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들이 생활정보지 시장에서 실패한 이유

<박원순의 희망탐사 16>

1983년 생활정보신문이 한국에 첫 선을 보였다. 서울 영동지역에서 무료로 배포됐던 <리빙뉴스>. 그러나 생활정보신문이 전국화에 성공한 것은 고 박권현 씨에 의해서다. 대덕단지내 원자력연구소에 근무하던 박권현 씨는 1989년 지역주민들의 거래정보와 생활정보를 담은 생활정보신문 <교차로>를 창간했다. 프랑스 유학시절 눈여겨본 생활정보지를 모델 삼아 만든 것이다. 지역주민 간의 생활정보 교환 및 매매광고를 주로 게재하는 생활정보신문은 첫 등장 이후 ‘무료지역신문’ 또는 ‘지역광고지’ 등으로 불리며 생활 속의 미디어가 되었다.

2006년 현재, 한국생활정보신문협회에 등록된 회원사는 154개이며 등록되지 않은 신문사까지 합하면 200여 개로 추산된다. 성장이 정점에 달했던 2002년도 이들 생활정보신문의 발행 부수는 3대 일간지 부수를 능가하는 수준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 호남권을 중심으로 한 <사랑방 신문>은 생활정보지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광주에서 시작해 전라도를 거쳐 경상도까지 진출했으니 꽤나 성공한 생활정보지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지역 경제의 바로미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생활정보지의 미래도 엿볼 수 있다.

<사랑방 신문>의 정태형 발행인, 그는 참 다부진 사람이다. 모든 분야에서 서울에 본사를 둔 기업이 전국을 지배하는 와중에도 광주에서 생활정보지를 창간해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것은 물론이고 전남ㆍ북의 다른 도시들과 부산까지 진출했다. 광주 무등산 자락, 한 식당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대한민국에서 생활정보지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는?
[##_1L|1268596843.jpg|width=”351″ height=”289″ alt=”?”|_##]박권현 씨가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한 생활정보지 <교차로>에 뒤이어 부천에서 <벼룩신문>이 탄생했다. 이처럼 지역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점이 생활정보지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다.

“생활정보지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잖아요. 그러니 지역공동체가 어느 정도 형성된 곳에서 먼저 시작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서울보다는 지역이 더욱 유리하지 않았나 싶어요.”

정태형 씨는 지역의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1988년 <전북도민일보>에서 지방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도민주(株) 형태의 지방언론이었으나 중간에 경영진과 갈등이 생기면서 몇몇 기자가 해직됐고, 그 와중에 그도 신문사를 나와 대안적 언론매체를 찾아 나서게 됐다. 그렇게 해서 참여하게 된 것이 1990년 만들어진 <사랑방 신문>이다.

“광주에서 만들어진 <사랑방 신문>은 1990년에 나왔으니 굉장히 빨리 시작한 편이죠. 그 이후 지역마다 특색과 독자적 브랜드를 가진 생활정보지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지요. 물론 처음에는 어려웠죠.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믿어요. 생활정보지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대안언론이고, 언론은 독자와의 사이에 쌓이는 신뢰가 기본이죠.”

남들과 똑같은 길에서 시작했지만 <사랑방 신문>은 남다른 길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의 <사랑방 신문>을 만들었다.

신뢰는 모든 것의 기초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이 신뢰 없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생활정보지 또한 초기부터 한 줄의 광고라도 진실하게 접근하면서 광고주와 독자를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을 썼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사랑방 신문>의 존재이유가 됐다.

“<교차로>나 <벼룩시장>이 독자에게 먹힌 것은 중앙일간지나 지방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기사도 그렇고 광고도 불신을 받았죠. 생활정보지는 처음부터 검증을 했어요. 광고를 걸러서 실었거든요. 광고 전문지이지만 지방신문보다 엄격하게 확인하고 검증함으로써 독자로부터의 공신력을 확보했습니다. 광고시장에서 일간지와 겨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노력 때문이었고 그 덕에 단기간에 자리매김이 가능했습니다.”

그저 광고지로 치부하기 일쑤인 생활정보지에 숨은 노력은 메이저급 언론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들과는 전혀 다른 노력과 시선으로 대안의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방 신문>은 고객의 참여와 그들의 참여를 불러올 수 있는 남다른 ‘신용’을 지향했다는 얘기다.

“<사랑방 신문>의 특징은 부동산이나 직업이나 자동차나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콘텐츠나 정보에 관해 고객이 직접 전화를 해서 정보를 제공한다는 거예요. 정보제공자이면서도 광고자인 거죠. 매일 2만5000명이 참여해요. 대단하지 않아요. 이들이 바로 사랑방을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맥락으로 처음부터 접근했기에 <사랑방 신문>은 성공할 수 있었다. 반면 중앙지에서 내놓은 생활정보지들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독자와 정보를 제공하는 제공자가 연결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해 대단한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 신문은 지방을 거점으로 탄생했지만 전국적인 시장조사를 펼친 후 창간했다. 돛을 올린 후에도 세계적인 신문시장의 흐름이나 인터넷의 동향 파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성공’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까지의 궤도에 올랐다.

“지금은 군산, 익산, 목포, 순천, 정읍으로 확장되었고 직원도 400여 명이 넘어요. 각 지역에서 브랜드는 공유하고 경영은 독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민의 삶과 가장 밀접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별 독자경영이 필요합니다. 부산에서는 <부산시대>라는 이름으로 100여 명이 일하고 있고 <사랑방 신문>과 <부산시대> 외에도 신문인쇄를 하는 ‘SRB Printing’이라는 인쇄회사, ‘사랑방 문고’라는 책방, ‘사랑방닷컴’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태형 씨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사랑방은 하나의 그룹과 다름없다. 광주에서 시작해 남원, 익산, 군산 등 전남북과 부산까지 진출했고 생활정보지에서 책방, 인쇄회사까지 그 영업의 범위를 넓혔다.

