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남] 보고타를 되살린 388km의 녹색 핏줄

박용남의 도시 되살림 이야기

콜롬비아는 국토면적이 남한 면적의 12배에 달하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에 이어 남미에서 네 번째 큰 나라로 생물종 다양성이 아주 높은 국가이다.

이 나라의 수도인 보고타는 원래 평화로운 안데스 산맥의 고산족인 칩차족의 본거지이자 엘도라도 전설의 고향으로 ‘아메리카의 아테네’라고 불리는 아주 유명한 곳이다. 국가 전체인구의 약 18.2%인 800만 명이 거주하는 콜롬비아의 명실상부한 정치ㆍ행정, 그리고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인 것이다.

그러나 보고타는 국내에서 차지하는 이러한 높은 위상에도 불구하고 ‘라 비올렌시아(폭력의 시대)’ 이후 약 40년 동안 거듭되어 온 내전과 폭력, 부정부패, 높은 실업, 빈부격차의 심화 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도시적 특성 때문에 보고타는 TV에서 방영되는 생방송처럼 뉴스 속에서 폭력과 테러와 납치를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기상천외한 도시가 최근 들어서는 국제사회에서 대중교통의 천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외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는 그 중심에 서있는 ‘트랜스밀레니오(TransMilenio)’ 시스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보기로 한다.

[##_1C|1364306507.jpg|width=”351″ height=”45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보고타의 자전거전용도로 (사진:박용남) _##]

‘우리들이 원하는 보고타를 위하여’

보고타에서는 제3세계의 대부분의 대도시들처럼 만성적인 교통체증과 교통문제를 해결키 위한 수많은 연구와 계획들의 집행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왔으나 그 성과는 늘 미미한 수준이거나 거의 없었다. 이런 와중에 인간보다는 자동차를 중심에 두고 있는 서구의 전통적인 토지이용 개념 및 개발방식과 싸우는 로빈 후드와 같은 한 인물이 혜성처럼 90년대 말에 나타났다.

1997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엔리께 뻬냐로사는 유권자들에게 기존의 도시개발 패러다임과 완전히 다른 선거공약을 제시하여 임기 3년의 보고타 시장에 당선되었다.

‘우리들이 원하는 보고타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선거공약에는 보도의 재건, 자전거 도로망의 건설, 배타적 버스 전용도로를 토대로 한 대중교통 시스템의 구축,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민간 운영자들의 경제적 보상 방식의 개혁 등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중앙정부의 도움을 전제로 1개의 급행철도노선의 건설을 약속했었다.

시장에 당선된 후 뻬냐로사는 그의 계획안을 1997년 말에 기존의 기술적 연구와 사례들을 참고로 하여 다시 유용성과 타당성을 재검토하고, 이를 근간으로 하여 보고타 시가 3개년(1998~2001) 동안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다시 학자, 상공인, 전문가협회 대표, 그리고 시민단체와 지방의회 의원 등 지역사회 대표들로 구성된 지역계획위원회와 시의회에 의해 공식 승인을 받았다.

이와 병행하여 뻬냐로사는 개발계획을 좀더 구체화하기 위한 상세계획을 작성하고, 시청 내 관련부서와 기관 간의 협력체계 구축과 제도적 조정,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기구의 창립을 준비하는 특별팀과 자문단 등을 조직하였다.
 
이런 일련의 노력을 하면서 뻬냐로사 행정부는 자동차 이용 제한 시책과 함께 ‘트랜스밀레니오’ 프로젝트를 최대의 역점사업으로 적극 추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보고타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하고, 더 나은 미래 비전을 갖도록 지역에 새로운 컬러를 입히고 상징물을 만드는 지역혁신체계로서 버스기반적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보고타 시는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브라질 꾸리찌바 시의 통합교통망 시스템에 깊은 영향을 받고 백지 상태에서 자신들의 교통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밑그림을 새롭게 그렸다.

이 계획안에는 노선총연장이 388㎞인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을 2016년까지 4단계로 나누어 개발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목표연도에 가서는 도시인구의 약 85% 정도를 신개념 버스인 트랜스밀레니오를 활용해 이동시키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담고 있었다.

이런 목표 아래 불과 3~4년에 지나지 않는 짧은 1단계 사업기간 동안 주요한 기반시설 공사를 완벽하게 마무리지었다. 즉, 3개 노선 41㎞의 중앙버스전용차로, 305㎞의 지선버스 차로, 57개의 정류장과 4개의 터미널, 1개의 중간차고지와 4개소의 주차 및 유지관리지역, 29개의 육교, 인도, 광장 및 기타 공공장소를 건설하고, 또한 기반시설물을 위한 다양한 지원설비와 통제센터 등을 갖추었다.

