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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미국 대통령선거전이 치열하던 지난 9월 친구가 기사 한 편을 보내주면서 읽기를 권했다.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 국무차관을 지냈던 리처드 홀브루크가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이었고, ‘다음 대통령’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보관해두었다가 엊그제야 그 글을 꺼내 읽었다.

그의 글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헤쳐가야 할 국제적 난제를 세계전략 차원에서 분석한 것인데, 석유 에너지 문제와 기후변화라는 두 이슈를 하나의 궤적으로 바라보는 예리한 관점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차기 대통령이 확정되고 나서 오히려 제 맛이 나는 글이라 생각했다. 홀부르크는 20대 초반 케네디 대통령 때 국무성에 스카웃된 지성과 경험이 겸비된 외교관 출신으로 오바마가 당선된 후에도 국무장관 하마평에도 올랐었고,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미국이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짚었고, 차기 민주당 정부의 중요한 어젠더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무관치 않는 이슈라는 생각이 들어 요지를 소개한다.

“역사에 불변은 없지만 하나의 법칙 같은 것이 있다. 긴 안목으로 보면 대국의 흥망성쇠를 결정한 것은 경제력이었다. 로마, 진나라, 베니스,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이 모두 그랬다. 미국의 경제는 19세기 후반부터 발흥했는데 그 성장 동력은 값싼 석유 에너지였다.
미국은 대공황도 견뎌냈다. 현재의 경제 위기도 일시적 순환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과거에 없던 새로운 위기 요인이 나타났다. 그것은 고유가다.

미국의 정치권과 언론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고유가가 국내에 주는 압력, 즉 주유소 고통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이 무시하고 있는 것은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거대한 부가 하나의 국가 집단에서 다른 또 하나의 국가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게 차기 대통령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미국은 하루 2,000만 배럴의 석유를 쓴다. 그중 1,200만 배럴은 수입한다. 2008년 전반기를 기준으로 하면 미국의 부가 산유국으로 매일 13억 달러, 연간 4,750억 달러가 흘러간다. 중국 유럽연합 인도 일본 등의 석유 에너지 지불비용을 포함하면 연간 2조2,000억 달러가 산유국으로 유출된다. 앞으로 이 수치가 올라갈 일만 남았다.

”?”

산유국으로 흘러드는 오일달러는 그들의 경제력만 아니라 정치적 힘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데 산유국 중에는 그 정치 목표가 미국이 중심이 된 서방세계의 그것과 다른 나라가 많다. 서방세계와 다른 목표를 가진 산유국 그룹은 보다 많아지고 보다 대담하게 나올 것이다.

어떻게 나올까. 그 돈은 이스라엘을 붕괴시키거나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를 불안하게 만들 위험한 조직에게 흘러갈 수 있다. 물론 직접 미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 지금 국제무대에서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가 큰소리치는 것은 석유 에너지의 경제력에 의거한다는 데 의문을 달 사람은 없다.

석유가 갖는 또 하나의 위기 요인은 기후변화가 지구를 위협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재앙의 균형점을 피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10년이라고 본다. 그냥 두면 21세기 중반에 대재앙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시 정권이 8년을 허송했다. 지금의 유가 거품이 가라앉으면 석유 소비는 다시 증가할 것이다. 유가가 계속 고가를 유지하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달러를 계속 산유국으로 보내야 한다. 그리고 지구는 더욱 더워질 것이다. 새 미국 대통령은 에너지 정책과 기후 정책을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에너지 및 기후정책은 국민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굉장한 희생과 불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오일쇼크와 같은 맥락의 전쟁선포가 필요하다. 국민적 토론이 30년 간 미뤄져왔다.”

이 글을 미국의 한 전직 외교관의 아이디어로 접어버리기에는 그 의미가 심대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고 구세주가 나타난 듯 사람들이 열광하긴 했지만, 그가 경제적으로나 국제 정치적으로 교란에 빠진 미국을 순항 고도로 다시 올려놓고 유지할 수 있을지 쉽게 장담할 수는 없다.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에게 화급한 일은 이라크전쟁 종결 문제지만, 그럴수록 미국은 에너지 문제의 딜레마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홀브루크가 말한 대로 미국은 30년간 에너지 문제의 본질에 대해 국민적 토론을 회피해 온 셈이다.

우리의 경제도 참 어렵다. 더욱 나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IMF위기에 처했을 때 끄떡없이 잘나가던 미국 경제가 지금은 혼돈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중심축이 흔들리니 주변부가 균형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이 경제적 위기에 몰린 것은 금융구조의 문제점이 터진 것 때문이라고 하나, 본질적으로는 20세기 미국문명을 유지해온 석유 에너지의 고갈이 우려되면서 드리우는 그림자가 아니냐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홀브루크의 글을 보면서 “우리나라는?”이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미국처럼 우리의 부도 엄청나게 산유국으로 흘러간다. 미국이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희생과 불편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칼럼은 내일 신문에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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