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희망제작소 뿌리센터는 현재 역사ㆍ문화자원을 활용한 목포 원도심 재생 방안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뿌리센터 김준호 연구원은 해외 사례수집을 위해 독일ㆍ영국 ㆍ 아일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관련 내용을 여러분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전 글을 안 읽으셨다면 클릭


밀가루공장 활용한 현대미술관


1950년대 밀가루 공장으로 사용했던 발틱현대미술관은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재생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특히 과거 밀가루 공장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역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장은 1982년 문을 닫았고 강 건너편 뉴캐슬시의 CWS 빌딩처럼 외롭게 텅 비어있었다. 1993년 범선경주대회(Tall Ships Race)가 게이츠헤드와 뉴캐슬에서 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항해와 관련된 전시를 보러 몰려들었고 동시에 발틱 빌딩에 전시된 브루스 맥린의 ‘A Big Waving Bannerwork‘라는 거대한 작품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발틱에서의 비공식적인 첫 번째 전시인데, 이 때 시민들의 반응을 본 게이츠헤드는 발틱을 현대미술관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게 된다. 당시 뉴캐슬도 발틱과 마주한 CWS빌딩을 갤러리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게이츠헤드가 먼저 이에 대한 주도권을 잡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4년 동안의 리모델링 비용은 4500만파운드(약 900억)가 소요되었는데, 이 중 3340만파운드(약 670억)는 복권기금에서 지원받고, 나머지는 지방정부 재정과 개인후원을 통해 충당했다. 발틱은 현재 갤러리 공간과 관리 사무실, 전망 공간, 레스토랑, 어린이 교육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핵심 기능은 전시이고, 한국에 알려진 것처럼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전체 프로그램 비중에서 보면 그리 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공간에서 시민들이 과거 공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다른 갤러리와 차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주민들로 북적이는 음악센터

게이츠헤드 지역재생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또 하나의 건축물이 바로 발틱현대미술관 옆에 있는 세이지 음악센터이다.

세이지 음악센터는 7000만 파운드(1400억)이 소요된 음악 교육공간이자 공연장으로, 2004년 가을 타인강 사우스 뱅크에 세워졌다. 세이지 음악센터의 자리는 과거 배에 사용되는 철제 로프와 와이어를 생산했던 곳인데 발틱현대미술관과의 적당한 거리를 고려해 정해졌다.

그리고 이 자리는 정확하게 틴 브리지와 밀레니엄 브리지의 중간에 위치한다. 세계적인 건축가 노만포스터에 의해 설계된 이곳은 세계적 수준의 공연장 시설을 갖췄고, 조개 형태의 모양으로 철과 유리로 된 지붕이 세 개의 공연장을 덮고 있다. 카페, 바 등의 공공공간과 26개의 연습실, 워크숍 공간을 갖추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세계적인 공연 시설을 지역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많은 연습실에서 지역민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권위적인 공연시설과는 많이 달라보였다. 이것은 바로 게이츠헤드의 지역민 중심 도시재생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다.  

또한 이 넓은 공간과 많은 연습실이 텅 비어 있지 않고 활발히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 십년 전부터 문화예술 중심의 지역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다양한 지역민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에 앞서 소프트웨어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려함 속에 숨겨진 게이츠헤드의 교훈

게이츠헤드를 보면서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도시재생의 과정이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30년 동안 꾸준히 노력을 기울인 가운데, 이러한 노력이 몇 가지 촉매를 통해 멋지게 확산되었다. 결국은 장기적인 비전과 이를 향해 하나된 지역의 거버넌스가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지역민 중심의 철학이다. 재생의 시작 단계부터 지역민과 함께 소통하고 논의하며 만들어갔다는 점이다. 물론 중간 중간 리더십의 공백과 시민간의 의견 충돌도 많았지만 다양한 논의와 토론의 장을 만들어갔고, 결국은 그 이익이 지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로는 소프트웨어의 활성화 이후 하드웨어를 준비했다는 점이다. 특히 세이지 음악센터의 많은 활동들은 음악센터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미 지역 커뮤니티별로 존재했던 활동들이었다. 지방정부가 이를 장려했고, 20~30년 간 지속되어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세이지 음악센터가 만들어졌다. 규모가 큰 음악센터지만, 이미 이 공간을 채울 콘텐츠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넷째로는 지방정부의 리더십을 꼽을 수 있다. 시민 80%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북쪽의 천사’, 시민의 바람을 읽은 발틱미술관, 그리고 시민중심으로 만들어진 세계적 세이지 음악센터 등은 비전을 정하고 꾸준히 이를 실행한 지방정부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체하지 못 할 큰 프로젝트 보다는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 조그만 성공을 맛본 후 시민들과 그것을 공유하고 좀 더 큰 프로젝트로 넓혀갔다.

게이츠헤드 뿐 아니라 시간에 따라 과거를 벗고 새 옷을 멋지게 갈아입은 도시들은 대부분 이 원칙들을 준수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우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곳이 없다. 한 곳에서 강을 살린다 하면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강을 살리려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많은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겨난다.

그리고 진행되는 많은 사업들을 1, 2년 안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시민들과의 논의는 있을 수 없다. 정치적인 이유로 처음에는 논의 구조를 만든 경우도 있지만, 결국엔 해체되기 일쑤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설 중심의 도시개발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공항이 될 수도 있고, 시민 문화공간이거나 박물관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한 사회ㆍ경제적 피해는 계산하기도 힘들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한국의 도시재생 및 개발 현장에서 다시 한 번 게이츠헤드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시기인 것 같다.

※ 이 글의 전문은 월간 도시문제에도 기고되었습니다.

글ㆍ사진_ 뿌리센터 김준호 연구원(dasan@makehope.org)

뿌리센터 블로그 바로가기  

★ 참고 자료 및 웹사이트
  – http://www.bridgesonthetyne.co.uk/gmb.html
  – http://www.gateshead.gov.uk/
  – STUART CAMERON & JON COAFFEE (2005) Art, Gentrification and Regeneration – From Artist as Pioneer to Public Ar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