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년,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70%에 달하는 대학 진학률과 세계 3위를 차지하는 해외 유학생 수(유네스코통계, 2014). 이 수치만 보면 한국의 청년들은 교육의 기회에 있어서만큼은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문을 통과하기가 어렵다. 대학만 들어가면 미래가 보장되고 탄탄대로인 시대는 끝났다. 신자유주의는 ‘호모 솔리타리우스(Homo Solitarius?외로운 인간)’라는 취업 빙하기 한국형 신인류의 탄생을 가져왔다. 청년들은 삼포, 오포, 칠포, 잉여, 달관세대로도 통한다. 이러한 좌절감과 패배감에 눌려 있는 20대들이 한자리에 모여 1박 2일 동안 광복 100년을 맞이하는 30년 후의 미래사회를 상상했다. 2015년을 20대로 살고 있는 청년들은 어떤 삶을 원하고 있을까?

청년들의 미래상상 속에서는 포기하는 것이 없었다. 연애, 결혼, 출산, 집, 관계, 꿈, 희망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재정립할 수 없는 현실 속 청년들이 상상한 미래는 ‘성공 기준’부터 달랐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한 인생이란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생태마을에서의 삶’이었다. 청년들은 보편적 가치가 인정받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하고 있었다. 2015년을 관통하는 성공의 개념과는 상반되는 ‘관계’와 ‘공유’, ‘협동’과 ‘협치’를 중요시하는 가치 속에 정서적 유대감과 자아실현이 바탕이 된 안정적(주거와 일자리)이고 유연한 삶을 그려냈다. 이는 청년정책 구상의 4대 핵심가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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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은 미래교육을 ‘교사’와 ‘학교’ 너머 ‘부모’와 ‘마을’에서 찾았다. 그들이 꿈꾸는 ‘일’에는 정당한 고용계약과 안정적인 급여보다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과 관계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권을 보장받는다면 생애주기별 필요한 복지는 마을 이웃들과 ‘새로운 가족’을 형성해 구축할 의지를 비췄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의 질적 성장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시민성에 대한 성찰과 함께 직접 지역과 국가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싶어 했다.


청년들은 말했다. 우리는 늘 복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살면서 무언가를 욕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적도 없었다고. 그들은 그들이 살 광복 100년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차이를 메우는 평등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들이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로는 소통, 융합, 공감, 협동, 공유, 지속가능성, 열린 교육, 건강, 참여, 평화로 나타났다. 개인의 가치가 이루어지기 위한 사회구조의 창구로는 지속가능한 경제제도, 대안적 교육체계, 여가구조, 참여체계, 법률체계(기본소득, 기초임금 등 사회권 보장), 편의구조, 안전체계, 보건체계라는 8대 체계가 도출되었다. 청년세대의 위기는 경제적 생존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가 한국사회의 비민주적 제도와 공유 감정 및 협력적 정서의 결핍과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한국 해외 이민자들의 국적 포기가 공식적으로 집계 가능한 아시아 선진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 중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중 명문대 출신의 20~30대들이 북유럽 이민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의 안전망 부재와 불공정한 룰 속에서 경쟁에 지친 청년세대가 삶에 대한 불안과 절망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안정한 삶과 좌절의 기운이 세대혐오나 인종주의로 표현되고 동시에 ‘갑’과 ‘을’이라는 적대적 이분법으로 대리 희생자를 구성해가는 현재의 문화 속에서,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상상력이 ‘나’의 희망과 권리가 아니라, 성별, 인종, 종족, 계층, 세대와 상관없이 ‘누구라도’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상상력의 확장이 필요하다.

한국의 성장 패러다임은 경제 성장 이외의 가치를 상실시켰다. 가치 상실의 시대는 부가 편중되고, 자원의 소비는 불균형을 이루고, 생태가 파괴되며, 공동체가 해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사회는 이제 “미래세대가 그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반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

성장 패러다임으로부터 비롯된 경쟁·속도·규모의 신봉이 만들어낸 양극화, 생태계 파괴, 공동체 붕괴를 해결하는 것은 개별 사안의 문제점 중 일부를 개선한다고 해서 절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 패러다임에서 발전 패러다임으로, 지속불가능한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로 변화할 때 한국사회에서 잊고 있었던 가치가 복원되고 과거의 구조가 가진 문제점이 치유될 수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적 인간으로 인간답게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개인 삶’을 재구성하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 기업과 시민사회, 국가의 협치를 통한 사회적 재생산에 대한 큰 그림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임금차별과 학력차별을 용인하는 노동정책, 사교육에 의해 대체된 교육제도, 중질환에 걸리면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의료보장제도, 시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개발정책은 더는 사회권을 보장하는 복지제도가 아니다. 청년의 사회권 강화의 궁극적 목표는 경제적 만족이 아니라 행복의 추구이며,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미래복지는 소셜픽션에서 청년들이 상상한 이야기처럼 물질적 복지를 넘어 ‘생태친화적이며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서로의 가치를 전수받고 전수하면서 살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년들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탐색하여 삶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의 마련과 제공을 제안하고자 한다. 덧붙여, 건강한 대안적 삶을 통해 청년들 스스로 사회를 재구성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이 방안은 청년이 주인이 되어 자신과 이웃의 삶을 재구성해봄으로써, 특정한 한 분야 또는 하나의 정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글_유혜승 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hsyoo@makehope.org

* 결코 포기하지 않은 청년들의 미래상상 이야기를 담은 희망리포트 <청년이 제안하는 광복 100년 한국 사회>이 6월 중 발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