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편집자 주/ ‘해피시니어’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은퇴자들이 인생의 후반부를 NPO(비영리기구 : Non-Profit Organization) 또는 NGO(비정부기구 : Non-Government Organization)에 참여해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NPO·NGO에게는 은퇴자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연결해주는 희망제작소의 대표적인 대안 프로젝트입니다.본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는 ‘해피리포터’는 NPO,NGO들을 직접 발굴 취재해, 은퇴자를 비롯한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오후 7시

“쉿! 테너, 좀 더 힘있게. 소프라노, 더 올리세요. 레퀴엠에서 퀴를 강하게, 임시표에서는 약간 눌러서 화성감을 살리고, 두 마디하고 숨쉬고, 호사나 하지마시고 호산나로….”

절규하듯 짧게, 힘차게 시작하는 ‘렉스!렉스! 렉스!~~ 트레멘데 마제스타티스~~’. 홍준철 지휘자(50세)는 어느새 일어서서 온몸으로 지휘한다. 직접 들으니 가사가 잘 들리고 지휘자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난다. 지휘자의 저 힘과 단원들의 얼굴에 깃든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

느닷없이 겨울이 찾아온 11월 어느 날 밤, 정동 성공회성당 지하 소예배실을 찾아갔다. 밖의 매서운 추위에는 아랑곳없이 이곳 연습실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진다. 연습실 문 앞에서는 민규(7세)가 열심히 한자를 쓰고 있다. 합창단원인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이다.

우리 음악을 하고 비종교적인, 그리고 사회적으로 평등한 합창단

#오후 8시 20분

5분간의 휴식시간이다. 다소 상기된 얼굴의 단원들은 복도로 나가 피자와 음료수로 목을 달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민규는 그제야 엄마 품에 안기며 단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단원들을 만났다.

공진성씨(35세)는 ‘음마’단원이 된 사연을 밝게 웃으며 밝힌다.

“2005년 8월부터 활동했어요. ‘음마’에서는 음악적인 요소와 음악외적인 요소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독일유학 중 시민 합창단 활동을 했지만, 서구중심주의적 음악관에 비판적이었죠. 우리창작음악을 하고 혼성 합창단이면서 비종교적인 합창단. 바로 제가 찾는 합창단이었습니다.

음악외적으로는 업무나 이해관계를 떠난 만남, 지휘자, 반주자, 단원들 모두 무보수로 오로지 한국창작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일하는 자본적으로 얽히지 않은 만남, 학력 직업을 따지지 않는 선발과정 등 사회적으로 평등한 관계입니다.”

신입단원인 채양희씨(36세)는 육아휴직중이다.

“집에서 하루 종일 아기한테 시달리다가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에요. 오디션 후 3개월 동안 85%의 출석률을 보여야 정단원이 될 수 있기에 열심히 출석하고 있어요. 복직 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간을 내어 꼭 나올 생각입니다. 직장 다닐 때는 사회적 성취감으로 자신을 위로했으나, 집에 있으니 나를 위한 시간이 없어서 회의가 들더라고요. ‘음마’는 나를 찾게 해준 소중한 단체이지요.”

#오후 9시 40분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12월 추운 날, 눈을 맞으며 관을 옮긴다. 모차르트의 관이 구덩이에 던져져 다른 관들과 섞이고 몇 줌 흙이 뿌려진다. 레퀴엠이 흐르는 장면이다.

“라크리모사 디에즈 일라…”

합창이란 자기색깔을 내면서 남과 어울리는 것

드디어 오늘의 연습이 끝났다. 내일은 한국창작가곡 녹음이 있는 날이다. 내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단원들은 웃으며 밤거리에 흩어진다. 졸음을 애써 참고 합창에 맞추어 자기만의 춤을 추던 민규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이하 음마)’은 1996년 10월,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강숙 단장, 이건용 감독, 홍준철 지휘자 세 명이 뜻을 모아 새로운 한국창작음악을 발굴해 합창곡으로 소개하고자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매년 정기연주회를 갖고 그 외 일 년에 예닐곱 번, 많게는 열 번씩 공연을 했다. 사회봉사연주도 지금껏 70여 차례나 치렀다. 가히 놀라운 열정이다. 비전문가로 이루어진 합창단원들과 새로운 곡 발표, 그리고 쌓이는 레퍼토리. 이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올 가을, ‘음마’는 <세가지빛깔음악회>를 준비했다. 10월에는 생명을 주제로 <이영조의 선율, 합창으로 듣다>를, 11월에는 열정을 주제로 <베토벤교향곡, 오르간으로 듣다>를 공연했고, 오는 12월 2일, 죽음을 주제로 <모차르트의 죽음을 위로하다>를 공연한다.

연습이 끝나고 지휘자 홍준철씨와 반주자 박옥주씨, 그리고 몇몇 단원들과 근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12년 동안 한결같이 이끌어 온 홍준철 지휘자를 마주 대하니 엄격함과 단호함 같은 것이 엿보였다.

“합창이란 자기 색깔을 다 나타내면서도 남과 어울리는 것입니다.”

