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지역재단은 지역주민들의 기부로 기금을 조성해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사용되도록 배분하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민간 지역재단으로 2006년 천안풀뿌리희망재단이 설립된 이후 부천희망재단, 성남이로운재단, 안산희망재단, 인천남동이행복한재단이 설립되었습니다.


기부문화가 척박한 한국에서 민간 지역재단들의 자생적인 활동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혀가며 지역의 공익활동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한국의 지역재단을 소개합니다.

지난 연재에서 안산희망재단이 세월호 참사라는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지역에 필요한 활동을 어떻게 지원했는지 소개했습니다. 성남이로운재단 소개에서는 지역재단의 철학과 설립 과정을 들어보았고, 부천희망재단 소개에서는 지역 기부문화를 바꾸는 모금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풀뿌리의, 풀뿌리에 의한, 풀뿌리를 위한 지역재단
– 천안풀뿌리희망재단

이번에 소개할 천안의 풀뿌리희망재단은 한국에 가장 먼저 설립된 지역재단입니다. 천안은 풀뿌리 시민활동이 활발한 지역으로 손꼽힙니다. 지역에 이슈가 생기면, 기존 단체들이 힘을 모아 새로운 단체를 인큐베이팅 해왔습니다. 이런 역사 속에서 탄생한 천안풀뿌리희망재단은, 지역의 풀뿌리 활동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네트워크 안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지역재단이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만들어낸 변화는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듣기 위해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풀뿌리희망재단 박성호 상임이사를 만났습니다.

한국 최초의 지역재단 탄생

희망제작소(이하 ‘희망’): 풀뿌리희망재단이 한국 최초의 지역재단인가요?

박성호 천안풀뿌리희망재단 상임이사(이하 ‘박성호’): 그렇습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출연자를 통해 재원이 조성된 것을 지역재단이라고 보는 기준도 있어요. 그 기준으로는 아름다운재단을 지역재단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만, 지역 공동체에서 모금과 배분 활동을 하는 곳을 지역재단으로 본다면 풀뿌리희망재단이 최초라고 봅니다.

희망 : 어떻게 설립하게 되었나요?

박성호: 제 얘기에서 시작하자면, 천안에서 YMCA 총무를 하던 97년에 미국 비영리재단 연수를 가게 됐어요. 미국에서 비영리에 마케팅 요소가 융합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비영리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재단도 그때 알게 되었는데요, 지역재단들이 재정 걱정을 덜 하고, 자기 사업 계획을 충실하게 짜서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지역마다 지역재단이 있고, 어떤 곳에는 한 지역에 여러 개 지역재단이 있는 걸 보면서 앞으로 우리 지역에도 지역재단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활동하면서 받았던 상처가 떠올랐어요. 돈이 없어서 늘 쪼들려야 했던 일, 활동가의 성장에는 거의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도요. 그렇게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2000년도에 아름다운재단이 생겨서 기부 문화를 확산하고 비영리단체를 지원하는 것을 보았죠.

2005년에 우리 지역 활동가 한 분이 막사이사이상 떠오르는 지도자 부문을 수상하게 돼서 상금 5만 불(약 5,000만 원)을 타게 됐어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논의를 했죠. 그 상을 받게 된 이유가 지역 풀뿌리 인큐베이팅 성과였어요. 그래서 지역 안에서 전문적인 풀뿌리인큐베이팅센터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처음에는 인큐베이팅센터를 발전시켜서 지역재단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로 시작됐지만, 논의가 진전되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바로 지역재단을 만들자’고 이야기가 됐어요.

2006년 3월 재단 설립추진위원회 15명이 구성됐고, 7월에 발기인 150명을 모았어요. 콘셉트는 이랬어요. 최초의 기부자 1인이 15명의 참여 준비 주체를 만들고, 150명의 창립 발기인을 모집해서 1,500명의 기부자를 만들고 나아가 1만 5천 명의 기부자를 모으자. 그때 발기인이 143명이 됐어요. 약 3억 4천만 원 모금했고요. 이 3억 원을 기본 재산으로 출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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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서 꽃핀 풀뿌리 운동

박성호 : 천안은 상대적으로 네트워킹이 잘 되는 편입니다. 97~98년에 시민운동에 대해 ‘시민운동이 백화점식이다’라는 비판이 있었어요. 즉 대안 제시 없이 모든 분야에 이슈 파이팅을 하고 있다는 문제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다’라는 비판이었어요.