생활정보지의 미래와 대안

한 때 한겨레신문사는 <한겨레 리빙>, 중앙일보사는 <중앙타운>이라는 생활정보지를 시작했다가 손해만 보고 곧 손을 뗐다. 아무리 중앙언론이 거대자본을 가지고 달려든다고 해서 모두 잘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 사례다. 이미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선전하던 생활정보지에게도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체인화된 거대 자본에 밀리는 지역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의 쇠퇴, 인터넷 거래의 활성화 등으로 생활정보지 전반이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미래는 개척하는 사람의 의지와 열정의 소산이다. 정태형 씨에게서는 여전히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 풍겨 나온다.

“초창기에는 굉장한 비전을 느꼈어요. 기존의 신문사들이 부패해 있었기 때문에 생활정보지 대부분이 2~3년 안에 전국적으로 신뢰도 받고 경영적으로도 안정됐죠. 하지만 인터넷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IMF 이후 부동산거래의 40~50%가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지방에서도 30~40%에 이릅니다. 이런 것들이 생활정보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저희도 인터넷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인터넷 전문회사의 세가 커지고 있어서 시장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습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한 사랑방 신문의 대응은 ‘온ㆍ오프라인 병행’ 형태다.

“전통적인 신문을 이용한 거래보다 인터넷 이용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싸고 편리할 수 있어요. 책도 그렇고 유통업, 자영업 모두가 마찬가지예요. 전국적 규모에서 체인화되어 있지 않고 독자적인 사업을 하는 것은 극히 불리해졌죠. 이에 사랑방 신문은 온ㆍ오프라인 병행 형태로 대응하고 있어요. 오프라인과 더불어 온라인 신문을 만들어 새로운 인터넷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거죠.”
[##_1C|1003551424.jpg|width=”550″ height=”305″ alt=”?”|_##]지역 밀착형 생활정보지, 지역과 함께 호흡한다

언론을 일컬어 사회의 공기라고 한다. 정보매개와 지역광고가 주요 역할인 생활정보지이지만 주민들의 삶 구석구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그 바탕에 있다. 당연히 지역의 사회와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고 이에 <사랑방 신문>의 광주 본사에 당당히 붙어 있는 ‘광주시민의 문화공동체’라는 소개간판도 자연스럽게 보였다.

정태형 씨의 관심도 지역경제 및 문화,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사랑방으로서도 자영업들이 고객이기 때문에 관심이 많아요. 자영업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여러 기술이나 자산이 부족한 형편이에요. 소상공인지원센터가 만들어졌는데 상담이나 컨설팅, 금융지원 등이 있긴 하지만 한계가 많더군요. 취지는 괜찮은데 과거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해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책을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방의 많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경제의 영세성에서 비롯된다. 생활정보지도 지역의 경제와 맞물려 있다. 이에 정태형 씨는 지역 경제의 발전을 위해 “노조, 직능단체, 상공회의소 등이 함께 지역의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_1L|1183854795.jpg|width=”182″ height=”323″ alt=”?”|_##] “노조가 지적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체의 내부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하청업체나 자영업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 적이 있어요. 더불어 상공회의소도 규모 있는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보다 작은 중소기업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각종 직능단체들의 긍정적 역할도 클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렇게 노조, 상공회의소 등이 중소기업에 관심을 가진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얼마 전 또 한 번의 5ㆍ18이 지나갔다. 몇십 번의 5ㆍ18이 지나도 광주의 특별함이 사라질 리 없다. 광주에 본사를 둔 <사랑방 신문>에도, 그곳에서 발행을 맡고 있는 정태형 씨에게도 역시 광주는 특별하다.

“광주에는 나눔과 사회공헌의 공동체적 정신이 밑바닥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고 봅니다. 너무 단정적인 이야기 같지만 지역거점 대형할인점인 빅마트 하상용 사장의 사례가 많이 알려졌는데 굳이 하상용 사장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다양한 지원과 봉사활동, 시민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자선과 공익사업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태형 씨도 이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다. 노인이나 장애인 문제와 관련해 직업 소개, NGO 활동소개 등의 일을 해 왔고 ‘우리밀살리기운동’이나 ‘유기농 한마음공동체’, ‘아름다운가게’를 지원하기도 했다.

우리는 작은 것들을 가치의 작음으로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생활정보지에 대한 우리의 시선도 이와 다름없다. 대형언론에서 이야기되는 거대담론, 그들의 시선에 주목하지만 생활정보지에서 말하는 우리 동네의 이야기는 너무 쉽게 작은 것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바로 우리 옆에 있다. 나와 내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 우리지역의 소식, 그런 진짜 이야기에 지금 주목하자. 작은 것이 모여 큰 그림을 이룬다.

한번 보고 쉽게 버리는 신문 같지만 생활정보지에서도 우리 사회의 공동체정신을 굳굳하게 지키려는 노력들이 이어져가고 있고 또 하나의 생활밀착형 대안언론으로 발전하려는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신선했고 지역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데 생활정보지들이 한몫 담당하고 있는 것도 새로웠다.

면담일시 : 2006년 6월 17일 오후 5시

면담장소 : 광주시 무등산

면담인사 : 정태형 (사랑방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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