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희망제작소는 2009년, 매월 첫 번째 주 목요일 저녁 우리시대 최고의 공공리더들의 혜안을 듣고 한국 사회의 전망을 함께 모색해보는 <희망을 열어가는 대화마당>을 개최합니다. 3월에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를 초청하여 ‘한미관계와 오바마 행정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았습니다.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과 희망제작소

지난 5일 저녁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가 희망제작소를 방문하여 100여명의 시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언론은 미리부터 그 자체를 하나의 뉴스거리로 판단했고, 진보적 인터넷 언론조차 미 대사의 이런 폭넓은 행보에 호의적 시선을 보냈다. 대사의 역할이란 으레 주재국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서 전달하고 또 본국의 정책의도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행사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또 오마바 행정부 이후 변화된 한미관계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도 상징적 행사로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최초의 여성 주한 미 대사’, ‘한국말을 하는 대사’ 등 우리 국민들에게 비교적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날 강연에서도 매우 솔직한 모습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물론 민감한 현안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역시나 노련한 외교관의 모습이었다.

스티븐스 대사의 강연은 ‘희망’이라는 단어로 시작됐다. 30년 전 그녀는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 예산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봉사한 경험이 있다. 이후 대사의 삶에서 가장 잊어버릴 수 없었던 한국어 단어는 ‘희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희망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현재 몸담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가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부터 핵심적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던 ‘담대한 희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 이날 강연을 한 곳이 ‘희망제작소’여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그녀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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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 과거의 성과에 기반한 변화 시도할 것

지난 미국 대선은 미국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단어는 ‘변화(change)’이다. 오마바 캠페인팀은 미국인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잘 읽어냈고, 그것이 당선의 주요 요인이었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나 스티븐스 대사는 이날 강연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변화는 과거의 기반 위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현재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가 미국의 국정을 안정시켜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인 것 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부터 이러한 기류는 읽혔다. 그는 선거캠페인 과정에서 보여줬던 감동적 연설보다는 가능한 한 건조한 취임사를 통해 과도한 미국인의 기대를 가라앉히는 데 초점을 둬왔다.

그렇지만 기후변화, 에너지 독립과 효율성 등 기존과는 다른 정책의제들에 대해서는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특히 이런 변화가 미국의 독단이 아닌 동맹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과의 협력에 기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날 강연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 그리고 그 정책을 수행하는 방식 모두 이전 부시 행정부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또 하나,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그녀가 강조한 것은 고위직 인선과정이다. 오바마의 민주당 경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선임이나 이전 정권 인사인 로버트 게이트 국방장관의 유임 등은 미국 내에서도 상당히 유의미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아마 선거 과정에서부터 ‘통합’을 강조해온 오바마 행정부의 정신을 다시금 강조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 장관의 취임사를 통해 설명을 이어갔다. 클린턴 장관은 취임식날 국무부 직원들에게 “미국의 외교정책은 등받이가 없는 다리가 3개인 의자와 같다”며, “이 세 가지 다리는 방위, 외교, 개발”이라고 했다. 원칙적으로 균형 잡힌 외교를 강조한 것이지만, 부시 정부에서의 안보 중심의 외교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스티븐스 대사는 한미관계에서도 ‘방위, 외교, 개발’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방위는 ‘혈맹’으로 표현 할 정도로 한미 관계에 있어 늘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는 새로운 한미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라고 했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요구받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 논란 등 한미 관계에서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새로운 방위동맹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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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평화봉사단의 경험이 스티븐스 대사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강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미국의 평화봉사단과 한국의 해외봉사단과의 협력방안, 공동 백신개발 프로젝트 등 그 구상들도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개발문제는 그 동안 한미간의 중요한 현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운 동맹관계로 발전해 나가는데 있어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무엇보다 북한을 대하는데 있어서도 적대적 관계를 넘어 북한의 개발이 양국의 현안이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오마바 행정부의 중요한 미션

외교문제는 이날 강연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된 영역이었다. 스티븐스 대사는 “진정하고 영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핵화만큼 긴박한 열망은 없다”고 했다. 또 “비핵화는 2주 전 한국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뿐만 아니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우선순위의 이슈”이며 “이는 동시에 7일 방한하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사의 주요 어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718호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그럴 경우 안보리가 이를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미 정부 입장을 재확인한 발언이다.

그러나 비확산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보다 엄격한 대처를 할 것으로 예상되어 왔기에, 이번 발언들을 그냥 원칙의 재천명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강연 당일 북한은 동해상을 통과하는 남한 민항기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경고를 보냈다. 지금까지 보내 온 경고메시지 중 가장 높은 수위였다. 북미 모두 기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태세다. 양국이 어떤 해결의 수단을 강구할 것인지, 그 본격적인 전개는 이제 곧 시작될 것이다.

딱딱한 주제들을 가지고 진행한 대화마당이었지만 스티븐스 대사는 비교적 소탈한 자세로 강연에 임하고 청중들의 질문에 응했다. 간간이 한국말을 사용하면서 그는 한국민들에게 더 다가서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얼마 전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과 자신과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본 소감을 말하면서 참석자들의 호감을 얻어가는 모습 속에서 그녀는 역시 노련한 외교관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캐슬린 스티븐슨 전 주한미국 대사 등으로 이어진 2009년 <희망을 열어가는 대화마당>은 갈수록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시대의 소통과 전망이 펼쳐질 4월의 대화마당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