 콜렉티브와 조금 다르다. 장애인을 비롯해 오랜 히키코모리(일반적으로 은든형 외톨이라고 하는) 생활로 취업을 하기 힘든 젊은이 4명이 5~60대 주부가 주역인 지역 워커즈 콜렉티브의 일반 조합원 7명의 지도를 받으며 함께 일하고 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질문에 대답을 한다.

지적 장애인으로 장애인 수첩을 갖고 있다는 Y(31세. 여)씨.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셔서 장애인을 위한 그룹홈에 살면서 이곳 포란까지 혼자 출퇴근하며 5년째 일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이 조리와 청소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주고, 비장애인의 속도에 맞출 것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어려움 없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복지 작업장에 다닐 때는 손에 들어 오는 수입이 거의 없었으나 포란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월급을 받는다. 자신이 번 돈으로 가끔 요코하마 시내에 사는 언니 집에 놀러가서 조카들에게 선물을 사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도 갈 수 있어 포란에서 일하는 것이 참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참 밝다.

즐겁게 이야기하는 Y씨를 옆에서 따뜻하게 지켜보는 이가 T씨(34세, 여)다. 고교 졸업 후 일반 회사에 사무직으로 취업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히키코모리 생활을 했다는 그녀는 이전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방식의 차이로 패닉 상태에 빠져 일을 계속 할 수 없었단다. 5년 전 포란이 만들어질 때 요코하마 시 청년 취업 지원 센터의 소개로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포란에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배려해 주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조리 실력도 많이 늘어 이곳에서 생산하는 고로케는 T씨가 모두 맡아서 만들고 있다. Y씨를 비롯해 또래의 젊은이들과 함께 교류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직장에 취업하는 것은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포란에서 좀 더 일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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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O 워커즈 콜렉티브 협회 부이사장 잇시키 세츠코(우)와 직원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이처럼 포란은 시니어 조합원들과 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일반 회사에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청년 조합원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다. 시니어 조합원들은 청소는 물론 조리 기술에서부터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 하는 기술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가르쳐 준다. 또한 그들이 일하는 속도를 고려해 일을 맡긴다. 그러면서도 비장애인들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워커즈 콜렉티브라는 협동 정신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즉 포란은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 지역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해온 워커즈 콜렉티브 운동의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건강한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나 동일한 조건으로 함께 일하는 협동 노동의 일터 만들기’를 위한 새로운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 사회의 고령화율은 2013년에 이미 25.2%를 넘어 인구 4명 중1명이 고령자다. 부부만 살거나 혼자 사는 고령자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며 이들을 돌봐야 하는 지역의 고령자 복지 서비스에 대한 니즈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또한 지적장애인, 히키코모리, 경쟁 사회의 부적응과 같은 이유로 취업에서 소외돼 경제적인 자립을 하지 못하고 최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젊은이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7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이들을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NEET)족과 6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히키코모리는 서둘러 해결해야 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고스란히 지역 사회가 해결해야만 하는 지역적 과제로 돌아온다. 주로 개호, 가사 도우미, 도시락 배달 등 지역 고령자들의 재택 생활과 데이케어 서비스를 진행했던 가나가와 워커즈 콜렉티브 연합회는 NPO법인 워커즈 콜렉티브 협회를 독립 단체로 설립해 장애인, 니트족 등 취업으로부터 소외된 청년들의 취업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그들에게 취업 교육을 제공하고 지역의 생협과, 워커즈 콜렉티브, NPO 등이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에 취업을 알선하여 지역의 복지 서비스에 대한 니즈를 충당하는 동시에 취약 계층 청년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사업이다.

2005년부터 시작해 2012년까지 총 266명의 청년들에게 취업 훈련(인턴)할 곳을 알선해 주었고, 그 중 55명(약20%)이 실습한 곳에 고용됐으며, 1년간의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 일반 기업에 취업한 청년들도 많다고 한다. 협회는 이 과정에서 워커즈 콜랙티브라는 협동의 노동 방식이 일반 취업에 적응하기 힘든 취업 취약 계층의 청년들이 일을 배우고 지속적인 노동 의욕을 갖는데 매우 유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가정과 학교와 지역에서 경쟁에 밀리며 자신감을 잃고 소외된 생활을 하던 젊은이들이 워커즈 콜렉티브 안에서 협동 정신으로 인격을 존중받으며 일을 하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삶과 일에 대한 의욕을 가질 수 있게 돼 직장 정착률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에 협회는 이들을 주체로 한 즉, 취업 문제를 안고 있는 청년들과 일반인들이 항상 함께 일할 수 있는 워커즈 콜렉티브를 확대시켜 나가기로 하고 그 모델 사업으로 ‘커뮤티니 키친 포란’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지역 워커즈 콜렉티브 조합원들의 협조를 얻어 시작한 포란은 현재 7명의 일반 조합원과 4명의 취약 계층 청년 조합원이 도시락과 반찬을 만들어 일반 판매와 함께 주문 판매를 하고 있다. 이들 스텝 외에도 시의 청년 취업 센터 등의 소개로 취업 실습생들을 맞이해 그들이 지역사회에 다시 참가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 다음 주에 사회적 협동조합 ‘핫피상’ 소개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