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사는 성북동 만들기


복숭아꽃 피는 마을

성북동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던 곳으로, 북적동(北笛洞)이라고 불렸었다. 북둔이라는 조선시대 군영이 설치되어 있었고, 복숭아꽃으로 유명한 동네여서 북둔도화(北屯桃花)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도성이 가까운 곳으로 산세가 깊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여름철 피서지이자, 명승지로 소문이 났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의 대표적인 문인촌으로 이태준, 김환기, 김용준을 비롯한 많은 문인과 예술인들이 거주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였고, 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 민족운동가들이 교류하던 곳이었다. 한국전쟁 후에는 문인촌으로서의 면모는 사라지고, 판자집, 토막집과 같은 무허가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고급주택과 외교사택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성북동이 변했다

이와 같이 성북동은 역사의 층위가 다양한 곳으로 조선시대 문화재부터, 근대 한옥건물, 산동네 판자집, 재벌들의 고급저택, 그리고 중간에 다세대 주택과 연립들이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건물과 기반시설이 노후되고, 주민들의 불편함이 점점 심해지자 개발에 대한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노후된 건물이 집중된 지역들을 중심으로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추진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가 갈등하며 대치하고 있다.

한편, 성북동은 급격히 상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한성대입구역 주변과 성북로 가로변 일대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 들어서고, 고층 빌딩이 한옥을 허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인사동과 삼청동에서 그랬던 것처럼 역사적 전통을 간직한 지역이 상업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성북구청에서는 이러한 지역의 개발과 상업화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성북동 역사문화지구 지구단위계획을 마련하여 지역을 개발과 상업화의 문제로부터 적절히 관리하고 통합된 계획과 지침을 마련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희망제작소는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는 용역에서 인문학 부분 연구에 참여하여 성북동의 지역자원과 스토리를 발굴하고, 인터뷰, 마을학교, 커뮤니티매핑, 설문조사 등의 방법을 통해 주민 의견 수렴과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하였다.

성북동 마을학교

희망제작소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주민들로 하여금 지역 문제와 공동체 활동에 관심 갖도록 하기 위해 2013년 2월 한 달 간 총5회 걸쳐 ‘성북동 마을학교’라는 마을공동체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성북동 마을학교에는 마을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주민, 단체활동가, 예술가 등 40여 명이 참여하여 본인들이 마을에서 하고 싶은 일과 마을공동체 공통의 문제에 대해 토의하고 조별로 마을사업에 대한 아이디어와 계획들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교육 후 ‘지역 내부에서 필요한 일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뜻이 맞는 대여섯 명이 모여 지속적으로 후속 모임을 갖고 ‘성북동천(城北洞天)’이라는 단체를 구성하였다.

‘성북동천’과 ‘좋아서사는마을만들기’

‘성북동천’은 성북동을 사랑하는 주민들이 중심이 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활동가들이 결합된 협의체 성격의 주민 모임으로서 성북동을 단지 잠만 자는 동네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즐겁고 재미난 마을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모임을 결성하였다. 올해 하반기에 성북동천에서 제안하고 추진한 ‘좋아서사는마을만들기’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성북동 옛날사진전’, ‘성북동 마을소식지’,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학교’가 있다.

