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 두 조각, 마을 이야기로 엮어낸 생활문화 공동체 <배다리를 가꾸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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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 두 조각, 마을 이야기로 엮어낸 생활문화 공동체 <배다리를 가꾸는 시민모임>

땅이름에는 그 지역 역사와 선인들의 공간인식이 깃들어 있다. 일제 시대나 새마을 운동 당시 행정구역을 정비할때, 대부분 관(官)이 한자어, 일본어를 번역해 이름 붙인 탓에 우리나라에는 유독 한자어 땅이름이 많다. 그래서일까. 순 우리말 땅은 그 이름부터 지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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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

‘배다리’ 마을. 이름 그대로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와 널조각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다리는 ‘헌책방 거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이전에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은 한번쯤 참고서와 사전을 구입하러 배다리를 돌아다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이곳에 노동자, 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헌책방 거리’를 형성, 한 세기 동안 번영을 누렸다.

1897년 인근 ‘우각현(쇠뿔고개)’에 제물포에서 노량진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공사가 시작되면서도 배다리 역사도 함께 시작했다. 인천 3·1운동의 산실인 현(現) 창영초등학교, 한국 최초의 사립학교인 영화학교 등 근대 유적들이 즐비해 100여 년 역사를 증명한다.

그러나 인천시 도시계획이 다른 구의 개발에 집중되는 사이, 이 일대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업했던 헌책방도 현재 여섯 곳 밖에 남지 않았다.
[##_1C|1394285742.jpg|width=”393″ height=”261″ alt=”?”|1897년 우각리. 경인철도 기공식 (사진-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_##]
“이 지역 주민들이 많이 눌려있어요. (인천시) 중구가 외국인이 살았던 지역인 반면, 동구는 힘없는 한국인이 살았던 땅이거든요. 그래도 한때는 번화가였지만 어느 순간 지역이 침체되면서, 동구 하면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었죠.”

하지만 ‘눌려 있던’ 배다리를 지금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키고 있다.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장숙경 사무국장이 그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에 새 길(중구 신흥동~금창동 배다리~동국제강을 잇는 산업도로)이 난다고 했을 때, 관에서 공청회를 열어도 주민들은 거기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보상이 끝났다’며 집과 마을이 그냥 뭉텅 없어지기 시작하니까, 주민들 스스로 자각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엔 겨우 아주머니 세 분이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인천시는 인천항의 배후 수송로 확충과 도심지 정체 해소를 이유로 이 공사를 진행했으나, 배다리 구간 공사는 주민들 반대로 2년째 중단하고 있다. 주민들은 ‘길’이 생기면 서울과 송도 신도시는 이어지지만 원래 있던 마을은 반으로 갈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반대를 하고 있다.
[##_1C|1408696604.jpg|width=”500″ height=”332″ alt=”?”|▲산업도로 건설 예정 부지. ‘시민모임’은 이곳을 ‘배다리 에코 파크’로 만들었다._##]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가 명확치 않으면 공사 주체는 진행할 수밖에 없어요. 이 지역을 지켜야 하는 정당성을 보여주어야 하므로 이 지역에 무엇이 있나, 어떤 이야기가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배다리를 지키는 시민모임’을 정식으로 만들고 매월 꾸준히 문화행사를 가졌어요. 그 해 11월, 연극을 공연하면서 주민들은 정말로 감격했답니다. 배다리에서 연극 공연을 펼칠 수 있을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한 두 조각씩, 지역 이야기를 끌어 모아

가능성은 풍부했다. 100년이 넘는 헌책방 거리 역사와 개항 유적만 가치있는 게 아니었다. 주민들 스스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모두 보물이었다.

“지금 동구청 있는 자리에 ‘동물 넋 위로비’라는 게 있어요. 그 곳이 예전에 도축장이었거든요.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사람심리가 불편해지는지, 예전 구청장이 거기에 비(碑)를 세운 거에요. 알고보면 여기 분들이 참 재미있어요.”

지난 5월 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2009 배다리 문화축전>에서는 배다리 주민들의 구술(口述)이 꽃 피었다. ‘배다리 동네 이야기꾼 한마당’과 ‘배다리 문화답사’ 프로그램에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고 즐거워했다.

“올해 인천시에서 도시축전을 하는데, ‘재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시의 입장과는 다르게 주제를 ‘정주도시로서의 인천’으로 잡았더라구요. 아이러니컬하죠?

거기선 외국 몇 개국 참여한다, 얼마나 화려하다, 이런 것을 부각시키는데,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건 그런 게 아니거든요. 저희가 지향하는 건, 이 지역을 박물관처럼 만들어 보존하는 전시행사가 아니라, 사람이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축제입니다.”

시민모임은 그래서 올 4월 10일 단체명을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에서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으로 변경했다.

‘지키는’ 것은 방어적이지만, ‘가꾸는’ 것은 능동적이며 공격적이다. 이름이 바뀐 날 ‘시민모임’은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김윤식 인천문인협회장 등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배다리 문화선언’을 발표했다. 주민들은 배다리를 가꿔나가겠다는 희망과 염원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_1C|1309480738.jpg|width=”390″ height=”364″ alt=”?”|▲지역의 이야기를 모아 만든 ‘배다리 역사 문화지도'(사진-‘시민모임’)_##]
시민의 힘으로 일궈 낸 성과들

“우리가 문화선언을 하고 난 다음에 인천시가 즉각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제까진 면담을 요청해도 반응이 없던 시장이 반응을 보인다니 긍정적인 결과가 이어지길 비래요.”

