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축제, “눈덩이를 굴려라”

<박원순의 희망탐사 33>

‘안동’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모르긴 몰라도 많은 이들이 안동 하회마을이나 하회탈을 떠올릴 것이다. 한국인의 얼굴이라고도 불리는 하회탈은 하회별신굿에서 쓰이는 탈을 의미한다. 양반탈, 각시탈, 초랭이탈 등 하회별신굿에 쓰이는 하회탈은 우리에게 익숙한 탈이다.

계급사회였음에도 탈을 쓰고 사유와 풍자의 자유를 누렸던 옛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하회별신굿은 안동을 대표하고,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굿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안동의 하회마을과 그 마을 안에 있는 탈 박물관은 이런 안동의, 그리고 한국의 무형문화재를 보존하려고 하는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나 무형문화재는 단순히 박물관에만 놓여지는 것이 아니다. 옛 선조들이 탈을 쓰고 사유와 풍자의 자유를 만끽했던 것처럼, 하회탈은 하회별신굿에서 쓰여야 그 의미가 충분히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옛것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적 의미에 맞는 새것을 부가해야 장구한 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하회별신굿을 기반으로 해 한국의 다른 지역의 탈춤, 그리고 해외의 탈춤을 안동으로 끌어들여 함께 노는 신명나는 굿판이다. 하회별신굿과 다른 지역의 탈놀이, 그리고 지구촌 곳곳의 탈놀이를 엮어놓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어느덧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역의 축제로, 세계 탈놀이의 축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 끝에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지역과 세계를 엮어 전국의 1등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지역민의 힘과 지자체의 힘, 그리고 그 축제를 지역에 뿌리내린 문화예술인의 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그 중심에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가, 그리고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사무국장 권두현 씨가 있다. 한때 문화관광육성 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던, 지역민과 괴리된 채 행정력만으로 운영되던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권두현 씨가 사무국장으로 들어오면서 지역민과 지자체,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함께 하는, 지역에 뿌리를 내린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탈춤페스티벌의 탄생과 승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1997년 처음 개최됐다. 처음 이 축제를 기획한 것은 공연기획자 강준혁 씨였다.

“1997년에 강준혁 씨가 탈춤페스티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역에서는 국제축제를 해 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강준혁 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을 했었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지역과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지역에 내려와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고, 지역에 대해서 충분히 파악할 수 없는 한계도 있었을 것입니다. 문화는 시간을 요하는 문제인데 시간을 투자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축제는 지역주민들과의 충분한 교감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치러졌고, 지역에서는 그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첫 탈춤페스티벌을 치르고 난 뒤 지역주민들은 탈춤페스티벌을 위한 상설 사무국을 구성하자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을 사무국에 참여시키자는 요구가 나왔다. 그렇게 해서 안동대학교 민속대학원을 다니면서 풍물놀이패 ‘둥근’에서 활동하고, 지역 문화운동에 관여를 해왔던 권두현 씨가 1998년 4월 사무국장에 임명됐다.
[##_1R|1360333917.jpg|width=”332″ height=”458″ alt=”?”|▲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권두현 사무국장. ⓒ희망제작소_##] 권두현 사무국장이 사무국에 들어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지역민과의 연계, 즉 지역에 바탕을 둔 축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 탈춤페스티벌의 기획 포인트는 문화관광부에서 선정한 국내 13개의 탈춤과 외국의 탈춤공연단을 불러 공연장 지어놓고 매일 공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역문화인이 들어갈 틈이 없었죠. 개·폐막식마저 김덕수 씨가 연출할 정도였습니다. 지역축제에 지역민이 완전히 배제된 것입니다. 이런 구조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역문화인들을 모아 그동안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안동의 문화인들이 문화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관과 민의 개념을 없애는 데 노력했다.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 행위의 주체가 권한과 책임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문화행사에 기획자가 따로 있고, 진행자가 따로 있는데 기획자가 진행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권한과 책임을 관과 민에게 함께 부여했다.

