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희망제작소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사회혁신에 관한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혁신과 리빙랩의 현재와 미래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4월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리빙랩 사회혁신 아카데미 ‘해볼라교'(敎) 에 참여했던 수료생 박종연 님의 생생한 후기를 전합니다.

2014년 12월부터 희망제작소에 매달 후원을 하고 있지만, 딱 한 번 토크콘서트에 참여해 본 것 외에는 정작 희망제작소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리빙랩 사회혁신아카데미 ‘해볼라교’ (후원회원 무료)>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자마자 마음이 확 끌렸다. 사회적경제와 사회정책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으로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한 사회혁신의 지속가능성을 다룬다기에 공부 삼아 참여하고 싶었다.


또 지난 2013년부터 4년간 대학 사회공헌 전담조직에서 일하면서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성공한 사례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해볼라교’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처음에는 공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볼라교’에 신청했다.

해볼라교, 4주 과정에서 기억나는 핵심 키워드

4주 동안 매주 화요일 저녁 2시간씩 진행된 해볼라교 아카데미에서는, 1) 사회혁신과 리빙랩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2) 사회혁신을 위한 방법을 이해하며 실제 사례(국민해결 2018 사례 중심으로)를 확인하고, 3)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들의 역할을 살피고 이해관계자를 구상해본 후, 4)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했다. 이 글에서 4주 과정의 내용을 축약하기보다는 강의와 워크숍을 통해 기억에 남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키워드 01. 절실함-사회혁신은 주체의 ‘절실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사회혁신은 사회문제 그 자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혁신은 사회문제로부터 생기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시민의 절실한 필요로부터 시작되는 움직임이다. 따라서 사회혁신을 위해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이질적인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서로 신세를 지고 갚는 관계 속에서 새로운 해결방안들을 만들어가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키워드 02. 문제 구체화- 사회‘문제’는 수요자의 ‘구체적’ 입장으로 좁혀서 작게 바라봐야 한다.

사회문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무게로 느껴지지 않고 같은 문제라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그 결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출근시간대에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사거리의 모습을 보며,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는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을, 노약자나 장애인과 같은 교통약자들은 대중교통 수단 이용의 불편함을, 교통순경은 신호체계의 개선과 꼬리물기 습관의 개선을 주요한 문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혁신을 시도하려면 사회혁신 관련 정책이나 방안의 공급자가 아니라 그것의 영향을 받는 ‘수요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좁혀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수요자들이 문제를 표현토록 촉진하고 그 내용을 재분류하는 과정이 마련돼야 한다.


이렇게 수요자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확장하면 사회혁신을 위해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나 정책의 수혜자를 그것을 지원하는 사람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을(乙)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수혜자가 곧 문제해결과 변화를 주도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함께 가질 수 있다.

키워드 03. ‘사업’이 아닌 ‘방법’- 사회혁신은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이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라는 방안을 실행하면, 예상치 못했던 C라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날이 갈수록 사회문제가 복잡해지므로 해결 방식도 새로워야 한다. 사회혁신은 시민들이 사회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사회혁신에 접근할 때에는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즉, 사회혁신을 일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진행하는 ‘사업’이라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봐야 한다.

사회혁신 과정에 주로 활용되는 구체적인 방법에는 ‘리빙랩(Living Lab)’,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등이 있다. 리빙랩은 시민주도, 열린 혁신, 사회적 생태계 구축, 일상생활(real life)을 특성으로 하고, 디자인 씽킹은 ‘문제에 대한 공감-문제 정의-아이디어 도출-프로토타입 제작-실행 및 보완’이라는 과정을 핵심으로 한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사회혁신 방법들의 핵심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완벽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살짝 내려놓는 게 관건인 것처럼 보였다. 가볍게 문제해결을 시도한 후 고칠 부분을 개선하고, 다시 실행해보고, 다시 고치는 등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신선한 아이디어가 도출되는 것이다. 이것은 ‘린(lean) 방식’의 핵심이자 디자인 씽킹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문제를 좁혀서 작게 바라보기’와 ‘가볍고 빠르게 문제해결을 시도하기’를 결합하면, 소소하게 시작하는 다양한 사회혁신 활동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통해 성과를 만들고, 성과를 확산하면, 제도의 변화까지 끌어낼 수 있다.

키워드 04. 자원확보-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사회혁신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다고 할 때 ‘비즈니스’는 수익을 창출하는 영리사업으로 좁게 해석하는 게 아닌 사회혁신 활동이나 프로그램을 이어가며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다양한 자원을 확보하는 것으로 넓게 이해해야 한다. 자원은 사업이익, 기부금, 보조금과 같은 물적 자원뿐 아니라 다중이해관계자와 같은 여러 행위자 간 네트워크와 같은 인적 자원까지 포함된다. 특히 이러한 자원은 기존의 경계를 넘어 이종복합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영역의 자원 간 조화를 꾀할 때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4개 키워드로 사회혁신의 과정을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혁신은 절실함을 가진 주체가 내 주위의 작은 문제부터 구체화해 가볍게 해결을 시도하고 보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원을 연결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아카데미를 마치며-또 다른 시작을 기대합니다.

4주 과정을 돌아보니, 처음 신청하며 기대했던, 다양한 사회혁신 사례들이나 사회혁신과 비즈니스 모델의 연계에 대한 ‘공부’도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우선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는 점이 뜻깊었다.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연구원님들을 직접 만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문제를 구체적으로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 수강생과의 호흡도 에너지도 좋았다.

덧붙여 강의와 워크숍이 결합해 아카데미가 진행되다 보니,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워크숍에서 내 고민을 풀어보며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 뜻깊었다. 요즘 일상에서 신경 쓰고 있는 문제를 정리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이해관계자 맵을 그리는 과정이 있었다. 워크숍 툴인 ‘5why 방식’을 통해 도출된 ‘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아파트 주민을 교육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문제’에 대해 조원들과 논의했다. 4주 차에는 지속가능한 사회문제 해결 방식으로서 비즈니스모델을 구상하는 일환으로 ‘홀몸 어르신의 몸과 마음 건강을 돕는 동료 어르신들과의 네트워크 구축 지원 서비스’를 구체화했다.

이렇게 워크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분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수록 혼자 생각하면 떠올리기 어려웠을 법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뿜어져 나왔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활동에 참여하는 홀몸 어르신에게 지역 화폐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내자, 같은 조에 계신 분이 재원 마련을 위해 주민참여예산 제도를 활용하자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데 이런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직까진 내가 사회혁신을 위해 거창하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또는 희망제작소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분들과 같이 나를 둘러싼 작은 문제들부터 구체화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조금씩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또렷해졌다. 이번 ‘해볼라교’ 1기 참가자들 간의 후속 모임이 있다면, 힘이 닿는 만큼 참여하고 싶다. 이어서 2기, 3기 등 후속 기수를 모집해 ‘해볼라교’가 계속 진행된다면, 다음에 참여하는 분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재미있고,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해준 희망제작소 분들께 감사드린다.

– 글: 박종연 리빙랩 사회혁신아카데미 해볼라교 수료생·희망제작소 후원회원
– 사진: 정책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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