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호수에 노란꽃을 피우다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26)
죽음의 호수에 노란꽃을 피우다

수도권 북동단의 카스미가우라(霞ヶ浦)호수는 호수 면적 220k㎡, 유역면적은 그 10배에 이르는 일본 제2의 호수이다. 이바라키 현을 비롯한 3개 현과 28개 시정촌을 포함하여 약 100만 명의 인구가 카스미가우라 호수 유역에서 살고 있다.

이곳은 과거엔 주변의 산림과 늪지대로부터 물이 흘러들고, 일대에 조성된 농경지에서 농업과 어업이 번성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시작된 고도경제성장으로 급격한 공업화, 도시화로 인해 카스미가우라 호수는 수질 오염과 어업의 쇠퇴를 맞이했고, 주변 산림 지역이 훼손되면서 생태계는 파괴됐으며, 호수 유역의 급속한 인구 증가로 환경 문제와 지역 문제는 심각해졌다.

특히 1970년대 시작한 정부의 전국적인 대규모 수자원 개발 사업으로 호수는 콘크리트로 둘러쌓이게 됐고, 바다로 향한 수문이 폐쇄돼 호수 생태계가 파괴됐다. 더구나 수원지도 줄고 유입되는 수질도 악화되면서 카스미가우라 호수는 서서히 죽음의 호수가 되어 갔다. 그동안 지자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책과 사업을 시행했지만 문제가 개선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 죽음의 호수에서‘100년 후에는 따오기가 날아다니는 카스미가우라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카스미가우라 호수 재건 사업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1995년 NPO법인 아사자 기금으로 시작된 ‘아사자(노랑어리연꽃)프로젝트’이다. 지역의 초?중학교 학생들, 호수 유역의 시민단체, 어협, 산림조합, 기업, 행정기관, 교육기관들이 그때그때 필요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주민 스스로 제안하고 실행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아사자 프로젝트를 ‘시민발 공공사업’이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총24만 명 이상의 주민이 참가한 이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초·중등학생들의 환경학습, 카스미가우라호 유역의 생태와 환경재생, 그리고 지역산업의 활성화를 토대로 진행하는 마을만들기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점이다.

녹조 덮인 호수 살리기, 아이들도 나서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과 성공의 중심에는 ‘NPO법인 아사자 기금’ 대표이사인 이이지마 히로시(飯島博)가 있다. 중학교 때 미나마타(水?) 공해병 사건을 알게 된 후‘어떻게 하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을까?’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거부하고 독학을 고집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나가노 현 출신으로 도쿄에서 성장했는데, 1981년 농업 환경 생산 연구소에 인근 산림의 식생 조사를 담당하는 비상근직으로 취직한 것을 계기로 카스미가우라 호수 유역의 우시쿠(牛久) 시에서 살게 되었다.

그는 우시쿠 시에서 살면서 개발로 인한 호수와 주변 자연 생태계의 심각한 오염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1981년 지역 자연 관찰 써클‘우시쿠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했다. 지역 정보지 등에 낸 참가자 공지를 보고 지역 어린이들과 어머니들이 모였다. 매주 주말 아이들과 주변 늪과 연못 등의 수생 식물과 수생 곤충을 관찰하러 다녔다. 당시에 함께 활동했던 아이들이‘아사자 프로젝트’출발에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이어 그는 1984년 우시쿠 시의 자연보호 단체들의 연합 조직‘우시쿠시민연락회의’를 구성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이 카스미가우라 호수의 수질조사였다. 아이들과 함께 카스미가우라 호수의 수질조사를 하고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내고 항의도 했다. 그러나 10년을 계속해도 실질적인 성과를 올릴 수 없었다. 행정 조직의 관료체계로 인해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 시민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4년‘우시쿠시민연락회의’를 발전시켜 ‘카스미가우라 키타우라를 개선하는 시민연락회의’(14개 단체 50명의 회원으로 출발)로 재편했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 폐수로 오염돼 녹조가 덮여 있는 카스미가우라 호수를 걸으면서 호수 재생의 방법을 모색했다. 그가 아이들과 함께 걸은 거리는 약 250km, 그 넓은 호수가를 4바뀌 돈 셈이다.

