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지켜온 인문사회과학 사랑방

얼마 전 국방부가 장병들의 정신전력에 저해 요소가 될 수 있다며 군내 반입을 불허한 불온서적 목록을 공개한 바가 있다. 지난해 10만권 이상 팔린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대학 교양수업 교재로 널리 사용되는 민속학자 주강현의 <북한의 우리식 문화>,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등 23권이다.

국방부 눈에는 불온한 서적으로 비춰졌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이 책들을 앞다투어 찾았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금세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다시 자리를 잡았고,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는 재고가 바닥났다. 이외에도 불온서적 23권 대부분 판매량이 급증했다. 국방부 덕에 인기가 시들해진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이 다시 날개를 펴고 있는 것이다.


불온서점 ‘그날이 오면’?

국방부의 불온서적 목록을 보면 그다지 불온(不穩)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에서 MBC 느낌표 추천 도서까지 세상에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책이기에 그렇다. 사실 진짜 불온(?)한 책들은 따로 있다. 그리고 놀라지 마라. 불온한 책들만 취급하는 전문서점도 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인문사회과학 서적만 주구장창 팔고 있는 ‘그날이 오면’이 그 주인공. 서울대 녹두거리에 있는 ‘그날이 오면’에 가면 세상 모든 불온한 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88만원 세대>(우석훈, 박권일), <사회주의와 자유 외>(장 조레스), <고삐풀린 자본주의 1980년 이후>(앤드류 글린), <소금꽃나무>(김진숙) 등 이른바 ‘빨간책’들이 이곳의 베스트셀러다.

[##_1C|1091897229.jpg|width=”600″ height=”400″ alt=”?”|’그날이 오면’의 베스트셀러는 일반 대형서점과는 확연히 다르다. 올해 7월까지 베스트셀러 1~3위는 88만원 세대, 전태일 평전,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다. 이 중 전태일 평전은 ‘그날이 오면’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_##]이번에 국방부가 뒷북을 치며 불온서적을 발표하기에 앞서, ‘그날이 오면’은 그들의 시선으로 재단한 불온서적 인문사회과학 도서 팔기에 앞장섰다. 88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만 20년째다. 그동안 많은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 ‘그날이 오면’은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최소한 한 군데 정도는 이런 곳이 있는 게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날이 오면’ 김동운 대표의 담담한 답변이다. 8~90년대 학생운동이 활성화됐을 때는 어느 대학교 앞이건 인문사회과학 서점 한 두 개는 꼭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성대 풀무질, 건국대 인서점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그것도 인문사회과학 서적만 취급하는 곳은 ‘그날이 오면’과 전남대 ‘청년글방’ 정도가 유일하다.

한때 전국적으로 150여 곳에 이르렀던 인문사회과학 서점은 학생운동의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회의 모순과 대안 이론을 찾아 내는 생산 기지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거침없이 공유하는 사랑방으로, 격렬한 가두 시위에 앞서 모이는 광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학생운동의 급격한 퇴조와 함께 서점들도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날개 꺾인 ‘미네르바의 부엉이’

서울대 인근에도 ‘그날이 오면’을 비롯해 ‘전야’, ‘열린글방’ ‘백두책방’, ‘아침이슬’ 등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에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그날이 오면’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90년 대 초, 소련 사회주의가 해체되면서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국내적으로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것이 인문사회과학 서점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특히 문민 정부라 말하는 김영삼 정부 출범 후 학생운동의 전선이 흩트려지면서 서점들이 서서히 쇠퇴해갔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날이 오면’은 큰 영향을 받진 않았어요.”

[##_1L|1110868330.jpg|width=”200″ height=”329″ alt=”?”|김 대표가 불온서적(?)인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그날이 오면’의 인기 도서들을 들고 활짝 웃고있다._##]그의 말처럼 실제 ‘그날이 오면’은 90년대 중반까지 경영의 어려움을 별로 겪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 서점들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서울대 앞 유일한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97년에는 월 매출이 5천만 원 수준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고, 학생들의 세미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카페를 열었다. 이듬 해에는 ‘그날에서 책 읽기’라는 잡지까지 창간했다.

세미나 카페들도 인문사회과학 서점처럼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학생들이 갈 곳이 없게 됐다. 이에 세미나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한 김 대표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란 이름의 카페를 손수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 저자와의 만남이나 강연을 개최해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애초에 돈 벌이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의 경영난을 그 역시 피해 갈 순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날이 오면’도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한 것. 몇 년 새 매출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임대료와 인건비를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상황이 지속됐다. 대출을 받아 문을 연 카페를 도저히 지속할 수 없게 됐고, 결국 2004년에 카페를 중단했다. 잡지 역시 이내 중단했다.

그러나 이것도 임시방편이었을 뿐 근원적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서점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빚만 늘어나게 돼, 95년부터의 누적 적자가 1억 원을 넘어섰다. 이대로 가다간 다른 서점처럼 폐업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논장’(성균관대), ‘서강인’(서강대), ‘이어도’(홍익대), ‘한마당’(한양대), ‘창의서점’(서울시립대) 등이 이미 문을 닫은 터라 우려가 현실이 될 처지였다.




낙관주의로 이겨낸 현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 특히 혼자서 서점의 존폐를 결정할 수도 없었다. ‘그날이 오면’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그날이 오면’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과 서점의 미래를 놓고 상의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우리 주위에 몇 남지 않은 인문사회과학서점을 살리기 위해 후원회를 결성하는 것.

