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편집자 주/ 희망제작소 아카데미는 ‘영국, 독일의 도시비전과 미래전략을 통해 배우는 공공디자인’이라는 주제로 9월22일부터 9월 29일까지 [2008 공공디자인 유럽연수]를 진행했다. 희망제작소는 그동안 ‘달리는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공공디자인학교 국내 연수 프로그램을 12차례 주최했다. 2008년 상반기에는 요코하마와 세타가야의 경관행정을 주제로 일본 연수를 2차례 진행한 바 있다. 이번 유럽연수에는 기초자치단체 의원 13명과 지역의 도시경관 담당 공무원 6명, 대학교수 1명 등 총 20명이 참가했다. 런던 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 & Political Science)의 김정후 튜터가 프로그램 기획 책임과 지도교수를 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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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모인 22명은 비상식량을 챙기며 출발준비를 단단히 하는 모습이다. 오후 1시 30분,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했다. “40분 후 히드로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현재 히드로 국제공항에는 심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섭씨 17도, 화씨 62도.” 런던 현지 시각 오후 2시 50분. 우리 시각으로 밤 11시가 되어 간다. 맑은 날 출발한 우리는 심한 비가 내리는 도시에 도착할 예정이다. 온도는 화씨로도 안내된다. 기대감과 설렘을 증폭시키는 ‘다름의 징후’다. 연수단 일행은 ‘다른 것’을 보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기 위해 장장 11시간 동안 하늘을 날았다.

입국심사를 거쳐 밖으로 나왔다. 시베리아와 비슷한 위도인 북위 50~60도에 위치한 영국답게 약간 쌀쌀한 날씨다. 우리는 히드로 공항을 배경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앞으로의 빡빡한 일정을 잘 헤쳐나가자는 의미에서, 영국?독일의 경험에서 도시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어가자는 의미에서.

세계 최초로 지하철을 만든 나라 영국, 제일 넓은 차도가 왕복 6차선인 도시 런던

영국은 세계 최초로 1863년, 지하철을 개설했다. 6개 구역(zone)으로 구분되는 런던은 지하철 노선이 하나씩 생기면서 1구역부터 6구역까지 확장되어 왔다. 우리가 착지한 히드로는 런던 서쪽, 6구역에 위치해 있다. 연수단이 묵을 호텔이 있는 곳은 3구역에 위치한 도클랜드다. 현재 런던에선 2012년 런던올림픽을 대비해 건축붐이 일고 있는데, 도클랜드는 그 대표적인 곳이며 신도시다.

일본도 1964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그에 맞춰 신칸센의 도쿄~오사카 구간을 개통시켰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를 앞두고 도시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시아나 유럽이나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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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표지판의 M표시. 고속도로(Motor Way)를 뜻한다. 왕복 6차선인 이 고속도로가 런던에서 가장 넓은 도로라고 한다. 도심에서도 쉬이 접할 수 있는 한국의 8차선 대로와 비교해 봤을 때 매우 소박하다. 버스를 타고 점점 도심으로 이동하면서 영국 최초의 화력발전소인 배터시 화력발전소(Battersea Power Station, 1939~1983 가동)와 200년 전 지어진, 연통이 솟아 있는 주택가를 지난다.

인상, 런던의 길과 집

“주택이 그렇게 오래됐는데 왜 그렇게 깨끗한가요? 우리나라는 20~30년만 돼도 더러워지지 않나요.” 대전시의회의 한 의원이 질문했다. “런던에서는 성당 등 묵은 때를 벗기는 공사를 자주 합니다. 집도 거주자가 손수 관리하지요. 여름 휴가철이나 주말에 가족끼리 페이트칠, 외부 청소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인건비가 비싸 손수 집을 손질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래서 같은 주택이라도 집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집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템즈강변을 따라 이동하면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상가옥’의 존재였다. 저녁 어스름, 여러 군(群)의 수상가옥 무리가 강변에 불을 밝히고 통통 떠 있었다. 비싼 집세와 세금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유로 수상가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수상가옥에 사는 것은 개인의 선택. 그러나 이렇게 모인 일군의 무리는 템스강을 해 진 후에도 스산하지 않게 만들었다. 개인의 선택이 ‘공공적’ 효과를 동시에 내는 모습이다. 한편으론, 폐수 등 오염물질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했다.

영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주거공간의 형태는 2~3층으로 된, 주로 앞마당은 작고 뒷마당은 큰 특징을 가진 주택이다. 우리와는 달리 아파트는 인기가 없다. 영국의 아파트(Flat,플랏)는 1,2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로 유입되는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선택된 건물 형식이다. 지금도 이민자들이나 생활보호 대상자들이 주로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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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메트로폴리스는 21세기형으로 ‘개량’된다

저녁을 먹기 위해 런던 1,2 구역의 경계인 얼스코트역(Earlscourt Station)을 지난다. 17~18세기쯤 지어졌을 법한 건물에 21세기 사람들이 쉼 없이 들고 난다. 17~18세기 혹은 그보다 먼저 형성됐을 법한 좁은 길 위, 복잡한 신호등을 나침반 삼아 21세기 사람들과 차가 들고 난다.

우리는 다음날부터 진행된 강의를 통해, 영국이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옛 길과 집을 허물지 않고 유지,보수,개량하면서 21세기 메트로폴리스를 형성해왔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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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1구역의 바닥에는 C라는 글자가 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C는 혼잡통행료(Congestion Charge) 구간을 뜻한다. 1구역에 하루 동안 주차하기 위해서는 우리 돈으로 16,000원을 내야 한다. 혼잡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16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벌금이 쌓이면 면허정지 3년의 과중한 벌이 내려진다. 조금 엄격하게 들린다.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 과밀한 밀도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정책이 필요한 도시라는 인상도 받는다.

한정된 공간을 잘 활용하기 위한 노력의 면면은 이렇게 정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늘 공사 중인 거리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런던에서는 기존의 길을 유지하면서 차도와 인도를 필요에 따라 교체하는 도로공사, 낡은 배관과 도로를 정비하는 정비공사, 건물의 1층을 재정비하는 보수공사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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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돌리면 관광지가 보이고, 눈을 돌리지 않아도 관광객이 휙휙 지나다니는 거리. 지붕이 없는 차체 옆구리에 세인트폴 대성당, 타워브리지, 테이트 모던 등 유명 관광지를 그려넣고 다니는 빨강색 투어버스. 공사 중인 건물 아래로, 옆으로 물 흐르듯 통과해 다니는 행인들.

런던의 생경한 첫 인상은 그렇게 마음 속에 새겨졌다. 장장 22시간의 각성 끝에 연수단 일행은 숙소에 들어 잠을 청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동시에 미래의 도시모습을 조금씩 구현해가고 있는 런던, 런던은 그래서 ‘언제나 공사 중’인 도시다. 도시 정책의 어떤 철학, 도시 계획의 어떤 역사가 이러한 모습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학습’은 23일부터 진행되었다.

글: 송정아 (희망제작소 연구원)
사진: 송정아, 소준호(진안군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