지역문화인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굴러가는 시스템

프로그램을 짠 다음으로 권두현 국장은 탈춤페스티벌의 실무적인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기획과 진행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무대를 만들고, 조명을 설치하는 것 등을 직접 다 챙겼다. 그리고 지역의 문화단체들의 일꾼을 다 모아 행사마다 책임을 맡겼다. 지역의 문화인들이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간 것이다.

그 결과 지역문화인들은 지역의 문화축제를 스스로 이끌어간다는 자부심이 생겼고, 그 자부심은 오늘날의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키운 동력으로 작용했다. 또 권두현 국장은 내실 있는 공연프로그램을 위해 축제가 시작되기 6개월 전인 3월에 참가신청을 내게 했다. 공연단에 미리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제반사항이 종합적으로 이뤄지면서 축제는 준비되어 왔다. 이런 과정을 권두현 국장은 눈사람 이론에 빗대어 설명한다. 눈이 뭉쳐질 때는 한 두 사람이 하게 되지만 일정하게 커지면 누구나 그 눈덩이를 굴릴 수 있고 자동적으로 구르면서 커진다는 것이다.

누구나 눈덩이를 굴릴 수 있게 되는 것은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 시스템은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시스템을 말하기도 하지만 지역민들이 참여하고, 지역민들이 주체가 되어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지역민들이 축제에 참가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지역의 여러 이해단체들은 자신의 이해를 위해 축제에 참여하려고 한다. 이들을 어떻게 버무리느냐 하는 것도 축제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권두현 국장은 여러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지역민들을 탈춤페스티벌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조화할 수 있도록 축제 자체를 이들에게 이해시켰다.

“상수도와 하수도, 전기설비가 축제가 관계없는 것 같지만 다 관계가 있습니다. 상가연합회도 필요하고, 바르게살기운동 단체도 다 필요합니다. 축제는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모든 사회영역이 다 관련될 수밖에 없습니다. 축제가 여러 알력 중에서 움직이다보니 백화점처럼 될 수도 있지만 이 모든 사람들의 활동을 축제 안에 담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축제는 다양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인들만의 잔치가 아닌 것입니다.

경제인들은 돈을 벌면 되고, 정치인들은 축제를 잘 진행해서 정치적 이득을 가져가고, 문화인들은 공연을 잘 하면 됩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장사를 하고 싶어 하고 국악을 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국악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마냥 허용하면 축제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이들이 축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일본의 관광객을 전세기로 태워오다
[##_1L|1304618135.jpg|width=”430″ height=”324″ alt=”?”|▲ 2006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무대위로 올라와 흥겹게 춤을 주고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_##] 지역의 축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주로 논의되곤 한다. 문화가 중요하지만 지역민의 입장에서는 축제의 경제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렇게 준비한 축제가 지역민과 다른 지역 사람들, 그리고 넓게는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다면 축제의 의미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권두현 국장은 “축제를 통해 시민들이 희망을 가져야 한다.”며 “경제적 효과가 아니면 시민들이 단기적으로 희망을 가지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경제적 효과가 나지 않으면 지역민들이 침울해진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지역민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던 위치에 있는 권두현 국장으로서는 이 부분을 도외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복안을 내놓았다.

“시민들의 관심은 관광객의 숫자였습니다. 숫자가 많으면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도외시할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의 지지가 있어야 더 좋은 축제로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98년과 1999년에 대한항공과 더불어 일본의 관광객을 전세기로 태워서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 비록 이렇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보러 온 일본인이 300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것은 지자체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지역민들은 비관론적인 시각으로 페스티벌을 지켜봤지만 1998년 축제가 끝나고 나서는 ‘가능성이 있다’, ‘할만하다’는 긍정적인 인식이 높아지고 예산도 더 많이 배당되었습니다.”

