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획과 생각은 지역에서의 삶에서 나와요”

전국 지역에서는 청년들이 일군 임팩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성장이 로컬의 변화로 이어지는 소셜디자이너들의 다채로운 활동과 이야기를 특집으로 전합니다. 오는 11월 14일 개최되는 청년 소셜디자이너를 위한 무대 ‘2024 사회적가치 투자(Social Investor Relations, SIR) 대회’에서도 생생한 임팩트 경험담이 펼쳐집니다.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 | 충북 옥천

손가락 한 번 튕기면 전 세계 소식도 3초면 전달되는 시대, 방방곡곡 지역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통로는 온라인뿐인 걸까요? 그런데 여기, 돈을 내고 인구 4만 8천 도시 소식이 담긴 잡지를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공기관에 배포된 잡지? 지자체 발행 책자? 아닙니다. 충청북도 옥천군에 위치한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에서 매달 발행하는 잡지 <월간 옥이네>입니다. 동네 사람들이니까 사서 보는 것 아니냐고요? 구독자 60%가 옥천 밖 거주자랍니다.

박누리 편집장은 <월간 옥이네>를 만들며 옥천에 사는 평범한 이웃을 취재하고, 농촌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새로운 변화와 움직임을 기록하는 소셜디자이너입니다. 희망제작소 뉴스레터 구독자 수를 늘릴 방법도 있을까? 사심 담아 슬쩍 비결을 물으니 “그냥 옥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요? 종이 매체 위기 시대, 지역 소도시를 주제로 삼은 지역 잡지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월간 옥이네>로 빼곡한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박누리 편집장을 만났습니다.

▲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

옥천으로 이주해서 활동하고 일한 기간만 벌써 15년이라고요? 

=경북 구미에서 자란 덕인지 어릴 때부터 지역에 살고 싶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전부 지역에 있는데도 어른들은 항상 “서울에 가야 성공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하는 당신도 지역에 계시면서도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는 말 같아 내심 답답했죠. 동네에서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보고 모두가 다 떠난 도시를 상상하게 되었는데, 지역에서 일상을 꾸리며 사는 사람들이 외로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자가 되어 지역과 지역민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요.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했는데, 교수님께서 수업 시간에 풀뿌리 언론 사례로 <옥천신문>을 소개해 주셨어요. 지역에서 자랐어도 평소에 보고 듣는 모든 뉴스는 전부 서울에 있는 언론사가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지역에도 언론사가 있고 심지어 매우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기회가 있으면 일해보고 싶었지만, 채용을 자주 하지 않으니 별수 없이 취업을 위해 서울에 있는 큰 언론사들 입사를 준비했어요. 언론고시 스터디도 하고, 지원도 하고, 면접도 보고. 그러면서도 늘 편치 않았어요, “너 사실 이 언론사 안 좋아하잖아. 가고 싶지도 않잖아” 이런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거든요. 졸업 직전 마지막 학기에 마침 <옥천신문> 채용 공고가 올라왔어요. 이건 운명이다! 싶어 지원했죠. 

그렇게 <옥천신문> 취재 기자 채용을 위한 마지막 절차로 전무후무한 한 달 합숙 면접이 시작됐어요. 그때 ‘슈퍼스타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선배들이 꽂혀있었나 봐요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버텼나 싶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는데, “최종에서 떨어져도 꼭 지역에서 기자 해야지” 생각이 들 정도로 지역 언론에 대한 애정과 확신을 느꼈어요. 다행히 합격해서 <옥천신문>에서 기자로 일을 시작하게 됐죠. 일하면서 많은 걸 배운 만큼 고민도 많이 생겨났고, 지면에 나온 이야기를 종이 밖으로 꺼내 힘을 보태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죠. 마침 ‘고래실’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아 2019년부터 합류하게 되었어요. ‘고래실’은 공간 ‘둠벙’도 운영하고 있고 잡지 <월간 옥이네>도 발행하고 있으니까, 기자로서도 기획자로서도 다양하게 일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잖아요.

▲ 고래실이 운영하는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의 전경.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은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잡지를 발행하고, 공간을 활용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여 지역민을 초대한다. ©️고래실 홈페이지 

고래실은 <월간 옥이네>를 발행하고 공간 ‘둠벙’을 운영하고 있네요. 누리님은 편집장으로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주로 하는 일은 <월간 옥이네> 지면 작업이죠. 매달 발행되는 잡지는 턴이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돌아와요, 엄청 바쁘죠. 기획하고 취재하고 편집하고, 끝나면 또 기획하고 취재하고 편집하고. 이걸 12번 반복하면 금세 1년이 지나요 하하하. 현재 저희 조직 구성원은 10명 정도인데요, 편집국은 저를 포함해서 4명이에요. 처음 ‘고래실’을 시작할 때보단 커진 규모인데, 가장 구성원이 많을 때와 비교하면 줄어든 것이기도 해요. 나날이 어려워지는 지역 경제 탓이죠. 특히 근래에 공동체 활동이나 사회적경제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크게 줄면서 조직과 구성원의 운신 폭이 확연히 좁아졌어요.