그래서 고민했던 것이 ‘분화’예요. 백화점을 전문 숍으로 만들듯이, 시민단체들을 영역별로 분화해서 그에 걸맞는 전문적 리더십을 찾고,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가자는 거죠. 그것을 우리는 인큐베이팅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인큐베이팅을 시작했습니다. 지역에서 계획적으로 인큐베이팅 한 것이 천안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었어요. 지금은 아이쿱으로 들어갔고요. 천안 녹색소비자연대도 만들고, 복지세상을열어가는시민모임(이하 ‘복지세상’)이라는 단체도 만들었습니다. 복지세상이 98년 만들어지면서 거기서 다시 복지 영역을 세분화해서 단체를 만들었죠. 지역에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요. 아동 이슈나 장애인 생활 시설 이슈 제기되면서 ‘미래를여는아이들’과 ‘충남여성장애인연대’가, 노인복지 분야로 ‘느티나무노인복지센터’를 인큐베이팅했어요.

이외에도 IMF 시기에 단체가 많이 생겼어요. KYC, 환경운동연합, 평등교육학부모회 등 여러 영역별로 시민단체들이 생기면서 이 단체들과의 연대와 네트워킹이 이뤄졌죠. 의제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압박하기도 하고, 저희들이 스스로 대안을 찾기도 했죠.

희망 : 천안에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은 뭘까요?

박성호 :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단체가 다 가져가는 게 아니라, 지역에 내놓으려는 문화가 쌓인 것 같아요. 또 다른 이유는 NGO 중에서도 사회복지 영역이 네트워킹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는 직접 서비스하는 기관이 많은데, 천안에서는 애드보커시 활동도 활발해요. 복지세상은 예산을 분석해서 제안하고 ‘참여예산복지네트워크’를 만들었고요. 이렇게 단체들끼리 회의도 지속하고 정책 제언도 하니까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연대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휴게소에서 통기타 치는 시민, 그룹홈을 만들다

희망 : 풀뿌리희망재단의 주요 사업이 궁금합니다.

박성호 : 첫째는 공익활동가 지원입니다. 활동가들이 건강해야 그 조직이 건강하고 지역사회에서 역량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죠. 활동가의 재충전과 쉼은 기존에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어요. 재단은 이것부터 시작했어요. 해외연수를 통해 활동가 재충전을, 가족 여행을 통해 쉼을 추구하죠. 열악한 조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가족의 지지와 격려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그래서 가족들과 1박 이상의 여행을 떠나서 쉴 수 있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인큐베이팅입니다.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학습, 정서, 문화, 건강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어요. 이곳에 제가 연구위원으로 참여했거든요. 1년 과정을 마치면서 중학교 선생님들이 방과 후에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고민을 꺼내놓았어요. 당시엔 청소년을 위한 지역아동센터가 없었어요. 그래서 2007년에 교육청과 아동복지단체, 학부모단체와 재단 등이 같이 중고등학생, 학업 중단 청소년이 머물 수 있는 ‘해누림청소년센터’를 설립했습니다.

2009년 두 번째 인큐베이팅 사업으로 아동 그룹홈을 설립했어요. 그룹홈에 사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남녀 분리가 필요한데, 여자아이들을 위한 그룹홈이 없었어요. 그래서 ‘꿈찬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설립했어요.

그룹홈을 세우기 위해 시민들이 ‘행복찾는 통기타’, ‘두드림스’를 결성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공연해서 모금한 돈을 보내주셨어요.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이 쉽지 않아요. 휴게소가 허가를 주고 교체를 하는데, 다른 데에서 자꾸 치고 들어와요. 휴게소를 계속 옮겨 다니면서 하는 어려움이 있었죠. 지금은 한 그룹은 광덕산 정상에서 일요일에 공연하고, 수익을 미래를여는아이들로 직접 지원해요. 두드림스는 평택-음성 구간 고속도로에 있는 안성맞춤휴게소에서 하는데 거기서 모은 돈은 그룹홈 기금으로 쓰여요. 2011년까지 1억 3천 정도 지원했어요.

