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 연구원의 ‘지구특공대300’ 운영기
전 평소 환경을 위해 신경 쓰며 사는 편입니다. 텀블러가 없으면 되도록 테이크아웃 음료를 마시지 않고, 장바구니가 없을 때 물건을 사면 물건 탑을 쌓아 양팔로 조심조심 안고 돌아와요. 플라스틱과 비닐 소비를 하나라도 줄이려는 소소한 노력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나 혼자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무기력감에 사로잡혔어요. 텀블러에 카페 음료를 담아 나오면서, 카페 안 가득 찬 일회용컵을 보면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더라구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개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력하는 개인들의 ‘무기력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시민들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요. 다만 노력의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나홀로 실천에 지친 시민들··· 함께하면 어떨까?
‘희망제작소’는 시민과 함께 대안을 만드는 ‘시민참여형 연구소’입니다. 시민이 ‘자기효능감’을 갖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구특공대300’이라는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지구를 지킬 시민 300명과 함께 하루 하나씩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시민분들이 미션을 수행한 후 인증샷을 남기면, 저는 미션을 통해 얼마만큼의 탄소를 줄였는지 모두 모아보고 자축하는 거에요. 개인들이 만든 변화를 모아보고자 하는 시민 공동 행동인 셈이죠.
‘함께하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었어요.(물론 정확한 탄소저감량은 집계할 수 없지만, 중요한 건 탄소저감량을 측정하는 게 아니라 공동의 행동을 통해 효능감을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대략적인 탄소의 양을 추산했어요)
사실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프로그램을 공지한 후 걱정이 많았어요. 시민 공동 행동의 효과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꼭 300명이 모였으면 좋겠는데(프로그램 제목에 ‘300’이라는 말까지 넣었는데!), 그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실까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홍보 2주만에 300명이 넘는 분들이 신청해주셨답니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어요!
300여명의 지구특공대와 함께 2주 간의 미션을 시작했습니다. 메일함 비우기, 하루 한 끼 잔반 남기지 않기, 전기 없이 1시간 놀기 등 10가지의 미션을 다같이 수행했어요. 각각의 미션에 상응하는 탄소 저감량은 2021년 환경부가 발간한 <탄소 중립 생활 실천 안내서>를 참고해 매겼어요.
비슷한 종족 모여 탄소 700kg 저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지구특공대로 참여한 시민 개개인의 이야기가 미션 인증글을 통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학생과 함께 참여하신 중학교 선생님, 서울에 살다 지역으로 이주하며 기후위기를 절실히 느끼는 분, 어린 아이를 키우며 미래세대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신 어머니, 유머와 재치가 철철 흘러넘치는 고3 학생. 그 중에는 평소에 저와 비슷한 무기력과 답답함을 토로한 분들도 많았어요.
남들에게 예민한 사람으로 비춰지거나, ‘프로 불편러’라는 억울한 누명을 썼던 경험이 마음 속에 쌓여있었던 거죠. 저희 집 청소기가 고장나서 새로 사야했던 순간, ‘청소기 말고 빗자루는 어때?’라고 제안했다가 가족에게 ‘그만 좀 하라’는 짜증을 받아내야 했던 저는, 비슷한 종족(?)을 만난 것처럼 신이 났습니다. 특히 빗자루를 사용해 청소하시는 분을 만났을 땐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요! 빗자루 구입처를 묻고 답하니 외로웠던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었어요.
지구특공대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10개의 미션을 수행한 결과, 대략 724kg의 탄소를 저감했습니다. 탄소 724kg는 소나무 109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양이랍니다. 기념 영상을 만들어 자축하고 각자 소감을 풀어내며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습니다. 설문 결과, 설문 답변자의 48%가 ‘지구특공대 참여 후 기후위기의 해결 방법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답했고, 60%는 ‘내가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자기효능감)이 생겼다’고 응답했어요. 또한 92%의 응답자가 ‘향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행동을 지속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어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지구특공대
지구특공대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지구특공대 시민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각자 자리에서 실천을 지속하실 거라고 믿어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까요. 지구특공대 300명이 3,000명, 30,000명이 되면 우리 지구를 정말로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지구특공대들이 앞으로도 묵묵히, 하지만 꾸준하고 치열하게 지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해나가시기를 응원합니다.
* 글: 이규리 이음팀 연구원 | kyouri@makehope.org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 국가는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공급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데요. 에너지 전환에서 에너지 공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에너지의 수요를 줄이는 것’입니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가 꼭 필요하며, 이러한 참여를 통해 에너지 시민성이 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희망제작소의 ‘지구특공대300’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행동은 굉장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이메일 지우기와 같이 쉬운 활동도 있었지만, 냉장고 비우기, 단열재 설치하기처럼 다소 어려운 활동에도 많은 특공대원들이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지구특공대300은 참여자들이 에너지 시민이 되는 의미 있는 한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한 번의 활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고 변화를 확산하는 것입니다. 참여자 설문조사 결과를 자세히 보니 실제로 지구특공대300 프로젝트에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이들과 같이 참여한 특공대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미션을 통해 어느 정도의 탄소 배출이 저감되었는지 집계하고, 탄소저감 방법을 함께 알려주었던 것이 녹색 실천을 확산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에는 참여자들과 사전에 소통하여 프로그램의 구성을 함께 모색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면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프로그램 효과를 더욱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기후변화를 막는 특공대원들을 양성하고 지구를 위한 희망을 계속해서 제작해 나가는 희망제작소가 되길 꿈꿔봅니다.
– 지구특공대300에 함께한 강우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