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강산애 산행 / 후기] ‘소요’와 ‘소란’ 사이를 오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강산애’는 희망제작소 후원회원들의 산행 커뮤니티입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의 소셜디자이너들이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산에 오르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건강한 모임, 강산애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의 영예를 안은 인물은 영국인 에드먼드 힐러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주인공은 그와 함께 오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라고 한다. 명예 따위 ‘그까이 것’을 외친 그 짐꾼은 에베레스트라는 거대한 산에 대한 외경심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나는 적을 물리치는 병사의 기력이 아니라 어머니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을 갖고 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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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산행은 소요산이다. 그 이름이 왜 소요산이겠는가.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는 산이라서, 그렇게 고즈넉한 소요가 있는 산이라서 소요산이라는데, 그 산을 어찌 누군들 병사의 기력으로 오를까만서도, 그래도 일단은 마음만이라도 울긋불긋 곱게 치장한 어머니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심정으로 다소곳해져 소요산으로 향한다.

때는 단풍철, 그것도 절정의 근방이다. 한껏 사색과 소요와 낭만에 취할 요량으로 소요산역 전철에 몸을 실었는데, 단풍 든 산에 앞서 단풍 모양 화려한 등산복 차림들이 무더기 무더기다. 그렇게 소요산역에서 뭉쳐진 산행인파는 어마어마했다. 이 사람들이, 왠지 병사의 기력마저 갖춘 듯한 이 인간들이 다 한꺼번에 산을 오를 거라 생각하니 발바닥에서부터 현기증이 올라왔다. 아마도 아찔할 소요산의 소란이여!

그런데 벼락처럼 등장한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니. 역을 나서니 ‘비’다. 가을비가 추적거리기 시작하는데 끝낼 기미 없이 줄기차다. 그리고 온다는 사람 30분이 넘어도 다 오지 않아 역사에서 피난민들처럼 두루뭉술하게 서성거리는 우리 강산애 님들. 애처로워라…
따끈한 오뎅에 잠시의 시름을 달래고 남루한 비닐비옷으로 몸들을 휘감으며 나름의 단장을 하는 모습들을 보니 괜스레 배시시 속웃음이 새어나온다. 아무래도 오늘은 오래 못 오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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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는 사람 마저 오고 나니 총인원이 스무여 명.
간만에 막걸리도 없이 소요산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소요산 오르는 길이 나름 뻔한데 그 많던 전철역 동지들은 다들 어디로 간 것인지 산행 초입부터 우리끼리다. 그렇다면 다행히 ‘사람 소란’은 사라지고 ‘비 소란’만 남는 상황. 초입부터의 길은 나름 완만하다. 주단처럼 깔린 천연색 낙엽 덕분에 폭신폭신해진 길을 어수룩하게 걷는다.

애초에는 지난 산행처럼 팀을 두 개 조로 나눠 짧은 팀, 긴 팀을 운영하려 했지만 비도 오는 날씨에 ‘뭉쳐야 산다’는 대다수의 의견을 좇아 함께 뭉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맘은 그렇게 하나였지만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인지라, 초반부터 헐떡이는 여성 몇 분의 신음이 앞선 내 마음을 후빈다. 신분이 임무를 만든다고, 명색이 총무인지라 왠지 이제 내쳐 선두에서 내달리기보다는 꽁지를 살피는 데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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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에 끼어 조심조심 한 시간 반여를 올랐을까, 하백운대 점심장소다. 그야말로 오늘은 눈물 대신 빗물 젖은 식사,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도시락을 꾸역꾸역 말도 없이 성급히 해치운 강산애 님들의 눈빛이 불현듯 하나로 튕겨오른다. 왜냐. 마음이 통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그만 내려가겠소~”
그렇게 때 이른 ‘하산의 의지’를 만장일치로 합의보고 하산코자 했다. 그런데 하산이라는 게 또 그렇게 만만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어차피 하산길이 소요산 능선길이라 걷다 보니 중백운대요, 또 걷다보니 소요산의 정점인 상백운대다. 이제나저제나 제대로의 하산길을 간절히 염원하는 일부 강산애 님들의 바람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자꾸 소요산 속을 깊이 뚫어만 가는 듯하다.

소요산은 청량한 하늘 전체에 유유히 흐르는 흰 구름이 어우러져 작은 금강산이라 부른다는데, 상백운대에 서자 드디어 흐르는 비 사이로 유유한 흰 구름이 눈에 잡힌다. “와우, 멋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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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는 감탄도 일부의 몫. 일부 오로지 ‘하산’ 염원대의 마음들에는 다시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분다.
저 멀리 밴쿠버에서 마스카라 휘날리며 날아오신 이옥숙 회원님의 한숨이 제일 깊다. 왠놈의 하산길이 이리 오리무중이더냐. 이렇게 하산 하산을 외치면서도 끝끝내 소요산을 다 보고야 말았다. 아슬아슬 소요산에서의 소요를 가로막는 칼바위능선에서의 곡예 걸음까지 마치고서야 일부는 참으로 뒤늦은 하산길에 나서고 또 나머지는 ‘그래 끝까지 가보는 거야’를 외치며 애초 산행계획대로 행군하고는 자재암으로 향했다.
‘속박이나 장애 없이 그저 있는 그곳’ 자재암으로 내려서는 길은 차마 황홀하다는 말만 떠올랐다.

조금 더 진하고 조금 덜 진한 빨강이며 노랑이며 초록들.?
그 발광하는 색들의 웅성거림에 온몸이 따뜻해진다. 이제 비마저 그치지 않았는가 말이다. 제 몸 속에 가진 모든 것을 몸 밖으로 모두 내어 준 어머니처럼 제 안의 모든 기운을 다해 자신만의 색을 있는 힘껏 펼쳐 보여 준 자연에게 어찌나 고마운 마음이던지. 강산애 님들의 감탄과 환성이 여기저기서 구름 속을 찌른다. 아마도 오늘, 소요산에서의 가장 큰 소란이라면, ‘하산 소란’보다는 강산애 님들의 순수 자연 감탄의 연속 폭죽 아니었을까?

그렇게 거의 여섯 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뒤풀이 장소를 찾아가는 길, 소요산 아랫녘에선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그런데 전시장 한켠에 걸린 플랜카드 글귀가 화살처럼 가슴에 꽂힌다.

‘당신은 바보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꾸짖는 표어인데, 그 표현이 무척이나 정겨우면서도 어딘가 정곡을 찌른다. 그러고 보면 단풍 같은 강산애 님들, 누구에게도 결 고운 품을 내어주는 우리 고운님들은 정녕 ‘바보 지양적인’ 인물들 아니겠는가. 적어도 눈 닫고 귀 닫고 마음 닫은 바보처럼 살지 않겠다고 마음의 손 잡은 우리들 아니던가.
에헤라, 좋은 벗들이여~

글_ 이상실 (희망제작소 후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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