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 스펙인 시대, 청년 사회적기업가의 ‘소셜’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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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7) – 장종욱 ‘협동조합 소이랩’ 대표

장종욱 대표는 입사한지 1년 만에 조합총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후 청소년교육에 주력하던 ‘꿈이룸협동조합’을 기술에 기반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협동조합 소이랩’(soilabcoop.kr)으로 바꾸고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디자인씽킹을 활용한 리빙랩 프로젝트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성장해온 소이랩은 디자인씽킹에 기반한 문제발굴 및 솔루션 도출 과정 설계 툴킷(소이씽킷)과 퍼실리테이터 도구 툴킷(위아씽킹)을 개발하고,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도 운영 중이다. 팬데믹 시기를 굳건히 버티며 10여 명의 직원들과 함께 소이랩을 이끌어온 31세의 청년기업인 장종욱 대표를 만났다.

▲ 협동조합 소이랩 장종욱 대표

신입사원이 대표가 된 후 회사 명칭을 ‘소이랩’으로 바꾸고 사업분야와 비전도 새롭게 정립했어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가요?

입사 초기에 대구시에서 하는 소셜리빙랩 사업에 참여했는데 주제가 쓰레기 문제였거든요. 마침 제가 ‘디자인씽킹’ 관련 교육을 받은 참이라 거기서 배운 대로 현장에서 인터뷰와 관찰을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찾아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하고 피드백하는 일련의 과정을 적용해 과제를 수행했어요. 배운 걸 곧장 써먹는 게 재밌기도 하고 실제로 적용해보니 ‘이게 진짜 되네?’ 싶기도 해서 신나게 재밌게 하다 보니 최종상금까지 받았죠. 이렇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데 돈까지 벌 수 있는 사업을, 안 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웃음) 마침 소이랩의 전신인 꿈이룸협동조합은 새로운 비전과 리더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 막중한 책임이 ‘리빙랩’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 뜬 저한테 주어졌던 거예요.

소이랩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말씀해주신다면?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국민해결 2018’의 일환으로 진행한 ‘산격1동 기억보듬길 조성 리빙랩’ 사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아파트엔 어르신들이 많이 사셨는데, 가로등이 없어 어둡고 사고위험이 높으니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았지요. 그런데 저희가 현장을 찾아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관찰해보니까, 어르신들은 밤에 밖에 다니시질 않기 때문에 가로등은 별 문제가 아니었고, 오히려 이웃 간 갈등이 문제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인근 복지관이나 경로당에 가시지 않고 매일 같이 아파트 한켠 공터에 모여 술·담배를 하시니 주민들이 불편해하고 가끔 큰소리도 나는 상황이었어요.

어르신들이 좀더 생산적이고 건강한 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인식을 바꾸고 환경을 개선하자는 게 저희가 생각한 해법이었어요. 나이 들면서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출입구나 숫자 같은 것들을 인식 못 하시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도형과 색깔로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인지건강디자인’을 아파트 곳곳에 적용하고, 야외에 커뮤니티 공간도 새롭게 조성했어요. 두 달 동안 주민들을 설득하고 크고 작은 토론회를 열고 교육도 하면서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문제를 풀어나갔죠. 프로젝트가 끝나고 후속조사를 해보니 그렇게 조성된 공간을 주민들이 스스로 청소하며 잘 관리하고 계시더라고요.

그 프로젝트가 화제가 되어, 얼마 전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산격1동의 공원에도 인지건강디자인을 적용한 환경개선 사업이 추진되었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생각해낸 해법과 사례가 확산되는 건 참 좋은 일이고, 보람있는 일이에요. 다만, 저희는 환경개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걸 통해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공동체 문화가 변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주민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갔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진행된 사업의 경우 일반기업이 맡아하면서, ‘인지건강디자인’이라는 기술적인 부분과 ‘환경개선’이라는 결과에만 치중한 점이 아쉬워요.

문제해결 결과 못지 않게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긴데, 소이랩만의 강점과 차별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네요. 현장에서 주민과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애초 의도와 다른 해법이 나오기도 하나요?

문제의 당사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져요. 어르신 고독사 예방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처음엔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이용해서 일정기간 물 사용량이 없으면 경고해주는 방식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장의 사회복지사들과 인터뷰해 보니 ‘움직임이 없는 상태라고 알려주는 건 예방대책이 아니라 사후대책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듣자마자 전혀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사회복지사들이 어르신들을 면대면으로 접촉해 관리하는 데 용이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더 유용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어디서나 편하게 접속해 업무내용을 공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CRM 기반 ERP 시스템을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죠. 프로토타입 형태로 실증도 했는데 참여한 사회복지사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 소이랩이 개발한 디자인씽킹에 기반한 문제발굴 및 솔루션 도출 과정 설계 툴킷(소이씽킷)과 퍼실리테이터 도구 툴킷(위아씽킹)

요즘 주력하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리빙랩과 스마트시티 쪽으로, 기술을 기반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기술과 사용자의 괴리를 줄여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사이 리빙랩이 많이 대중화돼서 요즘 서울에 있는 연구소나 기업과 입찰경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구 지역의 문제는 대구시민을 위한 소이랩에 맡겨주십사 이번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고요(웃음), 저희의 주력사업은 아니지만 요즘 로컬 기반 임팩트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교육하거나 워크숍을 진행해달라는 의뢰가 부쩍 많아요.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데다 창업이 스펙인 시대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창업으로 연결하는 데 관심 있는 청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장종욱 대표와 비슷한 일을 하고 싶은 청년들은 어떤 역량과 준비가 필요할까요?

일종의 자기 세뇌라고 할까요, 사고의 흐름부터 리부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교육과정에서 짧은 시간 안에 정답을 찾는 훈련을 계속하잖아요. 그 역량을 갈고닦아서 대학에 입학하면 성공했다고 칭찬받잖아요. 그래서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깊이 고민하는 것, 심지어 그렇게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올 수 있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죠. 저도 처음엔 영 낯설어서 무조건 1분 이상 고민한 후 답을 하는 원칙을 세워보기도 하고, 우리가 이렇게 푸는 게 맞는지 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옳은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도 했거든요.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이 분야에 더없이 적합한 인재라고 하겠습니다(웃음).

* 인터뷰 진행: 안영삼 미디어팀 팀장, 이미경 미디어팀 연구위원
* 인터뷰 정리: 이미경 미디어팀 연구위원 | nanazaraza@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