죽음의 호수를 살린 노란꽃
– 아사자 사토오야(양부모)제도

그러던 어느 날 호수 여기저기에 노란꽃이 만개한 아사자 군락을 발견했다. 아사자는 예전에는 카스미가우라 호수를 뒤덮었던 수생 식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콘크리트 제방 공사와 수질 오염 이후 거의 사라진 식물이다. 전국적으로 멸종해 가고 있는 아사자 군락이 카스미가우라 호수에서 발견된 것이다. 더군다나 호수 물결이 콘크리트 벽에 부딪치면서 흰거품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었는데 아사자 군락이 있는 곳에서는 흰거품이 생기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아사자가 죽어가는 카스미가우라 호수를 재생시키는 보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전문가들과 의논해 본 결과 콘크리트벽과 인공적으로 실시하는 수위 조절로 인해 아사자가 스스로 발아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했다. 이에 1995년 ‘NPO법인 아사자 기금’을 설립하고 국토 교통성 하천사무소에 아사자 군락을 재생하기 위해‘아사자 사토오야(양부모)제도’를 제안했다. 시민들에게 씨앗을 나눠주고 발아할 때까지 키운 뒤 시민들 스스로 카스미가우라 호수에 옮겨 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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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콘크리트 공사와 수문 폐쇄로 죽음의 호수로 변한 카스미가우라 호수 (우)아사자 군락지

시민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첫해에 200명의 시민이 아사자를 키우고 그 중 100명은 카스미가우라 호수에 옮겨 심었다. 그 다음 해는 오천 명, 또 그 다음 해는 만 명이 참가해 현재까지 24만 명이 참가했다. 그 중에서도 호수 유역의 초·중학교의 학생들의 참가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해 왔다. 그는 일대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비오토프(Biotope)를 설치했다. 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학교 비오토프에서 아사자를 발아시켜 호수에 옮겨 심었다. 이처럼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아사자 기금의 환경 학습은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이이지마 대표는 실력 있는 환경 교육자이자 실천가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호수 유역의 초·중학교 200개교 이상이 이 제도에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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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자 사토오야 프로젝트를 펼친 결과 자연의 모습을 되찾고 있는 카스미가우라 호수

이렇게 호수에 옮겨 심은 아사자 중 일부가 물살에 휩쓸려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이지마는 에도시대의 농서에 적혀 있는‘사람과 자연과 지역과 생활을 통합한 인격을 갖춘 기술’을 떠올렸다. 거기서 힌트를 얻은 것이 주변 산림의 간벌재를 이용한 소파제였다. 주변 산림에서 채취한 간벌재로 호수에 말뚝을 박고 그 사이에 역시 간벌재를 이용한 침상을 집어 넣는 것이다.

호수에 소파제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어업 농가와 어협의 허가가 필요했다. 어협 연합장을 직접 만났다. 비용이 들지 않을 뿐더러 구체적이고 상세한 사업 계획에 연합장은 대단히 흡족해 하며 협력을 약속했다. 그의 협력으로 국토 교통성의 공공사업으로 채택됐다. 아사자 기금이 정부와 임업 관계자의 조정 역할을 맡으면서 황폐해진 산림의 관리와 호수의 자연 재생이 동시에 실시되는 사업 구조가 마련됐다. 초·중학교 학생과 시민 자원 봉사자들은 일일 목수로 사업을 도왔다.

