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프로그램

지난 2월 13일, 희망제작소가 1004클럽과 HMC회원의 온기로 가득 찼습니다. 판화가 이철수 화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인데요.

이철수 화백은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판화로 맞서 싸우는 운동가이자 예술가로서 활약했고, 1990년대부터는 시와 판화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철수 화백

이철수 화백은 희망제작소에 본인 작품을 기부할 뿐 아니라, 맞춤형 기부 커뮤니티인 1004클럽(3번)에 가입하셨습니다. 이날 모임에는 이 화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회원들이 자리했습니다.

“원래 강의를 잘 안 하는데 오늘은 특별한 모임이라 왔어요. 무엇보다 나눔의 기쁨을 아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얼굴만 봐도 행복이 느껴지네요. 누구의 감사를 대신 전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철수 화백은 깊은 성찰과 지혜, 때로는 위트가 담긴 본인의 작품을 하나 하나 소개했습니다. 작품에서는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연륜이 느껴졌습니다.

▲작품 <너와 나> ⓒ이철수 화백

‘나도 자연이지 네가 그런 것처럼.’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보통 화자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정말 뿌리 깊게 ‘나’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거든요. 생명이니까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대하다 보면 풀 한 포기가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화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린 그림입니다.”

성공한 화가인 이철수 화백도 혹독한 무명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 청년 시절,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는 목사 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저에게 돈 봉투를 주고 가시면서 ‘잘 받는 놈이 주기도 잘 준다더라. 혹시 갚게 되면 나한테 갚지 말고 다른데 갚아.’ 하셨습니다. 그 분 말고 또 다른 지인도 ‘앞으로 받고 옆으로 줘.’하면서 저에게 도움을 주셨죠. 청년기에는 받는 것이 고민이었어요. 부끄럽기도 하고. 그런데 좋은 돈을 받아 써서 그랬는지 나중에는 남에게 돈을 주면서 사는 것도 가능해졌는데 돈이 생기면 늘 그 때 그 말씀이 생각나는 거에요. 받기는 나한테 받았더라도 갚기는 다른데 갚으라는 말씀. 어쩌면 여러분도 그러고 계신 게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주 좋은 계산법입니다.”

이철수 화백은 현재 충북 제천에서 꽤 큰 농사를 지으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에는 자연과 마주하며 얻은 자기 성찰과 영감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제가 그리는 그림은 일종의 고백이에요. 누구에게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별것 없는 화가로 시작해서 여전히 별 것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저도 고민이 많거든요. 잘 살아가는 법에 대해, 저한테 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작품 <벌레먹은 머루나무와>ⓒ 이철수 화백

‘그렇잖아도 송이가 시원찮은데 벌레까지 극성이네?’
‘죄송해요. 우리는 그렇게 나누고 살아요. 벌레도 먹이고, 사람도 먹이고.’

▲ 작품 <가난한 머루송이에게> ⓒ 이철수 화백

‘겨우 요것 달았어?’
‘최선이었어요.’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

“이런 경쟁 사회에서 살자면 누군들 열심히 안 살 수 있겠어요. 그런데 능력껏 최선을 다했는데도 남들과 비교해서 결과가 나쁘면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살지요. 지금까지 살아보니 성공했다는 건 거의 운이 좋았던 것이더라고요. 제가 밥 굶지 않고 화가로 사는 것은 운이 좋았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어요.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도 없었고 남들보다 특별히 부지런한 것도 아니고.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들을 제가 아는데 다 밥 잘 먹고 사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그림으로 먹고 사는 건 운이 좋았다고 해야죠. ‘겨우 요것 달았어?’ 이런 말이 없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작품<의자> ⓒ이철수 화백

뜰에 나가 앉다.
의자.
잘난체 할 것 없다.
우리는 한평생 기대어 산다.

“이 의자는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인데 제 그림에 많이 등장해요. 남들을 부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본인도 어디 기대어 산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기부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졌습니다.

“신실한 불교 신자였던 중국의 황제가 달마를 만났을 때입니다. 황제는 자기가 절도 짓고 탑 세우고 공양도 열심히 했는데 어떠냐고 달마에게 자랑삼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달마는 ‘아무 공덕이 없다’고 했답니다. 기분 나쁜 황제가 왜냐고 물으니 ‘그런 일은 윤회 거리나 만드는 일이며, 형체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없는 것이다’라는 거에요. 기부를 했다거나 어디 좀 도와줬다는 것은 평생 따라다니는 그림자같이 덧없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감히 제가 하는 얘기는 아니고, 달마가 한 이야기입니다. 하하. 앞으로도 변함없이, 희망제작소와 함께 아름다운 경험을 계속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철수 화백의 그림은 담백합니다. 하지만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치유 받는 느낌도 듭니다. 자연에 대한 존경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평생 기대어 사는 우리들의 삶,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고민하게 하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1004클럽과 HMC클럽 회원 분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다음 <1004클럽·HMC정기모임>은 5월 16일 열립니다. 후원회원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글: 이음센터 연구원 | 이규리 kyouri@makehope.org
– 사진: 이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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