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목민관 – 명현관 전남 해남군수
2021년 전남은 22개 시군 중 16곳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며 심각한 지방소멸 위기에 맞닥뜨렸습니다. 해남군은 2008년 전국 최초로 출산장려팀을 신설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고, 2012년부터 7년 연속 출산율 전국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 8만 명선이던 인구가 10년 만에 7만 명 아래로 떨어진 데서 알 수 있듯 인구감소의 큰 흐름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해남군은 절치부심하며 인구감소, 지방소멸, 기후위기 시대를 헤쳐나갈 새로운 지방정부 모델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벚꽃이 가장 먼저 피는 한반도의 시작 해남에서는 어떤 희망을 만들고 있을까요? 임주환 (재)희망제작소 소장이 명현관 해남군수를 만났습니다.
남도 하면 해남이 딱 떠오를 만큼, 해남은 호남 문화의 중심지입니다. 땅끝이자 한반도의 시작인 해남에서 새로운 지역혁신의 움직임들이 부쩍 활발해진 느낌입니다. 특히 해남군은 올초 시무식과 함께 해남형 ESG 비전 선포식을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지자체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역인데, ESG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민선 지방자치 이후 3명의 현직 군수가 구속되는 등 과거 해남군의 군정은 신뢰를 받지 못했습니다. 민선 7기 취임하면서 최우선 과제로 공정하고, 공평하고, 투명하게 행정을 바꿔보자며 ‘청렴’을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4년 연속 2등급을 유지하고 있고, 다산목민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다음 단계를 고민하면서 경영행정이 떠올랐죠. 군민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행정서비스의 목표를 바꿨습니다. 예컨대, 온라인쇼핑몰 ‘해남미소’ 매출액이 2018년 23억 원이었는데, 다음 해 목표를 50억, 그다음 해 목표를 100억 원으로 세웠습니다. 행정과 경영의 만남은 곧바로 성과로 이어졌어요. 지난해 해남미소 매출액이 226억원이니, 4년만에 10배나 늘어난 거지요. 공무원 직영으로 운영비용을 줄였고, 그만큼 입점 수수료를 낮춰 농어가 이익을 키웠어요. 지금은 440여 농가의 1,400여 개 상품이 팔리고 있습니다.
많은 자치단체가 잡아놓은 예산을 실제 사용하지를 못합니다. 해남군의 경우, 2018년 본예산이 4897억 원이었는데, 2022년 7955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예산 규모뿐만 아니라 집행율도 65%수준에서 80%이상으로 높아졌습니다. 이게 다 군민들의 혜택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경영행정을 해오다 보니 가치를 더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al),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를 내세우는 ESG경영을 도입하게 된 것이지요. 2022년 군정비전도 해남형 ESG윤리경영으로 선포하고 군정 전 분야로 확장했습니다. 덕분에 올해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에서 행안부장관상을 수상했습니다.”
2050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해남군은 2050 탄소중립 실천활동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농어촌지역에서 쉽지 않은 과제였을 텐데, 어떻게 풀어내셨는지요?
“해남은 농수산업이 주력인 고장이죠. 강한 태풍, 폭우, 폭설 등 이상기후가 잦아지면서 농작물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실증센터를 유치하려고 했습니다. ‘왜 해남이어야 하는가’ 논리를 고민하다 보니 남도 1번지인 이곳이 기후변화의 관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죠. 그래서 중앙부처를 220회 이상 다니면서 설득했습니다. 처음 시도한 400억 규모 실증센터 사업 유치는 실패했지만, 오히려 4700억 원 규모인 농식품 기후변화대응센터 사업을 지난해 유치했습니다. 올해 예비타당성 평가도 바로 통과했습니다. 직원들이 경영행정에 훈련되었기에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제 직원들도 목표를 가지고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생겼고, 성과를 내면 인사에 반영하고 보상이 주어지는 제도도 정착되었습니다.
기후변화대응센터와 함께 탄소중립 홍보관 및 체험시설 등 각종 교육시설이 집약된 에듀센터도 기업도시인 솔라시도에 건립합니다. 솔라시도에는 98MW 규모의 태양광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RE100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생활 속 실천과제를 행정에서 앞장서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청사 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군민들과는 내 집 앞, 내 농지, 내 바다는 내가 먼저 깨끗하게 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예컨대, 김 양식장 스티로폼 부표가 골칫거리인데, 해남군에서 이를 친환경 부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솔라시도가 기업도시에서 출발한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솔라시도 사업이 어디까지 왔고, 앞으로 어떻게 추진되는지요?