지난해 7월 주민들은 공사 무효화를 주장하며 감사를 요청했고, 시청 도로과 등 관련부서가 공사 감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주민들이 주장했던 바가 옳았음이 드러났다.

“우각로와 철길 바깥에 있는 숭인지하차도의 높낮이가 달라서, 그 길을 가로질러 가는 도로도 음푹 패이게 돼요. 저희가 처음에 얘기 했을 때 시에선 믿지 않았어요. 감사원 감사결과 이 문제점이 사실로 드러난거죠.

감사원이라고 해도 지자체에 직접 명령하긴 힘들죠. 하지만 우려했던 것이 명확해졌고, ‘공사가 쉽지 않다’고 알려졌죠. 어쨌거나 이전보다 시가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식 석상에선 말 못하지만, ‘공사 안할 수 있는 핑계를 강하게 얘기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어요.”

주민들이 꿈꾸고 있는 것도 더 이상 ‘공사 무효화’만이 아니다. 짧게는 배다리 구간, 길게는 나머지 공사 전면을 ‘지하(地下)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1998년부터 산업도로 공사에 투입되어 온 예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이달 말부터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_1C|1246648241.jpg|width=”390″ height=”293″ alt=”?”|▲<2009 배다리 문화축전 모습>_##]
배다리 생활문화 공동체를 꿈꾼다

인천지역 미술 커뮤니티 ‘스페이스 빔(옛 인천 양조장)’은 재작년부터 배다리에 숨겨진 문화적 가치를 발굴하는 데 힘쓰고 있다. ‘시민모임’은 ‘스페이스 빔’말고도 ‘인천시민문화센터’, ‘인천작가회의’와 함께 활동한다.

“대책위(산업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대책위)가 직접 반대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한다면, 저희는 주민들 중심으로 ‘문화적인 일’을 하죠. ‘스페이스 빔’이나 ‘작가회의’는 그림과 글로 부각시켜주고요. 교수님들은 기고로 이론적인 뒷받침을 해 주세요.”

주민들 목소리가 인천시민이나 종교인·문인들에게까지 울려 퍼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인천시의 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때문이다.

장숙경 사무국장은 이제는 사는 동네보다 배다리가 더 편하다고 이야기 했다.

“예전에 성교육 할 때, 부모들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내 아이들만 잘 키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 아이만, 내 아이만’ 하다보면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구요.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그러는데 제가 보기엔 공동체가 깨진 게 첫째 이유입니다.

이 지역에선 아이가 어떤 실수를 하면 누구나 꾸짖어 줘요. 공동체란 그런 게 아닐까 요. 돈이 모이면 사람은 흩어지기 마련이죠. 이곳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에요. ”
[##_1C|1049271595.jpg|width=”390″ height=”259″ alt=”?”|▲’시민모임’의 장숙경 사무국장과 두 자녀. ‘이 지역에서 많은 시간을<p>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배웠다’고 귀띔한다. _##]
‘시민모임’은 넉넉하진 않아도 여러 단체, 주민들의 힘으로 십시일반 내실 있게 이어져 배다리 생활문화 공동체 ’띠앗‘을 일구워냈다.

’띠앗‘에선 올해부터 지역화폐 ’품‘을 도입해 서로가 잘 하는 일을 교환하는 순환 체제를 실험 중이다. ’띠앗‘은 지역 경제가 외부로부터의 기부나 봉사활동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위해 추진됐다.

인천은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 많아 유난히 정주의식이 낮다. 배다리의 풍경이 낡아 뵐 정도로 인천시의 ‘거대 도시화’는 오늘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저 ‘같이 살고 싶은 마음’ 뿐인 배다리 사람들. 그들의 살기좋은 마을 가꾸기, 공동체복원 실험이 꼭 성공하길 기원한다.

[글_안은별, 편집_정인숙 / 해피리포터, 사진제공_배다리를 지키는 시민모임]

배다리 인문학 교실



일 시: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4시
장 소: 배다리 책방거리_시 다락방
수강료 : 매회 1만원
진행일정

제 1강(5. 2) : 인천과 배다리, 우리가 살아왔던 이야기
김학균(시인, 『추억 속의 동구이야기』 저자)
제 2강(5.16) : 근대건축의 보존과 활용
윤인석(성균관대 건축학부 교수)
제 3강(6.20) : 근대 기독교의 전파와 한국문화
이덕주(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제 4강(7.17) : 우리의 인생과 문학, 시쓰기
김윤식(시인, 인천문인협회장)
제 5강( 9월) : 역사와 문학, 인천 근현대사와 인물들
이원규(소설가, 『김산평전』 저자)
제 6강(10월) : 인천의 정체성과 문화도시의 가능성
조우성(시인, 계간 『리뷰인천』 발행인)
제 7강(11월) : 도시에서의 생태적인 삶과 대안
박병상(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제 8강(12월) : 지역운동과 주민자치운동의 새로운 모색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배다리 에코 파크 주말 안내요원 모집



토요일 : 놀토 10:00~13:00, 13:00~18:00, 그냥 토 13:00~18:00
일요일 : 13:00~18:00

◇ 장 소 : 배다리 에코 파크(1호선 동인천역 5분 거리)
◇ 문 의 : 032-422-8630 (스페이스 빔)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
* 대표 :박상문
* 전화 : 032-764-2669
* 주소 : 인천시 동구 송림1동 229-8 3층
* 누리집 : cafe.naver.com/vaedari.cafe



해피리포터 안은별(bananaxxx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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