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환경운동의 ‘구루’ 레스터 브라운이 말하는 세가지 위기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얼마 전 제주도에서 한나절 차를 쓸 일이 생겼는데, 마침 조카딸이 애지중지하는 아반테 새 차를 빌려주었습니다. 연료를 체크했더니 거의 비어 있기에 마음속으로 “잘 됐다, 기름이나 가득 채워줘야지”라고 생각하며 주유소를 찾았습니다.

자동차 운전대를 오래 잡지 않았던지라 6~7만 원쯤이면 연료탱크가 가득 찰 것이라고 섣부른 짐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계기가 7만 원을 넘겼는데도 자동차가 연료를 계속 빨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치 넣어야 만탱크가 돼요?”라고 물었더니 종업원이 “11만 원쯤 먹을 겁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짐작 대로였습니다. 중소형 자동차의 연료통 한번 채우는데 10만 원이 넘는다니 정말 살인적입니다.

[##_1C|1290964407.jpg|width=”500″ height=”335″ alt=”?”|_##]미국에선 휘발유 가격이 우리의 절반 수준인데도, 또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거의 배에 육박하는 데도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석유 값이 금년 들어 배럴당 100달러, 110달러, 120달러, 130달러, 그리고 139달러를 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가 천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 책임자는 내년에 석유 값이 2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생산량에서 사우디와 거의 맞먹게 되었으니 국제 석유 정치를 주물럭거리겠다는 신호탄 같은 발언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사우디로 달려가 석유증산을 부탁했지만 반응은 그리 탐탁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석유증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석유 자원


최근 유가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원인을 분석하는 두 갈래의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의 흐름이 핫머니(국제투기자본)의 선물시장 개입설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외국 투자회사의 분석을 토대로 이런 전망을 내놓고 하반기에는 120달러대에서 안정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또 하나의 흐름은 세계 석유공급이 정점에 다다랐다는 분석입니다. 유한한 석유자원이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증산을 할 수 없는 변곡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석유부족 위기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가설을 제시한 선구자가 프린스턴대학의 케네스 드피에스 교수입니다.

그는 유가가 배럴당 10 달러 선에서 안정을 이루던 1990년대 초반 “세계 석유생산은 2004~2008년에 생산이 정점에 이르러 석유부족의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요즘 석유 값이 폭등하는 것을 보노라면 투기자금의 농간이라는 분석보다는 드피에스의 예측이 더 무게가 있어 보입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의 촛불을 든 수십만 명이 서울 남대문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꽉 메웠던 6월10일 저녁, 바로 시청 앞 플라자호텔 지하 볼룸에서는 양복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75세의 미국 노인이 200여 명의 청중을 상대로 조용조용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환경운동의 ‘구루’(스승)로 알려진 레스터 브라운이었습니다. 환경재단이 그의 최근 저서 ‘플랜 B 3.0’의 한국어판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수 십 만 명이 30개월 이상 된 미국소를 수입해서 국민을 광우병 위험에 노출시킨다고 항의의 함성을 외칠 때, 레스터 브라운은 인류가 직면한 3대 위기, 즉 에너지위기 식량위기 기후변화위기를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촛불 함성이 너무나 커서 그의 목소리는 정부 당국자나 여론 형성층에게 거의 들리지 않은 저주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메시지였습니다.


레스터 브라운의 경고


레스터 브라운은 지난 한 두해 동안 벌어진 유가와 주요 곡물가의 폭등을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저유가 시대에는 에너지 경제와 식량경제가 별도의 시스템으로 따로따로 놀았으나 유가가 급등하면서 두 경제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됐다고 설명합니다.

그 통합의 실증적 사례가 바로 청정에너지라 불리는 에탄올 생산의 증가입니다. 자동차 연료로서 에탄올은 브라질이 석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부시대통령이 석유 대체재로 바이오연료를 권장하면서 미국 대평원의 옥수수 곡창지대에는 에탄올 증류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겼습니다. 곡물이 유가를 매개로 식량으로도 쓰이고 에너지로도 전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스터 브라운은 옥수수가 식량보다 에너지로서 더 가치가 높은 분기점을 유가 60달러라고 주장합니다. 배럴당 유가 100달러 시대에 미국의 옥수수 밭은 더 이상 식량 생산지가 아니라 자동차 연료를 만드는 에너지 생산지로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에너지 경제와 식량경제의 통합입니다. 최근 1, 2년간 석유 값과 옥수수 및 밀 가격이 두 배로 뛴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브라운의 논리입니다.

