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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선 집회가 열린다

지난 5일. 종로구 수송동 일본대사관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1톤 용달차로 만든 단상에서는 한 팀으로 보이는 가수들이 공연을 했다. 단하에 마련된 의자에는 할머니들이 앉아 공연을 지켜봤다. 공연이 끝나자 사회를 맡은 이가 단상에 올라와 말했다.

“오늘 또 한 분의 할머니(문필기)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집회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꾸려진 이후 92년부터 지금까지 두 번을 빼곤 매주 수요일마다 어김없이 열려온 ‘수요 집회’이다. 집회참가자들은 수송동에서 강강수월래를 돌고 광화문 앞 공원까지 행진했다. 이날 열린 803차 수요집회는 참가자들이 손에 들고 있던 노란 풍선을 날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 ”?”과거를 잊자는 이 정부에 미래와 선진을 되묻다

정대협은 서대문구 충정로 2가 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이하 기사연) 건물에 있다. 90년 11월 16일 37개 단체가 연대해 정대협을 결성한 뒤로, 여러 곳을 돌다 94년 지금의 기사연 건물에 안착하였다. 건물의 1층과 2층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쓰고 있다.

“더 이상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 “과거는 잊고 미래로 가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의 지난 외신기자간담회와 3·1절 발언의 요지다. 이 발언에 대한 소감을 묻자 정대협 전쟁과 여성인권센터 김동희 사무국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가 무엇에 기반한 미래인지 모르겠어요. 모든 미래는 과거의 일이 바탕이 돼 오는 것인데…” 김 사무국장은 참여정부 때 10여개에 달했던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통폐합 소식에도 심란해했다.

“이 정부 들어 ‘선진, 선진’ 그러잖아요. 근데 정작 ‘선진’의 진짜 조건(곧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배제한 채 선진을 이룰 수 있을까요?!”

정대협의 활동들

전국에는 약 100명의 일본군 ‘정신대’ 피해 생존자들이 흩어져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는 그 피해 생존자 중 일부만 거처하고 있을 뿐이다. 전국 각처에 흩어져 살고 계신 할머니들을 그 지역 지자체와 연계해 보호하는 것이 정대협이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김 사무국장은 이 일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이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얼마 안 되던 예산을 그 마저도 삭감해서 사업을 펼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수요 집회 역시 정대협의 중심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인 이미경 전 정대협 총무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전해진다. 수요 집회 초기에는 할머니들의 표정이 굳고, 심경도 편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할머니들이 집회장에서 큰 힘을 얻고 간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요즘은 손자뻘 되는 어린 아이들도 아무 거리감 없이 나와 행사에 참여해요. 할머니들이 너무 예뻐하시죠.” 그러나 매주 치르는 집회 준비가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김사무국장은 눈 앞에서 매주 벌어지는 집회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일본 대사관과 일본 정부가 야속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나 우익들은 ‘정신대’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귀머거리다. 그러나 일본의 시민사회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미국과 UN에선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세계 여성인권단체와 함께

정대협의 사이트 주소는 www.womanandwar.net 이다. 사이트 이름이 말해주듯 정대협은 ‘여성과 전쟁’, 다시 말해 전쟁 상황 속에서 침해 받는 여성인권을 위해 일한다.

“전쟁이라는 재앙에서 가장 많이 희생되는 이들은 여성이나 어린이 같은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정대협은 이들을 주목합니다. 지금 세계를 보면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내전 속에서 여성들은 죽어가고 있고,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대협은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전 세계 여성인권보호단체와 연대한다. 지난 해 미국 의회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발의자인 마이클 혼다 의원이 큰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결의안 통과는 정대협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여성인권단체들의 지속적 연대활동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난항을 겪고 있는 박물관 건립

정대협은 몇 해 전부터 산하에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건립위원회’를 두고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취재 전날 수요 집회에서 길원옥 할머니는 “산 사람이 얘기해도 저들은(일본 정부)는 귀머거리, 벙어리가 돼요. 산 사람은 얼마나 더 살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박물관을 세워 오래오래 저들이 한 짓을 알릴 겁니다.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당부했다.

“23억 정도가 드는데 기업 후원, 정부 후원 없이 6억 정도 모였어요. 순수한 민간 모금이죠. 귀한 돈입니다.” 김동희 사무국장이 뿌듯한 표정으로 모금 현황을 전해 준다.

본래 박물관은 독립문 근처에 세우려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서울시에 의해 무산된다. ‘독립’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었다. 서울시는 그 자리에 여성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박물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 ‘독립’의 정신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니, ‘여성 독립유공자’들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하실까.
”?”나비, 날다

수요 집회가 열리면 곳곳에서 ‘나비’가 난다. 시위용 피켓을 ‘나비’ 모양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 나비의 날개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일본정부는 피해자에게 공개 사과하라”,”위안부 문제 진실을 규명하라”,”올바른 역사교육 실시하라”, “추모관을 건립하라”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의 제목 역시 ‘나비’였다.

“나비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훨훨 날잖아요. 할머니들은 그간의 세월동안 잔뜩 움츠러 있었어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에요. 이제 그 분들은 세상에 대고 말씀하시는데 움츠러들지 않으세요. 나비가 날듯이 할머니들도 날고 계신거죠.” 김동희 사무국장의 설명이었다.

[글/사진_이환희_해피리포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화: 02) 365-4016, 392-5252

e-mail: war_woman@naver.com, ffroza@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womenandwar.net/

자원활동 참여: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2가 35번지 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 빌딩 3층

해피시니어 프로젝트는 전문성있는 은퇴자들에게 인생의 후반부를 NPO(비영리기구 : Non-Profit Organization) 또는 NGO(비정부기구 : Non-Government Organization) 에 참여해 사회공익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NPO·NGO에는 은퇴자들의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토대로 기구의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희망제작소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대학생 시민기자단 ‘해피리포터’들이 은퇴자와 시민들에게 한국사회의 다양한 NPO·NGO 단체를 소개하는 코너가 바로 ‘해피리포트’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