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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의 일본통신 (23)
UDCK의 마을만들기 이야기 – 커뮤니티가 살아 움직이는 마을만들기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츠쿠바(筑波)익스프레스를 타고 27분을 달리면 ‘가시와노하 캠퍼스’역에 도착한다. 지바 현 북서부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지금 ‘가시와노하 캠퍼스시티 프로젝트’라 불리는 도심 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가시와노하 프로젝트는 여느 역세권 개발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행정기관(가시와 시)과 대학(도쿄 대학 및 지바 대학 가시와 캠퍼스), 기업(미쓰이 부동산)이 협동으로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여기에 주민들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말 그대로 ‘지역 주도형 마을만들기’의 모델을 보여주는 셈이다.

역 개찰구를 통과하면 넓은 목재 테라스를 갖춘 UDCK 이름의 녹색 간판을 단 단층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UDCK즉 ‘사단 법인 어번 디자인 센터 가시와’이다. UDCK는 주민 커뮤니티 활동의 플랫폼이자, 도시 디자인과 이노베이션의 중심이 되고 있다. 2006년 도심 개발과 동시에 설립돼 주민 참가 및 지역 주도형 마을만들기를 기획하면서 가시와 시, 대학, 기업과 주민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마을만들기 중간지원조직이다. 설립된 지 10년이 채 안 되지만 그동안 창조적인 마을만들기 활동을 선보이면서 지금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으로 5회에 걸쳐 UDCK의 활동을 중심으로 가시와노하 캠퍼스 시티의 마을만들기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5년 츠쿠바 익스프레스선이 개통되면서 가시와 시 북서부 지역에 가시와노하 캠퍼스역이 새로 생겼다. 이를 계기로 2006년부터 역 주변 273ha의 광대한 토지에 2만 6000명 인구의 생활 거점이 새로 개발되고 있다. 이 지구를 가시와노하 캠퍼스시티라고 부른다. 이 곳에서는 관?민?학이 공동으로 도심 개발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역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도시디자이너를 표방하는 UDCK를 중심으로 환경과 건강, 창조, 교류를 콘셉트로 마을 만들기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UDCK의 주민 주체 마을만들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주민의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다. 수없이 다채로운 주민 활동을 소개한다.

모두가 만드는 토요 장터 ‘마르셰 코로르’

지난 토요일 아침, 가시와노하 캠퍼스시티역 광장은 각종 노점들과 이벤트, 그리고 이를 즐기는 주민으로 북적거렸다. 지역의 맛집, 농가의 신선한 유기농 야채, 빵과 과자, 공예품, 와인숍, 꽃집 등 부스에 모인 시민은 한가로운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각 클럽과 지역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각종 이벤트와 퍼포먼스 또한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흥미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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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셰 코로르 전경

이날은 빵 만들기, 꿀 짜기 등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 지역 레스토랑 오크빌리지의 요리사와 보호자들의 보조를 받으며 아이들이 직접 운영하는 ‘피노키오 식당’이 큰 인기를 끌었다. UDCK테라스에서 열린 ‘피노키오 온 스테이지’라는 아이들의 공연으로 흥겨운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었다.

이 행사는 2009년부터 실시돼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토요 장터 ‘마르셰 코로르’다. ‘마르셰’는 ‘시장’, ‘코로르’는 ‘다채롭다’란 뜻의 프랑스어다. 이름 그대로 ‘마르셰 코로르’에는 각양각색의 점포들이 들어서고, 여름에는 납량 특집 이벤트, 가을에는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계절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미 근처 주민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매월 1회 개최하는 도시형 장터 마르셰는 ‘모두가 만드는 모두의 마르셰’를 표방하면서 지역 상인, 주민, 학생, 아티스트 등 지역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있다. 주민은 웹사이트를 통해 활발하게 정보를 나누고 홍보를 하면서 매회 다양한 점포와 이벤트를 구성한다.

이날 눈길을 끈 것은 ‘가시와 장난감 병원’이다. 망가진 장난감들이 장인의 손을 통해 새로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도쿄대학생들이 만든 ‘3.11동일본 대지진 재해지역의 상품전’ 부스에는 나눔의 손길이 이어져서 이날 마르셰를 더욱 뜻깊게 했다. 이처럼 마르셰는 주민이 함께 활동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나눔의 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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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셰 코로르에 참가한 아이들 도쿄대 학생들이 동일본 대지진 재해 주민들이 만든 상품을 판매 중이다.