레스터 브라운은 부유한 나라의 자동차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곡물을 놓고 다투는 현상을 매우 위험하게 바라봅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농산물 수출과 원조로 살아가는 나라들이 더욱 궁핍하여 실패한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레스터 브라운은 저서 ‘플랜 B 3.0’에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쓰고 버리는’ 서구식 경제모델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중국의 경제발전 패턴을 빌어 설명합니다.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한 미국은 지구 자원의 3분의 1을 소비해왔습니다. 그러나 기초자원 소비에서 석유를 제외하면 중국은 이제 곡물, 육류, 강철, 석탄을 미국보다 훨씬 많이 소비한다고 합니다.

2030년은 중국 인구가 14억6천 만 명에 이르고 1인당 국민소득이 현재의 미국수준과 같아지는 시점입니다. 만약 중국인의 소비행태가 미국인과 같은 길을 간다면, 중국의 종이 소비량이 현재 전 세계 소비량의 두 배나 될 것입니다.

또 2030년 중국의 자동차 보유는 약 11억 대로 현재 전 세계 자동차 대수 8억6천 만 대보다 훨씬 많아집니다. 도로를 만들고 주차장을 만드는 데만 현재 중국의 쌀 재배면적만큼 포장해야 합니다. 이 때 중국이 하루 필요한 석유는 9천8백만 배럴로 현재 전 세계 석유 하루 생산량 8천5백만 배럴보다 훨씬 많습니다.


에너지 위기,불안한 인류의 미래


세계의 숲이 남아날 수가 없고, 석유가 급속히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레스터 브라운은 이런 석유소비 모델이 중국경제에 적용될 수 없고, 중국보다 더 인구가 많아질 인도에도 적용될 수 없으며, 다른 개도국에도 적용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공업국이 이 모델에서 과감히 손을 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물론 레스터 브라운은 에너지 위기 및 식량 위기와 더불어 궁극적으로 기후변화 위기에 대해 아주 절박한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는 아시아 고산빙하의 급속한 붕괴로 중국, 인도, 동남아 국가의 수자원 고갈과 농업환경 악화를 다급한 위기로 진단했습니다.

연설 말미에 레스터 브라운은 청중들에게 호소하듯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귀여운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그들을 잘 교육시키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재앙이 일어나면 그들의 미래는 대단히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교육을 잘 시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레스터 브라운이 지적한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기후변화 위기는 우리나라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레스터 브라운이 아니더라도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장기적인 대체에너지 연구와 투자를 진작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정부정책은 진지한 고민이 없는 전시용 정책일 뿐이었습니다.

레스터 브라운은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할 당시에 발동했던 전시동원체제와 같은 조치가 아니면 침몰하는 문명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과연 내년 새로 탄생할 미국정부가 그렇게 절박한 판단을 내릴지 의문이나, 화석연료 의존 경제정책에 대 변화를 줄 것은 현재 민주 공화 양당후보의 공약에서 분명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에너지 위기가 그저 정부의 ‘고유가 대책’이라는 표제로만 수습될 수 없는 미래로 다가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필자의 우려가 전적으로 틀리기를 바라기는 합니다만.

이 칼럼은 전직 언론인들의 칼럼 사이트<자유칼럼그룹>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  김수종의 글 목록 바로가기

Comments

“[김수종] 환경운동의 ‘구루’ 레스터 브라운이 말하는 세가지 위기”에 대한 3개의 응답

  1. 블루 윤 아바타
    블루 윤

    글 너무 절실하게 잘 읽었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난감합니다.

  2. 이승필 아바타
    이승필

    과거 레스터 브라운님의 플랜B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예측이 오늘의 현실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절실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