그리고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의 계획, 개발 및 통제를 전담하는 공기업 ‘트랜스밀레니오 S.A.’의 설립과 함께 다수의 민간 운영자들을 주요 파트너로서 새로 맞이하는 작업까지 끝냈다.

160명이 함께 타는 굴절버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보고타에 처음 도입된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은 비록 버스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운영은 지하철 또는 경전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 보다 훨씬 더 우수하고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최대 수송인원이 160명인 굴절버스는 방향당 1개 내지 2개 전용차선이 확보되어 있고 양쪽에 턱을 세워놓은 중앙버스전용차로 위를 고속으로 운행한다. 즉, ‘트랜스밀레니오’라 불리는 이 버스는 도로변의 건물이나 시설로 진ㆍ출입하는 차량이나 배달차량이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갓길이 아닌 큰 가로의 중앙을 달린다.

또한 통제센터에서는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과 버스 운전석 옆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도로사정과 승객수송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운전자와 실시간으로 교환하면서 배차간격과 이동시간을 조정하고 돌발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런 첨단기술로 운영되는 시스템 이외에도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에는 꾸리찌바 시의 원통형정류장과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아주 효율적인 정류장이 있다.

정류장의 구조는 우리 나라의 전철역과 비슷하지만, 자동문을 갖추고 있어 훨씬 안전하다. 중앙버스전용차로 상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각 방향에 1개씩 엇갈림형으로 설치하는 대신에 양 방향의 승객들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장소에 통합해 약 500여 미터마다 1개씩 정류장이 설치되어 있다. 이 정류장에 진입하려는 승객들은 대부분 장애인 친화적인 보행자 브리지(bridges)를 통해 쉽고 안전하게 접근한다.

[##_1C|1274606033.jpg|width=”500″ height=”36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트랜스밀레니오 정류장 (사진:박용남)_##]트랜스밀레니오 정류장은 정상인의 신속한 승하차는 물론,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섬세한 배려를 하고 있다. 우선 넓은 공간의 정류장에는 턱이 없는 자동문이 설치되어 있어 승객들의 안전 도모는 물론 수초만에 약 2백 명 이상의 신속한 승하차를 가능하게 하고, 휠체어 사용자 누구든 타인의 도움이 없이도 버스에 탑승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한 트랜스밀레니오 버스는 각 정류장의 승강대에 부착된 고무로 연결된 완충 부분에 빈틈없이 정확히 정차하고, 버스의 출입문을 승강대와 동일한 높이에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함께 어린이와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들도 아무런 차별 없이 사고의 위험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편안한 상태에서 신속하게 버스에 승하차할 수 있게 정류장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승객들은 359개의 정류장 개찰구와 시내 도처에 산재해 있는 90개의 판매소, 그리고 전자카드 회사에서 스마트카드를 자유롭게 구입하고, 이를 이용해 우리나라의 지하철에서와 마찬가지로 출입문을 통과할 때 선지불 방식으로 1,000페소(한화로 약 500원)의 버스요금을 지불한다.
 
이 때 정류장 출입구에 설치된 카드판독기에 내장되어 있는 통신장치가 승객의 진출입 정보를 곧바로 송신하고, 이런 방식으로 받은 정보는 중앙통제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어느 정류장의 승객이 과밀 또는 과소한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신속한 후속 조치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 보고타시의 고질적인 질병으로 지적되어 오던 낙후된 버스운영체계에 기술적으로 일대 혁신을 가져왔고, 동시에 요금 수입을 손바닥 보듯이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새롭게 열어주었다.

이외에도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불필요한 정차로 인한 승객들의 시간 낭비를 방지하고, 무료로 환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부 버스는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의 간선에 있는 모든 정류장에 정차하는 반면, 다른 버스들은 단지 소수의 정류장에만 정차하는 급행노선을 운행한다.