그래도 지역 내외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먼저 연락을 주시는 분들과 외주 작업이나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어요. 다른 지역이나 기관 소식지를 만들기도 하고요. ‘둠벙’이라는 공간을 활용해서 오프라인 프로그램도 운영하고요. 올 하반기에는 기후 문제에 집중해서 전문가를 초청한 시리즈 강좌를 열고, 옥천군민들과 기후정의행진도 함께 했어요. 청년뿐 아니라 어린이, 이주여성 등 우리 지역 주민들이 연결되는 장소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일들이죠.

▲2017년 7월 창간호 발행으로 출발한 <월간 옥이네>는 현재(2024년 10월) 88호까지 발행되었다. <월간 옥이네>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 연속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누리

<월간 옥이네> 편집장으로서 고민과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지역과 조직에 머문 시간이 짧지 않은 시간만큼 역할과 책임의 무게도 클 것 같네요.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매체 운영만은 아니라서 취재하면서 문화 기획도 하고, 공간 관리도 하고, 커뮤니티 운영도 하고… 폭 넓게 일과 활동을 오가고 있긴 한데요. 오히려 이 점이 조금 외로운 것 같아요. 저랑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는 동료가 많지 않다 보니, 고민의 영역이 다른 탓이죠. 제 위치성 자체가 이곳에선 고독한 것 같기도 해요 하하하. 저는 옥천이 고향이 아닌 이주민이고, 비혼 여성이면서, 농업에 종사하지도 않으니까요. 이런 다양한 정체성을 교차하며 고민 나눌 상대가 그리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타지역 행사나 프로젝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서 지역과 조직 바깥사람들과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만나면 확실히 느껴져요, 사는 곳도 다르고 업으로 삼은 일도 다른데 고민의 결은 굉장히 비슷하더라고요. 뾰족한 해결책이 아니어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다정한 공감과 위로가 오간다는 게 큰 힘이 되었어요. 희망제작소 소셜디자이너클럽도 그런 점에서 끌렸던 것 같아요. “로컬에서 소셜해서 외로운 청년이 모인 곳”이라는 소개를 보니, 나랑 비슷한 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책임의 무게나 잘해야 한다는 기대를 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그래서 일이 많아도 빠르게 소진으로 연결되진 않더라고요. 가끔 컨디션 좋거나 설레는 일이 있을 때는 “월요일 좋아! 빨리 출근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좀 특이한가요? 하하. 저에게 지역 기자 일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면서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종종 네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시선이나 말을 들을 땐 상처를 받기도 하죠. 제 일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만큼 일의 가치를 나누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료가 중요하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절절하게 느끼고 있어요. 지역 안에, 내 곁에 이런 동료를 많이 만들고 연결되는 건 여전히 큰 숙제예요.

<월간 옥이네> 주요 구독자가 지역 외 거주자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소도시에서 발행하는 종이 잡지의 유료 구독자가 많다는 점도 신기하고요. 이들이 지역 주민보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잡지를 통해 다루는 내용이 단순히 옥천군 소식에 머물지 않기 때문일 것 같아요. <월간 옥이네>의 주요 콘텐츠는 지역 단신이라기보단, 지역에서 발생한 일을 매개로 지역 바깥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한 이슈와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가깝거든요. 예를 들어 고압 송전탑 피해는 밀양에서도, 교통약자의 이동권 문제는 어느 소도시에서도 존재하는 문제잖아요. <옥천신문>에 처음 입사했을 때, 편집국장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누리야, 옥천군의회에서 일어난 일은 서울 국회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이 말이 저희가 옥천에서 만드는 매체의 핵심을 관통한다고 생각해요.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지만, 지역에 기반한 뾰족한 지점에 주목하면 문제를 더 깊이 있게, 입체적으로 볼 수 있거든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이 있잖아요. 구체적인 디테일은 다를 수 있지만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는 구조적 맥락은 동일해요. 그런 차원에서 옥천의 이야기를 다루면 결국 세상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거대 담론 안에 존재하는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삶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어요. 지역에 거주하는 농민, 노인, 어린이, 여성 등 다양한 지역민이 말 그대로 ‘사는 이야기’에 따듯함을 느끼는 구독자도 많고요. 

▲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는 옥천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둠벙’의 공간 바깥 벽면은 늘 행사 개최와 초대를 알리는 홍보물로 빼곡하다.  ©️박누리

고래실이 <월간 옥이네>와 ‘둠벙’을 운영하며 만든 결과물에는 소도시에 사는 여성 1인 가구의 삶이 많이 담겨있어요. 누리님의 일상도 그렇고요. 이들이 살아가는 농촌을 ‘환상’이나 ‘두려움’ 둘 중 하나로 표현하는 극단적 방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대로 담아낸다는 점이 좋았어요.

