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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희망탐사 35>

‘대안'(alternative)이라는 말은 무겁다.

사회의 여러 문제를 깊게 고민하고 근본적인 한계를 직시하며, 이를 극복하고자 시도하면서 가시적인 해결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거나 제시할 수 있다는 책임감까지 얹혀있으니 그 무게가 가벼울 리 없다. 그 무거운 말, ‘대안’이라는 단어가 붙은 말 가운데 가장 일반화된 단어 가운데 하나가 ‘대안학교’일 것이다.

대안학교가 펼치는 대안교육에 대해 명확한 합의가 이뤄진 바는 없으나 기존의 학교와는 다른 다양한 교육실천이 점차 뚜렷한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그 이름에 걸맞게 대안학교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실험은 진행 중이며, 조금씩 진화가 이뤄지고 있다. 교과서와 교실을 벗어나 땀 흘리는 노동을 통해, 직접 발로 밟고 눈으로 보는 여행과 탐방을 통해 더 많은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교육의 방식만큼이나 그 이념 또한 전혀 새롭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눈을 낮췄다는데 있다. 대안학교는 거창하게 세계의 리더양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같이 어울려 사는 멋진 이웃으로 크는데 목표가 있다. 일류대학 합격을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일류대학보다 자연과 평화와 공동체를 생각한다.

세속적인 잣대에서는 낮춰졌을지 몰라도 그 눈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 셈이다. 순위로 매겨진 대학에 멈춰있지 않으며 인간에만 멈춰있지도 않다. 지구를 향하고, 인류를 향한다. 학교에 따라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불어 살줄 아는 인간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목표가 평화에 있기도 하고, 시민사회에 있기도 하고, 농촌에 있기도 하다.

대안학교는 1990년대 들어 확대되었으나 그 이전인 1970년대 초부터 대안교육의 운동 흐름이 일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대안학교의 뿌리는 1970~1980년대 야학이나 공부방에서 찾기도 하고, 더 멀게 1950년대 홍성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대안학교의 뿌리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충남 홍성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도시가 아닌 홍성이라는 작은 농촌마을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아닌 농업과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 풀무학교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찾아갔다.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평민을 기르는 더불어 사는 교육, 엘리트가 아니라 누구나 타고난 자기를 실현하는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믿고, 그러한 학원을 위하여 학교는 작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라는 그 믿음만큼 남다른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홍순명 교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풀무학교, 이렇게 시작됐다.

풀무학교는 민족학교로 유명한 오산학교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오산학교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기독교 학교이다. 그러나 그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산실로 자리매김하면서 ‘민족학교’로 불리기 시작했다. 평안 정주군에 있던 오산학교는 1956년 현재 위치인 서울 용산구로 옮겨졌다.

이 오산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던 씨알 함석헌 선생의 동급생인 이찬갑 선생은 월남 후 오산학교를 부흥시키려다 풀무학교를 설립하게 됐다. 오산학교가 이곳 충남 홍성에서 풀무학교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1958년 설립했는데 설립자 중 한 분인 이찬갑 선생은 이기백 교수의 선친인데 오산학교 출신이에요. 그래서 오산학교의 정신을 이곳에서 실천하고 싶어 하셨죠. 다른 설립자 분은 주옥로 선생이신데 감신대를 나온 뒤 홍동에서 전도를 하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찬갑 선생과 손을 잡고 풀무농업기술학교를 열게 됐습니다.”

학교만 문을 연 것은 아니었다. 같은 해에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그때는 학용품 공급이 주된 역할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농협과 같은 것이다. 우체국이나 은행 등을 학교 안에 설치하는 것이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의 실험이었는데 그것이 풀무학교에서 실현되었다.
“이찬갑 선생은 학교가 지역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바탕에서 기둥이 된 것이 생활협동조합과 신용협동조합인데 졸업생들이 거기에서 일을 하고, 그것들을 키워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의 3분의 2가 졸업생이죠.”

실제로 홍순명 교장과의 인터뷰를 끝내고 만난 풀무신협의 정규채 전무는 “풀무신협은 우리 동네의 알짜 은행”이라면서 “풀무학교가 그 원천”이라고 말했다. 또 풀무생협의 박종권 이사장은 이 학교의 17회 졸업생이기도 하며, 홍성마을의 대표 주형로씨 또한 14회 졸업생이니 그야말로 홍성의 마을 자체가 풀무학교와 함께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학교를 책임지면서 마을 공동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홍순명 교장은 이 학교 졸업생은 아니다. 그는 풀무학교에 감동을 받은 ‘풀무학교의 팬’이었다.

