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포도회 김성순 명예회장의 농업 그리고 포도 이야기

편집자주/지난 6월 5일 희망제작소 2층 희망모울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고수로부터 듣는다’의 7번째 강연이 있었다. 강연자 김성순 한국 포도회 명예회장은 이 땅에 포도 농업이 제대로 정착하기 훨씬 전인 1960년부터 포도농사를 시작하여, 근 50년 동안 일생을 ‘포도’에만 바쳐온 이다. 또한 그는 한국 포도회를 창립하여, 자신의 수확뿐만 아니라, 이웃의 포도농가들이 포도를 제대로 생산해낼 수 있도록 터전을 닦아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_1C|1361604351.jpg|width=”560″ height=”396″ alt=”?”|한국 포도회 김성순 명예회장이 강연하고 있다 ⓒ희망제작소_##]

강연장에 들어선 그의 턱 밑에는 흰 수염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 고수’다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50년 넘게 한국 포도 농업을 지켜온 연륜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순 회장은 ‘평생 시골에서 농사짓던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어떤 분들이 강연을 들으러오셨을지 너무 궁금했다’는 겸손한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인생과 농업

김 회장은 원래 포도 농사꾼이 아니었다. 그가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던 시기의 한국은 해방 후, 갑작스런 변화를 맞는 시기였다. 그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전단을 돌린 것으로 인해 구속, 수감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사건이 미결인 상태에서 전쟁을 맞이하여 임시 재판을 받게 되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전쟁 중에도 징병되어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겼고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나니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나이 서른이 되니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빽’도 없고, 돈도 없고, 딱지나 붙은 신세에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농업밖에는 할 것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땅도 없고 말이죠.”

그는 땅 없는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짓던 척박한 하천 부지에 포도 농사를 시작했다. 하루에도 물지게를 수십 번씩, 똥 리어카를 수차례 옮겨야 했던 고된 시기였음에도 그는 ‘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더 할 나위없이 적당한 교훈이며 채찍’ 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농업의 값어치가 그것으로부터 얻는 소득보다, ‘인간과 자연의 교감,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에 있다는 연륜이 묻어나오는 말에 청중들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국 농업의 위기를 거론하며, 지금은 ‘생산의 효율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농업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나갈 구멍도 주지 않고 농민들을 다그쳐서야

김성순 회장은 한국 농업을 어렵게 하는 원인을 행정당국의 무지와 사람들 무관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농업 생산물을 먹고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이 어디서 생산되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좀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며, 보다 근원적인 발상과 관심이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해서도, 행정당국이 일시적으로 금전적 보상을 해줄 것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어려움을 타개할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껏 정부가 농민들에게 나갈 구멍도 주지 않고 다그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루빨리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 농산물로는 도저히 식량을 자급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는 우리 토양에 맞는 육종을 개발하지 않고, 재배기술의 축적이 너무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면서, 현재 포도 생산량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경북지역의 대학에 포도 관련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예로 들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그 역시 50년 전, 포도에 관한 국내 서적이 변변치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대안으로 정부 차원에서 지역의 농과대학을 활성화 시키고, 관련 전문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민조직의 개편도 시급

그는 모든 책임을 정부나 도시 소비자들에게 돌리지는 않았다. 농민들 스스로도 그들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농협을 비롯한 농민들의 조직이 그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들을 개편할 것을 역설했다. 구체적으로는 생산자 조직, 소위 작목반 조직을 토대로 해서, 각 지역의 시.군단위와 품목별로 조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95년도인가, 농협에서 품목별 조직을 만들긴 했어요. 하지만 몇 해 동안 참여하다보니까, 그저 조합장들의 모임인거예요. 마흔 개가 넘는 작목반 각각의 대표가 나와야 하는데 포도농사와는 관계가 없는 주산지의 조합장들 모임으로 변질되어 가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실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밤잠 안 자고 고민하고 올해 농사가 잘 될까, 제값을 잘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농사꾼 자신입니다. 남의 일은 남의 일이지요. 약간의 차이지만, 그것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합니다…(중략)…적당히 농사짓고 말발 있는 사람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 다급한 시기에 중요한 이야기를 논의할 수 있을까요…(중략)…농협이 정말 외면당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기주장을 하고 싶어도 농민들이 ‘우리 농협이 아니야’라고 할 때가 오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모범적인 농협의 사례로 순천농협을 꼽았다. 10여 개 농협이 합병한 순천농협은 힘을 모아 학교 급식 문제를 풀어 나갔다고 한다. 그는 이렇듯 밑에서부터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농민들 개개인들이 자기 살기 바쁘다보니, 아직은 힘을 모으는 것이 미약하다.

그는 희망제작소의 “좋은 시장학교”처럼 조합장도, 시장도 모두 훈련받아야 한다고 말하며, 준비된 조합장이 그 자리에 앉으면 농민들도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농민조직 개편의 문제가 시급하긴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니까 될 것도 안 되는 일이 많다며 여유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도시민과 농민, 공생공락을 위하여

강연이 끝난 이후에도 쏟아지는 질문으로 희망모울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국내 와인의 자급 방안에 대한 질문에 김성순 회장은 일본 도까치 지역의 와인 성공사례를 들면서, 처음부터 큰 욕심으로 모든 것을 갖춘 이후에 시작하기 보다는 조그만 규모로 시작하여 많은 시도를 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장년층의 귀농에 대해서는 ‘현재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보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며, 구체적인 계획과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강연 전반에 걸쳐 농업의 문제를 물질적, 경제적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결국에는 농업 문제도 소비자와의 신뢰, 따뜻한 감성과 아이디어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FTA의 딜레마는 바로 이웃을 끝없는 경쟁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발상에 있는 것이라며, 눈앞의 ‘소득, 이익’보다는 공생(共生)하고 공락(共樂)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말처럼 농민들은 도시 소비자들의 욕구와 감성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시 소비자들 역시 자신들이 먹는 농산물의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이것이 농민들과 도시 소비자들 모두가 불안해하지 않고 ‘공생공락’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미래를 진단하고 대안을 꿈꿔보는 희망제작소 농촌기획강좌는 향후에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다음은 6월 19일(목) ‘비농업인이 바라본 한국 농업농촌의 미래 ‘라는 제목으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강연한다. 다음 강연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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