지역민들의 축제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권두현 국장은 더 많은 이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는 지역문화인들이 참가하는 축제, 그리고 지역민들이 참가하는 축제가 아마추어리즘이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생각했다.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공연단을 지역의 발레학원, 플루트 학원, 학교의 동아리 등으로 확장시키고, 이들을 통해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 방안을 마련했다.

“가장 위대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안동시민이 나와서 탈을 쓰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브라질 리오의 축제가 그런 점에서는 훌륭하다고 봅니다. 축제 현장에 가는 이유는 문화공연 등을 보러 가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축제현장에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관심에서 문화적 행위로 발전해야

권두현 국장은 축제가 축제다워야 한다고 여긴다. 한국의 굿이 한 마을의 대표적인 축제였지만 그런 형태의 축제는 이미 사라졌다. 축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관변 축제에 동원되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즐기는 축제, 참여하는 축제가 없어진 것이다. 권두현 국장은 “축제의 시공간 속에서 문화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즐거움을 찾는 것”이 진정한 축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축제를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권두현 국장은 축제를 살리는 단계를 세 개로 구분한다.

그는 “우리 삶에 축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첫 번째 단계이고 어떻게 축제를 할까, 즉 축제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두 번째 단계이며, 행위의 합일을 이루는 과정이 세 번째 단계”라고 말한다.

권두현 국장은 진정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탈로 장사를 하도록 유도하면서 자꾸 학습시키는 방법”을 통해 관심을 불어넣어줘야 하고, 지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은 관심을 문화적 행위로 연결해야 한다. 권두현 국장은 “탈춤페스티벌은 안동시민에게 일단 관심을 가지게 했고,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했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탈 프로그램을 가지고 진짜 축제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쉽지가 않아요. 관심을 문화적 행위로 연결시키는 것은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탈을 산업화·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탈을 체험학습용으로 만들려고 하고 탈을 썼을 때 노는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현대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댄스를 개발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탈을 쓰고 비보이춤도, 나이트 춤도 출 수 있는 것입니다.”
[##_1C|1278484003.jpg|width=”549″ height=”410″ alt=”?”|▲ 2006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주공연장 모습.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_##] 권두현 국장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을 문화적 행위로 연결 짓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근대를 지나 현대로 오면서 축제에 대한 전통이 사라졌고, 그 사라진 축제를 앞으로 새로운 형태로 복원하고 새롭게 재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한 시간이 걸릴지라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성공시키고자 노력한다. 그것은 “이 페스티벌의 성공은 안동의 축제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축제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권두현 국장은 세계 탈문화의 중심에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앞장서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탈은 세계의 보편적 문화고, 탈을 이해하면 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탈을 통해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고, 각 민족의 고유 탈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권두현 국장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계기로 지난해 10월에 세계 35개국 대표들이 참여한 ‘세계탈문화예술연맹(IMACA)’을 만들고 앞으로 구체적인 기획을 세우고 있다.

“일단 심포지엄을 열고 매년 5개국을 정해서 탈춤페스티벌 행사 중에 기획전을 열 생각입니다. 태국의 문화부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났고, 인도네시아와 부탄과 교섭중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탈의 원본을 기부해 주면 전시를 하고, 이를 3D 입체파일로 제작해서 줄 예정입니다. 이런 탈을 매년 모아 세계마스크박물관을 장차 만들 계획도 있습니다. 세계마스크박물관에는 국가관, 혹은 민족관 등이 만들어져 세계 각국의 탈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0년쯤 지나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계획이 성사될 경우 세계의 탈문화가 안동에 형성될 것이고, 이는 국가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처음에는 미미한 축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성공한 축제로 올라서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세계탈문화의 중심에 서고자 한다. 안동하회별신굿이라는 안동지역의 고유한 굿에서 시작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성공으로 만들어진 세계탈문화예술연맹,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세계마스크박물관. 지금 안동은 웅대한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다.

면담일시 – 2007년 2월 12일

면담장소 – 경북 안동시 육사로 80 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면담인사 – 권두현(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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