먼저 ‘성북동 옛날사진전’은 성북동의 옛 풍경과 과거 주민들의 생활을 담은 오래된 사진들을 모아 이야기와 함께 전시한 것으로서 주민들과 성북동천 회원들이 장롱 속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사진들을 모으고, 지역에 거주하는 청년 사진작가가 참여하였으며, 스페이스 오뉴월에서 사진인화와 전시를 담당하였다. 주민들이 제공한 사진들에는 코흘리개 어린아이 시절 동네에서 뛰노는 사진, 성북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과거에 길상사에 있었던 기다란 그네를 타는 사진 등 성북동 주민이라면 사진을 보기만 해도 옛 추억과 회상에 잠기게 되는 사진들이 있었다. 이와 같이 ‘성북동 옛날사진전’ 전시회를 통해 성북동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기록과 흔적들이 모을 수 있었고, 성북동과 성북동 사람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학교’는 시인, 화가, 아동교육전문가, 카페운영자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지역 주민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들을 다른 주민들에게 알려주고 서로 배우는 개념의 교육프로그램으로서 수업 내용은 성인을 위한 시창작 교실, 마음을 살리는 글쓰기-어린이스토리텔링 공부방,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쉽고 재미난 미술 이야기,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잡상 만들기-이물제작프로젝트, 대안적 삶을 꿈꾸는 지역청년들이 좋아서 함께하는 공부방 등이 있다.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학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민들 간의 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단절된 세대 간의 관계 회복을 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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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성북동 마을소식지-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마을의 대소사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마을잡지로서 동네 이야기 공유를 통해 주민들로 하여금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기 위해 발간하였다. 필진으로는 프레시안 서울학교 최연 교장을 비롯하여 지역 시인과 소설가, 문화 보존 전문가, 카페와 식당 주인, 그리고 일반 주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분들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소식지의 내용은 지역 내 행사와 소식, 동네에 대한 추억을 담은 에세이, 성북동 기행문, 마을학교 과정의 결과물로서 주민들이 지은 자작시와 교육 및 활동사진 등을 담고 있다. 또한 지역화가가 성북동을 배경으로 그린 풍경그림을 삽화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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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들과 북정마을 공동체활동

‘성북동천’ 활동 외에도 성북동에서는 다양한 마을공동체 활동들이 진행 중이다. ‘성아들’은 성북동아름다운사람들의 약자로 성북동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진정한 성북동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성북동을 사랑하는 아줌마들이 2012년 성북구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시작했다. 성아들에서는 사업 시작 후 지역 주부들을 위한 성북동 해설사 양성과정을 개설하였고, 교육을 통해 역사문화해설사를 길러 수차례에 걸친 성북동 역사문화탐방을 진행하였다. 현재 성아들은 협동조합 형태의 마을기업으로서 주요활동으로는 성북동 역사문화투어해설과 성북동 기념품 만들기, 관광객과 아이들을 위한 테이크아웃푸드를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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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성북동에는 북정마을이라는 한양도성에 접해 있는 오래된 마을이 있는데, 현재 주거환경 및 시설이 매우 낙후되어 있어 오래 전부터 재개발구역으로 묶여 있는 곳이다. 북정마을은 시골의 자연부락과 같이 이웃집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로 이웃 간에 정이 두텁고 공동체생활이 지속되어 왔는데, 요즘 이와 같이 오래된 마을은 서울에서도 그 모습을 찾기 매우 힘들게 되었다. 2000년대 중반이후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이 마을에서 노인복지, 마을축제, 공연 등의 활동들을 확장해왔다. 특히, 2009~2011년까지 3년에 걸쳐 진행한 월(月)월(Wall)축제는 마을주민들과 지역예술가들이 함께 마을잔치와 공연을 비롯한 문화행사로서, 이를 통해 마을이 외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공연?연극?미술?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함께 작업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성북동에 바라다

현재 성북동은 마을공동체 사업 도입기를 지나 발전기 또는 정착기에 접어든 상태이다. ‘성북동만의 장점인 오래됨, 정겨움, 골목길의 특징을 어떻게 살릴까?’, ‘지역의 다양한 자원과 특성들을 어떻게 묶어낼까?’, ‘어떻게 지역에 내재된 갈등들을 해소하고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 향후 성북동 마을공동체의 관건이다. 마을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는 문화 만들기, 연대와 협동의 경험들을 만들어 가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과거와는 다른 현재의 또한 우리만의 새로운 역사와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몇 년 전 성북동에 처음 왔을 때, “서울에 이런 곳이 있구나!”하고, 골목길의 편안함과 오래된 가게의 정겨움 때문에 “나도 이런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직 기회가 되지 않아서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성북동과 같은 푸근한 마을에 정착하고 싶다. 성북동이 정말로 살고 싶은 마을, 이웃들과 함께 정을 나누는 마을이 되길 바란다.?

글·사진_ 장우연 (뿌리센터 연구원 wy_chang@makehope.org)

* 이 글은 월간 아젠다 1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