지구 환경 보전 기술로 선정된 간벌재 소파시설

지역의 초·중학교 학생, 시민, 어업, 임업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제안해 실시한 이 공공사업으로 지역 경제에 다양한 부가가치가 창출되었고 지역에 협력의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즉 수원지가 되는 산림의 보존(30개소 약 34ha)과 임업의 활성화, 새로운 고용 창출(연간 최대 1일 5,000명)의 효과를 낳았다. 또한 목재(간벌재)를 사용한 소파시설이 어초가 돼 물고기 등 수산 자원의 증식에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이러한 간벌재 소파시설이라는 일본의 전통 기술이 2005년 나고야 세계 박람회에서 지구 환경 보전 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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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소파 시설 (우)소파 시설을 만들자 갈대숲이 살아나고 물고기가 증식했다

호수 유역 경작 포기지를 살리다

호수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호수뿐만 아니라 수원지가 되는 산림과 주변 농지의 보존이 필수적이다. 카스미가우라 호수는 유역의 골짜기와 이들이 만드는 작은 하천들이 호수의 수원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골짜기 농경지의 90%가 경작 포기지로 황폐해진 채 버려져 왔다. 수원지인 이곳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호수의 재생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행정 기관은 경작 포기지들이 각지에 분산돼 있으며 사유지라는 이유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방관해 왔다.

아사자 기금은 초·중학생들의 환경 학습에서 수원지 재생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지역 주민 그리고 기업의 협력을 얻어 이 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다. 경작지를 재생해 무농약 무화학 비료로 쌀을 재배해 이를 원료로 지역 특산주를 생산하여 호수 재생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연쇄적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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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2005년 경작 포기지 (우)2007년 논, 연못, 수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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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경작 포기지에 모내기를 하는 모습

1997년 계획된 이 사업은 2003년 NEC와 협동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총 2만여 명의 NEC 사원과 가족들이 경작 포기지 재생 작업과 모내기, 추수, 술 빚기에 참가했다. 그 뒤 NEC와의 협동 사업이 모델이 되어 미쯔이물산, UBS증권, 호기메디컬, 손해보험재팬 등 4개의 기업이 참가하여 각각 아사자 기금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내 3개의 주조회사가 이 사업에 참가하여 특산주 제조를 담당하고 있다.“이러한 지역 활성화 모델이 확산된다면 호수 유역의 골짜기 논들과 자연이 재생되어 100년 후에는 따오기가 날아다니는 호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 아사자 기금의 이이지마 대표의 포부다.

아사자 기금은 호수 유역의 버려진 밭들과 산림 재생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밭에는 카스미가우라 호수에 증식하고 있는 외래어를 이용해 만든 비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밭에서 재배한 콩을 원료로 지역 간장 제조 회사에서 지역 브랜드 간장을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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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 포기지 재생 사업에 참여한 NEC 사원과 가족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아사자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실학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해답을 찾으며 산림보존과 치수에 탁월한 기량을 보였던 류쿠왕국의 위대한 정치가 사이온(蔡?,1682~1762)과 일본 최초의 공해 사건이었던 아사오광독 사건을 처음 파헤치고 고발하면서 반 공해 운동에 앞장섰던 다타카 쇼조(田中正造,1841~1913)의 정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이지마 대표에게 아사자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그림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각 분야가 종적으로 연결돼 횡단적인 문제 해결을 하고 있지요. 제가 생각하는 아사자 프로젝트는 이처럼 각각의 문제와 사안들이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뿌리, 줄기와 같이 서로 관련돼 있는‘리좀’입니다. 즉 지면 밑에 뿌리를 뻗고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방지 사업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지금 기업과 NPO, 정부 등 여러 곳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최적화되고 있고, 환경 기술과 시스템의 효율이 높아지고 있지요. 그러나 문제는 사회 시스템에 있기 때문에 부분적인 문제 해결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사회 전체에 부분적인 효과를 더한 것 이상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점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속에 잠재해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내 그 선들의 흐름을 만들어 가야지요. 그를 위해서는 환경 교육과 종합적인 학습이 필요합니다”.

이이지마 대표는 사회를 변화하기 위한 자유로운 발상과 창조력을‘아이’들에게서 찾는다고 말했다. 즉, 아이들의 환경학습으로부터 사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도 그는 아이들과 함께 지역의 자연과 문화가 낳고 키워온 자원을 찾아 환경을 테마로 그들을 서로 연결해 새로운 네트워크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면서 지역 사회에 순환형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