=‘둠벙’이 청소년과 청년, 지역 주민이 옥천에 머물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생겨난 공간인만큼, 고래실이 이곳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사업 중에는 귀농·귀촌 프로그램도 있어요. 저 역시도 여성 청년이 옥천으로 많이 이주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늘 있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업 참여자는 중장년 남성인 거예요. 이유가 뭘까? 여성 청년에게 농촌은 ‘비빌 언덕’이 없는 곳인 걸까? 궁금했죠. 이야기를 나눠보니 도시에 사는 2030 여성에게 지역, 특히 농촌은 ‘공포’에 가까운 공간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그 지역과 농촌에서도 농촌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싸우며 사는 여성들이 ‘있다’는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도시 청년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귀농귀촌 교육인 <시골언니프로젝트> 취지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고, 현장에서의 제 고민도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아 현장운영기관으로 함께하게 됐죠. 그동안 일주일살이, 한달살이 체험하고 가시는 분들과도 늘 웃으며 헤어졌는데 이 프로젝트를 참여자들과는 매번 울면서 헤어졌네요. 농촌에 서로가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가 용기가 된다는 게 몸으로 느껴졌어요. 참여자들 눈에 담겨있던 막연한 긴장과 두려움이 옥천의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며 반짝반짝 빛나게 바뀌는 걸 보는 게, 저에게도 일종의 카타르시스였고요. 

▲지역에서 주민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며 (사진 맨 오른쪽 박누리 편집장) ©️박누리 


누리님이 첫 발을 딛었던 15년 전의 옥천과 지금의 옥천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일과 활동 과정에서 경험한 변화의 순간도 궁금하고요.

=지역사회의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지역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려한다는 점이죠. 정책에서 늘 배제되었던 청년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요. 그런데 마냥 긍정적으로 보진 않아요. 사회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청년’에 포함되지 못하는 청년도 많고, 정책 수혜가 ‘청년’에 집중되면 또다시 배제되는 층위가 생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조직의 측면에서는 주민분들도 “지역에서도 뭔가 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신 것 같아요. 하고 싶거나 필요한 일이 생기면 직접 연락주시고, 그러다 같이 기획하게 된 일들이 실제로 많고요. 주민들이 지역에 더 적극적으로 애정을 갖고, 활동하는 영역이 넓어지게 만드는 데에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하하. 옥천 바깥에서도 저희의 활동과 일에 관심 갖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요. 그럴 때면 우리 일이 타 지역 사람들에게도 희망과 상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행동이구나, 누군가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물어볼 사람이 되어줄 수 있구나 싶어서 엄청 힘이 나죠. 

개인의 일상에서는 음… 동네 분들이 저처럼 나이 들어가는 비혼 여성에게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는 점? 하하하. 사실 저는 이곳에서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적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이건 제가 경계하고 긴장해야 하는 지점인 것 같기도해요. 제가 이런 일과 활동을 하고 있으니 제 앞에서만 조심하고 다른 여성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여전히 옥천으로 홀로 이주해 사는 여성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그룹을 지역사회가 조금씩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보여요. ‘저렇게 살면 힘들지 않을까’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과, 동시에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믿고 바라보는 응원의 마음도 느껴지고요.

▲일과 활동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틈틈히 텃밭을 가꾸며 농촌의 문법을 읽는 활동도 이어왔다. 2020년 무렵 시작한 토종씨앗 텃밭 농사는 이후 회사와 지역공동체가 함께 결합하며 10명이 넘는 주민이 함께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박누리 

앞으로 <월간 옥이네>를 통해 이루고 싶은 건 뭔가요?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는 지역 이슈나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요?

=저는 항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인데 하하하. 몇 년 전부터 계속 ‘해야지’ 생각하고 있는 건 여성청소년 월경권 문제를 지면 밖으로 꺼내보는 일이에요. 그간 <월간 옥이네>에서 조금씩 다뤄오긴 했는데, 문제 제기에 그칠 게 아니라 실제로 지역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당사자와 같이 고민하고 시도해 보고 싶어요.(*실제로 ‘고래실’은 2022년 둠벙에서 여성 월경권 관련 강의를 개최하고, 옥천제일교회와 함께 옥천군 최초 공공생리대함을 설치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저는 늘 어떻게 하면 ‘이슈파이팅’을 하면서 지역 주민이 문제해결에 참여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거든요. 저에겐 잡지도, 공간 운영도, 사업 기획도 전부 그런 맥락에서 연결되어 있고요.

가장 큰 목표는 농촌에 사는 여성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더 오래 담아내는 거죠. 제가 편집장이니까 사실 이미 지면 곳곳에 은근하게 녹아있긴 한데, 하하하. 인터뷰 대상을 섭외할 때 되도록 여성을, 가능한 많이. 사진을 고를 때에도 여성이 등장하는 사진을 전면으로. 결국엔 <월간 옥이네> 지면을 통해 담아낸 이야기가 실제로 누군가의 피부에 닿도록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저는 본래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마감이 있고 기한이 있는 업무를 오랜 시간 해오다보니 일하는 자아는 꼼꼼하고 철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성향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걸 선호해요. 옥천으로 이주할 때도 평생 발붙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살아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살아보니 벌써 이만큼이나 살았고요. 제 모든 기획과 생각은 지역에서의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잃지 않으면서,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그러나 순간에 늘 충실하게 지역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인터뷰·글  희망제작소 최나현 선임연구원 ㅣ 인터뷰 정리 손호석 객원연구원 ㅣ 사진 박누리 제공, 고래실 홈페이지