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좌담] 인구감소 지방소멸 시대, 지방정부 생존법②
지역 자원과 매력에 기반한, 아래로부터의 혁신 필요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2020년, 대한민국은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를 지나며 총인구 감소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저출생뿐 아니라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입니다. 아울러 2020년을 기점으로 수도권 인구가 총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도권 집중화 현상도 극에 달했습니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총인구 감소, 지방소멸과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처방해야 할까요? 희망제작소가 신년을 맞아, ‘인구감소 지방소멸 시대, 지방정부 생존법’을 주제로 진행한 전문가 좌담을 공개합니다.
패널 | 박진도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前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배규식 희망제작소 이사(前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前 국토교통부 장관)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이하 임주환)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과 고향사랑기부금제도가 올해부터 본격 시행됩니다. 이 두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이하 변창흠)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은 지방정부가 기획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한다고 하는데, 지방정부의 기금투자계획서에서 제시한 사업들을 보니 생활 SOC(기반시설)사업이 대부분입니다. 몇 곳을 샘플링해서 살펴보니, 기존에 각 부처별 보조금을 받기 위해 제안했던 사업들을 기금투자사업으로 다시 제출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을 통합적으로 분석해서 지역의 인구를 늘리거나, 지역의 활력을 높이거나,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들을 기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방식으로 지역소멸기금 사업을 계속 지원하더라도 지역소멸 위기가 극복된다는 확신을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박진도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이하 박진도) 지방소멸대응기금이 향후 10년간 10조 원을 배분한다는 것이잖아요. 많은 곳에 돈을 내려보내다 보니 인구감소지역은 2년간 최대 210억 원에서 최소 112억 원, 관심지역은 2년간 최고 53억 원에서 최소 28억 원밖에 지원되지 않습니다. 웬만한 시·군 연간 예산이 1조 원 규모인데, 100억 원 가지고 지역을 살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변창흠 교수님이 지적했지만, 실제 사업내용을 보면 기존 사업과 차이가 없어요. 그러니 ‘8억짜리 화장실’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전국에 출렁다리가 200개가 넘는다고 해요. 지자체가 비슷한 사업들을 경쟁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게 지방소멸 대응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런데 지금 지방에서 제출된 사업을 줄세우기 해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있어요. 지금과는 다른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변창흠 사실, 100억 원을 물리적 시설이 아닌 프로그램사업으로 기획하려면 내용을 채우기 어렵고, 집행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SOC사업이나 건축물사업은 토지비와 평당 건축비만 계산하면 총사업비를 추계할 수 있으니 계획수립이 간단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설치된 시설들은 향후 관리·운영하는 데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배규식 희망제작소 이사(이하 배규식) 지역에서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관계자들이 모여 공론화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수립한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과정을 컨설팅해 주어야 합니다. ‘지방정부가 계획을 짜와라, 평가해서 돈 줄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지역에서 자원을 찾아내고 제대로 된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하는 시스템을 중앙정부가 고민해야 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보다 마음이 먼저
박진도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인데요. 우리 정부가 설계한 제도는 시민들의 돈을 얼마나 끌어올 것인가에 매몰되어 있어요. 고향사랑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답례품으로 지역에 돈을 끌어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지요. 기부자의 입장에서는 10만 원까지 세금 공제하고 답례품을 받으니 이익인 셈이지요.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도권 중심, 성장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어려운 지역에 대한 이해, 지역에 대한 사랑의 마음, 관심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답례품도 문제죠. 무엇을 누구의 것을 답례품으로 할지를 두고 지역에서 분란이 생길 수 있어요. 답례품을 안 줄 수는 없겠지만 답례품보다 취지를 살리고, 지역에서 재원을 어떻게 잘 쓸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도시 사람들이 농촌을 찾는 이유로 환경, 문화, 공동체 등 여러 가지 가치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가치를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 사람들이 평소에 누릴 수 없었던 가치를 주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깨끗한 농촌 환경을 제공하거나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지역을 살리는 축제에 지원하거나 공동체를 살리는 사업들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변창흠 수도권 거주자 대부분은 지방출신이기 때문에 자기 고향을 지원할 의지도 있고, 관심도 많습니다. 그런데 현재 추진예정인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금을 내도 손해보는 것이 없어요. 고향사랑을 표현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인 후원금처럼 10만 원을 내면 고스란히 세액공제 혜택을 받고, 오히려 3만 원 정도의 답례품까지 덤으로 받으니 손해가 안 나요. 지역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답례품을 선정해서 기부금을 유인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절실한 사정과 추진할 정책의 진정성을 알려서 기부금을 유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역 청년들을 지원하니 기부해 주세요’, ‘지역에 문화예술단지를 조성하는 데 투자할 예정이니 후원해 주세요’ 하는 방식으로, 지역이 진정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을 홍보하고 후원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재산세 등 지방세의 일부를 본인이 희망하는 지자체에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적극 고려해야 합니다.