승객들은 버스요금을 추가로 부담치 않고 로컬버스에서 급행버스로 바꾸어 탈 수 있고, 또한 한 노선버스에서 다른 노선버스로 무료로 환승할 수 있다. 녹색의 지선버스는 중앙버스전용차로와 같은 배타적인 차선을 달리지는 않지만 4개의 중간통합역과 4개의 터미널과 연계되어 있어 도시 전역에 양질의 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공기업인 ‘트랜스밀레니오 S.A.’의 통제 아래서 민간업자들을 입찰을 통해 선정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보고타 시만의 독창적인 요금징수 및 분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엔젤콤 S.A.’가 징수한 운임수입은 ‘로이드 트러스트’에 매일매일 신탁기금으로 적립되고, 이 기금은 다시 4개의 간선노선 운영자와 5개의 지선버스 운영자, 그리고 시스템의 운영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공기업인 ‘트랜스밀레니오 S.A.’와 앞의 ‘엔젤콤 S.A.’ 등에게 1주일에 1차례씩 투명하게 정산한 후 배분해준다.

여기서 특히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간선노선 운영자와 지선버스 운영자에게 배분되는 요금수입이 브라질의 꾸리찌바 시처럼 버스에 탄 승객수에 따라 요금을 정산해주는 것이 아니고 주행한 ㎞에  따라 정산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오지노선 또는 적자노선으로 파생되는 운행기피 현상을 근원적으로 해결해주는 가장 주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트랜스밀레니오의 주요 특징들을 중심으로 이점들을 개괄적으로 고찰해보았다. 앞서 소개한 내용보다 우리 실정에 더 중요한 것은 트랜스밀레니오가 지하철이나 경전철과 같은 철도시스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건설비와 운영비가 저렴한 저비용 고효율의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이다.

건설비는 지하철의 1/10 이하 수준

미국 워싱턴 ‘메트로’의 건설비는 ㎞당 6천6백만 달러인데 반해 보고타 시의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 건설비는 ㎞당 5백만 달러(한화로 60억원)에 지나지 않는 저비용이다.

또한 세계의 거의 모든 도시철도 시스템은 운임수입만으로 운영되지 않고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야만 운영이 가능하다. 이와는 달리 보고타의 트랜스밀레니오는 승객당 1,000페소(한화 약 500원)에 지나지 않는 아주 저렴한 버스요금 수입만으로도 시스템의 운영관리비 충당은 물론, 민간버스 운영자에게도 적정한 이윤을 보장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저비용 고효율의 ‘급행버스 교통체계’가 도입된 후 보고타 시에는 괄목할만한 성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3년 2월 현재, 하루에 75만 명 이상의 승객을 수송하고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있는 간선노선에서는 경전철보다 많은 시간당 45,000명의 승객을 수송하고 있다. 그로 인해 트랜스밀레니오 버스 이용자들은 년 평균 223시간을 절약하고, 그들 가운데 9%는 자동차로 일하러 가던 사람들이었다.

앞서 고찰한 보고타의 트랜스밀레니오 시스템의 개발 경험을 보면서 우리들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맹목적으로 쫓아왔고, 앞으로도 쫓아가려 하고 있는 세계, 즉 자동차(자가용)에 의존적인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자동차 의존도가 높고 온갖 최첨단 철도 시스템을 운영 중인 미국마저도 더 나은 세계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다수 개발도상국의 전문가와 관리들은 여전히 잘못된 신화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고타의 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공익이 개인의 이익에 앞서는 것이라면 우리들은 도시에서 암세포 역할을 담당하는 자동차에게 그동안 내어 주었던 차선의 일부라도 버스에게 되돌려주는 노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우리들이 21세기에 만들어야 하는 도시의 모습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 지식공유를 허락해주신 박용남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글_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

2001년 ‘꿈의 생태도시 꾸리찌바’ 를 소개하면서 꾸리찌바 박으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 후 여러 곳에서 기고와 강연을 통해 신도시 건설에 집착하는 우리 도시 재생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는 자동차와 건설에 치우친 도시재생의 개념을 사람을 중심에 두는 개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브라질의 꾸리찌바시를 비롯한 해외 도시들의 참다운 도시 재생사례를 수집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계도시라이브러리는 우리 지역과 도시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국내외 사례를 수집하는 희망제작소의 프로젝트로서 국내외 전문가, 공공리더, 해외동포, 일반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집니다.
2009년 세계도시라이브러리는 주로 참다운 도시재생에 관한 사례를 모아 소개할 계획입니다. 도시의 속성상 끊임없이 제기되는 교통, 쓰레기, 주거 등의 문제를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방안으로 풀어가는 생생한 사례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박용남의 도시 되살림 이야기는  앞으로 여섯번에 걸쳐 매주 1회 연재될 계획입니다.  이 글은 세계도시라이브러리 블로그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세계 도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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