-홍지휘자는 이미 25살 때 ‘음마’에 대해 구상하였다. 어떻게 변함없이 이끌 수 있었을까.

“제가 고집이 좀 셉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실패하더라도 갑니다. 서양음악만 많이 하는 음악계에 회의적이던 차에 이건용, 이강숙 선생님과 함께 다짐했습니다. ‘욕만 하지 말고 실천적 대안이 필요하다. 이론만으로 끝내지 말고 실천하자’고. 그래서 한국작곡가의 창작음악을 공연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7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첫 노래를 부른 후 지금까지 음악철학과 연주 방향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습니다.”

-소외지역 공연은 어떤 취지로 하시는지요.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창작곡을 갖고 세계로 나아가자. 끝없이 낮은 곳으로 가자.” 음악적 성취감만을 목표로 하면 오만해집니다. ‘끝없이 낮은 곳으로 가서 음악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봉사를 하자’가 처음의 목표입니다.”

-‘음마’를 이끌면서 보람을 느꼈다면요.

“관객과의 교감, 그리고 단원들이 기뻐하는 모습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소록도공연(2000년 10월)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30여명의 단원들이 힘들게 소록도에 들어가 공연하면서 관객인 환우들과의 일체감으로 다들 눈물을 흘렸습니다.”

12년 동안 실직자, 철거민, 탄광촌, 노숙인, 환자, 장애인, 군 장병, 각종 시설 방문 등 음악이 필요한 어디든지 달려간 ‘음마’이다. 삼성복지재단에서 자금을 끌어오고 후원금을 얻어오고 단원들 주머니를 털면서도 가야할 길은 꼭 가야한다는 신념 때문에 오늘의 빛나는 ‘음마’가 존재할 것이다.

-그 동안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짐작됩니다. 가장 어려운 점이 궁금합니다.

“출석이 제일 힘듭니다. 40여명의 단원 중 네 명이 전공자이고 나머지는 일반인입니다. 직장 다니면서 저녁 7시에 여기 나오기가 쉽겠어요? 마음은 있으나, 몸이 처한 상황이 오기를 어렵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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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으로 세계로 나아가자

반주자 박옥주씨(오르가니스트)는 한국음악을 같이 하고픈 마음으로 공부를 마치고 합세했다.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 묻자 포부를 밝힌다.

“매년 창작곡을 위촉해 연주하고, 노래로 보급하고 레퍼토리를 쌓아가면 20년, 30년 지나 주옥 같은 한국합창곡이 나오지 않겠어요? 그것을 풍성하게 해서 세계로 수출하고자 하는 거죠. 수준 있는 한국음악이 대중과 호흡하고 더 나아가 세계로 진출하는 꿈을 이루려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단원이면서 총무 강형준씨(38세)는 단원과 지휘자를 연결해주는 반장 역할이다.

“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에서 단원들이 꿈을 키워나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비전공자로서 음악적 갈증을 해소해주고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곳이지요. 10년이 지나니 눈만 마주쳐도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알게 됩니다. 성악가를 흉내 내는 목소리가 아니라 나만의 목소리를 지니게 되었고요.”

‘음마’ 단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총무는 어떤 말을 들려줄까.

“일단 오시는 첫 발걸음이 중요해요. 12월 16일에 오디션이 있으니 용기를 갖고 두드리세요. 언제든지 열려있습니다. 합창은 주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문이지만, 자기안의 세계가 중요하신 분은 문을 두드리세요. ”

12년째 활동하는 단원 박승애씨(50세)는 일본 시민합창단과 교류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창작음악을 일본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자부심이 가득 차있다.

“꿈,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예요. 합창을 하면 동지애가 진해진다고나 할까. 꼭 필요한 자리에 있다는 소속감이 강해지죠. 또 우리의 노래를 합창으로 꽃피우며 각 나라 합창단과 교류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단원들 각자가 가진 능력을 나눈다는 점도 우리 합창단의 강점이에요. 예를 들면 공연소식지 작성, 홈피관리, 일본이나 필리핀 공연 시 번역과 통역을 맡아주는 등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서 자발적으로 하고 있어요.”

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백범 김구의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이들의 열정으로 백범의 꿈이 실현될 날이 멀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늦가을의 밤은 깊어가건만, 단원들은 “잘 이끌어주어 고맙다”하고 지휘자는 “계속 활동해주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면서 서로간의 신뢰를 다지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며 즐거워한다.

지하철이 끊길가봐 혼자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 2일,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모차르트 ‘레퀴엠’이 울려 퍼질 것이다. 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나를 돌아보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은 어떨까.

합창단 음악이있는마을
E-mail : hong58@knua.ac.kr
누리집 : http://www.umma.or.kr/
카페 : cafe.naver.com/umma1996
공연문의 : 018-216-2756
[글, 사진_ 정인숙 / 해피리포터]

”?”해피리포터 정인숙(isuk11)

중고교 영어교사로 50세까지 지냈다. 글읽고 음악듣고 영화보기를 즐긴다. 나무를 살펴보며 걷는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있다. 해피리포터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가열차게 글을 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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