“군대에서 풀무학교 기사를 ‘새벽별’이라는 잡지를 통해 처음 접했어요. 보고 감동을 받았죠. 제대하고 바로 이 학교로 왔습니다. 그 이후 여기에서 결혼도 하고, 내 청춘을 이곳에 묻었죠.”

풀무학교의 팬이 되어 이곳에 청춘을 묻고, 이곳을 고향처럼 여기고 살고 있는 홍 교장은 일흔에 이르는 느지막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6개 국어를 자랑하는 실력파다. 일본잡지를 보고 좋은 기사는 번역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어디가나 서점을 먼저 찾는다. 배움에 쉼이 없는 그이기에 그의 가르침에도 쉼이 없다.

작은 학교가 좋은 학교이다

풀무학교는 작은 학교다. 큼지막한 건물에 수백 명의 학생과 교사들, 각종 시설이 있어야 좋은 학교라는 기존의 선입견과는 달리 작은 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게 이곳 교사들의 믿음이고, 설립자의 철학이기도 했다.

“학교의 역할은 사람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덴마크, 영국 어디서나 학교가 사회변화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풀무학교의 설립자 자체도 처음부터 학교는 작아야 한다고 철칙같이 믿었습니다. 한 학년 한 학급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작은 학교로 하기 위해서 기술학교로 허가신청을 냈죠. 농업도 있고 공업도 있지만 농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설립하신 이찬갑 선생은 덴마크 교육에 관심이 높았는데 전인교육이나 건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 작은 학교를 고집하신 겁니다.”

1950년대 만들어져 허가를 받았고 풀무농업기술학교라는 대안학교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풀무학교는 한국 대안학교의 기원으로 인정받고 있고 대안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은 대안학교로 완전 편입되는 게 어떤지 제안을 받기도 하지만 예전 이름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있고, 그 이름 안에 이미 지금까지 펼쳐온 대안교육의 내용이 담겨 있으니까요. 학교 교훈이 ‘더불어 사는 평민’입니다. 엘리트 교육, 출세 교육이 아니고 평민들, 개성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그래서 혼자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지향의 인격을 가진 사람을 키운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는데 어떻게 성적이라는 일괄적 잣대로 차별을 받을 수 있나요? 열매보다 뿌리를 가꾸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열매를 따는 사람보다 사회의 뿌리를 바꾸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설립자들이 많이 했죠.

요즘 대안학교라는 이름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데 대안학교든 공교육이든 교육의 기본을 지켜야 하겠지요. 전통교육과 전인교육이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학생들이 교육받는 과목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뭔가 학생들이 학교에서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1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거죠. 전통에 뿌리를 박고 활발히 현재를 움직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겁니다. 유엔에서도 지속가능한 교육을 선포했는데 지속가능성이 21세기의 도전이죠. 교육의 측면에서는 우리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건강과 직결되는 환경, 문화, 다양성의 존중, 환경에 대한 책임감,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 등이 평화교육이 핵심이 되는거죠. 평화가 특별한 것이 아니고 21세기사회와 교육의 핵심이라고 보면 됩니다.”

풀무학교에서 다져지고 더욱 단단해진 홍순명 교장의 교육철학은 변함없고 그 교육철학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안교육의 지향방향과 다름없다.

개교 50년에 접어든 풀무학교는 특히 그러한 교육철학을 지향하며 동시에 지역과 호흡하는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졸업생이 1200명이고 그 중 250여 명이 지역에 남아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내 다양한 단체, 기관과 박자를 맞춰 함께 지역의 발전도 도모하고 있다. 그러기에 풀무학교에서는 그 지역의 농업이야기가 빠질 수 없으며, 하다못해 작은 가게에서도 풀무학교의 숨결이 묻어난다.

풀무학교가 홍동면을 새롭게 만들다…지역조직의 부화장 풀무학교

풀무학교가 있는 홍동면은 모든 게 다른 곳과 약간씩 다르다. 풀무학교가 그렇고 풀무신협과 생협이 그렇고 언론 또한 그렇다. 대안은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 이뤄지지 않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대안을 만들어내고 그 대안은 새로운 홍동면, 새로운 농촌의 길로 향한다.