올해 여름부터는 인큐베이팅 사업을 공모해 보려고 해요. 3년간 1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으로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경제까지 범위를 넓히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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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이분들이 인큐베이팅 단체들의 이사로도 활동하신다고 들었어요.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에 놀랐습니다.

박성호 : 예, 그렇죠. 또 인상적인 후원자 중에 요리학원 원장님도 계세요. 저소득 청소년들에게 자격증를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제과제빵 학원을 찾아갔더니, 원장님께서 취지에 공감하면서 기부도 하시고, 그 청소년 아이들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하면서 지역아동지역센터에서 요리체험학습을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좋은 나눔의 선순환활동 사례가 발굴된 거죠. 또 한 산부인과에서는 아이 출산할 때마다 5천 원씩 기부를 하세요. 그 돈은 새생명 축하의 취지를 살려 인큐베이팅 사업에 사용됩니다. 한 달에 1백 명 정도 출산하니 적은 돈이 아니죠.

관계에서 인큐베이팅되는 새로운 사업

희망 : 해외사업도 진행하시죠?

박성호 : 해외사업은 독특한 인연으로 시작됐어요. 천안에 ‘모이세’라고 하는 이주 여성, 이주 노동자를 지원하는 활동이 있어요. 여기서 활동하던 이주 노동자 쟈킬 씨가 천안의 NGO, NPO 활동을 보고 고향인 방글라데시 우토바라 마을에 대학 동료들과 APEX재단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어요. 그쪽 토양엔 비소가 많아서 피부암에 걸릴 위험이 많다고 해요. 비소층을 피하려면 우물이나 펌프를 깊게 파야 된대요. 저희가 ‘아시아친구’라는 기금을 만들어서 우물 펌프를 지원하는 사업을 했어요. 최근에는 천안에 있는 여자 중학교에서 이 지역 지원활동에 4년 전부터 참여를 해요. 저희 재단 실무자가 학교에 가서 학생들이랑 면 생리대 만들고 기부교육을 했어요. 방송반 학생들이 홍보해서 모금도 하고, 축제 때 캠페인도 해요. 그렇게 모인 돈으로 방글라데시 우토바라 마을 여학생들에게 위생용품을 지급하고 있어요.

캠페인이 정책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2012년만 해도 무상급식이 시행되지 않았죠. 2014년에 조식 결식 학생 현황 조사를 했어요. 급식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 중학생 아이들을 위한 조식 지원을 계획했죠. 처음엔 학교에서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하려니까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걸려서 학교에서 하지 못했어요. 대신 지역아동센터에서 간편식으로 된 조식을 먹고 등교하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했죠. ‘천안지역아동건강네트워크’가 발족되고 재단이 재정 지원을 하면서 사업이 진척됐어요. 캠페인도 활발히 하고요. 지난 겨울부터 천안시에서 지역아동센터 5곳에서 조식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공공재원을 투자하게 된 거죠. 이슈화돼서 공공재원이 투입된 게 긍정적이죠. 지역에 필요한 정책이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것도 저희가 할 역할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계획은 일단 모금을 많이 하는 거죠. 다양한 방식으로요. 중소도시에서 풀뿌리 모금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크라우드 펀딩 모금 교육을 하고, 크라우드 펀딩 경진대회를 해서 크라우드 펀딩 잘하는 팀이나 개인에게 재단에서는 매칭으로 200만 원씩 지원하려고 해요. 저희에게는 새로운 시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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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풀뿌리희망재단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역재단은 지역 속에서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가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던 사업들이 눈에 띄는데요. 휴게소 공연을 하며 그룹홈 설립을 도운 시민들, 천안의 비영리 활동을 보고 자국에 NPO를 만든 이주노동자, 조식지원캠페인을 통해 정책을 만든 시청, 뭔가 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의지를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건 풀뿌리희망재단이 존재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은 거대한 기획을 먼저 세우고 사업을 해나가는 다른 재단과 달리, 관계 속에서 할 일을 찾고 사람을 키워주는 지역재단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긴 시간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_ 안수정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sooly@makehope.org
                    우성희 시민사업그룹 연구원 / sunny02@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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