“영암‧해남 기업도시로 출발한 솔라시도는 당초 6개 지구로 나눠 추진했지만, 지금은 구성·삼호·삼포지구 3곳만 진행 중입니다. 해남 구성지구는 당초 3만6천명 인구가 유입되는 자립도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계획이 많이 변경되었죠. 기업에 그냥 맡겨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미래산업 중심으로 국가사업을 유치하며 변화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끌어온 사업이 탄소중립에듀센터와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조성사업이고, 이번에 유치한 290억 원 규모 배추원료공급단지 사업도 이곳에 조성할 계획입니다. 사업이 중단된 부동지구는 사실 농사짓기에 좋지 않은 땅입니다. 대신, 신안 해상풍력단지 사업이 본격화되면 배후 산단으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가 RE100산업단지로 조성되면 글로벌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려고 관련기업들과 업무협약을 했습니다. 솔라시도는 주거도 중요하지만 산업과 관광을 함께 개발하여야 합니다.”
주민이 제안한 ‘작은학교 살리기’로 인구위기 돌파
농어촌지역은 저출산 고령화로 지방소멸위기가 대두되고 있는데요. 해남군의 다양한 시도들이 눈에 띕니다.
“해남군 인구가 많을 때는 23만 명이 넘었는데, 매년 1천여 명씩 줄어서 지금은 6만 5천 명 수준입니다. 해남군은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전국 최초로 농민수당도 도입한 지역입니다. 작은 학교 살리기도 같은 취지로 시작했는데, 주민자치회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문제를 고민하면서 제안한 사업입니다. 지난해 북일면 북일초등학교의 경우, 21가구, 94명의 주민들이 해남으로 이주를 하였고, 올해는 작은 학교 살리기를 현산면과 계곡면까지 확대합니다. 이주민들이 빈집을 수리해서 살 수 있도록 가구당 2천만원씩 지원하고, 일자리를 매칭해 줍니다.”
남도의 여유로움, 다양한 문화유산도 지방소멸 대안을 만드는데 좋은 자산이 될 듯합니다.
“해남은 면적으로는 서울의 1.7배, 기초 지방정부 가운데는 가장 넓은 농지면적에서 가장 많은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청정 1번지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흥사, 미황사, 고산 윤선도 유적지, 우수영 명량해전, 땅끝이자 한반도가 시작되는 곳 등 역사와 문화 자원이 풍부합니다. 한때 수학여행지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지속적으로 자원을 발굴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다시 발굴하고 문화와 접목해서 관광도시로 거듭나려는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고대국가 마한의 시작이었던 백포만은 중국과 일본과 무역을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학예사 등 전문가를 영입하고 관련 용역도 추진하면서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지방소멸은 결국 지역 내 청년인구의 감소에 기인합니다. 지역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외부로 나가지 않고 지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청년들이 지역에 남아야 지역경제도 선순환할 수 있을 텐데요. 특히 우리 군은 농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2세 경영이나 2세 창업은 청년의 능력과 의지만 있다면 적극 지원하려고 합니다. 최근에는 청년팀을 신설하면서 청년정책을 원점에서 점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해남시네마를 만들면서 2~3층을 청소년 대상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더니 개관 한 달 평균 2,300여 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청년두드림센터도 문을 열었는데, 청년 맞춤형 강좌와 일자리 상담은 물론 소통과 문화교류의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남이 면지역에서는 빈집이 많은데 읍내에서는 원룸도 구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청년 공공임대주택 60호도 건립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선8기 군정 운영에서 특히 강조점을 두는 부분을 두 가지만 꼽아주십시오.
“농어촌지역이 인구를 늘리려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솔라시도가 잘 진행되면 2만에서 2만5천명 정도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그 기반을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자신감 있게 도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도전하다 보면, 지역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지 해남에는 지역축제가 없었는데, 실패한 경험 때문에 안 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고 추진에 나섰죠. 먹거리 축제로 방향을 잡았고, 그해 관광브랜드개발 용역에서도 음식, 쌀, 끝을 의미하는 ‘미’를 넣어 ‘미남’축제를 제안했어요. 그랬더니 미남 뽑는 거냐, 예산낭비 아니냐, 지역언론에서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어땠습니까. 올해 두 번째 축제에서는 16만5천명이 다녀갔고, 해남의 음식과 농산물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 인터뷰 및 정리: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 · 자치분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