“지역에서도 언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무직원으로 있으면서 홍동신문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홍성신문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것이 전국 최초의 지역신문이었습니다. 생협은 1977년부터 시작해서 비누, 빵 등을 만들며 유지해오다 요구르트 공장이 생기고 자치센터, 은퇴자 농장, 어린이집 등도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민조직도 굉장히 발달해서 10여개가 넘는 주민조직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인구가 적어서 이러한 주민조직이 활성화되는데 20년이 걸리긴 했지만요. 유기농은 1975년부터 도입했죠. 당시는 유기농하면 농업 망친다고 해서 핍박을 많이 받을 때였는데, 지금은 전국 최대의 오리농법 농업단지로 성장했고 무엇보다도 유기농업 하는 농민과 농민회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모두가 잘 협력을 하고 있어요. 그게 이 지역의 정신이고, 이 지역이 다를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학교도 대체로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유리될 수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역사회와 학교간이 소통하고 협력하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 잘 이뤄지고 있거든요.”
”?”유기농에 앞장서는 이들도, 각종 주민조직에서도 풀무학교의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고 있다. 그야말로 지역조직의 부화장으로서 풀무학교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풀무학교 뿐만이 아니다. 홍동면에는 초등학교부터 전문학교까지 웬만한 교육시설은 다 갖춰져 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같이 지역을 향해있다. 지역에서 학생을 받고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지역학교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홍동면에 5000명가량이 사는데 초등학교부터 전문학교까지 다 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만큼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데, 이는 졸업생이 농업이 소중한 것을 알고, 지역에 기여하고 싶어 남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농업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어떤 농민이냐에 따라 농업이 변화하게 되겠죠.”

귀농자들이 선호하는 이유

그렇기에 홍동면에는 귀농자도 많고, 그들의 역할도 크다. 귀농자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새로운 농업과 기술이 이곳에서는 몇 십 년째 이뤄지고 있으며 시멘트 건물을 벗어난 교육도 대안교육을 지향하는 때문이다.

“홍동면에 16가족의 귀농자들이 들어와 있어요. 모두 열심히 입니다. 귀농후보지가 여러 곳 있는데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고, 몇 년 후 쯤 자립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해요. 저 스스로 귀농자들에게 이웃을 잘 보라고 이야기 하죠. 이곳은 협동조합이 4개나 있고, 아이들을 믿고 맡길 곳이 있으니 귀농지 조건으로서 좋은게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홍동면에는 여성과 아이들도 저항감이 크지 않게 귀농하고 있다. 홍동면의 어린이집도 주민들이 만든 법인체로, 스스로 만들어서 본인의 아이들을 맡기니깐 열심일 수밖에 없다. 장애인과 통합교육을 하며 원장도 2년 임기제다. 유기농 급식제, 주민들과 식단위원회도 실시하며 어려서부터 텃밭을 가꾸도록 하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릴 때부터 땅과 사람을 중히 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귀농자 등을 위한 생태교육도 실시된다.

“풀무환경농업전문학교는 2년제 전공과정으로 운영되는데 주민들의 평생교육장이 되고 있습니다. 풀무생협 조합원들도 의무적으로 조합의 정신 등을 여기서 교육받고 있어요. 홍성군의 다른 면장들이 젊은이들을 추천해서 유기농의 모든 과정을 기술센터와 더불어 이 곳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일꾼을 기르는 거죠. 2년 학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평생교육을 진행합니다. 주민도 강의를 듣고 전공과정이 있어 유기농 연구하고 그 지식을 배포할 수 있죠. 어느 지역이나 이런 간단한 학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홍순명 교장의 이야기는 교육에서 시작해 지역과 농업과 귀농자와 농업유통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이뤄졌다. 우리밀에 대해서도 그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했으며 농촌이 살아남기 위해 생산 뿐 아니라 가공업과 유통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유통에 있어 농민 스스로가 주체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홍동면의 마을직판장 ‘갓골 작은가게’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홍순명 교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풀무학교가 더욱 특별한 것은 대안교육을 실천하는 대안학교여서가 아니라 지역과 호흡하는 살아있는 학교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을 배우는 곳만이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은 교과서 교육으로만 이뤄지지 않으며, 좋은 곳을 탐방하거나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학교가 지역과 호흡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곳이 살아있는 학교이며, 그곳이 바로 여기 풀무학교다.

덧붙이는 말

지난 2006년 6월에 홍순명 선생을 만났다. 그때 그는 위 인터뷰와 같이 풀무학교의 교장이었다. 스물넷의 총각선생으로 1960년에 풀무학교에 부임했던 그는 그러나 올해 초 정년퇴임을 했다. 42년만이다. 풀무학교에 있는 동안 홍동면의 사람과 결혼해 6남매를 낳았고, 아이들을 모두 풀무학교에 보내 수업시켰다. 풀무학교의 첫 졸업생부터 2007년 졸업생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제자가 없다. 그런 그는 학교를 떠나면서 “이제 농민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가 일궈낸 수많은 제자들만큼 알찰 그의 알곡들이 궁금하다.

면담일시 : 2006. 6. 2

면담장소 : 홍동면 갓골작은가게

면담자 : 풀무농업기술학교 홍순명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