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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미국은 첫 흑인대통령의 탄생을 놓고 지금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흑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1980년대 중반 LA에서 ‘로컬 기자’(교포신문 기자)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교포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LA 시내에는 백인은 별로 보이지 않고 온통 흑인과 라티노(주로 멕시코 출신)가 거주했습니다. 특히 사우스 LA는 흑인 밀집지역으로 1960년대 대규모 인종폭동이 발생했던 곳이고, 1991년 LA폭동 때도 험악했던 곳입니다.


한인 사회와 흑인의 갈등


그 사우스 LA에서 ‘센테니얼’이라는 흑인 신문이 발행되고 있었습니다. 흑인강도가 한국인 주유소 종업원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신문의 편집국장을 만나 한인과 흑인의 갈등에 대해 의견을 듣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오후였는데 그 넓은 거리가 휑하니 비어 있었고, 길을 걷는 보행자도 거의 없었습니다.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신문사를 찾아가는데 골목길에서 얼굴을 삐죽삐죽 내밀고 쳐다보는 흑인 젊은이들의 눈길이 정말 거북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흑인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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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의 흑인 편집국장은 부산에서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주한 미군으로 1년을 근무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LA거주 한인들에 대해 악감정을 내뿜었습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한인교포 상인들이 흑인을 너무 차별하고 있다. 한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흑인에게 주유 서비스를 거부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한인들이 흑인을 상대로 이렇게 차별할 수 있느냐. 백인들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한국인들이 흑인 고객을 경계하거나 마음속으로 멸시하는 일은 있겠지만 장사를 하면서 주유를 거부할 정도로 차별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흑인이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차별한다는 오해를 살 만한 일이 있었거나, 진짜 차별을 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흑인 차별의 역사


그 후에 미국의 인종갈등에 관한 학자의 글을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민의 나라다. 먼저 이민 온 인종이 나중에 건너온 인종에게 텃세를 부리며 차별하거나 멸시했다. 영국의 앵글로색슨 인종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백인들이 가장 먼저 들어와 터를 잡았고, 그들은 나중에 들어온 아일랜드계를 깔보고 차별하기 시작했다. 이 아일랜드계 이민들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이민자들을 냉대하려 들었다. 그 후에 유태인을 중심으로 한 폴란드 러시아의 이민자들이 줄을 이어 신대륙으로 건너오면서, 이들 또한 앞선 이민종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유럽이민의 뒤를 이어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사람들의 이민이 시작되었고 남미 이민자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2차 대전 이후에 한국도 미국 이민물결에 합류하면서 그런 차별과 냉대를 받았다. 그런데 이 차별의 사슬(체인)에서 예외인 인종이 있다. 바로 흑인이다. 이민 역사로 볼 때 흑인은 앵글로색슨과 더불어 가장 초기에 신대륙으로 건너왔는데도 나중에 미국에 정착하는 모든 종족들로부터 차별과 무시를 당해왔다.”

필자가 LA에 살 때만 해도 흑인이 대통령은 고사하고 국무장관이 되는 것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한인교포들이 흑인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지내다 보면 미국은 역시 백인이 지배하는 나라가 제격이라는 생각에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민권운동을 벌이다 총에 맞아 죽고, 미국 남부에서 흑인이 백인이 타는 열차 칸에 들어올 수 없던 것이 1960년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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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민권법안이 통과되면서 차별의 벽이 많이 허물어졌습니다. 흑백 인종간의 결혼 문제를 다룬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미국 사회의 변화가 집약된 상징적 영화였습니다. 피가 섞이는 것처럼 인종 간 차별의 벽이 완전하게 허물어지는 것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백악관 문 앞에 선 오바마


시간은 사회를 무섭게 변화시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 연거푸 2명이나 흑인에서 나왔습니다. 용케도 그것이 모두 흑인의 지지 세력이 아닌 공화당 정부에서 말입니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는 여성이자 흑인으로서 법적으로는 아무런 제한이 없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성과 인종의 유리벽을 뚫었습니다.

작년 이 때까지만 해도 “글쎄”하고 생각했던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후보 지명을 따내고 최초의 흑인 미국대통령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기세등등했던 힐러리의 아성도 오바마가 던지는 ‘변화’의 메시지 앞에 무너졌습니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역전노장의 상원의원입니다. 그는 베트남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출격했습니다. 하노이 상공에서 비행기가 격추되었고 낙하산으로 탈출한 그는 월맹에 의해 구출되었으나 5년간 억류되었다 풀려난 미국적 영웅입니다. 미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입니다. 그의 캠페인 구호 ‘국가 우선(Country First)’은 정말 그의 생애에 걸맞은 메시지입니다. 새라 페일린이라는 젊은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하여 여론조사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케인은 나이가 너무 많고 부시대통령의 유산이 너무 무겁습니다.

시대변화의 흐름에서 볼 때 오바마가 물결을 타고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전 애틀랜타 시장 앤드류 영의 말처럼 너무 빠른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의 역사는 다시 한번 어마어마한 변화를 잉태할 것입니다.

나라를 세운 지 232년, 미국은 흑인을 백악관 안방으로 초대할까요.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했습니다.

”?”올챙이 기자로 시작해서 주필로 퇴직할 때까지 한국일보 밥을 먹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의 대부분을 일선 기자로 살면서 세계를 돌아 다녔고 다양한 이슈를 글로 옮겼지만 요즘은 환경과 지방문제, NGO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0.6도 올랐다는 사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을 엄중히 경고하기 위해서 사막을 다녀온 후 책을 쓰고, 매주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천상 글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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