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대응기금이 지방정부에 요구하는 것

“등급을 잘 받을 것 같은 독창적인 사업이냐, 아니면 우리지역에 꼭 필요한데 겉보기에 평범한 사업이냐를 두고 실무자로서 고민이 됩니다.” 최근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자계획에 대한 컨설팅 자리에서 만난 인구감소지역 소도시의 한 공무원이 들려준 얘기다. 대다수 지자체에서 시설물 건축이나 인프라 투자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이 도농복합도시의 투자계획서 초안에는 교육·보육 프로그램 운영비용, 마을활동가 인건비 지원 등 이른바 ‘소프트웨어 사업’이 제법 담겨있었다. 오는 6월말 기금심의위원회에 제출될 투자계획서에도 이런 내용이 끝까지 살아남아 있을까.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소멸위기에 놓인 지자체가 스스로 인구감소와 지역쇠퇴의 원인을 진단하고, 지역에 맞는 발전방향과 혁신방안을 찾아 정책구상과 실행에 나서도록 고안된 정책이다. 중앙정부는 기초지자체(인구감소지역 89개, 관심지역 18개)와 광역자자체(서울・세종 제외)를 대상으로, 2022년부터 2031년까지 10년간, 매년 1조원(기초지자체에 7,500억원, 광역지자체에 2,500억원)씩 지원한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의 투자계획을 평가해 사업 우수성에 따라 기금을 차등 배분한다.

지난해 진행된 지방소멸대응기금 평가에서는 A부터 E까지 5등급이 매겨졌는데, 89개 인구감소지역 중 충남 금산군, 전남 신안군, 경북 의성군, 경남 함안군 등 4곳과 18개 관심지역 중 광주 동구가 A등급을 받았다. 대체로 기금사업이 창의적, 차별적으로 고안됐는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다고 알려졌다. 행안부는 2022년 평가결과 C, D, E 등급을 받은 지자체 67곳을 대상으로 최근 기금 투자계획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올해 1월 1일부터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이 시행됨에 따라 소멸위기 지자체는 오는 5월까지 인구감소지역대응기본계획(2022년부터 2026년까지의 5개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기본계획과 종전 투자계획 간의 연계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을 터. 비유하자면, 숲을 그리지 않고 나무부터 심었는데, 다시 지난해 심은 나무를 기준으로 숲의 모습을 짜 맞춰야 하는 형국이다. 지난달 세종시에서 열린 컨설팅 사전설명회에서 컨설팅위원들에게 ‘투자계획의 로직(논리)을 잘 봐 달라’는 얘기가 거듭 강조된 것은 이런 까닭에서일 것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의 투자계획 평가에서는 개별 사업계획의 구성이 적합한지는 물론, 기금사업들 간의 연계(예컨대, 청년창업 지원 사업과 청년 주거공간 구축 사업의 유기적 연결), 기금사업과 국고보조사업, 지자체 자체사업, 민간투자 등의 연계, 지자체들끼리의 연계·협력사업 발굴 등도 살펴보게 된다. 말하자면 기초지자체 스스로 현장의 필요성을 파악해 다양한 정책수단들을 융합적으로 활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시·군 공무원들과 대화하다보면 “올해 처음 이 업무를 맡아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순환보직에 따른 잦은 인사이동에 더해, 시·군이 주로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가 주도하는 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역할을 맡아온 사정까지 감안하면, 인구·산업·주거·복지 등 정책에 대한 기획·구성 능력이 부족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해당 지역의 문제에 온전히 집중하는 교수나 정책전문가의 숫자가 매우 적은 실정이어서,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을 지원하는 정책지식생태계의 역량 역시 부족하다. 자칫 컨설팅회사들이 찍어내는 ‘붕어빵 투자계획서’들이 넘쳐날 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완주군, 의성군 등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시대에 맞서 내생적 발전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부 지자체들도 출발지점의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통계조차 갖춰지지 않은 지역의 내부자원·역량부터 제대로 파악하기, 지역에 맞는 내생적 발전모델을 찾기 위해 시민들 내지 전문가들과 토론하기, 다양한 혁신활동을 수행할 지역 내 민간주체 육성과 시민사회 지원, 부족한 내부자원을 보완할 외부의 연대세력 찾기… 지방소멸 대응의 성패는 어찌 보면 지방정부가 자신들의 정책역량을 스스로 키워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 글: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