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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30>

‘민속문화지킴이’, 임재해 안동대 국학부 교수에게는 이런 별칭이 따라다닌다. 그의 홈페이지에서도 그는 민속문화지킴이란 별칭을 사용하고 있다. 웬만한 자부심이 아니고서는, 또 그만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발품을 들여 엔간한 문화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면 이 별칭이 부메랑이 되어 주인을 할퀼 터이지만 임재해 교수에게는 이 별칭이 딱 어울린다.

평생 민속지학을 연구한 학자로 그는 한국의 민속문화를 연구하고, 방대한 연구자료를 축적하고, 그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의 민속문화를 후대에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문화재보다 살아있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유형물 문화보다는 무형물 문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는 평생에 걸쳐 민속학이란 한 우물을 파왔다. 그리고 그 기록을 올곧이 활자로 만들어왔다. 그는 그래서 ‘민속문화지킴이’이다.

문화재관리, 유형문화재에서 무형문화재로 중심 이동해야
”?” 민속문화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그 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그의 노력은 눈물겹다. 생활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문화를 찾아내 기록하는 것은 유형문화의 산물인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보다 더욱 지난(至難)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이는 것은 물론 전국 곳곳으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세월이 지난 무형문화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던 사람이 죽으면 그마저도 어렵다. 그래서 그는 문화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방법 혹은 방향이 유형문화재에서 무형문화재로 그 중심자리를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재를 사람중심으로 가져가지 않고 문화재라는 대상중심으로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화재의 ‘재’가 물건을 뜻합니다. 살아있는 문화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얘기죠. 문화재는 문화의 증거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문화재 중심은 유형물 중심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건물로서의 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집안에 발붙이고 사는 가정이 중요합니다. 하우스와 홈의 차이죠. 홈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하우스를 만들어가는 데만 신경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집을 만드는 기술, 목표도 모두 무형문화재입니다.

안동의 줄다리기, 놋다리밟기가 무슨 석탑보다 더 중요합니다. 놋다리밟기는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온 공주를 맞이하기 위해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것을 전승해 생활 속에서 계속 해온 것입니다. 유형문화재가 중시된 것은 볼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문화는 눈에 금방 보이지 않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끈질기게 살아있습니다. 문화는 공기와 같아 일상생활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유형문화재는 확대재생산도, 수출도 불가능하지만 무형문화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형문화재에서 무형문화재로 그 중심자리가 이동해야 합니다.”

할머니 한 사람이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 “마을조사 필요”

무형문화, 즉 생활문화는 우리네 일상생활 속에 살아 숨쉬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살아 숨쉬는 것은 아니다. 무형문화는 사람 중심이다 보니 옛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죽거나 없어지면 그 문화도 따라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런 무형문화를 품고 있는 공간 혹은 바탕이지만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무형문화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어진다. 그래서 그는 “할머니 한분 돌아가시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 그래서 그는 마을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마을의, 그 지역의 문화를 오롯이 품고 있는 마을을 조사할 때 우리네 생활문화를 보존, 복원,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배의 것을 다 이어받고 자신이 관찰한 것을 가지고 역사가 전승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할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주민이 조금씩 다가지고 있는 것이죠. 우리들의 무형문화재도 시골 할아버지가, 시골 공동체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조사가 중요합니다. 전통문화의 중심인 농촌과 마을이, 잔설이 녹아내리듯 녹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민속조사는 장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일제 때 그런 조사를 오히려 더 많이 했습니다. 모든 창조는 전통에 기반한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그것을 이어받고 창조적으로 재생산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전통이 현대와 적대적인 관계에 놓인 사회입니다.”

문화주권론이 정치주권론보다 더 중요하다

임재해 교수는 마을조사가 삼국유사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리고 생활문화를 통해 문화사적인 가치가 있는 문화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문화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는 누구나 문화주체가 되는 생활문화의 원형을 마을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되고, 그를 통해 현재 우리 문화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마을조사를 하면서 이론적으로 구성한 것이 문화주권론인데 그 요지는 ‘문화는 남이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을 민속을 조사하면서 이론적으로 구성한 것이 문화주권론입니다. 스크린쿼터 차원이 아니고 주체의 입장에서입니다. 정치권력만 천부적 주권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문화주권입니다. 사실상 정치권력은 투표해서 정치가에게 권력을 위임하면 투표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행사합니다.

경기에 나가는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문화는 남이 대신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진짜 음악문화는 자신의 노래를 자신의 심정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을 전통사회의 마을공동체에서는 다 누렸습니다. 민요를 부르고 별신굿하면서 춤추면서 출연자, 연출자, 소품담당자를 마을사람들이 다했습니다. 장승 세우는 것도 마을사람들이 다 했습니다. 지금처럼 시는 시인이, 소설은 소설가가, 연극은 배우가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민주적 문화가 아닙니다. 현재는 문화인이 문화창조력을 독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설파하는 문화주권은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가 소수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마을 공동체에서 모든 이들이 문화 생산자로 활약했듯 우리 모두가 문화주체로서 문화주권을 가지고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을마다 자신의 문학, 예술 등 모든 갈래가 다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안동문학이 따로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안동 그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입니다. 전통사회에서는 마을문학이 있었습니다. 건국신화처럼 당 신화가 있고, 마을 노래가 있었고, 장승같은 지역 특유의 조각이 있었고, 문살이나 떡살처럼 무늬와 디자인과 미술이 있었습니다. 풍물도 마을마다 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문화능력을 알게 모르게 문화생산전문가와 그것을 유통하는 상업적 자본에게 다 빼앗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민주화, 혹은 문화자치가 더 중요합니다.”