마을이 아이들을 키운다 ‘피노키오 프로젝트’

‘피노키오 프로젝트’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성장해 가는 동화 속 피노키오처럼 어린이들이 일일 직업 체험과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창조성과 사회성을 키우는 어린이 체험 교실이다. 2007년 마르셰 코로르에 참가한 아이들이 꽃가게, 야채가게, 카페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했던 ‘피노키오 마르셰’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수퍼마켓, 꽃집, 카페, 영화관, 치과, 은행 등 지역의 70여 개 사업장이 참가하여 아이들의 일일 체험 교사가 되어주고 있다. 참가하는 아이들에겐 실제로 일하는 것처럼 지역 이벤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통화 Pi(피)를 보수로 지급해 일하는 어려움은 물론 보수를 받는 즐거움과 돈을 쓰는 방법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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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포트 가시와노하 지점에서 개최되는 피노키오 프로젝트 피노키오 모자를 쓴 아이들이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2009년부터는 버려진 포장 상자를 사용해 아이들이 꿈꾸는 마을을 직접 만드는 ‘피노키오 시티’, 지역 아티스트들과 함께 하는 ‘피노키오 워크숍’ 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예술 체험 행사도 직접 개최하고 있다. 아이들의 아이디어로 개발된 ‘피노키오 마르셰’ 한정 메뉴가 음식점의 정식 메뉴로 속속 등장하는 소득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피노키오 가시노하 핫도그’는 마을의 인기 메뉴가 되었다고 한다.

피노키오 프로젝트는 어린이들을 위한 커뮤니티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또한 지역의 사업체와 주민, 학교 등 어른들의 연계를 강화하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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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DCK 앞에 오픈한 피노키오 카페 / 아이들이 개발한 메뉴 피노키오 가시노하 핫도그

마을만들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커뮤니티 클럽’

주민이 참여하고 주체가 되는 마을만들기는 다양한 커뮤니티 클럽 활동이 있기에 가능하다. 대부분 새로 이주한 주민은 UDCK를 통해서 원하는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클럽을 조직해 왔다. 네이쳐 킷즈(자연놀이)클럽, 에코 클럽, 장난감 병원, 텃밭과 정원 가꾸기 등 주민의 친환경 건강 생활 클럽부터 사진, 영상 만들기, 리듬 체조 등 취미 활동 클럽과 유학생과 함께 하는 어린이 영어 클럽, 국제 교류 클럽 등에 이르기까지 그 수는 20여 개에 이른다.

초등학생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멤버가 참여하고 있는 ‘가시와노하 벌꿀 클럽’은 고대부터 인간과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꿀벌 키우기를 즐기면서 양봉과 농업, 그리고 도시생활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있다. 채취한 벌꿀을 마르셰 등에서 직접 판매하고 계절별로 재미있는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지역 주민과 교류한다.

2001년 아메리카에서 탄생했으며 2005년 미일정상회담 때 부시 대통령이 고이즈미 수상에게 선물해서 유명해진 이동 로봇 ‘세그웨이’는 근거리 교통 수단은 물론, 한적한 숲길 등에서 즐길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차세대 이동 수단이다. ‘가시와노하 세그웨이 클럽’은 일본에서는 선진적으로 이 세그웨이를 도입해 보급 활동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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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스웨이를 즐기는 세그웨이 클럽 / 마르셰에서 재배한 벌꿀을 판매하는 가시노하 벌꿀 클럽

이처럼 마을 클럽은 새로 형성되는 지역 가시노하에서 주민의 결속력을 높이고 마을만들기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마을 클럽이 활발하게 운영될 수 있었던 데는 자원봉사자로 참가하는 ‘마을 선생님’들의 힘이 크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가시와노하에서는 지역의 꽃집 주인, 요리사 등 전문가 나 관심 있는 주민 22명이 ‘마을 선생님’으로 등록해서 마을 클럽의 활동을 돕고 있다.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드는 마을 방송 ‘K-stream’

지역 주민이 만들고 지역 주민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마을 방송 K-stream은 인터넷에 접속하면 누구나 시청할 수 있다. 지진 모니터, 지역 전시회 등 주민 생활 정보부터, 지역 클럽 활동, 마을만들기 현장 등 주민이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다루고 있으며 초대 손님도 매우 다양하다. 운영하는 스텝 대부분이 방송을 처음 해보는 주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진행이 매끄럽고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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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stream 방송 모습

작년 11월 20일에는 개국 7주년 기념 파티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날 기념 행사로 가시와 시 부시장을 비롯해서 관계자들이 참석한 마을만들기 토론회가 열렸다.

‘이노베이션이 이뤄지는 도시’, ‘도시의 규모를 작게 하고 지역 사회의 재생과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를 지향하는 콤펙트 시티’, ‘톱다운의 관주도가 아닌 지역 매니지먼트를 주도하는 UDCK와 같은 타운 매니저의 활동’ 등을 주제로 의미 있는 토론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순서로 UDCK에 기대를 걸고 있는 많은 시민의 메시지가 전달됐다. ‘지속가능해야!’, ‘디자인이 중요’, ’가시와 시 전역으로 활동을 확대’, ‘보다 열린 공간으로’, ‘여성의 힘이 중요’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전달돼 마을만들기에 대한 시민의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더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가시와노하 캠퍼스타운의 주민 활동은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민이 주체가 되는 커뮤니티 활동은 새로운 개발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으며, 새롭게 모인 주민이 서로 화합하고 환경과 건강, 창조와 교류의 마을을 만드는 바탕이 되어 가시와노하 캠퍼스시티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westwood@makehope.org)
    류현영 (도쿄 대학 신영역창성과학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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