마을이 살아야 지방이 살고, 지방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임주환 지방소멸대응기금이나 고향사랑기부금 제도에 대해서는 세 분이 비슷한 문제인식을 공유하고 계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마지막 주제로, 앞으로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국내외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 시사점을 말씀해 주시지요.
배규식 지방소멸로 비수도권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수도권도 안양, 부천, 광명 등은 서울의 베드타운화 되어 있습니다. 서울로 가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경기도 지역도 어떻게 자기 지역만의 특성을 가진 곳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전국을 다녀보면 요즘 지방정부마다 전기차, 반도체, 수소 관련 산업을 유치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각 지역별로 부존자원이나 산업생태계 등을 고려해서 지역마다 고유한 산업발전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지역산업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부족합니다.
지방정부가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기회와 역량을 부여하여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대기업 중에 잘 나가는 것, 추세에 따라가는 것으로는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지역에 남아 있는 자원과 산업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변창흠 그동안 지역균형발전대책으로 중앙정부 기관의 지방이전, 사회기반시설의 집중투자, 지방대학 육성 등이 거론되었고, 최근에는 생활SOC 투자를 통한 삶의 질 개선이 제시되었는데요.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주택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방산업단지를 건설했는데 아버지 혼자 내려와 있고, 혁신도시를 건설했는데 가족들의 정착 비율이 낮아요. 혁신도시에서는 자녀가 초등학교까지만 다니다가 중·고등학교 때는 다시 도시로 빠져 나갑니다.
지역에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살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주택을 중심으로 해법을 찾으면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방에 제대로 된 주거공간이 마련되면 수도권 지역에서 지방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일자리, 교육, 생활여건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지방에 괜찮은 주거 여건이 마련되면 의외로 지방으로 갈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실제 함양군 서하나 괴산군 등의 사례를 보면,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입주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주택을 주로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봤지 균형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주거기능에 혁신, 일자리, 돌봄, 교육, 에너지 생산 등의 기능이 결합된다면 지역의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 단위로 복합화하는 주거플랫폼 사업을 추진한다면 지방에 인구가 정착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진도 중요한 것은 현재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겁니다. 농촌의 구조를 보면, 면을 살려야 읍이 살고, 소도시가 살아야 대도시가 살 수 있습니다. 거점 지역을 살리는 방식으로는 지역을 살리기 힘듭니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역경제의 실핏줄은 농촌입니다. 청년이 농촌에 오려면 병원, 학교, 가게, 문화 서비스 등이 살아야 하는데, 농촌이 죽어서 올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지방산업생태계가 붕괴된 상태입니다. 지역에 돈이 좀 돌아야 가게도 생기고 병원도 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농촌수당을 도입하자고 합니다. 농촌주민수당을 만들고, 공동체기금을 만들고, 지역을 위해 자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돈을 퍼주는 지역개발 보조금 사업은 반대합니다. 큰돈이 아니더라도 지역이 스스로 고민해서 자구책을 만들 수 있도록 공동체기금도 만들고 그러한 사업들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임주환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대안을 찾기 쉽지 않은 주제를 논의하기에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만, 어떻게 상황을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방소멸은 인구감소보다 청년의 도시이동이 문제라는 것, 그동안 실패한 정책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새로운 발상은 마을에서,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지방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말씀 등을 해 주셨습니다. 공간 단위를 고려한 주거플랫폼, 농어촌주민수당 등 새로운 접근법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지방소멸 대안을 고민하는 지방정부에 좋은 참고가 될 듯합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열띤 토론을 해주신 세 분께 깊은 감사 말씀 드립니다.
* 본 글은 좌담의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전문은 희망제작소가 발행하는 <목민광장 23호>에 실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