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신뢰가 마을을 만든다

희망제작소 정책그룹은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지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시민과 함께 공부하는 ‘달팽이 공부방’을 열고 있습니다. 세 번째 달팽이 공부방에서는 마을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해오신 김찬호 교수를 모시고 ‘민주주의와 마음의 관계 ? 신뢰를 기반으로 마을공동체 활동하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강연 내용을 정리한 후기를 공유합니다.

소외되고 파편화된 현대사회의 대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저기서 ‘마을만들기’, ‘마을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행정과 함께 하는 사업이 되는 순간, 예산과 성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지고, 주민들의 마음은 거칠어집니다.

실제로 마을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람들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를 봐야 합니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함은 마을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만들어가며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주민들이 함께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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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민’인가?

김찬호 교수는 한 달 전 아파트로 이사를 한 개인의 경험을 소개하며 요즘 이웃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심해졌는지와 그로 인해 마을과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 어려워진 현상을 지적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 건물에 살고는 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것이 교류의 전부라 할 수 있을 만큼 이웃과의 접촉 자체가 거의 없고 새로 이사 왔다고 옆집에 인사하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동체’에서 ‘주민’은 누구일까요? 일반적으로 주민이라고 하면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동네에 살고는 있지만 공동체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발언권이 있지만 말하지 않고 있으며 유일하게 발언하는 경우는 집값에 영향을 주는 요소에 대한 반대운동일 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주민을 들여다보면, 거주자, 활동가, 상인(주민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행정(공무원), 단체, 시의원(정치인)등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개별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소개를 할 때 거주지보다 직장과 출신학교, 취향을 이야기합니다.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민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지역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한 마을을 이루는 주민들의 구성도 비슷하고 소통이 잘되었지만, 지금은 파악하기 어렵고 마을에 관심 있는 주민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을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은 누구일까요? 집주인, 학부모, 관변단체 등 다양하겠지만 의외로 지역 내 오래 거주하면서 정치인과 엮인 기득권층이 많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풀뿌리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나타납니다. 이렇듯 주민들이 마을활동을 하기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따라서 기존에 진행하던 일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수단화해서 이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좀 더 다양한 넓은 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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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 활동에 많은 주민이 참여하려면?

실제로 서울에서 유명한 마을공동체가 있는데 활동가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지다보니 주민들은 동원됐다는 느낌을 받고 대상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이 중요하지만 일 중심으로 가다보면 사람이 수단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마을공동체 활동에 주민들이 대상화되지 않고, 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일상생활의 복원

요즘에는 마을공동체를 일상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자는 관점에서 ‘마을만들기’보다 ‘마을살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사실 활동가들이 공동체 활동을 할 때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민들은 순수한 동기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외로워서, 돈을 벌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등 다양한 동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순수한 이상을 가지고 마을살이를 접근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살이’란 무엇인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일상과 그 안에서 합의를 해가며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세대 간 교류와 주인공되기(참여)

중랑구 달팽이마을 놀이터에서 정신질환자가 어린아이를 해친 사건이 벌어진 이후 놀이터는 점점 황폐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달팽이마을은 놀이터를 폐쇄하지 않고 건축가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놀이터를 다시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흔히 ‘민주주의가 없으면, 목소리가 큰 사람 위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마을에서도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려면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달팽이마을은 놀이터 운영위를 통해 공론장을 만들었습니다. 마을살이에서는 서로 돌봐주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한데 달팽이마을은 지역 청소년들이 놀이터 지킴이 활동을 통해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경험을 하면서 자기만 생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놀이터지킴이, 놀이터 운영위원회 활동은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를 기획하고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렇듯 마을이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크면서 윗사람 노릇을 해보며 겪는 경험과 생각, 그리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3. 연구조사 참여

이렇듯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직접 마을 연구조사에 참여해 보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발로 뛰면서 지역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주인의식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살았다고 해서 지역을, 주민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들 스스로 연구조사를 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참여고리가 연결됩니다. 더디 가더라도 서로가 알 수 있는 이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프로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4. 작은 성과의 축적

다음으로는 작은 성과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을만들기와 마을살이 역시 처음부터 헌신과 희생이 필요한 일에서 시작하기보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마을만들기에서 무임승차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활동가들이 지역에서 헌신하면서 느끼는 자괴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헌신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골목대청소나 방치장소 개선해 한평공원 만들기 등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주민들이 참여하기까지 필요한 신뢰는 물증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참여할 수 있는 근거를 작게 만들어 주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무임승차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기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찾아내서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작은 성과와 물증에 기반해 조금씩 신뢰가 쌓일 수 있습니다.

5. (집도 아닌, 직장도 아닌)제3의 공간

건강카페와 같은 제3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 공간은 모르는 사람도 마음을 열 수 있는, 경계가 적은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는 아는 사람보다 낯선 사람에게 공감을 얻었을 때 받는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환대가 더 큰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쉽게 만날 수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흔히 활동가들이 마을활동을 하다보면 마을에서 패거리가 만들어지고 주민들로부터 오해도 받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당연히 오해와 불신이 있기 마련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을 움직여야 마을에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세상이기에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이해하고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주민들에게 신뢰가 쌓이면 주민들은 활동가를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주민들은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주민참여의 시작점인 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 마을의 진정한 주민입니까? 우리 마을의 진정한 주민은 누구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세 번째 달팽이 공부방이었습니다.

글_오지은(정책그룹 연구원 / agnes@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