유명한 문화유적지 안가고 시골마을로 간다

무형문화를 보존하는 방법은 기록밖에 없다. 그 문화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마을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을 만나서 한 사람이, 한 마을이 갖고 있는 문화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임재해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다.

“고분문화는 나중에 조사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보존처리가 아직은 충분치 않아서 더 있다가 발굴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형문화재이고 봄날의 잔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는 디지털 정보로 축적하고 자원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곧 사라질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그가 재직하고 있는 안동대가 유교문화권의 전통마을 복원과제로 BK21에 선정되었다. BK21이 선정되기 까지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연구업적이 큰 몫을 했다.
”?” “학생들 10여명으로 전국의 유명한 곳뿐만 아니라 일반 마을들을 조사해서 보고서 쓰는 일을 해 왔습니다. 부계 사람들의 삶과 문화, 순흥 사람들의 삶과 문화, 청송 사람들의 삶과 문화, 이런 식입니다. 지금까지 11권의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학부 학생들이 지역조사를 하는 동안 교수들은 한 마을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문경시 산양면 현리마을을 상대로 조사해서 보고서를 냈는데 이 마을은 양반마을이라기 보다는 민촌마을이었습니다. 이렇게 조사한 실적이 많다보니 BK21에 선정될 때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임재해 교수는 학생들이 안동대 국학과를 졸업하면 4개 보고서의 정식 집필자가 된다고 말한다. 방학 때마다 시골마을로 학생들을 보내 마을조사보고서를 쓰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을 갈 때 지도와 유인물 3~4장 가지고 가서 며칠 후 돌아올 때는 단행본 한권이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안동대를 국학의 메카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민속학, 한문학, 국문학, 동양철학, 역사학 등을 골고루 갖춘 대학이 안동대이고, 민속학연구소, 안동문화연구소, 퇴계학연구소, 지역개발연구소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학문을 우리 시각으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대학이 있어야 한다”며 안동대가 그 적임이라고 얘기한다.

민속학 발전시키는 길

그와 더불어 그는 민속학이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민속학이 현재 재야학문의 성격이 짙은데 이를 벗어나 강단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민속학이 재야학문에서 강단학문으로 된 것이 1979년 안동대에 민속학과가 생기면서부터입니다. 안동대가 석ㆍ박사 과정을 갖춘 유일한 대학이죠. 현재 여기서 민속학자가 양성되고 대학 교수가 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민속학이 강단학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도별로 하나씩은 민속학과가 설치되어야 합니다. 도별로 생겨야 하는 이유는 그 지역의 특수한 민속을 조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속학은 구비전승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조사하고 텍스트를 만들고 다시 연구해야 합니다. 또 사진으로, 오디오로, 동영상으로 자료를 남겨야 하는데 그것이 삼국유사 같은 자료가 됩니다. 각 지역에 있는 민속학과가 그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별로 좋지 못하다. 현재 대학 규모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각 대학이 민속학과를 신설하겠다는 신청도 잘 안하고 인가도 안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학문체계 속에서 민속학을 독립된 분과학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에서도 민속학을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임재해 교수는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를 위해서도 마을의 민속과 문화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간 안동 하회마을이 비록 유명하지만 자신이 개인적으로 책 한 두 권 낸 것 빼고는 하회마을에 관한 체계적인 종합보고서 하나가 없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고, 한류 등 문화의 수출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기본적인 바탕이 부실하다는 얘기다.
”?” 생활 속의 가르침 – 생태적인 속신들

임재해 교수는 요새 생태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녹색평론 읽으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삶의 대안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됐고 생명운동이 큰 변혁운동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변혁운동 하려면 생명운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학문은 생태학문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저는 민속문화 속에서 생명운동과 관련된 삶의 슬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땅이, 공기가, 물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기의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생명을 지속가능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우리 마을이 유구한 역사에도 망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생태적 성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예로 그는 생태적 속신을 든다.

“우리 속신 중에 나무에서 상순을 자르면 죽어서 어찌된다는 것이 있습니다. 나무 가지는 잘라도 상순은 자르지 말라는 것이죠. 물에 오줌 누면 죄받는다, 지렁이에게 오줌을 누면 고추가 붓는다, 집에 우연히 날아온 날짐승은 잡지 않는다, 아침에 오는 거미는 재수있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미물의 생명도 존중하기 위해 생긴 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세숫물 많이 쓰면 저승 가서 마셔야 한다는 말을 어머니로부터 들어왔습니다.

그 이후로 매일 아침에 세수할 때마다 그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는 물이 그렇게 흔할 때인데도 물을 아끼도록 강조했던 것입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함부로 해치지 말라는 그런 속신들이 예전에는 엄청나게 존재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도꼭지 틀어놓으면 자다가 오줌 싼다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잘 때 불 켜고 자면 죽을 때 눈뜨고 죽는다는 말도 현대적으로 응용해서 키울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시적 교육보다 더 큰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믿습니다.”

마을은 앞으로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이 숨결을 간직하고 있던 우리네 문화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인류의 생태파괴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네 생활문화, 우리네 일상문화는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고, 일부는 없어지고 있다. 할아버지 한분, 할머니 한분이 사라질 때마다 박물관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허투루 들을 말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우리네 문화의 숨결을 보존할 때, 그들이 쓰는 말, 그들의 생활양식, 그들이 굳게 믿고 있던 속신까지 기록해놓을 때 우리네 문화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 고유의 문화는, 앞으로 발전하게 될 우리의 문화를 든든히 받쳐줄 버팀목이 될 터이다.

면담일시 – 2007년 2월 12일

면담장소 – 경북 안동시 송천동 388 안동대학교

면담인사 – 임재해 (안동대 국학부 교수. 구비문학회장. 비교민속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