2006년 9월, 장경욱 변호사 등 서울대 동문을 중심으로 ‘그날이 오면 후원회’가 결성됐다. ‘그날이 오면’의 경영난 해소는 물론 인문사회과학 책 읽기를 늘려 인문사회과학 정신을 살려보자는 취지였다. 실제 금전적 후원뿐만 아니라 신영복 교수, 박노자 교수 등의 강연회 개최나 서평대회 등을 통해 인문사회과학의 저변 확대에 나서고 있다.

4~50명으로 시작한 후원회는 2년이 훌쩍 흐른 지금 2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커졌다. 그래도 아직 서점의 형편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 임대료와 인건비를 빼면 크게 남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오세철 교수 연행 사건과 국방부 불온서적 발표 등 색깔 공세가 인문사회과학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이미 한차례 색깔 논란에 휘말린 경험이 있다. 지난 97년 인문사회과학 서점 주인들이 대거 구속될 때 장안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적도 있다. 서점 주인 명의가 아내 명의로 돼 있어서 김 대표는 불구속 수사를 받았지만, 그의 아내인 유정희씨(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부위원장)가 구속당했었다. 지금도 그 같은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언론 타고 서점 운영에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논개가 돼서 강물에 뛰어든다는 심정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김 대표가 웃어 넘긴다.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다. 그는 “제 처는 제가 근거 없이 낙관적일 때가 많다고 한다”며 “앞으로도 어떤 어려운 순간이 와도 서점을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사실 그의 낙천적 생각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날이 오면’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의 낙관주의는 이제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다. 출판재단을 만드는 일이다. 이른바 돈 안 되는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내겠다는 것. 기획에서 편집, 인쇄, 마케팅까지 재단에서 맡는다. 이를 위해서는 재단 구성을 위한 기금이 필요하다. 물론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고, 본인의 생각뿐이다. 그래도 그의 눈이 사뭇 진지하다.

‘그날이 오면’의 20년을 지켜낸 김동운 대표. 그의 낙관주의가 또 다른 사고(?)를 칠 지 한번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인문사회과학 서점은 스킨십 장소?

“남녀 관계로 보자면 스킨십이겠죠. 서점 주인으로서 서로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려 했어요.”

이념 대결이 치열했던 8~90년대 학생운동. 이른바 민족해방(NL) 진영과 민중민주(PD) 진영 사이의 대결이 뜨거웠다. 자연히 서적들도 정파의 목적에 따라 뚜렷이 갈라지는 시기였다. 김 대표는 이러한 분열의 양상이 싫었다. 자신만이라도 그러한 분열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점을 찾는 모든 이들을 같은 시선으로 대했다.
[##_1C|1298123895.jpg|width=”600″ height=”400″ alt=”?”|예전에도 그랬지만 ‘그날이 오면’은 서울대 학생들의 사랑방이다. 김 대표가 학생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_##]그가 원래부터 서점 주인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그는 80년대 중반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87년에 해고가 됐다. 복직투쟁을 했지만 이른바 학출(대학생 출신) 활동가라는 낙인 때문에 복직에는 실패했다. 같이 노동운동을 시작한 그의 아내도 해고가 됐고, 복직에 실패했다. 그러는 와중에 아내가 임신을 했고,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 처했다.

생계를 해결하면서 사회변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인문사회과학 서점이다. 마침 88년에 문을 연 ‘그날이 오면’이 새 주인을 찾고 있었고, 90년 1월에 서점을 인수하게 된다. 당시 ‘그날이 오면’은 서점 주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돼 지인들이 돌아가면서 운영하는 중이었다. 96년에는 ‘전야’를 인수하면서 확장 이전하게 된다.

김 대표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이 일 정말 잘 시작했구나’ 싶을 때도 많다. 90년대에 서점을 자주 이용하던 학생이 외국에 나가서도 이메일로 책을 주문하고, 후원회 결성 소식에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까지 소개해서 후원회에 가입시켰다고 한다. 서점이 어렵다는 소식에 이름 모를 이들로부터 적지 않은 후원금이 도착하기도 했다.
[##_1C|1274980263.jpg|width=”600″ height=”450″ alt=”?”|김 대표는 책만 팔지 않는다. 서점에 걸어 놓은 광우병 반대 포스터를 관악구청이 단속하자, 시민단체와 함께 항의 투쟁에 나섰다. 이후 관악구청의 무리한 단속에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구청측이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_##]97년의 일도 아직까지 그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해 3월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이적표현물 제작,판매)을 위반했다며 아내는 구속되고 자신은 장안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날, 서울대 학생 4~500명이 서점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정이 북받친 김 대표는 학생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의 열정을 바탕으로 ‘그날이 오면’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 그의 약속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취재/작성자 소개

노준형은 전공이 뭐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난감하다. 전자공학과 글쓰기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회로설계(Circuit Design)와 글쓰기의 원리는 동일하다고 종종 주장한다.
몇 차례 취재기자를 꿈꾸며 <코리아포커스>, <아시아경제 브이에스뉴스> 등에서 짧게나마 기자생활도 했으나 불가항력적 상황에 밀려 지금은 언론홍보대행사 커런트코리아에서 홍보AE로 일하고 있다.
‘노대리의 직딩일기’와 같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잦은 야근에 치여 하루하루 꿈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희망제작소의 소중한 부름을 받게 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소박한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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